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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1486








전화가 울린 것은 바쁜 일과 중이었다.

"여보세요?"

응답을 함과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튀어나왔다.
익숙한 목소리로 듣는 익숙한 호칭.

"아저씨."

전정국이었다.



짜증이 치밀었다. 전화를 끊고, 자켓을 챙기고, 직원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빠져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는 동안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빨리 와요."

특유의 기세등등한 목소리는 오간데 없고, 물 먹은 어린 강아지의 신음만이 있었다.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에 짜증이 섞인 분노가 꾸물꾸물 고개를 들었다. 몸 간수 제대로 안 하는 새끼는 필요 없어. 단 한 번, 제 앞에서 심하게 앓았던 날, 방문을 박차고 나오기 전 매몰차게 내뱉었던 한마디였다. 푹 젖은 눈을 보면, 사정 가리지 않고 쏘아줄 요량이었다. 쓸데없이 옛 생각이 나, 담배를 물었다. 연기가 차시트에 깊숙히 배일 때까지 필터를 빨고 또 빨았다.


은색 세단이 부드럽게 운동장을 달림과 동시에 끊김 없이 주차를 한 태형이 빈 담배곽을 구겨 운동장 바닥으로 매몰차게 내쳤다. 와이셔츠 차림의 그는 차키를 한 번 빙글 돌리고는, 착 소리가 나게 감싸쥐었다. 보폭이 큰 걸음이 익숙한 곳으로 그를 안내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는 풀 내음과 땀 내음, 낡은 책상 내음마저 실려있었다. 곧 초록색 복도와는 이질적인 구두소리가 쩌렁하게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짝이는 구둣발이 우뚝 멈췄다. 활짝 열린 교실 안에 가득찬 냉기가 일순 온 몸에 끼쳐왔다. 차키를 주머니에 넣은 손이 더러운 교실 문을 쥐고 있었다. 

쭉 뻗은 두 다리를 책상 위에 두고 건방지게 꼬아 놓은 태가 제법 '날라리'였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 편히 등을 기대고,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나누던 대화가 끊긴 것은 한순간 이었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기분 나쁘게 폐 속에 침투했다. 우습다는 듯 낮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듣기 싫은 웃음소리에 정국도 부러 눈을 내리 깔고 큭큭 댔다. 옆구리를 쿡쿡 찌르자, 제 손에 5만원이 쥐여졌다. 거 봐, 내가 뭐랬어.

"아저씨."

올 거라고 했잖아. 끝이 거뭇해진 실내화를 까딱이며 문에 서 있는 태형을 느긋하게 응시했다. 눈썹을 올렸다 내리면 커다란 눈이 커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텁텁하고 후끈한 바깥 공기에 웅성거리는 목소리들이 커졌다. 손가락을 까딱이며 손짓을 했다. 내기에서 이겼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 사실을 태형에게 알리고 싶어, 온 몸이 근질거렸다. 뚜벅, 뚜벅. 말끔한 정장의 사내가 정국의 책상 앞에 섰다. 만족스럽다는 듯 웃은 정국이 손을 뻗었다. 미동조차 않는 태형의 허리춤에 구겨진 지폐를 꽂으니 그제서야 볼만 했다. 지폐가 손을 떠나고, 정국은 꽤 거칠게 일으켜 세워졌다. 이제 정국의 손은 우악스러운 태형의 손아귀 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모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찌푸려진 정국의 미간이 태형을 나무랐다. 아파요. 결코 먹히지 않을 투정을 이제서야 내뱉고 있었다. 숨 막히는 공기에 정국의 와이셔츠가 서툴게 펄럭였다. 목덜미가 끈적이는 느낌이 싫었다. 이마에서 찐득하게 배어 나오는 땀을 느꼈을 때, 두 사람은 태형의 차 앞에 서 있었다. 정국은 하얀 태형의 등을 보고 있었고, 태형은 허리를 잡고 분노에 찬 시선을 아무 곳에나 던지고 있었다.

"내가."

단번에 돌아서 마주한 태형의 눈은, 한 여름 5교시의 태양보다 덥고, 이글거렸다. 뜨겁게 달궈진 차에 기대어 눈을 마주하던 정국이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빌어먹을 햇빛이 제 옆에서 내리쬐고 있어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태형은 억눌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딴 장난, 두 번 다시는 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거친 한숨이 길게 이어졌다. 텅 비어버린 담배곽이 발 언저리에서 나뒹구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다. 눈썹을 문지르던 태형이 정국을 쏘아보았다. 여전히 읽을 수 없는 눈으로 태형을 보고 있는 정국이었다.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속눈썹의 움직임이 컸다. 부채처럼 펄럭이는 속눈썹이 상하 운동을 반복하고, 정국의 입술이 뒤틀렸다.

"장난 아니야."

그저 이 짜증나는 햇빛으로부터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에어컨 바람을 쐬려거든 어떤 답이라도 내뱉어야 했다. 기왕 내뱉을 심산이면, 가장 화가 날 답을 내 놓자. 웃음을 참는 정국의 입술이 소름끼치게 꾸물거렸다. 태형은 걸음걸이부터 분노를 참는 듯,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정국은 표정관리를 하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제 이마에 턱하니 올라온 손에 기다렸다는 듯 눈을 감았다. 쇠냄새가 났다.

세단이 모래바람을 이끌며 학교를 빠져 나갔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모습이 꽤나 흥미로웠다. 정국은 아예 몸을 틀고 태형을 구경하기로 마음 먹었다. 몸 가까이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떨리는 몸을 더욱 재촉했다. 가라앉을 줄 모르는 열이 점점 머리 꼭대기까지 올랐다. 옆으로 누워 차시트에 기댄 몸이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마다 무기력하게 흔들렸다. 뜨겁게 내뱉은 숨에 웃음기가 섞였다. 자랑스럽게 얻어 낸 5만원이 페달 아래에서 굴러다니는 꼴이라니. 지폐를 꺼낼 요량으로 정국이 몸을 태형의 허벅지 쪽으로 숙였다. 그와 동시에 브레이크를 밟은 태형 덕분에 정국의 머리가 핸들에 강하게 부딪혔다. 결국 힘없이 태형의 무릎으로 떨어진 정국이 물기 어린 숨을 간간히 내뱉었다. 예상대로 거친 욕설이 터졌고, 태형은 정국의 머리채를 잡고 조수석으로 내던졌다. 핸들에 부딪힌 머리는 차유리에 다시 한 번 부딪히고 나서야 정국의 손에 들어왔다. 머리를 감싸 쥐고 웅크린 몸뚱이가 떨림을 더했다. 윙윙거리는 열기운이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친년."

낄낄거리는 정국에게 던진 한숨 섞인 한 마디였다. 애시당초 누구를 속이려 했던 건지도 몰랐다. 떨려오는 다리를 숨기려고 부러 다리를 꼬았다. 고열에 붉어진 눈을 감추기 위해 더디게 깜빡였다. 열에 달뜬 목소리를 숨기기 위해 킥킥대며 웃기만 했다. 값진 노력 끝에 얻은 성과를 하찮게 여기는 태형에게 섭섭했다. 기뻐해주길 바랬는데. 그 잘생긴 얼굴이 보고 싶기도 했고. 주차장에서부터는 태형이 정국을 안고 올라가야 했다. 거친 운전 탓에 온 몸에 힘이 풀려버린 정국이 제 발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슴팍에 젖은 숨을 내뱉으며 정국이 아이처럼 웃었다. 아저씨. 축축한 목소리였다. 대답하는 대신에 태형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시뻘개진 눈을 보며 뺨을 올려붙이고 싶은 충동을 겨우겨우 참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 도어락을 빠르게 해제하고 구두를 벗지도 않은 채 침대가 있는 방으로 향한 태형이 정국을 거칠게 내려 놓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안정되지 못한 숨소리와, 자동으로 잠기는 도어락의 경쾌한 음이었다.

"보고 싶었다니까. 바보야."
"주둥이 안 닥치지?"
"바보."

베개에 얼굴을 묻은 정국이 힐끔 태형을 올려다 보았다. 땀에 절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핸드폰을 확인하는 태형이었다. 업무를 마감하러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시간까지 두 시간 남짓이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은 태형이 핸드폰을 든 손을 떨어 뜨렸다. 숨을 고르고 나서 그제서야 구두를 벗었다. 그 모습을 보고 축 쳐진 두 다리를 휘적거리는 정국이었다. 끈질기게 달라 붙어 있는 운동화 때문에 인상을 잔뜩 구긴 정국이 결국 태형을 불렀다. 










----------- 오늘은 졸려서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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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봐도봐도 제 취향...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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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워 이게 뭐람 ,,,? 취향저격 탕 탕! 싸이코 전정국 너무 좋아요 ㅠㅠ 김태형 걸고 내기 ㅋㅋㅋㅋㅋ 싸이코스럽다 ㅋㅋㅋㅋㅋㅋㅋ 뷔국 진짜 좋아요 나만 미는 줄 알았던 뷔국 ,,, ;ㅅ; ! 다음에도 꼭 또 오세요 작가님! 사랑합니다!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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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뷔국!!!은사랑입니다!!!! 사이코 좋네여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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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헐ㅠㅜㅠㅠ전정국 같은 거 완전 취저ㅠㅠ태형이도 넘 멋있어요ㅠㅜㅠ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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