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J - First Kiss
/암호닉/
문어 몽끼 둘리 진리
中2
“세훈아. 오늘 기분 별로야? 표정이 안 좋다.”
조심스럽게 묻는 경수의 말에 세훈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아뇨. 그냥 뭐. 아무 일 없다는 듯 어색하게 웃자 경수의 얼굴이 미묘하게 찡그려졌다. 에이 거짓말. 너 얼굴에서 다 티나는데? 이 둔한 도경수는 오늘따라 왜이리 눈치가 빠른 건지, 세훈이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실은 아까부터 계속 저편에서 콩닥거리며 놀고 있는 루한과 크리스가 신경 쓰였는데, 저도 모르게 계속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나보다. 오늘은 스케줄이 없는 날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느긋하게 일어난 멤버들 모두와 오랜만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기내식당의 긴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했다. 이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연스럽게 제 옆으로 와 앉는 경수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줬지만 정작 세훈의 신경이 쏠리는 곳은 따로 있었다. 회식때 이후로 부쩍 친해 보이는 크리스와 루한이었다. 오른쪽 끝 테이블에 세훈이 앉아있다면 둘은 왼쪽 끝 부분, 즉 세훈과 정 반대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걸 ‘음식을 먹는다‘ 라고 표현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둘은 차분히 식사를 하는 멤버들 중 가장 시끄럽게 떠들며 먹고 있었다. 루한이 먼저 장난을 걸면 크리스가 재치 있게 받아주는 식이었다. 멀리 있어도 둘의 대화소리가 다 들릴 정도니, 이만하면 말 다했다.
“크리스, 아 해봐. 내가 먹여줄게.”
킬킬 웃으며 들뜬 루한의 음성이 들렸다. 젓가락으로 초밥을 집은 루한에 크리스가 ‘너 그거 와사비 통째로 넣었지’ 하고 의심스러운 어조로 뱉었다. ‘아닌데 아닌데?’ ‘그럼 너가 먼저 먹어봐.’ ‘아, 그건 싫어’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으며 크리스에게 말을 거는 루한에 세훈의 얼굴이 점차 굳어갔다. 세훈아. 괜찮아? 경수가 차가운 얼굴로 말없이 제 앞의 접시들만 해치우는 세훈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야, 너넨 뭐 사귀기라도 하냐? 남자애들끼리 진짜 징그럽게 논다.”
테이블 가운데서 보다 못한 종대가 소리쳤다. 종대는 정말 혐오스럽다는 얼굴로 아직도 주변에 꽃이 만개한 크리스와 루한을 쳐다봤다. 응, 우리 사귀는데? 당연하다는 듯 말한 루한의 충격 발언에 전 멤버들 모두 헐- 하며 경악한 얼굴로 둘을 봤더랬다. 그중 가장 표정이 굳은 것은 단연 세훈 이었다. 크리스는 루한의 말을 장난스럽게 내칠 수 있었지만 대꾸할 마음이 없는지 묵묵히 초밥을 먹었다. 덕분에 멘붕이 온 것은 둘을 제외한 멤버들이었다.
“얘들아 신경 끄고 밥이나 먹자. 쟤네들 저러는 거 뭐 한둘이니.”
열한 쌍의 젓가락을 사용하던 움직임이 멈춘 가운데 준면이 상황중재에 나섰다. 그러자 멤버들은 너도나도 ‘저저 미친 새끼들’ 한마디씩 욕하며 멈췄던 젓가락을 다시 집어 들었다. 루한은 여전히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세훈은 멤버들의 반응에도 아랑곳 안하고 신나 보이는 루한의 얼굴을 보자 입맛이 확 떨어졌다. 도저히 밥을 먹을 기운이 안 난다. 쟤네 정말 미친 거 같다. 작게 욕을 씨불이며 마저 밥을 먹는 경수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익, 하고 나무의자와 바닥에 마찰음이 일었다. 순간 멤버들의 시선이 이번엔 세훈에게로 쏠렸다.
“세훈아, 더 안 먹어?”
경수가 말했다.
“세후나. 이거 갈비 마시써.”
갈비를 뜯던 타오가 말했다.
“그냥 입맛이 없어서요.”
대충 얼버무리자 저 멀리서 이쪽을 바라보는 루한이 보였다. 다소 굳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에 세훈은 기가 찼다. 태평하게 입을 우물거리며 저를 보는 크리스까지, 뭣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무작정 엘리베이터를 탔다. 씁쓸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자신을 잡은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세훈이 나간 뒤 기내식당 안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멤버들은 모두 아까부터 내내 표정이 안 좋았다는 경수의 증언에 그저 속이 안 좋겠거니 저마다 추측했다. 허나 루한은 안다. 세훈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이유는 오로지 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걸. 루한은 세훈의 뒤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자신의 빈 접시를 멍하니 쳐다보던 루한에 크리스가 테이블 중앙에 있는 음식들을 덜어내 루한의 빈 접시를 차곡차곡 채웠다. 루한은 크리스의 행동에도 별 반응하지 않고 우울해있었다. 그렇게 세훈이 보는 앞에서 크리스와 있어놓고, 막상 세훈이 가는걸 보니 잡고 싶어 하는 저는 모순덩어리였다.
“저렇게 충동적인 애야.”
크리스의 나지막한 말에 루한이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봤다. 크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뜬 루한에게 그저 의미모를 미소만 지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크리스의 말이 가시가 돋친 것처럼 느껴진 것은 제 착각일까? 루한이 만지작거리던 젓가락을 다시 집어 크리스가 먹기 좋게 썰어둔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적당히 익은 고기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씹힌다. 분명 몸은 크리스의 옆에 있는데 마음은 이미 세훈에게로 가있다. 세훈아, 난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자신도 갈피없이 헤매는 제 마음을 바로잡지 못해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화가 난 얼굴로 미련 없이 돌아간 너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식사를 마친 후 여전히 기운 없어 하는 루한을 끌고 크리스는 옥상으로 향했다. 루한은 ‘그냥 방으로 돌아가서 쉴래.’ 하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크리스는 기어코 그를 끌고 옥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였다. 루한이 식당을 나오기 전 미리 뽑아뒀던 아이스커피 한 잔을 들고서.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와중에 루한은 크리스가 건네준 커피를 무의미하게 쳐다보다 몇 모금 홀짝였다. 크리스는 말없이 커피에 혀만 가져다대는 루한의 머릿결을 매만졌다. 지금 둘 사이 정적이 흐르는 이유는 서로가 어색하기 때문이 아니라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루한은 몇 번 홀짝이던 커피가 조금 쓴지 인상을 찌푸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조금만 걷다보면 곧 도시의 모습이 훤히 보이는 옥상에 다다른다. 루한은 생각 없이 크리스를 따라 옥상에 들어가다 아차, 싶었다. 갑작스레 발을 멈춘 루한에 크리스가 왜 그래 루한, 하자 루한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냥. 그리고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바로 이곳이다. 세훈과 처음으로 키스를 했던 장소가. 워낙 복잡한 일이 한꺼번에 터지니까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옥상이 세훈과 함께한 추억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중에도 까맣게 잊은 채 자신은 커피 잔의 끝부분만 물어뜯고 있었다. 찝찝했던 기운이 다시 되살아났다. 세훈은 지금 어디 있는 걸까. 만약 아까 자신 때문에 뛰쳐나간 게 확실하다면 그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경수에게 더 애정을 갖고 챙겨주는 것 자체가 이미 저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는 것 아닌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왜 크리스와 함께 있는 저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을까. 웃긴 건 루한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일부러 크리스에게 붙어 꼬리를 흔드는 건 세훈이 질투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세훈이 아직 저에 대한 관심이 남아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세훈이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생각한다고 단결 지은 주제에 또다시 세훈을 의식하며 행동했던 것이다. 베베 꼬여버린 상황에 머리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눈에 띄게 표정이 굳어진 루한을 보고 크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마음을 정리하는 루한을 기다리는 것처럼. 루한은 난관에 기대어 잠시 푸른 하늘을 쳐다보다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차가운 액체가 목을 타고 울렁인다.
“.....크리스.”
“응.”
따뜻한 바람이 말없는 둘 사이를 느긋하게 지나갔다. 루한의 연한 갈색을 띄는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일렁거리자 크리스는 루한의 귀 뒤로 머리를 넘겨주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마음 한켠에 무거운 돌이 얹혀진 것처럼 깊은 한숨만 쉬던 루한이 겨우 입을 열었다.
“크리스는... 애인이랑 싸워본적 없어?”
쓸쓸함이 담겨있는 눈은 도시 곳곳에 있는 네온사인을 향해 있었다. 잠시 도시를 내려다보던 크리스는 착잡한 얼굴로 대답을 기다리는 루한을 내려다봤다. 루한의 시선은 여전히 도시 저편을 향해 있었다.
“당연히 있지.”
미소가 번진 말이었다. 새삼스레 묻는 게 이상하다는 듯 비웃는 것이 아닌, 모두가 다 겪어본 적 있을 거란 느낌이 강했다. 루한은 옅게 웃는 크리스를 한번 쳐다보다 다시 도시를 내려다봤다. 따뜻한 바람 때문에 커피의 온도가 점점 미지근해진다.
“나보다 한 살 어린애였는데, 나 몰래 바람을 폈더라고.”
다른 쪽으로 빠지려던 생각이 ‘바람’이라는 단어를 듣자 정신이 확 들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올려다보는 루한에게 크리스는 말을 이어갔다. 처음엔 내 애기가 그럴 리 없다고, 아, 애기는 애칭이야. 루한은 계속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 말고 다른 남자를 뒀을 리 없다는 생각에 혼자 부정하고 끙끙 앓았는데, 결국은 사실이 맞더라.”
“.....그래서?”
“그래서라니. 결국 깨져버렸지 뭐. 나보다 그 사람이 더 좋대.”
사실 잘못했다고 빌면 봐줄 생각이었어. 루한은 크리스의 마지막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분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와 닿았기 때문이다. 왠지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 같았다. 다소 씁쓸한 미소를 지은 크리스는 가만히 먼 곳을 내려다보는 루한의 손에 들린 커피를 빼앗았다. 어어? 힘없이 손에서 빠져나간 반도 채 안남은 커피를 크리스가 한 번에 원샷하고 말았다. 아... 그리 맛있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다 마신 크리스는 힘을 줘 종이컵을 소리 나게 구겼다. 볼품없이 구겨진 종이컵을 루한이 생각 없이 쳐다봤다.
“세훈 때문이지?”
“......어?”
“지금 니 상태 말이야.”
갑작스레 튀어나온 세훈의 이름에 루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상치 못한 대답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버버 하는 루한을 보며 크리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쪽 입 꼬리를 씨익 올렸다.
“오세훈 그 머저리 같은 게 누가 우리 루한 괴롭히래. 응?”
크리스가 허리를 숙여 루한과 시선을 맞췄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지만 그 속은 뾰족한 가시를 세운 것 마냥 불편하게 느껴졌다. 루한은 어색하게 웃으며 가까이 다가오는 크리스에 고개를 뒤로 뺐다. 크리스가 어떻게 눈치 챘는지는 모르겠지만, 세훈의 욕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사실은 그게 제 편을 드는 것이지만. 크리스는 루한이 고개를 뒤로 빼자 힘없이 너털하게 웃었다.
“자꾸 기운없어 하지마. 그럴수록 오세훈만 더 미워지니까.”
“....무슨 뜻이야?”
“세훈이 불러줄게. 얘기할래?”
“아, 아니!!!”
크리스의 의미심장한 말에 생각할 틈도 없이 세훈을 부른다는 말에 루한은 고개를 완강히 저었다. 여기서 세훈을 만난다면 대화로 푸는 건 둘째 치고 너무 어색해서 눈도 못 마주칠게 뻔했다. 만약 크리스가 그를 부른다 해도 자존심 강한 세훈이 제가 있는곳을 제 발로 찾아올 리가 없다. 크리스는 구겨진 종이컵을 휴지통에 넣으며 이만 간다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마도 루한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 같았다. 손 인사를 하며 가는 크리스의 뒷모습은 코너를 돌자 빠르게 사라졌다. 이번이 몇 번째 한숨인지, 가만히 있으면 그냥 한숨부터 나오고 본다. 입안이 커피의 쌉싸름한 맛으로 잔뜩 뒤덮여있다. 입 안쪽을 혀로 굴리며 루한은 생각했다.
이제, 내가 해야될 건 뭐지?
저번에 쓴 글에 안온다고 했으면서 써놓은게 아까워서 왔네요 세루 한달만이다... ㅠㅠㅠㅠㅠ 완결은 과연 언제날까요? 떡은 과연 언제 쓸수 있을까요? 진도가 똥인듯 포인트는 불마크가 나오지않는한 20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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