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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등이 비명을 지르는 밤이었다. 달빛이 가로등에 묻혀 제 역할을 상실한 채 하늘 한 구석만 채우는 중이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벤츠 안에서 상념에 잠겨있던 우현이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영등포 한 구석의 집창촌이었다. 사실 구석이랄 것도 아니었다. 철강, 빠우 등의 난잡하고 낡은 간판이 잔뜩 붙어있는 골목을 지나면 바로였으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빈민촌 같은 골목을 지나 집창촌, 그리고 그 옆은 고급 아파트단지가 들어서있었다. 완전한 빈부격차군ㅡ하며 고개를 느릿하게 움직이다 '청소년 출입금지'라고 씌여있는 표지판을 보았다. 그 표지판은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있었다. 오랜만에 이 곳에 온 탓일까. 왜 이렇게 상념에 잠기게 되는지 모르겠다. 문득 제가 열여섯살 때 이 곳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청소년의 출입이 금지된 곳에서 브로커 노릇을 했던 제 과거에 웃음이 터지다가도, 저 깊숙하고 침침한 곳에 갇혀있을 누군가의 형체가 떠올라 가슴이 아려왔다. 아, 내가 암울한 과거를 딛고 굳이 이 곳까지 오겠다고 한 이유. 우현은 성규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김 회장을 너무나 믿은 것이 치명타가 되었다. 제게 아비 같은 존재였으며, 우현이 브로커 노릇을 그만 두고 대형 조직을 운영하게 해주었던 그였기에 우현은 약간의 의심을 제외하고 바로 성규를 맡겨 둘 수 있었다. 김 회장의 변명은 너무나 그럴 듯 했다. 그리고 우현이 유독 성규에게만 약하다는 것을 눈치 빠르게도 알고 있던 그였다. 러시아의 한인 갱단과 이번에 새로 개발되었다는 특이한 성분의 코카인을 밀매하던 과정에서, 김 회장은 성규의 신변 안전을 위해 제게 맡기고 떠날 것을 제안했다. 안 그래도 몸이 약해 자주 잔병치레를 하던 성규 덕에, 우현은 그러겠노라 순순히 응했고. 그것은 완전한 독이 되어버렸다.

 


 밀매는 성공적이었으나, 김 회장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우현을 머리 끝까지 화가 나게 하는데 충분했다. 영상 통화. 우현은 별 의심없이 그것을 받아들었고, 흐릿한 영상 안으로 보이는 인영은 분명 성규가 확실했다. 성규는 두 명이 입어도 남을 듯한 큰 흰 상의와 하체에는 검은색 속옷 하나만을 걸치고 있었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왼쪽 손목과 오른쪽 발목에 수갑 비슷한 것을 차고 벽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 우현은 서둘러 입국해야했다. 나머지 일처리를 오롯이 성열에게 맡겨버린 후, 입국하고, 한 치도 쉬지 못하고 찾아온 이 곳 영등포. 우현은 골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벤츠 안에서 분주히 영업 준비를 하고 있는 가게들을 마주했다. 한참을 들어가고도 더 구석. 간판 하나 없어도 수완이 좋은 이 곳. 김 회장의 인맥으로 운영되온 이 곳에 당도한 우현은 성종이 문을 열기도 전에 지하 계단을 밟았다. 습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김 회장은 손님용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보며 여유롭게 옷을 단장하고 있었다. 우현은 고개 숙여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제서야 느긋히 뒤를 돌아보며 우현의 머리를 쓰다듬는 저 손. 김 회장은 아무렇지 않게 우현에게 속삭였다.

 


"예쁜만큼 성격이 지랄 맞더군. 우리 우현 군은 참을성도 좋은가봐? 저런 성깔머리를 데리고 살 정도라면."
"……예쁜데는 다 그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하긴, 오십 인생에 남자 맛을 처음으로 알게 해줄 정도라면 뭐. 그 정도는 감수했어야 하는거지?"
"……그 얼굴로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그것 뿐인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우현은 김 회장의 얼굴을 짓이기고 싶었다. 우현과 어떤 관계인 줄은 모르는 것이 다행이었다. 김회장은 우현이 성규를 그저 애첩 정도로 여기는 줄 알고 있었다. 딱 거기까지. 둘의 깊은 사이를 모르는 것은 다 우현이 철저하게 방패를 쳐놓았기 때문이었다. 바깥 사람들에게 일부러 성규에게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었던 지난 날의 행동들. 그래놓고 밤에는 서로를 안기엔 바빴지만. 아무튼 김 회장은 우현의 손을 친히 잡아끌고 한 구석으로 인도했다. 둔탁한 쇠문이 굳게 잠겨있는 그 곳. 우현은 주차를 마치고 따라온 성종을 김 회장에게 소개했다. 제 왼팔입니다ㅡ 그 모습에 김 회장이 성종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저 여리여리한 년을 어디에다 쓰겠다고ㅡ 그러면서도 어쩐지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었다. 우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제법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성규만큼은 아니지만, 뒷맛이 좋으실 겁니다."
"왼팔이라는것이 그런 의미였던가?"
"아니오. 몸은 말랐지만 두뇌 회전은 꽤 빨라서 데리고 다니기도 편하고, 밤에는 다른 용도로 쓰일 수도 있겠지요."
"설마 사내새끼는 아니겠지?"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대로지요."

 

 


 김 회장은 꽤나 놀란 얼굴이었다. 천천히 몸을 돌려 성종의 얼굴을 몇 번 쓰다듬는 손길. 성종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뺨을 붉히며 살랑살랑한 걸음을 보였다. 성종의 행동이 흡족한 듯 웃다가 우현의 왼쪽 귀에 노린내를 풍기며 밤을 기약하는 언약을 속삭였다. 우현의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성종을 한 팔에 감싸안은 회장이 입가에 걸린 미소를 지우지 못한 채로 천천히 쇠문을 열었다. 끼익ㅡ하는 금속성의 기분 나쁜 소리도 잠시. 영상 통화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성규가 제일 먼저 눈에 담겼다. 나이를 먹고도 변하지 않는 변태적인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왼쪽 손목의 팔찌와 오른쪽 발목의 발찌로만 간신히 균형을 잡고 매달려있는 성규가 쇠문이 열리는 소리에 축 늘어졌던 몸에 번뜩 힘을 주었다. 아, 남우현……어째서 눈물이 떨어지는걸까. 우현은 성규를 보고 어떠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통화를 했을 때부턴 이 정도는 감수했는데……왜. 우현은 테이블 앞에 앉은 김 회장을 보았다. 그는 성규의 그런 꼴을 기분 좋게 즐기고 있었다. 성종은 제 허벅지에 앉힌 상태였다. 주먹에 힘을 주었다가 푼 우현이 천천히 다가가 성규의 뺨을 두 어번 내려쳤다.

 


"회장님께서 만족하실만큼 하라고 했을텐데."
"……"
"이 더러운 얼굴로 회장님을 받은 건 아니겠지."

 

 

 비수, 완벽한 비수였다. 평소 우현이 저를 많이 아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모욕을 줄 때면 성규로서도 굉장히 섭섭하고 슬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을 볼 때면 차마 겉으로 티를 낼 순 없었는데. 오늘마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왈칵 눈물이 터져버리는 것이었다. 우현은 성규가 혼미한 정신으로도 눈물을 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 거추장스러운 장치에서 떼어내 품에 안아들고 싶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 우현은 김 회장이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성규는 더 이상 눈을 뜰 수 없었다. 몇 일간 먹은 것도 없었을 뿐더러 우현을 보자마자 풀리는 힘 덕에, 손목과 발목을 조인 수갑조차 헐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결국엔 바닥으로 눈물이 떨어진다. 아, 성규야……우현이 중얼거리는 입모양을 다 보지 못하고 결국엔 기절. 우현은 그제서야 몸을 돌려 김 회장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앉았다.

 

 


"이번 밀매건입니다. 효과가 40배 이상은 있다고 합니다."
"해봤나?"
"아직. 김 회장님께서도 못해보신 걸 제가 감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지?"

 

 

 성종의 허리를 지분대는 손으로 우현이 내민 검은색 봉투를 받아들었다. 공기 중에 퍼질 것을 염려해 개봉하진 못하고, 우현이 설명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 회장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우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현은 저 손을 당장이라도 부숴버리고, 성규와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성규를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성종과 성규를 번갈아보는 저 얼굴이 찌든 성욕으로 물들어있었음은 우현이 이미 파악한 사실이었다. 이럴 땐 B. 우현은 성종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테이블에 가벼운 손짓을 했다. 우현의 손짓에 별 의미를 두지 않은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며 성종의 팔을 가볍게 당겨올렸다. 그 순간, 성종이 방심한 김 회장의 다리를 뒤로 걸어 넘어뜨린 후 재빨리 목을 감았다. 그저 마르기만 해보였던 성종에게서 엄청난 괴력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성종의 손에 힘줄이 돋을 때까지 김 회장의 목을 조르던 그 순간, 우현이 천천히 다가와 김 회장의 왼손을 구둣발로 짓밟기 시작했다. 악ㅡ! 듣기 싫은 괴성마저 터지지 못하고, 우현은 제가 김 회장에게 내밀었던 검은색 봉투를 열어 대충 콧구멍에 털어넣기 시작했다. 그것은 코카인이 아닌, 아주 강력한 마취제의 일종이었다. 흰 색 가루가 콧구멍과 입술 주변에 잔뜩 묻어 한층 흉측한 몰골이 되었다. 우현의 구둣굽에 왼손이 부러지고 나서야 성종은 제 몸을 툭툭 털어내었다. 미안ㅡ 우현의 말에 성종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ㅡ 성종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현은 성규를 옥죄던 수갑을 끊었다. 몸이 부은 와중에도 살갗이 다 벗겨져 피를 보이고 있었다. 우현이 고갯짓을 하자 성종이 쇠문을 열고, 우현이 나가기 편하도록 배려해주었다. 성규를 들쳐업은 우현과, 그 뒤를 따른 성종이 벤츠 안에 몸을 숨기자마자 영등포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오늘은 영업 마감이었다.

 

 

 


***

 

 성규는 좀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우현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성규는 미동이 없었다. 급한대로 입술을 벌려 생수를 밀어넣긴 했지만 삼켜내지 못하고 자꾸만 주르륵 세어나오는 물에, 우현은 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저택에 도착해 구두도 대충 벗어놓은 우현이 성규를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파리해진 얼굴. 수척해진 몸. 모든 것은 제 탓이었다. 닫힌 눈꺼풀을 한참 쓰다듬던 우현이 물수건을 가지러 일어서려는 순간, 제 옷깃을 잡아채는 손. 급하게 뒤를 돌자 반쯤 눈을 뜬 성규가 힘 없는 손짓을 했다. 뭐라고?ㅡ 무엇이라 중얼거리지만 알아들을 수 없을만큼 작은 목소리. 카랑카랑하게 쏘아붙이던 그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뭐라고?……? 한참 중얼거리던 성규의 입모양을 뚫어지게 보던 우현이 그제서야 아, 하는 탄식을 뱉었다. 그리고 바로 숨 막히는 키스.

 


그렇게, 오늘은 또다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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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작가님 이 필명으로 오랜만이에요!!! 찹쌀떡이에요 자기전에 재미잇게 읽고가요!! ㅠㅠ 아 진짜 김회장 나쁘네요 성규가 어서 깨어나야할텐데 우현이는 이해가지만 때린거뉴ㅠㅠ으유ㅜㅜㅜㅜㅜㅜ잘읽고가요! 늦엇는데 어서 주무시구요 즐거운 화요일 보내세요 오늘도 애ㅓ정해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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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흐엉 감성 이에요 이필명 오랜만이네요 ㅠㅠ 흑 성규너무 안쓰러워 저 김회장이라는분 제가조용히처리하고오겠습니다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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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안자구있어서다행 집중해서정독햇어요성규불쌍햐..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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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뚜러뻥/으허유ㅠㅠㅠ 김회장 죽여버릴꺼야ㅠㅠㅠㅠㅠ 그나저나 그대 이닉 사용하시네요?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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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구름입니다. 성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와중에 박력넘치는 쫑이까지..... 잘 읽고 갑니다!!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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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성규야 어휴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성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ㅠㅠㅠㅠㅠ응?ㅠㅠㅠㅠㅠㅠㅠㅠㅠ막 아오.....ㅠㅠㅠㅠㅠ미치게 하네ㅠㅠㅠㅠ 우현이가.구하러 와줄때까지 버티느라 고생했어ㅠㅠㅠㅠㅠㅠ짜릿이에요퓨ㅠㅠㅠㅠㅠ느ㅡ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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