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붕위의 고양이 |
“안녕하세요. 4반에 교생으로 오게 된 김준면 입니다. 한 달간 잘 부탁합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애써 지어 보이는 미소와 어디서 베껴 온 듯 틀에 박힌 자기소개. 그 마음이 어떤지 대변해주듯 준면의 손은 벌써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그런 준면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학생들은 그저 잘생긴 교생 선생님의 등장에 들떠서 웅성거렸다. “와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진짜 잘생겼어요!” 처음 만난 여학생들의 장난스런 인사에 쑥스러운 듯 웃어 보이고는 대답했다. “고마워.” "선생님! 여자 친구 있으세요?" 안 나오면 섭섭하다는 그 뻔 한 질문에 그 주위의 학생들도 솔직히 말해달라며 재촉했다. 사실 당황할 법한 질문 이였음에도 준면에겐 그런 건 신경 쓸게 못
됐다. 혹시나 아이들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일까 아니면 짜증내 하진 않을까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자신을 반겨주는 모습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후우. 아이들 모르게 숨을 한 번 내쉬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바짝 경직되어 있던 몸을 살짝 풀어 보았다. 그리고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없어’, 준면은 살며시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선생님, 진짜 여자 친구 없어요? 애인 말이에요.”
“정말로 없어….”
“아, 없다는 건 진짜 사기에요. 완전 거짓말.”
”진짠데……. 선생님은 거짓말 같은 거 안 해.”
어제 첫 만남 때 여자 친구 없음 발언으로 여학생들에게 붙잡혀 취조를 당하는 중 이였다. 당장 연예인을 시켜도 손색없을 그 얼굴에 여자 친구가 없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며 학생들이 준면을 붙잡고 달달 볶고 있었다. 준면은 그런 학생들이 사랑스럽다는 듯 웃었다. 학교에 온지 얼마나 됐다고 학생들이랑 얘기할 때
긴장하던 김준면은 어디로 가고 얼굴에 미소를 달고 다정하게 대하는 게 썩 보기 좋았다. [딩동댕동] "얘들아, 예비 종 쳤다. 그만 들어가서 수업 준비 해야지." 믿어주지 않는 아이들에 점점 치쳐가고 있던 준면은 구세주를 만난 듯 자신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준면의 말에 '에이~'하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교실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금세 장난 끼 가득한 얼굴로 돌아와선 '선생님, 선생님 이따 봐요!' 라고 내뱉고는 들어가 버린다. 준면은 귀여운
학생들의 모습에 살짝 웃어 보이고는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빨리 가서 교생일지 먼저 처리해야겠다. 혼잣말을 하곤 교무실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면서 자신을 잘 따라주는 반 학생들을 생각했다. 아직 만난 지는 하루밖에 안됐지만 다들 잘 따라줘서 다행이야, 여학생 반이라서 그런 건가. 같이
교생으로 온 백현이가 남자 반을 맡아 힘들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고등학생이라…. 아직 어려서 그런지 마냥 예뻐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 아직 수능에
찌들지 않은 2학년이기 때문이 아닐까? 난 고등학생 때 어땠더라…. 고등학생에서 벗어난 게 겨우 4년도 채 안됐는데 벌써 이렇게 까마득하네. 생각을
집중하며 자신의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했다. 곧이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이 생각났다. 머릿속의 기억들을 잊어버리려 해도 이미 불쾌하고 상처받은
기억들로 가득 차버려서 우울해졌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 때 행복했던 기억 같은 건 없는데…. 난 바본가 봐. 그걸 잊고 추억에 잠기려는 꼴이라니. 준면은
급격히 우울해진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 죄송합니다.” 우울한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멍하니 걷다가 올라오던 사람과 부딪히고는 황급히 사과했다.
정신 차리자. 고개를 한 번 흔들며 어서 우울함을 떨쳐내고 다시 힘을 내보려고 했을 때였다.
"으악!" 허억.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쉴 새 없이 빠르게 쿵쾅거리는 심장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 난거지? 상황파악을 하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자신을 살폈다. 자신의 감싸고 있는 팔 하나가 준면의 허리를 꽉 죄여왔다. 아, 김준면. 진짜 바보……. 준면은 자신을 꾸짖었다.
내려가고 있던 계단에 한 칸이 더 남아있는 줄 모르고 그냥 내려가다가 하마터면 고꾸라질 뻔했다. 다행이도 자신은 멀쩡히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허리를
감싸고 있는 이 손의 주인의 도움을 받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 손의 주인은 방금 자신이 부딪힌 그 손의 주인이 확실했다. 부딪히고 도움 받고 나 정말 뭐
하는 거야……. 준면의 안전을 확인한 듯 스르륵 풀리는 팔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섰다. 그리곤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
그를 보는 순간 몸을 움츠러 들었다. 그 팔의 주인은 단정하게 교복을 입은 채로 감정 없는 표정을 짓고선 자신을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가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얼굴. 놀란 마음에 좀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입을 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차리면서. “죄송해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 합니다…." "……." 아무런 대답 없는 그에 준면은 한껏 당황한 얼굴을 하곤 멍청히 서 있었다. 그는 그런 준면을 아무 말 없이 몇 초간 더 쳐다보았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마치 벌 받는 듯 한 느낌을 받으며 그 눈빛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조심히 다녀." "네? 아…, 네!" 그 둘의 침묵을 가르고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차가워 보이는 얼굴만큼이나 차가운 말을 뱉고선 미련 없이 마저 올라가던 길을 올라갔다. 반사적으로 어찌
대답을 한 준면은 그 뒷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곤 허둥지둥 자신도 계단을 내려갔다. 눈부시다.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듯 내리쬐는 햇볕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그마저도 좋은 듯이 준면은 웃어 보였다. 아직 점심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서일까 배식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밥 먹으랴 수다떠느랴 정신없는 아이들로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식당과는 다르게 학교 건물로 가는 길은 한산하기만
했다. 준면은 백현과 같이 이 시간을 즐기며 천천히 학교로 향했다.
백현은 걸어가면서 학생들에게 전해들은 별의 별 이야기를 다했다. 오버가 심하고 여학생들을 좋아하는 교감선생님이 작년에 쌍꺼풀 수술을 하고 선글라스를
쓰고 왔다던 것부터 실명을 밝힐 순 없지만 어느 선생님이 야한동영상을 보던 걸 학생에게 들켰다던 것까지. “학생들이랑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나 많이 한 거야? 백현이 진짜 인기 많네.” “형, 제가 원래 한 인기하잖아요. 얘들이 절 그렇게 좋아하더라고요.” “맞아, 우리 백현이는 어디서든 인기 만점이잖아.” “에이, 형도 참. 쑥스럽게.” 백현이는 대학에 있었을 때도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었지.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놀던 그 중심에서 백현이가 열심히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유학 갔다 와서 대학에 늦게 들어와 한 살이 더 많은 걸 알고 다른 애들이 불편해 했을 때도 백현이가 먼저 다가와 주었다. 아직도 그 때
생각하면 백현이에게 고마운 마음 뿐 이였다. 그 때 백현이는 마치 고민이나 걱정, 근심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재작년 이 맘 때쯤 이였을까. 처음 둘이서만 술을
마시던 날, 처음으로 백현이의 눈물을 봤다. 알고 보면 한 없이 여린 아이. 그 아이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다. 자신을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마음 털어놓을 곳 없이 혼자서만 앓고 있었다. 그런 백현이의 모습에 마치 과거의 나를 보는 듯해 그 때 백현이랑 부둥켜안으면서 울었던 기억이
생각났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다행이야. 지금의 백현이는 전보다 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간간히 보이는
백현이의 불안한 모습에 안쓰러웠다. “형……, 형! 제 말 듣고 있어요?” “응? 응……. 미안, 뭐라 그랬지?” “아. 정말. 자꾸 이러시면 저 진짜 삐질거에요!” “미안, 정말 미안. 요즘 내가 자꾸 정신을 빼놓고 있네.” “그러니까요, 저기 지금 등교하는 애 보이세요?” “응? 아, 저기?”
“네, 네.”
“아!”
그 애다. 어제 도움을 받았던 그 학생. “어? 왜요? 형 쟤 알아요? 아는 사이에요?”
“음…. 아는 사이는 아닌데….”
“무슨 일 있었어요? 설마 쟤가 형 괴롭혔어요?!”
“뭐? 아냐, 아냐. 음……. 사실 어제 한 번 마주쳤어. 넘어질 뻔 한 걸 도와줬었거든.”
“진짜요? 쟤가? 형, 사실은 도움을 빌미로 해코지 당한 건 아니고요?”
“아니야, 설마. 그거 말고 아무 일도 없었어. 그것뿐이야. 착한 애였는걸. 근데 왜?”
“그게 아니라, 사실 쟤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한 번 들어보세요. 이름은 김종인. 고등학교 3학년이고, 키는 181cm정도에 구릿빛 피부가 매력적…….
아니, 구릿빛 피부가 매력적이란 건 뭐야. 뭐 이런 주관적인 평가를 봤나.”
백현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준면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는 종인을 보다가 종인이 이쪽을 쳐다보는 것 같다고 느꼈지만, 설마. 하며 백현의
투덜거림이 귀여운 듯 고개를 돌려 그저 웃었다. 운동장에선 고개를 돌린 준면에게 계속해서 시선을 주고 있는 종인이 있었지만 준면은 더 이상 그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아니, 근데 진짜는 지금부터 에요……." |
조각글에서 연재되는 팬픽으로 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조각글과는 내용이 조금 달라졌고, 백현이의 말은 다음화에서 이어질 예정입니다.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드려요^^
암호닉과 신알신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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