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도경수] 낙서.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30223/bc46d2bbb84e8c13eaa43daa3653ddac.jpg)
희고 고왔던 고사리같았던 그 작은 손이 내 손을 덮었을때, 나는 아직도 그 손길을 마음속으로 기억한다. 시냇물의 전경을 바라보며 내게 그 투박한 손으로 심통맞은 돌맹이를 던지던 너의 모습이 떠올라 얼마나 많이 아렸는지, 너는 알지 못할 것이다. 원망하지는 않는다. 원망을 한다면 애꿎은 너를 첫사랑으로 생각해버린 내 자신을 내 어리석은 마음을 원망하고 타이를 수 밖에. '돼지' 라고 부르던 그 목소리가 싫었던 날이었는데, 어느샌가 그 말을 기다렸고 너의 장난을 기다린 내 마음을 너는, 아마 영원히 알지 못할것이다.
"바보 도경수."
너는 바보다. 그리고 나 역시 바보다. 10년이 지나도 너를 잊지 못한 나는 참 어리석은 바보임이 틀림없다. 시냇물은 흘러가고 시간도 흘러가는데, 어찌 내 마음은 그대로인지.
낙서
도경수가 다시 전학을 왔다. 어릴 적 도경수의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던 나를 포함한 다른 몇몇의 아이들은 쟤 도경수 아냐? 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턱을 괸 채 제법 심드렁한 표정으로 창가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10년이 지난, 내 첫사랑이 다시 전학을 왔다. 흘러 다시 돌아왔는데, 어째 난 영 그 아이가 보기가 싫다. 작은 반의 스무명이 채 안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작은 교실안에 꽤나 시끄러이 울려퍼진다. 전학생의 소개가 짤막하게 끝이나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책상에 엎드렸다.
"야, 뭐하노? 수업 안듣나?"
"됐다…,내 잔다. 아파서 잔다고 해라 알겠제."
"아프기는 개뿔…."
언제나고 최연진 이 년은 내 말을 제대로 들을리가 없다. 그런 연진의 구시렁거림을 애써 무시하고 엎드려 잠을 청하려는데, 오늘따라 쉽사리 잠에 들지 않아 엎드린 채 눈만 껌뻑이며 어둠과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 아이를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때 하고 싶은 말이 봇물 터져나오듯 터져나올것이라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내 마음은 평소와 같이 그대로인걸까? 첫사랑. 단어만 들어도 설레던 그 단어. 근데 이제는 멍석 깔아줘도 모른다. 나는 아마도 그 첫사랑을 이제 완연히 잊은듯 싶다.
"돼지."
"……."
"야,돼지야."
"……."
귓가를 간지럽히는 낯익은 목소리에 나는 눈 깜빡임을 멈추었다. 그 자리 그대로 경직된 듯 나는 엎드리고만 있을뿐, 그 말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뒤이어 자꾸만 들려오는 울화통 터지는 소리에 벌떡 고개를 들었고 내 앞에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도경수와 눈이 마주쳐버린다. 그대로였다. 나를 향해 바라보던 제법 다정하던 눈, 씨익 미소를 짓던 두툼한 입술. 그 모든게 그대로였다. 너는 또 다시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겠지. 그 얄미운 미소를. 돼지야.
"안녕."
도경수는 어린 날의 나에게 인사를 하듯 그렇게 10년만에 나타나 내게 인사했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
"왜 인사안하냐? 돼지라고 해서?"
"…안녕."
"이제야 웃네."
"……."
나에게 친구처럼 대하는 너를 보며 나는 결국 제 마음을 참지 못하고 푸스스 웃음을 터트려버린다. 봄, 진짜 완연한 봄이다.
*
봄이면뭐하노, 내 옆에는 남자가 없고 니만 있는데! 푸르른 숲을 등지고 마치는 하교길, 연진의 타박거림이 또 다시 시끄럽게 울려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귀를 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진짜 보면 볼수록 적응 안되는 가시나라니까. 내가 홱 고개를 돌려 쏘아붙이자 나를 향해 뭐뭐 라며 도리어 적반하장이다. 말을 말아야지, 그래도 봄이니까 좋네. 시골은 이래서 좋다니까. 내가 시골의 완연한 공기를 온 몸으로 담으려는 듯 두 팔을 벌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쉬자, 연진의 구시렁 거림이 내 귀에 걸려와 나는 그만 헛기침을 해버렸다. 연진은 그런 내가 퍽 웃긴 모양인지 실소를 터트리더니 이내 내 눈치에 고개를 돌려 이야기를 돌린다.
"아, 우리 용식이 오빠야는 뭐할까."
"뭐하기는, 군대에서 얼차려 받고 있겠지."
"야! 용식이 오빠야가 얼마나 니한테 잘해줬는데, 니는 그렇게 밖에 못하나?"
"허 - 나도 잘해줬거든? 용식이오빠가 낸테 뭘 잘해줬다고…!"
그와 동시에 퍽. 내 뒷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낯선 물체의 등장에 나는 말을 하다말고 깜짝 놀라 아픔에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아 버렸다. 안그래도 머리 나쁜데 …! 울컥 차오르는 감정에 고개를 홱 돌려 그 물체를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그 물체가 바로 농구공이었다는 것을 알곤 나는 데굴데굴 굴러가는 농구공을 두 손으로 잡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잡히기만 해봐라 식의 분노의 고갯짓이었다. 이 좁아터진 운동장에서 도대체 왜 농구를 하는지 내는 진짜 알 수가 없다니까.
![[EXO/도경수] 낙서.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30223/d282f4687518f888005faa63b0bd4b7b.png)
"……미안."
"……."
그렇게 씩씩 거리며 농구공의 주인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미안한 듯 뒷 머리를 긁은 채 내게 저벅저벅 느리게 다가오고 있는 도경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나는 또 다시 티나게 고개를 홱 돌려 버린다. 왜 하필 쟤야, 진짜…!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곤 내 손에 들려 있는 농구공을 도경수에게 던지듯 건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됐어, 괜찮아. 그건 내 알량한 자존심이다. 적어도 도경수에 대한 내 알량한 자존심.
"…야…ㄴ."
"간다. 잘 해."
이게, 바로 10년의 변화다. 나는 그 10년의 변화를 몸소 느끼고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고 너가 나한테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변화. 나는 너에게 등을 돌렸고 너는 나를 바라본 채 그렇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연진을 강제로 끌고가듯 학교에서 벗어나는 발걸음을 옮기었지만 무언가가 찝찝하고 걸리는 마음에 결국 나는 다시 뒤를 돌아 반쯤 열려진 교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 학교의 안 운동장에는 사람으로 보이는 인영이 그 자리 그대로 서 있다 이내 어디론가 뛰어가 버린다. 그게 도경수라고 확신은 하지 않지만. 적어도 나는 그 인영이 도경수일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녀석은 항상 혼자 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야, 니네들 예전에는 친하지 않았나?"
"어. 친했지."
"근데 왜 그러노. 꼭 싸운 사람처럼."
"…싸우기는, 그냥 어색한거야."
"사랑싸움이 아니고?"
"야!! 무슨말을…!"
"……"
갑자기 자신에게 성을 내는 내 모습이 조금 이상하게 보였는 모양인지 연신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연진의 표정이 영 심상치 않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 아니다. 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라고. 나는 행여나 연진이 오해를 할까 싶어 - 이상한 소문을 퍼트릴까 싶어 - 서둘러 변명을 둘러댔다. 하지만, 들려오는 연진의 웃음소리에 내가 왠지 이상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또 괜스레 울컥 감정이 차오르려 하는데 연진이 내게 별거 아니라는 어투로 말했다.
"농담이다, 농담. 니네 허구헌날 싸웠다이가. 내 모를 줄 알고."
"…어?…어,그랬지."
"니 기억안나나. 우리 학교다닐때 골목에 도경수 하트 니 이름 써져있던거."
"……."
연진의 말에 차츰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이내 떠올랐다. 아주 어렸을 적 도경수의 괴롭힘이 심해지던 날, 어느 골목에서 발견된 도경수와 나의 이름에 장난이 꽤나 심했던 다른 아이가 나와 도경수를 바라보며 사귄다며 장난아니게 놀려대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그게 너무 싫어서 엉엉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었었지. 그때, 누가 나를 달래줬더라…. 그때 도경수가 니 질질짜서 달래줬다이가. 아, 맞다. 도경수였지. 그때, 자기도 당황했을텐데 나를 달래주던 그 엉성한 폼이 퍽 웃겨 웃음을 터트리니 연진 역시 뭐가 그리 웃긴지 이제는 아주 제 배꼽을 잡고 깔깔 웃어댄다. 그리고 내 눈에 드리워진 노란 불빛. 노을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
노오란 불빛에 점철되었던 너와 나의 기억이 다시금 되살아나자 나는 또 다시 그 아려오는 코끝에 고개를 숙였다. 그렁그렁 눈가에 맺힌 눈물을 연진에게 들키기 싫어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다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들어 늘 그렇듯 연진에게 어깨동무 하며 더 신나는 듯 소리쳤다. 가자, 연진아.
"아, 왜이래. 얘가?"
"아아 - 그냥 가자, 최연진."
"… 아 붙지마라니까!"
이제는 내 옆에 도경수가 아닌, 내 친구 최연진이 있으니까 그래도 나름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노을을 등지고 우리는 그렇게 걸음을 내딛었다.
![[EXO/도경수] 낙서.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30223/39f396f4261e08ce8d0c64f6b127a218.jpg)
*
우리 엄마도 참 야박하지, 아무리 그래도 제 딸인데 어떻게 이렇게 나를 내칠 수 있을까. 주말이지만, 나는 여전히 갈 곳 없는 신세나 다름없다. 내 위로 두명의 오빠가 있었는데 오빠들은 이미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 서울에 상경한지 오래였고, 그 두 아들이 우리 엄마의 영원한 자랑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랑이 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딸일 뿐이었으니까. 엄마는 내게 학교를 졸업하기만 하면 대학을 가지말고 당장 서울에 미싱공장을 다니라며 내 결심을 무너뜨리곤 했다. 여자가 대학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냐며 나를 타박하시는 엄마의 쓴 소리가 어찌보면 맞는 말인것도 같아서 나는 늘 고개만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서울로 가기를 원했다. 이 지옥같은 곳에서 제발 떠났으면 좋겠다라고…서울은 그래도 내가 있는 곳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야! 빨리 안 사온나! 네 오빠 배고프단다이가! 괜히 우울한 마음에 신발장의 앞에 서서 발장난만 하염없이 하고 있는데 들려오는 엄마의 얄미운 목소리에 나는 냅다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 간다니까 ! 가! 엄마한테는 오빠만 아들이고 내는 자식도 아니제!"
내게 먼저 모진 말을 뱉었던 엄마였기에 나 역시 엄마에게 매정한 말을 내뱉고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에서 벗어나 읍내로 부리나케 향하는 걸음을 옮겼다. 집을 나서마자마 울컥 차오르는 눈물에 나는 걸음을 더 빨리 걸어 빠르게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이미 찡해진 코 끝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울면 괜히 측은해지는 마음에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 도리어 나는 그럴때가 되면 축 처진 어깨를 피곤 했다. 하지만, 닳고 닳아 이제는 헌신이 되어버린 내 신발을 보면 절로 다시 어깨가 축 처질 수 밖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엄마가 내게 준 잔반거리 돈을 든 채 읍내를 활보하고 있다 문득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 가던 걸음을 멈춰세웠다.
"…도경수?"
도경수였다. 아 맞다, 얘 이제 여기서 다시 사는 거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내 나쁜 머리를 탓하며 나는 어딘가로 바삐 향하는 도경수의 그림자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걸음을 내딛어 도경수를 따라갔다. 읍내를 지나, 하염없이 걷던 녀석의 발은 이내 커다란 계곡이 있는 숲의 앞에 멈추었다. 그렇게 도경수는 계곡이 있는 숲의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굳은 표정으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커다란 계곡 이었지만, 정작 마을 사람들은 찾지 않은 불행한 장소이기도 했다. 이곳에 놀러온 타지 사람들이나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끊은 곳, 그곳이 바로 저 계곡이었다. 혹시라도 귀신이라도 들리면 어쩌나 싶어 쉽사리 가지 않던 곳이었는데. 도경수가 그곳에 들어간다. 잘 알고 있을텐데, 10년이나 더 지난 이야기지만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을텐데 발걸음을 옮기는 경수가 불안했다.
"……."
그래서 나는 앞뒤 사정도 보지 않고 냅다 도경수가 간 곳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떻게서든 그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려야만 했다. 계곡으로 가는 굽이진 바위들을 넘다 이리저리 쓸려 생채기가 났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바보같은 놈. 진짜 바보같은 놈이 틀림없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내 눈에 담겨진 계곡의 모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는 커녕 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널브러진 신발이 내 눈앞에 펼쳐지자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도경수를 불렀다.
"도경수!!야! 도경수!경수야!"
들려오는 건 아무것도 없는 매정한 바람이었다. 나는 더할나위 없이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그 신발을 품에 안은 채 그렇게 경수의 모습을 찾으러 다녔다. 도대체 왜 안보이는거야…. 어느샌가 하늘은 노랗게 물들여가고 있었다. 노란 불빛이 숲을 덮쳤다. 밤이 되면 더 찾기가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급기야 눈물이 터져버렸다.
"도경수!"
저 바보같은 새끼가, 다시 왔는데 이렇게 되었어야만 했나 싶은 마음에 도리어 내가 울컥해 두 뺨에는 눈물이 타고 흘렀다. 널브러진 신발이 제 주인을 잃은 듯 그렇게 차가워졌다. 나는 그 신발을 품에 안은 채 결국 그 자리에서 힘없이 주저앉으며 흐느껴 울었다. 바보같은 놈. 진짜…그리고 곧 따뜻한 기운이 몸에 덮쳐온다.
"…너,뭐하고 있어."
"……."
"응? 야. 일어나봐. 너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어? 너 다쳤어?"
"…도…."
"야…뭐야,너. 다리는 또 왜이래?"
"이 미친 놈아!"
"…야?"
처음에는 내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도경수가 아니라 죽은 도경수의 목소리가 아닐까라는 의심을, 뒤이어 닿은 녀석의 손길이 진정 도경수라는 것을 알고는 모든 감정이 한데 뒤섞여 결국엔 신발을 녀석에게 내던지며 원망스러움에 소리를 질러버렸다. 살아줘서 고맙다고 다행이라고 그렇게 말해야하는데 애꿎은 신발만 던지며 그렇게 도경수에게 화풀이를 해대버렸다. 나는 네가 자살하려는 줄 알고 얼마나 … …얼마나…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흐느끼며 도경수를 타박만 하고 있자,
"…미안해."
녀석은 내게 다가와 나를 토닥이며 그때 처럼 나를 엉성하게도 달래주었다. 바보같은 놈. 예나 지금이나 진짜 한없이 바보같은 아이다. 바보, 바보 도경수.
"울지마.내가 잘못했어."
*
"……"
"이제 괜찮아? 다리는."
"…괜찮아."
"내가 자살을 왜 해. 바보도 아니고."
"너 바보잖아."
"뭐?"
"…아니다. 못 들은 걸로 해."
다리는 연신 상처투성이에 심부름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딸내미의 모습을 볼 엄마의 타박거림에 나는 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도경수는 자살을 하러 간게 아니라, 그저 계곡을 보고 싶었던 단순한 마음에 간 것이라고. 또 내가 그럼 신발은 왜 벗었냐고 묻자, 그저 웃으며 답답해서 라며 내게 말을 흘리는 얄미운 도경수였다. 그런줄도 모르고 괜히 울컥해 엉엉 녀석의 앞에서 목놓아 울어버리자 뒤늦게 찾아온 창피스러움은 누구 하나 달래줄 이 없다. 계곡에서 벗어나 갈대밭을 걷던 중, 도경수는 뭐가 그리 신이 나는 지 연신 미소 가득 한 얼굴로 들뜬 발걸음을 옮기며 내게 말했다. 내가 죽을까봐 겁났어?
![[EXO/도경수] 낙서.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3030/a374b902f0c2060651202f728707995e.jpg)
"무슨 소리야, 그건 또. 아니거든?"
"맞는거 같은데?"
"아니라…."
"난 겁났는데."
"어?"
"너 다쳤을까봐 겁났다고 멍충아."
"……."
제법 봄날의 잔잔한 봄바람이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괴롭힌다. 못들었으면 좋았을텐데, 애석하게도 내 마음속은 도경수의 말에 세차게 요동친다. 나는 한껏 붉어진 두 뺨을 도경수에게 보여주기 싫어 헛기침을 하며 성치 못한 다리로 저벅저벅 앞으로 먼저 걸어나갔고, 그런 도경수는 느린 걸음으로 나를 맞추는 듯 했다.
아직은 어색한 사이라고, 10년도 더 지났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도경수의 말이 내 귓가를 간질인다.
"하나만 물어봐주라."
"……."
"여기 왜 왔냐고."
"……."
그 물음에서 퍽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아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춰 세웠다. 등을 돌리면 도경수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 혹시라도 또 내가 울어버릴까 싶어 나는 고개를 숙였다. 하나만 물어봐주라, 그건 부탁이었다. 여기 왜 왔냐고 물어봐달라며 내게 그렇게 간절히 말하고 있었다, 녀석은. 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의 말에 끝끝내 침묵했다. 살랑거리던 봄바람이 이내 아직은 춥다는 듯 서리게만 느껴져왔다. 도경수. 이윽고 내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여기 왜 왔어."
"……."
울먹임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가다듬으려 했지만 가다듬을 수 없어 그렇게 목이 멘 채 도경수에게 말했고, 정적이 새어나왔다. 녀석의 짧은 한숨께로 뒤이어 나오는 말에 내 심장이 요동쳐 선율을 이루었다. 아아 난 잊고 있었다.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잊을 줄 알았던 그 감정이. 아직은 여전히 너로 멈추어 있다는 것을.
![[EXO/도경수] 낙서.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4102622/656914cfa6b98590d06c6dd3a8fe7507.jpg)
"너가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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