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6년
령(靈)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 그리고 마령(魔靈)을 다루는 흑마 특수 부대의 출현.
“아빠, 이상한 게 보여요.”
항상 인자했던 아버지가 다정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뭐가?”
종인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검은 거요. 아주 예전부터 보였어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지의 얼굴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핏기가 싹 가셨다. 그 모습에 소년은 영문을 몰라 당황해했으나, 아버지는 그런 소년을 신경 쓰지도 않고 다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종인아 절대로,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그런 걸 말하면 안 된다. 너는 똑똑한 아이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검은 군복을 입은 사람 곁으로 가지 마라. 그리고 나중에 내가 주는 귀걸이를 절대로 빼놓지 말거라. 절대로.”
아버지는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마치 사명감까지 느껴지는 비장한 어조에 아이는 겁을 먹었다. 어린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도 생소했다. 불안감이 온 몸을 휘덮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곧장 일어서더니 말했다.
“얼른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해라. 어서.”
아버지의 얼굴은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로 얼룩져있었다. 아직도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자신이 학교에 있을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종인, 자신은 학교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아버지의 신신당부로 절대 귀걸이를 빼놓지 않고 검은 군복을 입은 사내들은 피하고 또 피했지만, 아버지의 염원을 이루지는 못하고 결국에는 특수 무력부대로 들어와 버렸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이랄 것은 자신이 특무부에 편성된 건 아버지가 죽고 나서였다는 것이다.
종인은 밥을 먹고 나서 특무부의 휴식처에 있는 소파에 앉아 습관처럼 마리화나를 피웠다. 군대란 법의 손길이 잠시 피해가는 곳이고, 그런 군대에는 마약이 산처럼 쌓여있다. 마리화나는 마약이지만, 자신은 마약이 나쁜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죄악감을 덜어주니까. 늘 불면에 시달렸지만 대마를 하고나서는 악몽도 잠잠해졌다. 그때 시끄러운 소리가 귓전을 강타했다.
“김종인, 너 또 대마하냐? 하여간, 제일 얌전해 보이는 게 제일 골치 아프다니까!”
지붕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큰 소리였지만 종인은 아랑곳 않고 대마를 했다. 준면은 그런 종인을 보며 한숨을 한번 푹 쉬곤 밉지 않게 종인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일이나 가! 일손 딸려서 미치겠으니까.”
곧장 종인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마령은 흑마법사의 피를 좋아한다. 좋아하다 못해 광분할 정도이다. 흑마법사는 자신의 피로 마령을 복속시키고 조종한다. 그리고 피로 명령을 내린다. 마령은 흑마법사의 피만을 좋아하기에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흑마부대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은 지랄 맞은 인간들 때문이다.
“거기 안 서!”
골목에 종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여간 요즘 어린 것들이란 노인 공경을 모른다. 지금 흑마부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물론 예전에도 장난 아니게 바빴지만 마약의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범죄율이 50%가량 올랐다. 그게 다 빌어먹을 크랙 전염병 때문이다.
미치겠군, 종인은 짜증난 음성으로 중얼거리고는 크고 기름한 손을 들어 곱게 정돈된 앞머리를 쓸었다. 안 그래도 어제 감마에게 피를 빨려서 미치겠는데. 휴우, 종인은 체념한 듯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알파, 베타. 저 자식들 쫓아.”
결국 마령을 쓸 수밖에 없나. 안 그래도 피가 모자라는데 저것들을 부려먹고 나면 또 아까운 피를 헌혈해야한다. 그나마 작은 마령들이라 많은 피를 먹지는 않지만 큰 마령을 부리면 그 다음날은 빈혈 때문에 엄청난 어지러움을 경험해야한다.
종인은 생각을 접고는 앞으로 달려갔다. 역시, 마령이 뛰어나긴 뛰어난 존재인지 그 치들은 발과 바닥이 함께 꽁꽁 얼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잘했어.”
종인은 알파와 베타를 쓰다듬고는 그 치들에게 가서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는 그 치들을 끌어 인근 방범지대에 대충 처넣은 다음 가지고 있던 날카롭게 벼린 칼로 손바닥을 찢었다. 그러자 나비와 비슷한 형태의 알파와 베타가 마치 개미떼같이 피에 달려들어 종인의 피를 빨았다. 피가 빨려지는 그 끔찍한 느낌에 저절로 신음성이 나왔다. 으, 언제나 고마운 마령들이지만 이때만 되면 저것들을 확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그 느낌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한참 피를 빨리고(적어도 한 캔은 빨린 듯하다.) 종인은 다시 흑마부대 본부로 발걸음을 돌렸다.
흑마부대는 썰렁했다. 이게 다 빌어먹을 크랙전염병 때문이다. 요즘 무섭도록 빠르게 중독자들이 늘어남과 비례하게 범죄도 무섭도록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쯧, 종인은 가볍게 혀를 차고는 흑마부대에 있는 낡은 소파에 몸을 뉘였다. 하긴, 자신이 다른 사람을 탓할 입장은 아니다. 종인은 주머니에 있는 마리화나를 하나 꺼내서는 곧장 흡연했다.
02. 박찬열, 파트너, 한여름밤의 꿈.
“잘 부탁드립니다.”
오랜만에 사람이 한군데 모였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데, 신참내기가 들어와 준다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항상 특무부는 일손이 모자랐고, 일손이 딸렸다. 건방치고 깐깐한 마령은 아무 피나 먹지 않는다. 딴에 편식이라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특무부는 빌어먹을 인력난에 항상 허덕이고 있다. 거기다가, 악의 세력도 특무부의 인력난에 한몫했다.
“잘 됐네. 지금처럼 바쁜 시기에.”
준면이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며 정말 진심으로 그를 환영했다. 그의 머릿속엔 이미 신참내기를 마음껏 굴릴 생각이 가득할 것이다.
“아, 그러니까―.”
“박찬열입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찬열씨.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부터 일할 수 있나요?”
그럴 줄 알았어. 종인이 준면에게 툭하니 내뱉었지만, 준면은 종인을 상관하지 않고 찬열만을 바라봤다. 준면의 시선에선 미안함이 묻어나지는 않는다. 여기에 들어오는 이상 개처럼 일해야 한다. 그게 당연한 수순이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래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렇게 일을 시키는데도 이상하게 특무부는 모두 다 선망한다. 어린아이, 다 큰 어른, 여자, 남자.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흑마법사의 수가 아주 작아서일까? 아니면 마령을 부리는 게 멋져서? 그것 또한 아니면 꽤나 짭짤한 수입 탓인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사건도 많이 일어나지만 그와 비슷하게 목숨을 잃을 정도의 위험한 일도 많이 일어나니 목숨 값을 받고 일하는 셈이다. 그리니 보수가 상당한 것은 당연했다.
“오늘…, 말입니까?”
젊은 신참내기의 말에서 표정에는 묻어나지 않는 당황이 느껴진다. 특무부에 대한 소문은 지극히 적었고, 특무부가 사실은 뼈 빠지게 일하는 곳이라는 것도 몰랐을 터였다. 가엾기는.
“아직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 잘 모르죠?”
“아, 네.”
“제일 한가한 저 녀석이랑 붙어 다니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쯧쯧, 하여간 김준면은 인간성이 너무 없다. 신참내기인데 저렇게 빡빡하게 굴다니. 준면이 신참내기와 함께 다닐 한 사람을 지목했다. 한가한 저 녀석? 이상하게 찜찜한 기분이 종인을 엄습했다. 설마, 아니겠지. 요새 얼마나 발벗고 뛰어다니고 있는데.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준면의 하얀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킨다.
“야, 김준면!”
종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소리를 빽 질렀다.
“어디서 반말질이야. 죽는다.”
종인의 큰 소리에도 별로 놀라지 않은 듯 준면은 태연하게 종인을 타박했다. 아, 지금 그게 문제야! 당연히 그게 문제지. 종인의 그 말을 기다리기도 했다는 듯 준면은 이제 손을 허리에 떡하니 짚고는 본격적으로 훈계하는 자세에 돌입했다.
“김종인. 계속 너, 너 거리지. 딱 봐도 미자로 보이는 게.”
“아, 미자 딱지 뗀지 오래됐거든?”
“하여간. 너 형이라고 부르던가! 존칭을 쓰던가!”
아, 진짜! 어쨌든 난 같이 못 다녀. 삼천포로 빠지는 대화를 겨우 바로잡은 종인이 사나운 눈초리로 준면을 쏘아보며 말했다.
“왜?”
“당연하잖아. 난 혼자가 좋아.”
“지금까지 혼자였잖아.”
“앞으로도야.”
“원래 2인 1조인거 몰라?”
“난 혼자서도 잘하니까.”
종인이 준면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꼿꼿하게 고개를 쳐들고는 반박했다. 그 눈빛에는 어느 정도의 당위성마저도 느껴져서 준면은 종인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그걸 말이라고 해!
“아, 왜 쳐!”
준면이 때린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며 종인이 반항적인 눈빛으로 준면을 쏘아봤다.
“너 피 안모자라냐?”
“그건 내가 알아서 해!”
“이것도 내가 알아서 하니까 닥치고 찬열씨랑 같이 붙여다녀! 알겠어?”
“싫어!”
* * * * * * * * * * * *
“아씨, 김준면 진짜.”
종인은 성난 듯이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한차례 털었다. 하여간 김준면. 이건 권력남용이라고, 권력남용. 찬열은 그런 종인을 멀뚱히 바라보고 서있었다. 찬열또한 범인은 아니어서, 종인의 짜증에도 아무렇지 않았다. 낯가죽이 두껍기로 유명했으니까. 찬열은 종인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뭘하죠?”
“뭘 하고 싶은데? 범죄자 때려잡을래? 아니면 좀 더 위험한 짓?”
종인은 짜증을 내다가도 신입의 목소리에 재깍 반응을 했다. 하긴, 신입은 잘못이 없다. 오히려 일감을 줄여줄 아주 중요한 희생양인걸. 모든 것은 김준면때문,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김준면때문, 내가 지금 이렇게 혼자서 독자적인 행동을 못하는 것도 김준면때문.
“위험한 짓?”
“아아, 모르는구나. 세상에는 못된 놈이 많지. 그 중에서도 최악의 못된 놈들이 있는데, 그놈들도 흑마법사야. 사실은, 흑마법사란걸 깨달으면 그 사람은 돈 더미에 파묻혀서 죽을 때까지 살 수 있거든. 예외적인 경우로 우리를 제외하곤. 그래서 그놈들은 나쁜 일에 마령을 쓰는 걸 잘하지. 그중에서 실력이 꽤 되는 놈들도 수두룩해.”
“그놈들은 어딨는데요?”
“나도 모르지.”
“그럼 어떻게 찾죠?”
“나도 몰라.”
“대책 없군요.”
“정답이야. 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 처음 만난 너한테도 듣다니 감회가 새롭군.”
종인은 앞머리를 쓸어내리고는―시시각각 감정이 변하는 것 같았다.― 품을 뒤져서는 마리화나를 꺼냈다. 틱틱, 싸구려 라이터가 경박한 소리를 내며 마찰한다. 어디선가 공짜로 나누어주는 것을 받은 듯한 플라스틱 라이터다. 하지만 뭐든지 불을 붙이기엔 상관이 없다. 종인은 불이 붙은 마리화나를 구름을 베어먹는 듯이 흡연했다. 음, 쌓였던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마리화나인가요?”
찬열이 종인이 물고 있는 마리화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종인은 그에 웃으며 응답했다.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
“그냥. 안 어울려서.”
“그래?”
“그래요.”
“한 대할래?”
“사양할게요.”
그르냐. 하긴, 안하는 게 상책이지. 한번 하게 되면 끊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서. 종인은 그러면서도 마리화나를 한 번 더 삼켰다. 뱃속을 뜨끈한 기운이 한번 감싸는 것 같았다. 마약,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이미 손을 댄 이상은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게다가 빠져갈 마음도 없었다. 지금 이렇게 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사실은 아직도 모든 일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마령이 출연한지 벌써 50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모든 것은 한여름 밤의 꿈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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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도 같이 연재중..
본인 맞으니 의심마시길..정 의심가신다면 다음에서 쪽지를 주셔도 되궁 ㅇㅇ...
♥.♥
음.....뭔가 더 쓰고 싶은데 쓸말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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