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J - First Kiss
中
숙소 방이 다른 경수에게 자기의 침대를 내주는 것부터 이미 세훈의 마음은 정리가 된 듯 했다. 더 이상 세훈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더 이상 쏟을 관심도, 애정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일어났을 때 경수는 아직도 세훈의 침대에서 잠자고 있었다. 따갑게 아려오는 두 눈을 비비적대다 어제의 상황이 떠올라 루한은 잠시 멈칫했다. 고개를 숙여보니 뽀송한 이불이 손에 잡히는 게, 분명 세훈이 이리로 옮겨놓은 것이다. 세훈은 이미 방을 나섰는지 방 안에는 몸을 뒤척이며 곤히 자고 있는 경수와 눈을 굴리는 저밖에 없었다. 필름이 끊기기전 마지막 장면이 흐릿하게 기억난다. 세훈은 당황한 듯 혹은 짜증이난 듯한 얼굴로 제게 다가왔다. 그 얼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기 전에 꼴까닥 쓰러졌으니 그냥 인상을 썼다는 게 맞는 듯 했다. 루한은 침대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마음이 착잡했다. 물 한잔을 다 비워내면서도 그 심란한 기운은 떨칠 수 없었다. 세훈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이젠 ‘세훈’ 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 한편이 저릿하다.
그러던 루한의 눈에 잠자는 경수가 들어왔다. 이 순간만큼은 걱정 없이 편히 잠자고 있는 경수가 제일 얄미웠다. 그리고 미웠다. 왜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멤버 중 세훈의 눈에 들어간 것인지, 왜 하필이면 그런 세훈 때문에 자신이 아파해야 하는지, 그냥 모든 게 다 답답했다. 방 안은 경수의 색색대는 숨소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세계 초침소리만이 맞물려 공존했다. 거기에 루한의 깊은 한숨소리까지.
그날 이후로 세훈은 루한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 루한이 어디를 가건 어떤 일이 있건 무슨 말을 하건 조그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만큼 경수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았고, 루한은 그때마다 아무 말도 못한 채 벙어리마냥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그냥 그렇게 멍청히 서있었다. 세훈이 경수에게 달려가 어깨 위의 먼지를 탈탈 털어주고 귀엽다는 듯 내려다볼 때도 한발 뒤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대가 끝난 뒤에 경수를 먼저 챙기고 차 안으로 들어갈 때도, 차 안에서 멀찍이 떨어져있는 경수에게만 말을 걸을 때도, 그래서 자신이 소외됐을 때도 죄지은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가까워지는 세훈과 경수의 사이에 루한의 마음속엔 슬픔 이라는 감정보단 질투와 분노가 서서히 자랐다. 세훈은 여전히 경수에게 관심을 보였고, 그것은 적어도 루한의 눈에는 사랑으로 보였다.
슬픔에서 질투로, 질투에서 분노로 넘어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루한은 이제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해버릴 지경까지 왔다. 술을 마시면 이 모든 감정들이 자신도 모르게 쏟아져 나올까 싶어 회식때 누군가 술을 권해도 절대로 마시지 않았고, 설사 마신다 해도 그것은 한두 모금에 그쳤다.
오늘 회식에서도 세훈은 경수에게 웃는 얼굴로 갖갖이 반찬을 그의 밥에 얹혀줬다. 경수는 그저 고맙다고 속 좋은 사람처럼 그것을 받아먹었다.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거기다 경수는 품에 쏙 들어오는 체격이어선지 키 차이도 그렇고 모든 게 세훈과 잘 어울렸다. 루한은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술잔을 들려다 아차, 싶어 다시 내려놨다. 이렇게 술이 땡기는 것은 참 오랜만이다. 너 덕분에 이런 일도 생기고 말이야. 루한이 세훈을 있는 힘껏 노려봤다. 세훈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으면서 루한의 따가운 시선도 모른 채 경수에게 고기를 구워주기 바빴다. 정말 속에서 천불이 나올 지경이었다. 루한은 애써 열 받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이미 얼굴부터 붉어진 그의 얼굴은 누가 봐도 ‘나 정말 화났어’ 였다.
회식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때까지도 세훈과 경수의 히히덕거리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결국 루한은 더 이상 맨 정신으로 둘의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왜 몇 십 명의 인원 중에 꽁냥거리는 저 둘만 보이는 건지, 애써 고개를 돌려도 왜 저 둘만 신경 쓰이는 건지. 신경 쓰면 쓸수록 애가 타는 건 자신인데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둘의 말장난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술이 필요했다. 정말로 이 모든 것을 무감각 시켜줄 술이 간절했다. 루한은 본능적으로 멀찍이 떨어져있는 초록색 술병을 집어 들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기어코 먹지 않는다고 멀찍이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술잔에 술을 따르는 손이 벌벌 떨었다. 딱 한잔만. 이것만 마시자. 어느새 루한의 두 눈이 붉게 충혈 되었다. 술잔 위로 투명한 술이 넘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채워졌다. 잔을 든 루한이 눈을 감고 그것을 입에 댔다.
“워워.”
막 입에 털어내려 할 때, 술잔의 무게가 손끝에서 사라졌다. 뭔가 싶어 눈을 뜬 루한의 앞에 있는 것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는 크리스였다. 크리스가 바로 옆자리에 있는 것도 몰랐던걸 보면 확실히 저 둘에게 신경이 곤두섰던 모양이다.
“술 마시면 몸에 안 좋아, 루한.”
게다가 넌 술 안 좋아 하잖아. 제가 따랐던 술잔이 크리스에 의해 테이블 저편으로 밀어졌다. 아, 크리스……. 루한이 울상을 지으며 애처롭게 쳐다보자 두툼한 손이 루한의 머리를 따뜻하게 쓰다듬었다.
“술 마시고 또 저번처럼 그러려고?”
저번처럼? 씨익 웃는 크리스의 말이 무얼 뜻하나 곰곰이 생각하던 루한의 얼굴이 순식간에 풀렸다. 야 그건…! 루한이 크리스의 어깨를 투정부리듯 때렸다. 이게 뭔소린가 하면, 몇 달 전 술에 떡이된 루한이 새벽까지 잠들지 않고 크리스에게 앙탈 아닌 앙탈을 부리며 그를 피곤하게 했던 사건을 말한다. 아이스크림을 사주라고 땡깡까지 피워서 한밤중에 후드집업을 뒤집어쓰고 나갔던 크리스는 그날 매니저에게 걸려 엄청 혼났다고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술에 취해 헤벌레-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루한을 보며 크리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다. 벌써 몇 달도 전의 일이다.
“그게 언제 적 얘긴데 그래! 미안하다고 했잖아아.”
말꼬리를 늘리며 투탁이자 크리스가 특유의 얼굴로 호탕하게 웃었다. 너 또 그럴까봐 그렇지. 하여간 크리스도 짓궂다. 그 말 나오면 창피해 하는 거 알고 일부러 그러는 거다. 덕분에 조금 기분이 풀어진 루한은 이왕 대화를 시작한거 마저 말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둔감한 루한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세훈이 크리스와 말을 주고받는 자신을 은근히 곁눈질 하는 것을.
크리스. 그는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답게 온 몸에 매너가 배어 있었다. 크리스와 대화를 하면서 루한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감회를 느꼈다. 크리스와 이렇게 허물없이 이야기 하던 적이 언제였더라? 정말 오래간만이란 것은 확실하다. 사실, 크리스와 루한은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서로에게 이끌려 연애를 하던 때가 있었다. 워낙 데뷔 초이고 철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루한이 먼저 ‘헤어지자’ 말했지만, 그 이후로 왠지 어색한사이가 되어버려 이렇게 말을 나누는 게 쉽지 않았다. 어색해 했던 건 크리스도 마찬가지였던지라 오랜만의 나누는 평범한 대화에 루한은 다시 연애를 하는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세훈에게 빠져있느라 몰랐던 크리스의 매력이 차곡차곡 눈에 들어왔다. 이를테면 아까처럼 술을 마시려 할 때 도로 뺐거나 애정 어린 장난을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 말이다. 이걸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루한의 눈엔 그게 그렇게 호감일수 없었다. 더군다나 세훈과 틀어진 이 상황에서. 세훈과는 헤어지자는 말만 안했지 거의 이별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날은 그렇게 마무리된 듯싶었다. 루한은 크리스와 말을 하면서 예전의 감정이 다시 싹트기 시작했고, 크리스도 루한과 같은 마음인 듯 보였다. 말하는 중간 중간의 제스쳐나 슬쩍 어깨를 두르는 등의 스킨십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었다. 다만 맨살이 직접적으로 닿을 때엔 루한 자신도 모르게 세훈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뿐 같이 맞장구를 쳐주며 모처럼 재미있게 대화했다.
회식이 끝난 뒤 차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모두 적당히 조절했는지 몸을 못 가누는 멤버는 한명도 없었다. 각자 정해진 방으로 돌아갔지만 그날도 역시 세훈은 루한이 먼저 도착한 자신의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언뜻 들리는 것으로 보아 세훈은 매니저와 함께 자는 것 같았다. 오늘은 경수도 제 방에서 자지 않으니 아침까지 혼자 지내야 한다는 소리인가? 루한은 세훈이 이럴 필요까지 있나 싶어 씁쓸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싫은 게 확실한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밉상인가? 침대로 가던 도중 화장대에 비친 제 얼굴의 볼살을 쭈욱 잡아당겼다. 그러다 허탈한 웃음으로 볼을 잡던 힘을 풀었다. 좋았던 기분이 다시 가라앉는 느낌이다.
회식이 있은 후 루한은 크리스와 부쩍 친해졌다. 세훈이 경수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면 자신은 크리스와 함께 붙어있었다. 크리스도 루한에게 호감을 보였고, 루한은 은근히 세훈을 의식하며 크리스에게 스킨십을 자제하지 않았다. 크리스가 좋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세훈을 도발하기 위함이 더 컸다. 자신만 질투하고 속상해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했기 때문이다. 크리스가 장난을 칠 때면 싫은 척 하면서도 그의 팔에 매달려 투정을 부렸고, 그럴 때마다 일부러 눈을 접어가며 웃었다. 만약 크리스가 자신을 챙겨주거나 하는 배려있는 행동을 하면 “아이구 우리 강아지. 고마워.” 하면서 까치발을 들고 볼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쪽을 바라보는 세훈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괘념치 않았다.
어찌 보면 꼬리만 안 달렸지 백년 먹은 구미호였다. 제가 생각해도 두 명의 남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못된 짓이었지만 그냥 마음이 끌리는 대로 했다. 아무렴, 제 남자의 대놓고 바람피우는 행위를 지켜본 루한이기에 그에겐 이 정도는 약과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상황에서 가장 불쌍한 건 크리스였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회식때 루한의 술잔을 빼돌린 죄?
이번엔 저번보다 길어요! 그치만 짧은건 여전하다능...www 저번에 덧글 남겨주신 분들 싸랑해요 ㅠㅠ 감격함...! 오늘은 루한이 나쁘네요 대충 틀만 짜놓고 쓰기 때문에 조금조금씩 올릴거예요 왜냐면 얼른 올리고 싶으니까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20p 위로는 못올림) 다음에 좀 많이 길게 쓰면.. 아주 잘하면 떡도 쓸지도 몰라요 떡은 헠헠 헠헠 이런게 아니라 좀 러블리합니다 수줍구요 클루 개짱!!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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