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ㅠ_ㅠ 댓글 달아주신 한 분, 너무 감사했어요!
*
"성종아. 미안하다니까, 응? 내 사과 좀 받아줘."
성규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짜 미안해. 다시는 안 보챌게. 그러니까~ 제발.. 응?"
"성규야."
"응?"
"나, 어제 아무것도 못 느꼈다?"
"응? 무슨 소리야?"
"어제, 지하철에서 넘어져서... 지나가던 사람이랑 부딪혔는데. 그 사람 눈을 봐도 아무것도 안 느껴졌어."
"......뭐라고? 진짜?"
"응."
성규의 작은 눈이 커질대로 커졌다.
"그런 사람이 전에도 있었어?"
"없었어. 어제가 처음이었어."
"우와... 신기하다."
"... 그러게. 아무 것도 못 느끼는게 정상인데. 난 이걸 신기해하고 있네."
"미안.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근데 진짜... 신기하긴 하다. 니가 못 느끼는 사람이 존재하다니."
".........나도 되게 신기해. 내가, 느낄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는게."
"진짜 아~ 무것도 안 느껴졌어? 일반 사람들이 사람들 보는 것 처럼 그랬단 말이야?"
"....응. 다른 사람들이 남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구나.. 싶었어."
"그래서 계속 아무 말도 없었구나, 생각하느라."
"응."
다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내가 느낄 수 없는 유일한 사람.
뭘 하는 사람일까, 몇살일까, 부터 시작해서 왜 내가 그 사람만 느낄 수 없는지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안 되겠다."
"응?"
"기쁜 일이잖아. 니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상황이 한번이라도 안 일어났다는 건.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 그런가. 그래,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내가 생각에 빠져있는게 걱정됐는지 성규가 나를 집밖으로 끌고 나왔다.
"너 낮에 나오는 것도 되게 오랜만이지?"
"그렇네."
"오랜만에 낮 공기도 쐬고, 어제 오늘 평소에 못봤던거 몰아서 하는 날인가보다."
성규가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즐거운 말들을 쏟아냈다.
내가 유일하게 믿는 사람. 부모님도 믿지 못하지만, 성규만큼은 믿을 수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자기 감정에 솔직한 유일한 사람이니까.
*
"야, 이성종! 일로 와봐."
그 날도 어김없이 시작이었다. 날 부르는 목소리.
두려움에 떨었던 나는 어김없이 자는 척을 했지만, 아이들은 굴하지 않았다.
"자는 척 하지말고, 이리로 와보라고."
날 부른 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왕따시키고 괴롭히는 걸 즐기는 소위 좀 논다는 애였다.
내가 가지 않으면 날 죽어라 때릴게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가야만 했다.
"왜 불렀어?"
"아, 뭐 그냥. 심심해서."
"야, 이성종. 너 왜 진짜 사람 눈을 안 쳐다보냐?"
"어?"
"사람이 말할때 눈을 쳐다봐야지. 맨날 고개 숙이고 땅보고 얘기하고. 혹시, 쫄았냐?"
"....."
"설마 소문이 진짜인 건 아니지? 니가 사람 마음을 읽는 다거나 그런 개소리들 말이야."
평소보다 더 심하게 파고 들었다. 항상 고개숙이고 있는게 찌질해 보인다며 괴롭히는 정도에서 넘어서고 있었다.
더 이상 캐물으면 어쩌지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다시 말을 걸었다.
"이번 기회에 한번 증명이나 해보자. 그 거지같은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 쟤 좀 잡아봐."
뒤에 서있던 다른 애 두명이 나를 양쪽에서 잡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제발...
"왜 안 봐? 설마 진짜야? 그럼 한번 말해봐.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돌리고 있던 내 고개를 그 애가 손으로 잡아 정면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버텼지만 어림도 없었다.
"눈 떠."
"싫어."
"눈 뜨라고."
"싫어."
"눈 뜨라고!!!!!!!!"
"싫어!!!!!!"
처음으로 내가 소리를 지른 모습을 보자 그 애는 더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씨발, 이 새끼가 지금 나랑 장난하나... 내가 계속 봐줬더니 호구로 보이냐?"
큰소리가 들려오자 옆반에서 우르르 몰려와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애는 미친듯이 내 뺨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내 볼은 점점 빨갛게 부어올랐지만 아무도 그 애를 막지 못했다.
10대가 넘어가자, 나도 내 정신을 점점 놓아갔다.
"눈 뜨라고, 눈 떠!!!"
아무리 반항해도 팔 한짝 풀지 못했다. 결국 나는 눈을 뜨고 말았다.
나를 내려보고 있던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애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 애의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당황, 영웅심리 그리고 무서움까지. 끔찍한 감정을 느낀 나는 결국 이성의 끈을 놓고 말았다.
"넌 지금 존나 기분이 더러워, 나 같은 하찮은 놈이 반항한게 기어 올라서? 아니. 오늘은 장난만 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내가 기어올라서 당황하던 중이었어. 하지만 옆반에서 구경꾼들이 몰려오니까 니 그 거지같은 영웅심리가 발동해서 나를 때리기 시작했지. 어때, 영웅이 되신 기분이?"
그 애는 나를 때리던 손을 멈추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날 붙잡고 있던 두 아이도 내 팔을 놓았다.
"아, 이걸 말 안 했네. 니 부모님이 너 버릴까봐 무섭지? 니가 나를 죽어라 패서 징계받으면 너를 포기할까봐 무섭지? 근데 넌 니 그 거지같은 영웅심리가 더 커. 부모님이 널 버리든 말든 영웅이 되는게 먼저니까."
"야, 너..."
"너 같은 병신새끼도 무서움은 느끼나보네. 내가 니 생각 줄줄 말하니까 무서운가본데, 나는 니 그 감정을 내가 같이 느낀다는 게 무서워. 니 그 쓰레기 같은 감정을 내가 같이 느낀다는게 무섭다고!!!!!"
악을 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나자, 온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몸과 정신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 때, 아주 어렴풋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야, 너희들 얘 안 옮기고 뭐해? 얘가 사람 감정을 느끼든 말든 애가 쓰러진게 먼저지 그걸 쳐다보고 앉아있냐?"
그러고는 누군가 나를 들쳐 업었고, 내가 눈을 떴을 때 한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괜찮아?"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쳐버렸고, 이 아이의 감정을 모두 느꼈다.
날 업고 온 애가 얘라면, 아까 내 상황을 봤을테니까 나에 대한 경멸감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어디 아프진 않아?"
그런데, 나쁜 감정은 하나도 안 느껴졌다. 걱정과 안타까움, 안도감만이 느껴질 뿐.
날 괴롭히던 그 아이의 적대적이고 악한 감정이 사라지고 날 데려온 아이의 선한 감정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열은 없는 것 같고. 양호선생님 모셔올게."
"저기.."
"...응?"
"................고마워."
이 아이가 날 보며 웃더니 말했다.
"고맙긴. 내 이름은 김성규야."
*
그렇게 우리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내 능력을 알고도 날 나쁘게 보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자, 감정을 숨기지 않는 사람.
날 나쁘게 보는 건 뭐가 됐든 괜찮았지만, 자신의 감정과 다르게 연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난 그 사람의 감정을 모두 알고 있어서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내가 느낀 감정과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일치하는 경우는, 성규가 유일한 경우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너랑 나랑 어떻게 친구 먹었나 생각하고 있었어."
"아, 그때? 너 그때 진짜 무서웠는데."
"아, 그랬어? 근데 왜 내가 양호실에서 느낀 감정엔 그런 게 없었지?"
"니가 아주 잠깐 무서웠어. 근데, 뭐 어쩌겠어. 니가 느끼고 싶어서 느낀 것도 아니고 그 개새끼가 너 괴롭혀서 그런건데."
"아... 그랬어?"
"그리고, 그 능력이 나쁜 것도 아니고. 또 니가 안 깰까봐 그게 더 무서웠어. 내가 빨리 말렸으면 안 그랬지 않았을까, 싶었고."
"..........."
성규한테는 늘 고마운 마음 뿐이었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근데 우리 어디가?"
"아, 사람도 별로 없고, 니 집에서도 가까운 곳에 카페가 있더라구. 니가 낮에도 왔다갔다 할만큼 괜찮은 곳 인것 같아서.."
"아, 응."
"거기 와플도 맛있어. 도착 했다."
성규가 나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조그만 카페 앞이었다. 사람도 별로 없고, 조용한 곳이었다.
"들어가자."
성규를 따라서 들어간 카페 안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손님도 한 두명 정도 밖에 없었다.
"어때? 여기 괜찮지? 사람도 별로 없고."
"응. 괜찮네."
가게를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어떤 사람에게로 눈길이 꽂혔다. 어디서 본 듯한 뒷모습. 테이블을 정리하고 뒤돌아선 그 사람은,
지하철에서 만난 바로 그 사람이었다.
오늘은 성규이야기를 하다보니, 명수이야기가 뒤로 밀려났네요ㅠㅠ
다음 편부터 명수와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ㅎㅎ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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