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때와 다름없이 점심시간이 되자 드르륵, 교실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터벅터벅, 낯익은 발걸음 소리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마치 몸에 베인 습관이라도 된듯했다. 그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왜?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가, 박찬열이 내 옆에 있다는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굳이 선택을 하라면 나는 박찬열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을 선택하겠다. 사실, 그와의 섹스는 나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게이카페에서 만난 이름도 모르는 (간혹 이름을 가르쳐줄때도 있기는 하다.) 외간 남자들보다 그의 테크닉은 나를 절정으로 몰고가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그는 외모가 매우 출중했다. 180이 넘는 큰 키와, 항상 머리길이때문에 학생주임의 지적을 받아왔던 것에 반항이라도 하듯 짧게 잘라버린 머리는 왜 진작에 자르지않았다 할 정도로 그와 잘어울렸다.
" 도경수, "
나는 그가 내 앞자리에 앉아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있음 알아도 굳이 고개를 들거나 먼저 인사를 하지않았다. 박찬열은 그랬다.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르지않아도 그는 항상 도경수, 하며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내이름을 불러왔으며, 내가 먼저 손을 뻗지않아도 항상 먼저 내 손을 잡아왔고, 어느 방면에서든 박찬열이 항상 먼저행동했다. 나는 그저 그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였다. 이상하게 그를 놀려주고 싶어 책상에 묻은 얼굴을 더 깊게 파묻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 깊은 잠에 빠진 척 괜히 몸을 살짝 틀기도 했다.
" 경수야, "
또 다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의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내 예상은 언제나 틀리지않았다. 특히 박찬열에 대해서는. 거의 99.9% 맞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귓가를 파고드는 듣기 좋은 저음에 그제서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그리고 특이했다. 얼굴과 맞지않는듯 하면서도 목소리가 묘하게 잘 어울렸다. 그가 내 위에서 절정에 다다른채로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듣기 좋았다. 흥분을 더 배로 높여줘야 한다고 해야하나?
고개를 들자 내 시야에 꽉 차는 박찬열의 잘생긴 얼굴, 순간 코 끝이 닿을락 말락한 거리에 흠칫 놀란 체 하며 그의 볼을 약하게 뒤로 밀었다. 순순히 물러나는 박찬열이 아쉬운듯 입맛을 쩝 다셨다.
" 어제 부모님 두분 다 출장가셨어. "
" 그런데? "
박찬열네 살림살이는 우리집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일단 부모님 두분 다 누구나 동경하는 직업을 가지신 훌륭한 분들이고 하나뿐인 누나는 외국으로 대학을 가서 외국인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집에 남게되는 것은 박찬열의 부모님과 박찬열, 셋뿐이였다. 하지만 사실상, 박찬열 혼자라고 볼 수 있다. 간혹 밥을 하거나, 청소를 하러 오는 중년의 가정부 아주머니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래서 박찬열은 제 집으로 나를 많이 불렀다. 그의 방 안 하얀 침대시트는 우리집 침대마냥 익숙했다.
"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 가. "
어차피 내일 토요일이잖아? 박찬열에 내 앞머리를 정리해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박찬열의 말에 괜히 박찬열의 시선을 피하며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척 눈알을 이리저리 굴렀다. 그런 내 모습에 그는 어이가 없는지 허, 하고 기분나쁘지않은 헛웃음을 뱉아냈다. 자고가는거다? 그가 앞머리를 정리하던 손을 내려 내 손을 붙잡았다. 그제서야 맞쳐지는 그와 나의 시선, 쌍커풀이 진 큰 눈이 여유로워보였다. 마치 내가 그의 대답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승락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아는것 처럼.
" 그래. "
그리고 나는 그 여유로움에 맞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 자고가지 뭐. 내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듯 그는 치아를 드러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주인 말을 잘 들은 강아지를 칭찬해주는것 마냥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주변을 휙휙 둘러보니 다 급식을 하러간건지 교실 안은 나와 박찬열, 둘 뿐이였다. 배고파. 내가 칭얼거리듯 말하자 박찬열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일으켜주었다. 밥 먹으러가자, 오늘 급식 맛있더라. 박찬열이 내 옆으로 와 자연스럽게 내 목을 쓰다듬더니 어깨에 제 팔을 둘렀다.
누군가가 내 목을 쓰다듬어주는 것은 항상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항상 그랬다. 그와 나는 누가 먼저랄것 없이 서로에게 연락을 했으며 그 연락으로 그와 만나면 그는 항상 내 목을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그가 여유롭고 나른하기 그지없는 눈길로 내 목을 쓰다듬으면 그의 섹시한 얼굴이 더 섹시해보였다. 그래서 아무말없이 그대로 그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쌍커풀이 진 깊은 눈이 나를 담고 있었다.
아들 오늘저녁에 시간비워놔~^^
밥을 먹다말고 왼쪽 호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약한 진동에 휴대폰 홀드를 풀었다. 홀드를 풀자마자 보이는것은 엄마의 문자였다. 오늘 저녁? 오늘 저의 집에 오라던 박찬열의 말이 생각나 휴대폰을 보다말고 밥을 먹고있던 박찬열을 가만히 쳐다봤다. 이에 내 시선이 느껴진듯 박찬열도 수저를 든 채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왜? 박찬열의 물음에 무언의 대답으로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박찬열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않는듯 그대로 나를 바라보더니 휴대폰으로 다시 시선을 옮기는 내 모습에 그제서야 다시 식판으로 수저를 가져다 댔다.
왜 나 오늘 친구집에서 자고가기로했어
저녁에 뭘 하길래 시간을 비워두라는건지 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미혼모였다. 미혼모이기 전에 소위말하는 텐프로, 그러니까 말이 텐프로지 술집 여자였다. 고위 간부나 연예인들을 받다가 누구의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아기, 그러니까 나, 도경수를 낳았다. 엄마의 상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고 골치아픈 일이 생겼다는 듯한 표정으로 0이 몇개 붙은 수표 몇장을 던져주며 엄마를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 흔한 결혼식 한번 올려보지도 못하고 술집에서도 쫓겨나 홀로 나를 키웠다고 한다.
아들한테 할말이있어서 그래
할 말? 엄마가 나한테 할 말도 있던가,
무슨 할 말 그냥 지금 말해 전화할까?
휴대폰을 보고있는듯 곧이 곧대로 빠르게 오는 답장에 수저를 몇숟갈 뜨지도 못하고 휴대폰에만 시선을 두고있었다.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않았는지 박찬열은 밥을 먹다말고 젓가락으로 내 식판을 툭툭 쳤다. 금속이 부딪히는 듣기싫은 소리에 살짝 인상을 쓰며 박찬열을 쳐다보자 뭐냐는 표정으로 그는 내 휴대폰을 향해 턱짓했다. 나는 또 다시 무언으로 답했다. 그저 천천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같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않는듯 박찬열이 또 다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는 다시 한번 울리는 진동에 그를 신경쓰지못하고 다시 시선을 밑으로 내리깔아야했다.
중요한 말이니까 그렇지~ 전화로는 안돼.오늘 저녁에 보자 아들
그냥 문자로 말해주면 될 것을, 하여간 귀찮게. 일단 나중에 전화할게. 그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한 문자를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앞을 쳐다보니 박찬열이 여전히 못마땅한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뭐, 밥 먹어. 젓가락으로 그의 식판을 그가 했던 행동처럼 툭툭 친 후 다 식어버린 국을 한입 넣었다.
" 누구랑 그렇게 문자를 했어? "
박찬열이 내게 담배를 건내며 물었다. 싫어, 고개를 저으며 집어넣으라는 손짓을 하자 박찬열이 라이터에 불을 붙이며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담뱃대가 천천히 타들어갔다. 그를 만날때 항상 담배냄새가 났다. 담배를 많이 피는가? 그의 차를 탔을때, 차 안에서도 알싸한 담배냄새가 진동했다. 내가 담배냄새에 인상을 쓰는 것을 보고 그는 애기네, 애기. 라며 낮게 웃었다. 그리곤 조수석의 창문을 말없이 열어주었다. 달리는 차 안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운전을 하고있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가는줄 몰랐다. 그는 단 한번도 나를 쳐다보지않았다. 내가 저를 쳐다보는 것을 아는것인지 모르는것인지, 아마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는것이겠지만 그는 신호에 걸리지않는 이상 앞만보고 운전만 했다. 그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였다.
" 알아서 뭐하게. "
알싸한 담배냄새에 살짝 인상을 썼다 풀며 괜히 박찬열을 놀려주겠단 심보에 그가 맘에 들지않아하는 대답을 했다.
" 줘봐. "
박찬열이 대뜸 손을 내밀었다. 뭘 줘?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박찬열을 쳐다보고 있기만하자 박찬열이 손을 내게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핸드폰, 줘 봐. 그의 낮은 목소리에 나는 피식, 하고 바람빠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싫어, 내가 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박찬열도 딱히 할 말이 없는지 허공에 내밀어진 손을 주먹을 꽉 쥐더니 밴치위에 가만히 올렸다. 그리곤 내 행동이 매우 못마땅한 듯 아무 말없이 담배만 뻑뻑 펴대는 박찬열에 속으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 엄마야. "
" ……. "
" 진짠데, 문자내용이라도 보여줄까? "
" ……. "
" 참, 너네 집, 오늘 못가. "
내 말에 아무반응없이 담배만 피던 박찬열이 내 마지막말에 그제서야 나를 쳐다봤다. 왜? 그의 표정이 내게 묻고있었다.
" 엄마가 시간 비워두라네. "
나도 몰라,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안녕하세요 :-) |
...안녕하세요. 저 아시는 분 계시려나? 새벽한시입니다ㅠㅠ 악연속의 상관관계는 어디가고 이 망글을 가져왔냐고요....? 그냥....시험공부하다가 갑자기 뙇! 떠올라서 허허허허헣ㅎㅎ 읽는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 책임감없는 말이지만 악연속의 상관관계는 연재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미흡한 부분도많고 연재를 한다면 분량과 문체쪽에 신경을 써서 수정을 해서 처음부터..해야될거같아요ㅠㅠㅠㅠㅠ
제목은 가제입니다...언제바뀔거에요ㅠㅠㅠㅠ하 제목짓기가 젤힘들어
아무튼 읽어주신 모든분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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