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X징어] 그 늦은 시간에 01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7/5/0/750b002ca66a35cf8b58bbaa46366ae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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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하릴없이 창밖만 쳐다보던 녀석이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내 팔을 샤프 뒷면으로 쿡쿡 친다.
이런 일이 한 두번인가. 미간을 찌푸린 다음 종대가 쿡쿡 찌르던 왼팔을 책상 밑으로 내려버린다.
종대는 당황한 듯 샤프로 찌르는 걸 멈추더니 조그맣게 흐응-하고서는 다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 녀석이 내 짝이라는 건,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다.
*
"안녕하세요. 000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고2, 벚꽃이 다 져버리고 파릇파릇한 새싹이 자라나고 있는 늦은 봄에 나는 인근 인문계고등학교로 전학왔다.
담임선생님은 간단한 조례를 마치고 자퇴해버린 학생의 빈자리에 앉게 지시했다.
분단을 가로질러 자리에 앉으려 의자를 꺼냈을 때는 이미 투박한 검정색 가방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 미안. 옆에 있던 짝은 자기의 가방인 듯 얼른 가방을 끌어내 자신 뒤의 바닥에 내던지듯 내려놨다.
괜찮아. 짧게 대답한 후에 나는 가방에서 교과서와 필통을 꺼내고 짝에게 시선조차 내주지 않은 채
바로 이어지는 수업에 집중했다.
하지만 옆의 짝은 교과서만 달랑 펴 놓고서는 따끔따끔거리는 시선으로 나를 무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자기 가방을 두던 유용한 자리를 뺏은 침탈자에 대한 묘한 시선이였는지,
새로 전학온 학생에 대한 어리고 어린 일시적인 관심이였는지는 모르겠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반의 붙임성 좋은 여자아이들이
밥을 같이 먹자며 나를 급식실로 이끌었다. 나야 고마운 마음으로 여자아이들을 따라가
예전부터 형편없게 맛이 없었다는 급식에 대한 평론을 들으며 밥을 먹었다.
필수코스인 듯 매점을 들린다는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먼저 가보겠다며 말한 뒤에 교실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교실은 공부하는 아이들 몇을 제외하고 한산했다.
자리에 돌아가려 눈을 돌리니 키가 큰 남자애 하나가 내 자리에 앉아있었다.
드르륵 문을 여는 소리때문인지 그 둘의 시선은 나를 향해있었고, 짝이 키가 큰 남자애를 툭툭 치자
미안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옆 벽에 몸을 기대 서있는다.
뭐가 어떻다고 저렇게까지 미안해한단말인가. 괜히 사람 무안하게.
나는 괜찮다고 말한다음에 다시 문을 닫아버리고 반을 나왔다.
정처없는 발걸음이였지만 복도에서 반 여자아이들을 만난 덕분에 운동장 좀 몇바퀴 돌다가
5교시 수업시간에 겨우겨우 맞춰 반에 들어왔다.
5교시 미분시간에 온갖 그래프와 연산식이 칠판을 둥둥 떠 다닌다.
문과인 반이라 그런지 수학을 포기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반은 점심먹은 후의 나른함에 취해 잠을 잤고
반의 반은 책상에 온갖 책을 쌓아 탑을 만든 후에 선생님 몰래 다른 과목을 자습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일수록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다짐하며 판서한 내용을 받아적고 있는데,
연습장 귀퉁이를 찢어 휘갈겨 쓴 쪽지가 책상을 넘어왔다.
'그렇게 가버리면 나하고 내 친구는 뭐가 되냐.'
무시할까.
아냐. 그러면 더 귀찮게 할지도.
'미안.'
점심시간에 계속 그 자리 니 친구 써도 돼. 라고 쓸까 하다가
그럼 내 공부는 언제할까라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쪽지도 아닌 종이쪼가리를 옆으로 살며시 넘겼다.
이제 더 이상은 안하겠지. 저 쪽지에 대답해주느라 방금 선생님이 풀어주신
수학연산을 몇 개 놓쳤다. 아, 젠장.
열심히 판서한 내용을 공책에 적어내려가며 손을 움직이는데
또 책상을 넘어온 쪽지가 보였다. 나중에 해도 괜찮겠지.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가득 울리자 선생님은 인사하려는 반장에게 손을 저으며 됬다고 하신 후에 반을 나가셨다.
쉬는시간마저 포기해가며 필서한 내용이 공책의 끝에 마무리 되자 나는 휴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노골적으로 쏟아지는 옆의 시선에 나는 앗차했다. 아, 쪽지.
"엄청 열심히 하네."
말은 보통 칭찬의 말이건만 꼬아서 하는 폼새는 불만이 가득하다.
나는 애써 무시하고서는 책상을 넘어온 쪽지를 왼손으로 집어 보았다.
'너 내 이름은 알아?'
"너 내 이름은 알아?"
거친 글씨체로 휘갈긴 짝의 글씨와는 달리
짝은 선한인상에 맑은 눈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난 니 이름 알아. 000."
어떻게? 라고 입 밖으로 나가려던 말을 겨우 막고 입을 굳게 닫는다.
아까 말했잖아, 이 멍청이가.
하지만 내가 놀라서 되물으려는 걸 눈치챘는지 혼자 웃더니 웃음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김종대."
"그래. 앞으로 잘 지내자."
살가운 말과 달리 괴리감이 느껴지는 무관심한 말투에 종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1-2
오래된 학교이면서 리모델링 한 번 안하는 학교인지라 문을 열 때에도
꽤나 큰 소리가 나는 낡은 문이 열리자 둘의 시선은
문을 연 사람에게로 집중되었다.
짝꿍이다.
뭐라고?
짝꿍이라고.
종대는 비키라며 종인의 팔을 툭툭친다. 종인을 아아 하더니 자리를 잽싸게 나와
종대의 옆으로 가 창틀가에 기댄다.
"아, 미안. 잠깐 자리에 앉았어."
종인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다. 왜 보통 여자애들은 이런거 싫어하지 않던가.
게다가 종대의 말을 들어보니 성격이 그리 좋지 않은 편 같다. 알아서 피해야지.
하지만 넉살좋은 종인의 말에도 그 아이는 표정은 이미 뭐라도 씹은 표정인데
괜찮다며 바로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이거 화 내는거지?
"니 짝꿍 왜 저러냐."
"몰라."
지루하기만 한 미분시간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칠판에 무식하게 적어놓기만 한
연산들을 일일히 베끼고 있는건지. 종대는 내 짝은 참 이상한 곳에 집중한다라고 생각한다.
턱을 괴고서 옆의 짝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결심이 섰는지 수학노트인지 낙서장인지 모를
노트의 한 귀퉁이를 죽 찢고 그 곳에 글씨를 날려쓴다.
오른손으로 휙하고 보내자 짝이 눈치채고 눈으로 힐끔본다.
그리고 가져가더니 조금 생각한 후에야 '미안'이라고 형식적이고 무성의한 답이 날라온다.
겨우 미안이라고 말하는게 생각할 시간을 들이면서 뜸을 들여야 되던건가.
내 짝은 사실 대인관계형성이나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나름 쓸 데없는 고민을 한 종대는 책상을 넘어온 종이쪽지에
이어서 쓴다.
'너 내 이름은 알아?'
또 책상을 넘어 간 쪽지건만 눈으로 힐끗 보더니 책상에 있는 판서내용을
곧이 곧대로 적어내려가기 바쁘다.
나름 열심히 하는 중이니 기다려볼까.
바로 옆의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운동장을 내려봤다.
4반 놈들 체육시간인가. 축구하는 찬열이가 보인다.
요새 편의점 알바한다고 피씨방약속을 내빼던 녀석이
자주 오던 여학생이 최근에 뜸해졌다며 미리 번호라도 따놓을걸 그랬다며
한탄해했었는데. 뭐 내가 알 바 있냐.
수업이 끝남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수업에 집중하는 애들이 열 명 가량밖에 안되니,
선생님은 반장이 인사하려는 걸 제지하고서 유유히 떠나가셨다.
짝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직도 칠판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 적기 바쁘다.
언제쯤 보려나 하고 아예 대놓고 짝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집중하느라 눈치도 못 채는 듯 이 쪽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언젠가 주겠지 싶어서 계속 턱을 괴고 바라보고 있었다.
겨우 필기를 정리했는지 조그만 입술을 내밀고서는 작게 후-하고 숨을 내쉰다.
그제서야 나름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는지 이 쪽을 살짝 본다.
"엄청 열심히 하네."
내 말에 아차싶어서인지 얼른 쪽지를 가져와 읽는다.
굳이 필담으로 대화 나눌 필요는 없는데.
"너 내 이름은 알아?"
종대는 짝이 쪽지를 다 읽기도 전에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는다.
종대가 마주 본 눈이 놀라 동그랗게 뜨여져 있었다.
"난 니 이름 알아, 000."
힉하고서 숨을 내뱉으며 큰 소리로 말하려다가 순간 입을 굳게 다물어버린다.
어떻게 알았냐며 물어볼 참이였는데 조례 때 자기가 소개한 걸 기억한거겠지.
바보같다.
"나는 김종대."
"그래. 앞으로 잘 지내자."
기계마냥 즉각적인 대답이였지만 무성의함과 건성인 대답에 진실성도 없어보였다.
종대는 미간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