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 년 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눈만 마주쳐도 양 뺨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뛰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용기 내서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
그는 나의 소꿉친구다.
고백
w. 로코
좋아하게 된 계기랄 것은 없었다. 그것은 너무 순식간이었고 갑작스러웠으니까. 평소같이 웃고 떠들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 그 얼굴이 너무 멋져서, 그 미소가 너무 멋져서, 정말 한 순간에 빠져버렸다. 그 때부턴 그가 너무 의식 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항상 함께 걷던 등굣길에도 그가 장난으로 내 어깨를 툭 치면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선 그저 두근대는 심장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푹 숙이고선.
그는 갑자기 변화한 내 모습이 이상하긴 했는지 종종 걱정스럽게 내 이마를 짚으며 말하였다.
“OO아, 어디 아픈 거야? 열나는 것 같은데..”
그 음성이 부드러워, 그 손길이 다정해서 나는 매번 더더욱 붉어진 볼을 양 손으로 감추곤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떨리는 숨소리를 애써 숨기면서. 아냐, 아무것도.
그럴 때 마다 그는 다 아는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마주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선 말하였다.
“다행이다. 아픈 게 아니라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좋아하는데, 좋아한다고 말 하고 싶은데. 괜히 내 욕심에 그와 나의 사이가 갈라질까봐. 친구라는 위치마저 잃어버릴까봐 도저히 말 할 수 없었다. 머뭇거리며 그를 불러 세워놓고선 그저 아무 말 못하고 웃던 게 벌써 한 달 째. 그래도 어떡해. 그만 보면 떨려 죽겠는데.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젖어 있는 이 공기도, 나를 향한 그의 웃음도. 모든 것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왠지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미묘한 기분이 하루 종일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는 내 이런 모습이 낯설었는지, 그저 따스한 미소로 웃을 뿐이었다. 내 마음 따윈 다 아는 것처럼.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처럼.
하교시간이 다가오고, 어두웠던 밤하늘은 빗방울을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트리기 시작하였다. 생각보단 굵은 빗방울이 황토색이던 운동장을 그새 검게 물들였다. 우산 안 가져왔는데... 아침에 엄마가 우산 가져가라고 소리칠 때 챙길걸. 약간 후회되는 마음에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우산 안 챙겨왔어?”
“어떻게 알았어?”
“넌 항상 표정에서 티가 나니까.”
“....... 우씨..”
그가 뾰루퉁하게 튀어나온 내 입술을 손가락으로 툭 건들인다. 그 순간 내 심장도 툭, 떨어져버렸다. 어떡해. 내 심장소리 들릴 것 같은데.
그는 내 앞을 지나쳐가더니, 입구에서 가지고 있던 우산을 확 펼쳤다. 커다란 우산에 빗방울이 닿아 투툭-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뭐해, 이리와”
“응..?”
“빨리, 씌워줄 때 와”
“아.. 응”
예전 같으면 그의 옆자리에 뛰어들었을텐데, 도저히 떨려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천천히 한 걸음씩 그에게 다가갈 뿐.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는데도 왜 이렇게 떨릴까. 너무 수줍어서 붉어진 양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곤 그를 바라보았다.
약간은 노르스름한, 부드러운 머릿결이 바람에 살랑이고, 그는 그저 내 눈만을 바라본 채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서,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서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한, 저기.. 있잖아”
“응?”
해맑게 웃어오는 네 미소가 너무 예뻐서 목구멍이 따가웠다. 좋아해, 널 좋아해. 하고싶은 말이 목구멍에 걸려서 마구 긁어대는 느낌이었다. 예쁜 두 눈을 접어 반달로 만든 채 나를 보며 미소 짓는 널 보며, 나는 어쩌면 후회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입을 떼었다. 아니 후회할지도.
“저기... 저... 내가 ...”
“응..?”
“널...... 조...... 좋...”
“잠깐만 OO아”
“.......어?...어..”
말을 갑작스럽게 끊는 네 행동에 내 심장은 덜컹. 그 상태 그대로 굳어버렸다. 너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괜히 조급해져선,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도 안 해본채 너에게 말을 한 것은 아닐까. 왜 나는 참지 못 한걸까. 나를 보며 웃어주는, 항상 내 머리를 부드럽게 스다듬어 주는 너를 잃으면. 나는. 나는..
“잠깐만”
푹 고개를 숙인 채 서있던 내 뺨을 부드럽게 두 손으로 쥐곤, 고개를 들어 올린 루한이 눈을 마주쳐왔다. 혼란스러운 걸까, 두 눈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너를 힘들게 만든 걸까. 숙제를 던져준 것일까.
“그 뒤는 내가 말하게 해줄래?”
“어..?”
“좋아해 OO아. 아주 많이”
내 이마에 닿았다 떨어지는 네 입술에선, 달콤한 향이 났다. 비에 젖은 땅의 향기를 덮을 정도로 달콤한 향이 내 몸 가득 번졌다. 흔들리던 두 눈은, 나와 같은 마음으로 떨렸던 것이었나보다.
“루한아.”
“응”
“진..심이야?”
“물론. 늦게 말해서 미안해. 용기가 없어서 말하지 못했어”
“어...?”
생각지도 못한, 꿈에서만 바라던 그 말을 루한이 말했다. 꿈인 걸까. 내가 너무 큰 충격으로 뒷 이야기를 혼자 지어내고 있는 걸까.
“가자, 집에”
“으응..”
꿈인 걸까. 꿈이라기엔 이마에 닿았던 그의 입술이 너무 생생해서 조심스럽게 이마를 매만졌다.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아. 이렇게 달콤한데.
“이리와. OO아.”
꿈이 아닌가 보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현재 못입는 사람은 평생 못입는다는 겨울옷..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