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그들의 태양이다.
숲에 사는 그들은 사람과 비슷했다.
한 때 인간과 더불어 가장 번식했던 포유류.
달의 여신은 그들에게 인간에 필적할만한 지능을 주었고,
인간은 그들을 두려워하며 미워했다.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급기야 인간은 그들의 서식지에 덫을 놓고, 총으로 쏴 죽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늑대는 나쁜 동물이야.
돼지를 잡아먹고 소를 잡아먹고 인간을 공격해.
늑대는 가까이 지내면 안되는 동물이야.
인간과 늑대는 점점 서로에게 적대감을 품기 시작했다.
**
그들의 태양은 달이다
**
"헉,"
정신이 번쩍 들며 굽어있던 허리를 급히 일으켰다.
책상이 덜컹,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자다가 발작을 일으키며 깨버렸다.
"하핳...ㅈ...죄송.."
나를 바보말미잘병신쓰레기처럼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하하,죄송...하면서 사과를 건네자, 그제야 사람들이 하나둘 자신의 일거리로 시선을 돌렸다.
..시발, 왜 하필 도서관에서 졸다가 발작을 일으키고 지랄. 망할 몸뚱아리.
**
"으하아암.."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나서 북카트에 널부러져 있던 책을 하나둘씩 정리 하다보니 어느새 12시가 다 되었다. 북카드에 놓여진 딱 하나의 책을 보면서 괜히 뿌듯함을 느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정리를 존나 잘해. 이렇게 보람까지 느끼는걸 보니 대학교 도서관사서 일도 그다지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아 맞다, 나 저녁약 먹었나.
..오늘은 안 먹을래.
몇 일 전 병원에서의 상황을 떠올렸다. 온통 하얀색벽 진료실 구석의 간이의자에 초조히 앉아서 손톱을 뜯고 있는 나를 보고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ㅇㅇ씨, 몸이 점점 좋아지고 있네. 약 이제 안 먹어도 되겠어요,호호, 하면서 내 어깨를 툭 치는 그 하얀 손이, 눈이 약간 시릴 정도의 빠알간색 네일을 한 그 손이 작게 떨리는 걸 난 보았다. 그리고 그 여의사는 내가 진료실에서 나간 걸 확인하고 탁상을 손톱으로 탁탁 두드리면서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독한 약을 썼는데도 왜 나아지질 않지.
씨발, 그냥 바로 뛰쳐나가버릴걸, 왜 진료실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그딴 절망적인 말을 들었는지.
그 빨간 네일 여의사는 왜 나아지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는지.
"아.. 정신병원 다니기 싫다."
망상으로 인한 정신이상. 내 병명이었다.
과대한 망상으로 인한 잦은 악몽-정신과의사들의 말을 빌리자면-은 내가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때까지 밀어붙였다.
완전히 어둠으로 뒤덮힌 도서관 바닥에 그냥 철푸덕 앉았다.
몇 개 월 전부터 나는 계속 똑같은 악몽에 시달렸다-아까 도서관에서 발작을 일으키면서 깨기전에도 꿨던 꿈이 바로 이 꿈이다-. 서늘한 바람이 뺨을 간지럽혀 슬쩍 눈을 떠보면, 나 혼자 숲에 우두커니 서있다. 저 멀리서 한 무리가 엄청 웃어 제끼면서 나무가 잔뜩 우거진 숲을 마구 달리는게 보인다. 아우우,짐승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싸하니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아 나는 나무 뒤에 허겁지겁 몸을 숨긴다. 몇 분이 지났을까,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갔나, 하면서 두 손으로 나무를 잡고 허리만 돌려 고개를 빼꼼,내밀어 확인한다. 없다, 미친듯이 뛰어다니던 무리가 없다. 아, 이제 아무도 없으니 난 안전하네. 나가는 길만 찾으면 되겠다, 생각하면서 뒤를 도는 순간.
빨갛게 충혈된 눈이 내 바로 앞에서 날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는 날 찾아내,라고 무시무시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사라졌다.
그 때마다 항상 나는 헉, 하고 몸을 벌벌 떨면서 깬다. 몇일간 그냥 악몽이려니 했는데 한 달 정도 지속되자 부모에게 말했다. 부모는 꿈 내용을 듣고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바로 날 정신병원에 쳐 넣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상담을 받고, 약을 아무리 먹어도 악몽은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독하게,더 생생하게 매일 밤 나를 괴롭혔다.
딱 세 달째 되던 날, 상담선생님께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더 이상 악몽을 안 꿔요.
그 날로 나는 간호사,의사, 또 상담선생님의 엄청난 축하를 받으면서 퇴원했다. 상담선생님은 이제 일 주일에 한 번씩만 들려 잠깐 상담을 받고 나아지는 추세를 보이면 아예 병원을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제 나하고의 상담은 끝났고, 이제 다른 선생님이랑 할꺼야. 라고 상담선생님이 말했다. 하하 웃으면서 안 서운해?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냥 웃어줬다. 병원 밖으로 나가는 나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주 손을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그걸 믿냐, 병신들아.
오늘 밤에도 악몽은 날 찾아올 것이 뻔했다.
난 그냥, 정신병원이 싫었다. 아니, 난 정신병원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 악몽은 내 과다망상으로 인한 꿈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 생생하잖아.
그 후로 부모님이 자취방과 도서관사서자리까지 구해주셨다. 철저하게 나 혼자 살라는 말이었다. 그러고보니까 생각해보면, 부모는 내가 좀 크고 난 이후로는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상담선생님과 부모가 내 병실앞에서 얘기하는 것을 몰래 엿들으면 항상 그런 얘기였다. 난 저런 정신병자 키울 생각 더는 없어요, 정신병자, 미친여자, 제정신이 아닌 여자.
"에라이 시발놈들아, 입양하질 말던지."
입양해놓고 끝까지 책임 안 질꺼였으면, 입양하질 말던지. 부모가 책임감도 없다. 더럽다,더럽다.
도서관 바닥에 붙어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북카트의 마지막 남은 책을 책장에 꽂아넣으려고 돌아다녔다.
"ㄱ..800...1..오 찾았, 악!"
책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책번호를 중얼거리면서 제자리를 찾아갔다. 웬일로 이렇게 빨리 찾아진대, 신나서 책을 꽂으려고 하는 순간 눈에 불꽃이 튀면서 머리에 칼을 꽂는 듯한 충격이 일어 소리를 냅다 악 질렀다. 충격이 가해진 이마 윗 부분을 문지르면서 바닥을 보니 큰 책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책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 까지 아픈 걸 보니 꽤 높은 곳에서 떨어졌나보다. 게다가 모서리 쪽으로 맞았나 보지. 아, 진짜 아프다. 중얼거리면서 책을 집어들었다.
제목이 눈에 띄었다.
늑대.
늑대, 늑대라면 시발, 몇 년 전에 그 엑수인가 엑 뭐시기가 그래 울프 내가 울프 아우우, 하던 것 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거 병신 같긴 한데 묘하게 중독성이 있단 말이지, 그 노래 몇 일 동안 반복재생했었는데.
병신미 돋는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을 촤라락,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며 다시 꽂으려고 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잠시만, 방금 그거 사람 목소리 맞지?
시발,시발. 진짜무섭다, 너무 무섭다, 개무섭다, 시발 하나님예수님부처님알라신고무신 나 좀 살려쥬슈. 등 뒤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다리가 땅에 얼어붙은 듯 움직이질 않았다. 팔도 책을 손에 펼친 채로 움직이질 않았다. 분명, 도서관에 아무도 없는 거 확인했는데. 지금 웅성대는 목소리가 아무리 들어도 사람 목소리였다. 아 정말 도망가고 싶은데, 도망가야 하는데. 야속한 다리는 움직여 주질 않고.
"쟤 뭐야. 왜 기절 안 해? 돌머리야?"
"심지어 피도 안 나. 종인아, 제대로 책 떨어뜨린 거 맞아?"
"책을 제대로 조준했어야지 새끼야."
"아, 씨발 왜 때려 오세훈 개새,"
"야 니네 닥쳐봐 좀. 쟤 진짜 이상한데? 저 정도 책에 맞았는데 왜 안 쓰러져?"
야 새끼손가락아 얼른 움직여서 내 귀좀 파봐. 내가 잘못 들은거 맞지? 환청 들은거 맞지? 그 남자들이, 그니까 보통 한 두명이 아니라 적어도 다섯 명은 훌쩍 넘어보이는 남자들이 도서관 안에서 아직도 안 나가고 떠들고 있는건 아니지? 내가 분명 도서관을 몇 바퀴나 돌면서 모든 사람을 다 내보냈는데, 그 많은 수의 사람들을 그것도 남정네들을 내가 확인 못했을리는 없지? 게다가 아까 맞은 책이, 그 남정네들이 날 조준하고 일부러 책장에서 떨어뜨린 거 아니지? 저 사람들이 말하는 '걔'가 날 말하는건.. 아니지?
순간 수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기절하는 척 할까, 아니 책 맞은 지 한 삼분 지난것 같은데 갑자기 기절하면 캐병신같을꺼고. 그냥 뛰쳐나갈까, 아니 병신아 지금 다리가 안 움직이잖아. 하하 안녕하세여 이 시간에 뭐하세여 인사할까, 시발 나 책으로 죽이려고 한 새끼들한테 인사를 하겠다고?
별별 생각이 다 들다가 눈을 힐끗 내리깔아 책을 봤다.
펼쳐진 페이지의 좌측 상단의 하얀색 큰 제목이 눈에 확 띈다.
'맹수의 기백'.
늑대는 맹수의 일종이므로 기백을 갖고 있다. 늑대의 기백에 눌리면 몸이 땅에 얼어붙은 듯 사지를 움직일 수 없고.. 사지를 움직일 수 없고..사지를 움직일 수 없...시발 딱 나잖아. 하하 그러면 저 남정네들이 기백을 가진 맹수란 말이야? 뭐 늑대라도 된단 말이야?
개소리야 하핳, 헛웃음이 나왔다. 헛웃음을 뱉으니 몸이 약간 풀린 것 같기도 했다. 오, 움직여지잖아? 지져쓰, 감사합니다.오..
"뭐야 저 년,움직여?"
"기백 제대로 쏜 거 맞아 새끼들아?!"
"아 시끄러워여 찬열이 형 제 귀 바로 옆에서 소리지르지 말아주실래여."
몸은 움직여 지는데 존나 무섭잖아 흐흐 남정네들 목소리가 계속 들리잖아 흐흐.
제일 무서운게 뭔지 알아 시발?
남정네들 여럿이서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하고 날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거야.
헤이 보이즈.. 나 부담스럽...이 아니고 지금 지릴것 같다구.
"야, 잠시만."
한 남자가 잠시만,하는 소리가 또렷히 들리더니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아...나한테 다가오는 건가. 다가오지마,다가오지마 오지마오지마 오지말라..! 반사적으로 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어어, 이봐라."
"..."
눈을 살짝 뜨니 황금빛 머리의 남자가 팔짱을 끼고 심기불편한 표정으로 날 삐딱하게 보더니 내 손목을 잡아 팔을 확 내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팔을 잡아내리는 악력이 어마어마해 손목이 얼얼하니 통증 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가 눈을 마주했다.
"아이 참,"
시발 잠깐만.
"이상하네."
그, 그 눈이잖아 시발.
"야,"
매일 밤 꿈에 나와서 날 괴롭히던 그 빨갛게 충혈된 그 눈.
"너,"
날 찾아내, 라고 말하고 사라지던 그 빨갛게 뜬 눈을 가진 남자가.
내 손목을 잡고 내 앞에 서있다.
"너, 내가 보여?"
안녕하세요 늑대소년입니다. 늑대라는 소재로 글 꼭 써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쓰네요.. 프롤로그가 조금 길죠? 이해 안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읽다보시면 차차 이해가실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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