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주를 겨우 달래어 교실에 데려다 주고 찬열 자신도 교실에 들어왔다. 모든게 짜증이 났고 이 혼인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아침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찬열 자신이 혼인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해버리고 무대포로 나선다면 피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찬열의 발표로 인해 왕실은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펼친 꼴이 되고 많은 질타를 받을 것이다. 아바마마를 욕보이게 하는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이러한 약점을 노린 듯 이미 온 나라가 잔치 분위기에 무르익어 있었고 공중파 티비의 로고 밑에는 자신의 결혼식의 디데이가 세겨져 있었다. 수업시간을 멍하니 지내는 찬열을 보다못한 종인은 찬열을 끌고 매점에 가기위해 교실을 나섰다. "힘내! 사나이가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인데. 너 이 새끼 군대도 안가잖아. 먼저 벌받는다고 생각해라.큭" "닥쳐... 듣기 싫으니까." 이제 유부남이 되면 같이 안놀아준다며 시시콜콜 농담을 주고 받던 찬열과 종인의 대화가 멈추었다. 빠른 걸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가던 인영이 찬열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좇같게..." 사과도 없이 쌩하니 지나가는 바람에 찬열의 짜증지수가 한층 올라버렸다.찬열은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는 아이의 어깨를 붙잡았고 그 아이를 돌려세웠다. "야. 넌 사과 안하냐?" "어... 그게... 미안...해요..." "뭐야. 이새끼. 찐따새끼잖아." "네,네...?" "너 한번만 더 나대. 기분도 좇같은데 더러운게 지랄이야." 찬열은 그 아이의 이마를 기분나쁘게 밀친 후에 종인과 함께 사라졌다. 백현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다가 한숨을 쉬고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자신의 반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책상 위엔 쓰레기가 가득했고 유성매직으로 쓰여진 각종 욕이 난무했다. 그 모습을 보고있던 백현을 예의 주시하는 무리가 다가왔다. "어이. 찐따. 니 자리가 이제 제 모습을 갖췄네? 좋겠다?" "..." "이게 사람말을 하면 듣기라도 해야지... 또 쳐맞을려고..." "그...미..미안." "크큭. 말더듬는거 봐. 쪼다새끼. 억울하면 너네 아부지한테 말해."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그래. 알고 있네. 알면 자리에 앉아." 무리들 중 가장 힘이 센 녀석이 백현의 어깨를 눌러서 자리에 앉혔다. 쓰레기가 가득한 곳에 앉은 백현의 교복은 오물이 묻어 더러워 졌고 주위의 여자 아이들은 냄새가 난다며 백현을 노려보았다. 백현은 왕실초등학교에서 부터 학교의 미움의 대상이었다. 왕실학교라지만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아버지들의 직업이 직업인지라 약육강식의 체계가 학교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힘센 놈은 살아남고 약한 놈은 죽는 것이었다. 백현의 아버지는 야망있는 국회의원이었고 백현은 늦둥이 막내아들이었다. 혼외자식인 백현은 어릴적부터 무시를 당해와서인지 소심한 성격이었다. 아이들은 그런 백현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반항하는 법을 몰랐던 어린 백현은 그렇게 나이를 들어가면서 더욱 영악해지는 아이들 틈에서 괴롭힘의 대상인 찐따로 자리 잡게 되었다. 본명인 변백현보다 찐따, 찌질이로 불리는 백현은 요즘 고민이 있었다. 몇일 전 아버지가 백현을 불렀다. 나이가 지긋하신 백현의 아버지는 다음 대선의 유력한 후보였고 그런 아버지가 백현은 어렵기만 했다. 아버지는 백현에게 왕세자비로 간택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다음주부터 당장 궁에 들어가야 하니 준비를 하라고 했다. 당황한 백현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왕세자비로 간택되었다는 말은 왕세자와 혼인을 한다는 말인데 자신은 어렸고 왕세자는... 자신과 같은 반이었다. 다음날 자신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도련님... 못난 어미가 해준 것도 없는데..." "울지 마요..." 백현의 어머니는 집안의 사용인이었고 백현의 아버지와의 억지스런 관계로 인해 생긴 것이 백현이었다. 백현의 호적상의 어머니인 사모님은 노발대발하셨고 어머니는 백현을 낳고도 사용인으로 고용되어 백현을 도련님으로 부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사모님이 그러시길 다음 주부터 궁에 들어가신 다면서요..." "네. 저도 어제 아버지한테 들었어요." "궁에 들어가면... 이제 평생 못보는 거에요." "제가 궁에 들어가서 대통령이 되시면 어머니는 제가 책임질게요. 걱정마세요." "아직... 아기같은데. 우리 도련님...그 모진 곳에 들어가면 힘드실거에요. 외로울거고." "할 수 있어요... 울지마요..." 백현은 눈물을 뚝뚝흘리는 어머니를 달래어 방에서 내보냈다. 아버지가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더욱 견고한 입지를 쌓아야 한다. 누나랑 형들은 백현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적당한 사람은 소심하고 순종적인 자신이었을 것이다. 백현은 한숨울 쉬곤 자신의 남편이 될 찬열을 떠올렸다.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학교에서 지내고 고등학교 올라와선 3년 내내 같은 반이지만 말 한마디 섞어 본적이 없다. 항상 아이들이 찬열의 옆에 득실거렸고 자신은 전교생의 미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불쾌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는게 다였다. "김실장님, 왕세자비 간택자는 누굽니까?" 오전 수업이 끝나고 자신을 모시러 온 김실장의 호위와 함께 찬열은 교육울 받기 위해 별궁으로 향했다. 아무 말없이 움직이는 호위 차량속에서 찬열은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아. 제가 잊었습니다. 여기..." 깜박 잊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서류가 하나 전해져왔다. 거기엔 찬열 자신과 함께 혼례를 치룰 왕세자비의 정보가 있었다. 찬열은 첫장을 넘겼고 거기엔 사진과 함께 나이, 학력, 가족관계 등이 적혀있었다. 변백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얼굴도 익숙한 듯 했지만 기억이 날듯말듯했다. "세자비후보께서 마침 세자저하와 같은 학교에 재학중이십니다." "같은 학교요?" "네. 같은 반이라고 하시던데 모르는 분이십니까?" 찬열은 김실장의 말을 듣고서야 변백현이라는 자가 누군지 기억이 났고 아침에 자신의 혼인 소식을 들었을 때 만큼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별궁으로 가시면 함께 교육을 받기 위해 도착해 계실겁니다. 변종우 국회위원의 막내 아드님이신데 대비마마께서 세자저하와 같은 반이라고 하셔서 다행스럽게 여기고 계십니다. 저하께서도 아예 모르는 분보다는..." "하...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 더 하네요." 찬열은 아까 자신과 부딪히고 사과를 하던 정수리가 생각났다. 학교에서 찐따같은 녀석이 자신의 부인이고 세자빈이라니. 웃음이 났다. 변종우 국회위원이라면 여당의 대표이며 최근 다음 대선의 유력한 당선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분명 어바마마와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변종우 국회위원은 입지를 공고히 하고자 했을 것이고 어바마마는 왕실의 존속에 관해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유력 대통령후보와의 결탁은 왕실의 미래를 보장하는 좋은 기회였다. 할마마마의 건강은 핑계일 뿐이었고 그저 자신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찬열은 삐뚤어 지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원치 않는 이 혼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향이 없었다. "세자저하. 별궁에 도착했습니다. 교육관이 들어오기 전에 세자비후보님과 다과시간이 있으니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찬열은 굳은 표정을 한채로 별궁으로 들어섰다. 항상 그렇듯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는 백현을 발견한 찬열은 맞은 편에 앉았고 조용한 공간엔 둘 뿐이었다. 백현은 아이들의 괴롭힘으로 인해 더러워진 몸을 씻고 별궁으로 향했다. 자신이 떠나는 것을 슬퍼하는 것은 유모인 어머니 뿐이었고 아버지와 형,누나들은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외롭게 백현은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백현은 별궁에 도착하여 상궁의 안내를 받아 다과실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이 소란스러워졌고 몇분 후 무표정의 찬열이 자신의 맞은 편에 앉았다. "찐따." "..." "고개 좀 들어보지?" 찬열은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감 없는 모습을 한 백현에게 일부러 차갑게 말을 걸었다. 어깨를 움찔하고 반응을 보였지만 고개는 어전히 들지 않았다.물론 찬열은 그의 얼굴을 보기위한 것이 아니었다. "뭐... 너나 나나 이용당한 건 매한가지잖아. 안그래? 좀 예쁘고 현명한 처자가 내 앞에 있었다면 관심가져줄 의향이 있었는데 찐따 니가 내 앞에 앉아있으니까 의욕이 안생긴다." "...죄..죄송해요." "니가 죄송할 건 없어. 지금부터 난 너한테 어떠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거야. 이 혼례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거야. 어차피 내가 왕위에 오른다면 너랑 이혼할 예정이니까. 너도 처신잘해." "네...? 그게 무슨..." "어른들이 정해준 이 혼례에 행복한 척 연기할 자신없다고. 그래서 넌 너대로 난 나대로 살다가 내가 힘이 생기면 이혼해줄게. 그때까지 영악하게 행동해서 나중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 면하라고 미리 알려주는 거야." "..." "학교에서 병신쪼다처럼 지내다가 왕세자비 되려면 교육 많이 받아야겠다. 힘내. 병신아." 찬열은 자신을 힐끔처다보던 백현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끝내고 돌아서서 별궁을 나섰다. 이 교육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어려서 부터 각종 예절교육을 받아온 찬열에게 무의미하기도 했고 저 병신새끼와 한자리에 있는 것이 짜증스럽기도 했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김실장을 무시하고 동궁으로 걸어간 찬열은 자신의 처소 문을 닫고 침대에 풀썩 누웠다. "쪽팔리게..." 앞으로 일주일에 평균 2편씩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월요일 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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