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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Of Illusion 中 

마녀는 보통 어떤 이미지일까. 둥근 수정 구슬 주위에 손을 두르며 미래를 보거나,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거나. 카드로 점을 치거나, 메부리 코에 망토를 뒤집어쓰고 끓어오르는 솥단지에 개구리를 넣고...... 음침하고, 수상하고, 꺼림칙하고.. 

민니는 카드를 섞고 아래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카드를 바라보던 우기에게 말했다

마음에 드는 카드를 세 장 뽑아 봐요.” 

하나뿐인 이 해맑은 직원은 올 여름의 연애 운이 궁금하다면서 점 좀 봐 달라 종일 민니에게 말을 흘렸었다. 오늘은 점치기 딱 좋은 날인데, 이번 여름엔 내 님이 있을까요~ 하는 통에 싫다고 단칼에 거절할 단호함은 없었다. 

이 카드는......” 

민니의 나직한 설명이 이어졌다.

궁금한 게 있어요. 사장님은 본인 운은 안 알아봐요?"

좋은 점괘에 싱글거리는 우기의 질문에 민니는 어깨를 작게 으쓱거렸다.

잘 안 맞거든요.”

이상하다. 전 진짜 잘 맞던데.”

이런 거 너무 믿지 마세요.”

안 믿기가 어려운데. 사장님 점집 차려도 된다는 거 빈말 아니에요. 혹시 이 사업 망하면 그 쪽을 트셔도 인생 탄탄대로일 거라고 보장합니다!”

보장은.” 

민니는 카드를 다시 정리해 집어넣었다. 점괘가 잘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미래를 나온 카드에 맞춰서 그럴듯하게 얘기하면 되는 일이니. 〈o:p>〈/o:p>

타고난 능력이었다

눈을 감아도, 귀를 막아도. 아무리 모르는 척 해보려 해도 타고난 건 어쩔 수 없었다. 미래가 보이는 것도, 다른 사람의 감정이 들리는 것도. 그 감정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것 역시 민니가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그에게 와버린 재능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위험천만하고 매력적인 능력을 가졌지만 자신의 미래를 보지 못해 불행한 결말을 맡게 되는 이야기 속 마녀와 다를 게 없으리라

민니는 미래에 자신과 연인 관계가 된 이를 떠올렸다.

조미연.

사무실에서 처음 본 날, 그 돈 많고 걱정 없어보이던 예비 신부의 미래에서 자신이 그를 다정하게 껴안는 장면이 보였다. 그 어떤 사람의 미래에서도 그런 자신을 보지 못했었는데

조미연이 나갈 때까지 붉어지는 뺨을 들키지 않으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갖은 노력을 다 했다. 다행히 들키진 않은 것 같았다. 그 후에 우기가 발견하긴 햇지만... 

대체 예비 신부와 무슨 짓을 한 거지. 고객과 그런 관계를 맺으면 안 될 텐데. 미래의 자신을 책망하며 그 날은 하루 종일 조미연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름은 조미연, 서양화를 전공했고, 여러 차례 현대미술 전시회를 열었다. 아직 그렇게 유명하진 않지만 팬들이 있는 듯하다.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라도 있는 건지 셀카도 많이 올라와 있었다. 하긴, 그 얼굴이면 자신이 있을 만도 했다. 친구 관계가 좋고, 둥글고 험한 말을 하지 않는다. 할 줄 아는 심한 말은 바보, 멍청이, 말미잘... 

민니는 미연의 sns에 써진 댓글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말미잘이라니. 요즘 초등학생들도 안 쓸 욕인데, 이건

미연과 다음 만남은 3일 후였다.

D-3 

민니는 학창시절 시험기간에도 세지 않았던 디데이를 매번 미연과 헤어지는 순간부터 세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미연은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걸까?  

민니는 혼자 와 웨딩드레스를 고르던 미연의 손을 살짝 매만졌다."

오늘도 신랑 분은 안 오셨나 봐요.” 

화들짝 놀라는 미연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말을 이었다."

한 번도 얼굴 본 적 없는 것 같아요. 많이 바쁘대요?”

... .. .....”

속상하겠다. 원래 이런 건 같이 골라야 하는 건데.”

그러니까 말이에요. 곧 온다고 하긴 했는데...” 

한숨을 푹 쉬는 미연의 옆에서 민니는 그런 남자니까 미래의 당신이 그 남자 버리고 나랑 만나겠죠. 라는 속말은 삼키고 웨딩드레스 천을 매만졌다.

이건 어때요? 미연씨 예쁜 목이 잘 보일 거예요.”

어머. 그건 너무 야해요."

미연은 까르르 웃었다

그럼 이건요?”

그것도 예쁜데, 이것도 예쁘지 않아요?”

그러게요! 그거 좋다-.”

한 번 입고 나와 봐요.”

, 하지만....” 

머뭇거리는 미연의 등을 살짝 밀며 민니는 속삭였다

어차피 오늘 예비 신랑 분 안 와요. 약속시간이 30분은 지났잖아요.”

그래도...”

어서요. 보고 싶어요.” 

미연의 눈 초점이 살짝 흐려졌다

그럼......” 

미연이 탈의실에 들어가고, 샵 직원이 따라 들어갔다. 민니는 들어가서 저도 봐주겠다고 하고 싶은 걸 참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짧은 연결음이 끊긴 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먼저 웬 일이야?”

소연. 간단한 거 뭐 하나 알아줄 수 있어?”

뭔데?”

사람 한 명 좀 알아봐줘.” 

민니는 미연의 남편 될 사람의 정보를 좀 캐기로 했다.

소연은 어쩌다 연이 닿은 해커다. 필요하면 말하라고 늘 말해왔지만 딱히 평소에 연락할 만한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줄이야. 역시 사람 일은 아무도 몰랐다

알고 있는 신상정보를 읊은 후 전화를 막 끊었을 때 탈의실의 커튼이 걷어졌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미연과 고개를 돌린 민니의 눈이 마주쳤다. 어깨와 팔을 감싼 얇은 레이스가 꽃처럼 표현되어 가슴부터 허리 위까지 둘러싸고 있었고, 그 아래엔 가냘프게 떨어져 넓게 퍼지는 라인으로 바닥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미 탈의실 거울로 제 모습을 봤는지 미연의 볼을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때요?” 

누가 들어도 기쁨에 겨운 외침이었다.

둥글게 접힌 눈매와 장난스럽게 아래로 내려오는 부드러운 선의 눈썹, 위로 올라간 두 뺨, 크게 벌어진 입술, 그 사이 하얀 이. 민니는 미연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 이상해요?”

아니, 아니요..! 예뻐요!”

민니는 새된 소리를 내뱉고 나서야 자신이 다급하게 외쳤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동안 정말 많은 신부들을 봐왔다. 환상적인 결혼식을 만들어 주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고, 드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려함의 정점을 찍는 웨딩드레스. 이제 무엇을 봐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지만 저기 밝은 조명을 받으며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서 있는 여자가 너무 아름답지 않는가.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훑어보던 민니의 시선이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멈췄다.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짝이는 둥근 테.

저 반지의 다른 짝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 짝이 돼도 괜찮지 않을까.

민니는 미연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정말 예뻐요. 제가 봤던 그 어떤 사람들보다 더.” 

흔들림이 멈춘 까만 눈동자가 미연을 뚜렷하게 응시했다.

민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이 주어진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     

미연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주위의 사물이 선명해졌다.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따스한 기운이 목 아래까지 맴돌고 있었다

내가 언제 집에 들어왔지......?” 

멍했다. 손을 쥐었다 필 때마다 물이 손을 스치고 지나갔다.

언제 집에 돌아와서, 언제 욕실의 물을 받고 그 안에 들어와 있는 거지

미연은 노곤하게 풀어진 몸을 일으켜 두리번거렸다. 자신의 집이다. 아직 애인에게도 집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이 옮겨왔을 리 없었다. 집에 들어온 것도, 옷을 벗은 것도 자신이었다. 미연은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술을 마시지도 않고, 다른 이상한 걸 먹은 것도 아닌데

최근 일주일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벌써 3번째 일어난 일이다.

내가 왜 이러지...?”

결혼 준비 때문에 스트레스라도 받은 걸까? 미연은 물기 있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어딘가 잘못되고 있는 듯 한 기분이었다.

-.

휴대폰 메시지 알람이 욕실 속 고요를 깨트렸다. 손으로 욕조를 짚고 일어나 미연은 옷이 쌓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몸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미연의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타일을 적혔다. 휴대폰을 들고 메시지를 확인한 미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벌써 보고 싶다.]

발신인, 민니 씨.

미연은 메시지 창을 천천히 올렸다.

[이따 봐.]

[보고 싶다 미연아.]

[미연아, ?]

[뭐 해?]

[오늘도 예뻤어.]

[내일보자.]

[집 앞이야.]

[찾아갈게.]

[왜 안 와?]

[오늘 좋았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민니 씨와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나? 갤러리에는 민니와 가깝게 찍은 사진이 대 여섯 장 보였다. 분명 웨딩드레스를 맞출 때 까지만 해도........ 

순간 휴대폰 벨소리가 크게 울려 떨어트릴 뻔 한 걸 간신히 잡았다.

발신자, 민니 씨.

미연은 흔들리는 눈으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 여보세요?”

미연아. 왜 답장을 안 해. 걱정되잖아.”

민니씨....?”

“...... 또 깬거야?”

민니씨,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민니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게 언뜻 들려왔다. 욕 같이 들리기도 했다.

“.. 아무것도 아니야. 기다려. 곧 갈게.”

? 여길요? 여길 알아요? 민니 씨가 어떻게요?”

뭘 그렇게 놀라. 우리 사귀는 사이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알지.”

?!”

미연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제가 왜 민니 씨와 사겨요? 장난이라도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

만나던 사람하곤 헤어졌잖아요. 기억 안 나요?” 

뻔뻔스럽게 말하는 민니에 헛웃음이 나왔다.

제가 왜 그 사람이랑 헤어져요. 결혼하기로 했는데.”

왜 매번 내가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대체 뭐가 문제지... 곧 갈게요. 설명할테니까.”

전화가 끊어졌다. 미연은 황망히 서 있다 비틀거리며 가운을 꺼내 입었다.

알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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