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비오는 날을 많이 좋아했는데,
요즘은 비오는 날이 그렇게 싫더라.
비만 오고 나면 되는 일이 하나 없었다.
[EXO/도경수] 사랑반란
"와, 누나 이게 얼마 만의 스케줄이예요."
"야, 창피해. 조용히 좀 해. 매니저라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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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누나도 좋으면서 그래요. 광대 올라간 것 좀 내리고 얘기해요."
아, 들켰나? 요즘 배우인데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드라마나 영화는 하나 못하고, 기껏 하는 거라고는 예능 출연과, 그리고 또.. 예능 출연 뿐이었다. 아무래도 데뷔하고 나서 찍은 작품들의 캐릭터들이 거의 다 엉뚱하고 허당인 성격이다보니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인지 감독님들한테 연락이 온다싶으면 다 예능국이었다. 가끔 카메오 출연을 제외하고는 연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뒤에 온 연락은 드라마의 일명 서브여주. 그러니까 남주인공, 여주인공보다 분량이 적지만 다른 출연진들에 비해서는 많은 분량의 여주인공. 그래도 이게 어디야.
"저 이거 물어다 드리는 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죠?"
"내가 우리 세훈이 노력 알지, 알아."
"알면 나중에 술 한 번 쏴요."
그래, 드라마 한 편 찍는데 술 한 번 사는 정도야. 이 누나가 진탕 마시고 뻗어서 쓰러질 때까지 사주마. 기뻐하는 마음으로 대본 리딩 장소로 찾아갔다. 벌써 몇 명의 배우들이 눈에 들어찼다. 역시 배우들, 여기가 내 체질이라니까.
"김여주씨 맞으시죠?"
"네? 아,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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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주 씨 작품 잘 봤습니다, 전에 알콩네 콩 농장 작품 나오셨죠? 정말 재미있었는데."
"어, 알아보시네요?"
차 타고 오는 내내 못 알아볼까봐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나. 오자마자 반겨주는 어느 배우 분에 너무 기뻐 눈이 헉 떠져 광대가 더 올라갔다. 어떡해, 아직도 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길거리에 풀 메이크업 해야 사람들이 알아볼까말까 하는 나를 알아봐주시다니!
"박찬열입니다, 이번에 여주 씨 상대역 맡았어요."
"제 상대역이요?"
"네, 이참에 친하게 지내요."
이렇게 살갑게 대해주시는 분이 있으니 좋기만 해서 헤벌레해졌다. 아, 세훈이가 표정 고치랬는데. 여배우가 되어서는 동네 바보 같이 그런 표정이 뭐냐고 면박을 준 적이 있어서 고치려고 노력해도 되게 고쳐지지 않는다. 후후, 숨을 몇 번 뱉고는 최대한 우아하게 표정을 겨우 고치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감독님이 일어나서 배우들을 살피다가 대본을 펴든다.
"그럼 대본 리딩을 시작하기 전에 얼굴은 한 번씩 보셔야죠?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자기소개라니! 물론 인터뷰 때 몇 번 이름 말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자기소개 해보세요, 한 적은 오랜만이다. 제일 먼저 주인공들부터 할까요? 괜히 흐르지 않는 분위기에 주인공들부터 압박을 주는 감독님에 괜히 어색한 웃음이 흐르고 남주인공이시던 분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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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에 한여울 역을 맡은 도경수입니다."
오, TV에서 보던 것보다 잘생겼다. 요즘 이름 앞에 '대세'라는 호칭을 아무렇지 않게 방송국에서 실어준다는 그 도경수 씨다. 생글생글 웃는 것이 인상도 좋게 생겨서 아까의 찬열 씨 만만찮게 활발할 것만 같기도 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하고 있을 때, 도경수 씨 반대편에 앉아있던 상대 여배우가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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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역을 맡은 빅토리아입니다. 반가워요."
응? 잠시 빅토리아 선배의 외모에 감탄하기도 전에 멈췄다. 이게 무슨 소리죠? 경직된 몸에 눈만 끔벅이며 감독님을 쳐다봤다. 감독님? 고의가 아니셨겠죠? 감히 아름다운 빅토리아 선배님의 역 이름에 제 이름이라뇨.. 벙찐 표정을 풀지 못하고 대본을 다시 쳐다봤다. 대본을 받았을 때, 내 대사에 집중했단 것에, 여주인공 이름이 내 이름이었다는 것을, 보지 못했었다.
"한여름 역을 맡은 박찬열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왜 내 이름이 저기에 있는 거지,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소개는 안중에도 없이 근심이 머리 속에 가득 찼다. 어떡하지, 어떡해. 나중에 이름 바꿔달라고 부탁해볼까. 아, 괜히 신경 쓰는 것 같이 보이진 않을까? 이름 아까워서 그러는 것처럼 보이잖아. 으, 큰일이네. 온갖 고민을 하던 중, 앞에 앉아있던 찬열 씨가 나를 불렀다. 여주 씨, 여주 씨.
"네?"
"자기소개, 여주 씨 차례에요."
"아, 아 죄송합니다! 이번에 유수아 역을 맡은 김여주 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무슨 사내대장부 마냥 어깨를 들썩이며 허리를 푹 숙여 폴더 마냥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허둥지둥 앉았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찬열 씨와, 도경수 씨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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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조금 마음에 안 든다는 눈치의 눈빛. 찬열 씨는 웃어보이며 귀엽다는 둥 대본으로 입을 가리고선 소리를 내지 않은 채 웃었다. 손으로 괜히 빨개진 얼굴을 달래려 부채질을 해댔다. 그리고 모든 배우들의 소개가 끝났고, 감독님께선 일어나셨다.
"여주 씨 이름을 빌리게 된 건, 작가님이 부탁하신 거셨습니다. 캐릭터가 여주 씨랑 비슷하시대서 괜찮냐고 여러 번 상의도 하셨고요. 그래서 동의를 지금 구하라고 하셨는데, 괜찮죠?"
"아, 네! 저야 좋죠! 하하.."
아, 멍청이. 그래도 홍보의 기회가 되는 게 어디야. 내 나름대로 안정을 되찾으며 리딩을 시작했다. 역시 빅토리아 선배님의 연기력이란, 캬. 최대한 눈을 부릅뜨고 내 대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몇 번 대사가 오가다가 드디어 내 이름을 부르는 부분이 나왔다. 으, 어떡해.
"김여주, 아. 감독님, 이 부분 넘어가도 괜찮을까요? 중요한 부분만 잡고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응? 이게 무슨 소리죠? 모든 배우들이 도경수 씨의 방향으로 시선이 향했다. 머리를 긁적이던 감독님이 대본을 몇 번 넘겨보시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머리를 한 번 긁적이시고선 빅토리아 선배님의 의향을 물으시더니 다시 진행하셨다.
"뭐, 빅토리아 씨도 괜찮으시다니까 넘어가죠. 여주 씨부터 대본 읽어요."
"아, 네. 한여울, 많이 기다렸어?"
"죄송한데, 김여주 씨, 조금 감정 실어서는 못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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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왜 저러는 거야, 나한테 불만있나. 가득 미간을 찌푸리곤 날 쳐다본 도경수 씨가 자기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기더니 못마땅한 듯 대본에 다시 시선을 돌린다. 아오, 씨. 나더러 뭘 어쩌라고. 다른 사람들은 불만 한 번 갖지도 않는 연기를 자기 혼자 저런다. 지금까지 받아온 악플들 중에 연기 못한다는 악플도 진짜 없었는 데, 처음으로 연기로 비난한 사람은 도경수, 저 인간 하나 뿐이었다.
"그냥 이어서 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지금 말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애써 바들바들 떨리는 입꼬리로 미소를 지어보이며 뻐큐를 날려도 모자를 상황에 보살처럼 나는 맞받아쳤다. 그게 또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나를 한 번 더 쳐다보더니 네, 하고 짧고 굵게 대답하더니 다음 대사를 잇는다. 지금 리딩 때도 이러는 데, 촬영 때는 어떻게 하냐.
"그래도, 원래 도경수 씨 그런 성격 아니라던데요 누나. 좀 예민했나 봐요."
"그러겠지?"
세훈이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며 뒷담화는 아니고, 처음 만난 도경수 그 인간의 이미지에 대해 논평을 벌이고 있었다. 한쪽에 대본을 꼭 껴안은 채로. 세훈이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멀리 지나가던 도경수를 가리켰다. 어, 도경수 씨네요 누나.
"아, 안녕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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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표정이다. 옆에 있던 세훈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기껏 위로를 해준다고 하는 말이,
![[EXO/도경수] 사랑반란 00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d/2/d/d2dab55c7e58e9fc124b9ae6f168140d.jpg)
"분명히, 저 인간은 누나랑 원수를 졌어요. 그냥 피해요."
"피한다고 피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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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씨, 잘 들어가세요."
굳이 가까이 와서까지 고개를 숙여가며 인사를 하고는 자기 밴으로 향하는 찬열 씨를 보며 세훈이는 다시 한 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래야 정상이라니까요."
아, 나 이 드라마 촬영 어떡하지.
때려칠까?
+ 저는 이거 쓰는 걸 때려쳐야 할 지도.. 설렘 하나 없는 글이라니.. 게다가 디오 이름을 걸어놓고 작업거는 분은 찬열이라니...! 큰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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