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김명수빙의글/집착] Schmetterling 8(完)+마이크로 Ep | 인스티즈](http://img24.imageshack.us/img24/289/5aaceb2517e8e7a8e68fce0.jpg)
1) * 그는 늘 내게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브람스의, 자장가. 잘 자라, 내 아가, 하며 시작되는 그 자장가. 그리고는 노래가 끝이 난 후엔 항상 이불을 다시 한 번 정리해주고, 그 크고 따스한 손으로 머리칼을 한 번 넘겨준다. 무서운 꿈, 꾸지 말고 잘 자요, 하는 말과 뺨에 가벼운 키스도 잊지 않고. 문이 닫히고, 속으로 100을 셌다. 1, 2, 3, 4... 그리고, 100. 숨을 죽이고 이불을 살짝 걷었다. 살금살금, 창가로 다가가 창을 확인했다. 크진 않지만, 한 사람이 통과할 정도의 크기는 됐다. 자물쇠도 내가 풀고 걸 수 있고, 여차하면 의자 같은 걸로 깰 수 있을 것 같았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평상시에는 잘 찾지도 않던 신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그는 분명 이 창으론 내가 도망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크기도 크기지만, 집 자체가 높이가 높아 여기서 잘못 뛰어내리면 다리 하나쯤 부러지는 건 예삿일일 거라고 생각했겠지. 내가 여기서 뛰어내릴 정도로 무모하진 않을 거라고도. * 그리고, 나는 그 창을 기어코 깨버리고야 말았다. 그는 모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겠다는 듯이 내가 잠든 사이에 창이란 창은 모두 굳게 잠궈놓았다. 빌어먹을. 작게 중얼거리고 책상에서 의자를 조용히 끌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최대한 조용하고 빠르게 이 동네를 탈출하자. 그 나중의 일은 그 때가서 생각하자. 입술을 물고 의자를 들어올려 창을 깼다. 생각보다 큰 소리에 움찔했다가 냉큼 창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2층은, 생각보다 높았다. 늦봄을 걸쳐 이제 막 초여름을 맞이하기 시작한 새벽의 바람은 꽤나 스산했다. 찬 바람에 식은 땀이 났던 피부 위로 작게 소름이 돋아났다. 그러나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그가 아까의 파열음으로 잠에서 깨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찌되었든 조금이라도 빨리 일을 치르는 것이 중요했다. 재빨리 창으로 상체를 내밀고 다리도 끌어올렸다. 그러면서, 파편에 종아리께를 긁혔다. 피가 나기 시작하는 다리를 모두 빼내 창틀에 걸터앉았다. 발 아래가 아득하니 등허리부터 선득해졌다. 두 눈을 꼭 감고, 하나, 둘, 셋! 쿵, 이라기엔 뭐한 꿍, 에 가까운 소리가 낮게 울렸다. 오른쪽 발이 닿고, 그 다음엔 오른쪽 어깨와 팔이 땅에 닿았다. 고통에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서도 다리를 더듬어 확인했다. 다행히도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가 평소에도 잔디 관리를 꼼꼼히 할 정도로 세심한 성격이라는 사실이 감사해졌다. 그리고 나는, 달렸다. 방향이 어느 쪽이든, 주변에 무엇이 있든 전혀 개의치 않고 무조건 달렸다. 그러다 지치면 걷고, 다시 달리고. 그러다 고개를 숨이 턱 끝까지 차 고개를 들었을 때, 일출이 보였다. 해가 뜬다. 그에게 잡힌 이후 제대로 본 적 없는 해가 뜨고 있다. 바보 같지만, 이유 없이 눈물이 나왔다. 엉엉, 소리내며 울었다. "... 멍청해요."
내 등 뒤에서 들리는 지독하게 익숙한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뒤돌아 보니, 설마하던 그가 떠오르는 태양의 금빛 햇살을 받으며 서글픈 표정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는, 꽤 떨어진 곳에, 그의 차가 있었다. * "..." "이 집을 떠나고, 이 나라를 떠나면, 내 곁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
집으로 돌아가는, 아니, 끌려가는 차 안에서 그는 시종일관 서글픈 눈을 하곤 앞만 바라보고 운전하며 물었다. 나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정말? 설마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요? 여태까지 그렇게 지독하게 나를 겪어내고도?"
만에 하나 당신이 성공했다고 해도 날 벗어날 수 없다는 거, 누구보다도 당신이 더 잘 알잖아요.
그는 그렇게 덧붙였다. "... 당신은-,"
내가 입을 열자마자, 그가 내 말을 끊고 자신의 말을 이었다. "미친 것 같다고요? 안다니까요. 아주 잘 알아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내가 미쳤다고 해도 당신은 내 곁에 있어야만 하는 걸요."
저 표정은 도대체가 서글픈 건지 유쾌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돌아간 집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설마했던 그의 폭언이나 폭력도, 그 무엇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 무서운 일이었다. 아무 일도 없이 시간은 흘렀고, 그는 저녁은 먹어요, 라며 나를 반강제적으로 식탁에 앉혔다. 평소와 다름 없는 식사. 식기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들리며 짧은 식사가 끝났다.
"얼른 씻고 나와요. 다시 약 발라 줄게요."
으레하던 것처럼 그는 식사가 끝나자 내게 얼른 씻고 나오라고 말했고, 나는 그 말에 따랐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다시 도망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생각하며. 덜 마른 머리로 다시 돌아온 거실에는, 2층에서 씻고 내려온 건지 보송보송해진 그가 구급상자를 곁에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 여기 앉아봐요."
나는 소파에 앉았고,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종아리며 팔, 무릎 등에 꼼꼼히 약을 발라주었다. 치료가 끝나고, 그와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서로를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 왜, 나였어요?"
그 말에 그는 양손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무릎을 펴, 몸을 올리고, 입맞추었다. 그냥, 그냥 그게 다였다. 그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고, 사실 자체로의 입맞춤. 거부할 이유도 없었고, 그러할 마음도 없었다. 입술을 비집고 혀가 들어왔고, 엉켰다. 그리고 입술이 떨어졌다. 잠시 길 잃은 듯 주저하던 입술은 다시 목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귀 언저리에내뱉긴 뜨거운 숨결에 섞인 거친 목소리가 와닿았다. 조곤조곤. 마치 연극 속의 독백과 같은, 끊김없이 어색함 없이 매끄럽게 나열되던 그 말. 나, 실은 얼마나 많이 기도 올렸는지 몰라요. 당신이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 선악과라 하여도, 부쉬버릴 죄악이라 하여도, 달게 받을 테니, 결코 후회하지 않고 끝까지 내가 끌어안고 갈 터이니 부디 당신을 내게 내려만 달라고. 그런데, 그런데 정말 내 눈 앞에 나타났어요, 당신이. 그렇게 갖고 싶었던 당신이 나타났는데, 내가 어떻게 손에 안 넣고 가만히 배겨.
해답이 나왔다. 그는, 사랑이었다. 어찌되었든 사랑. 저런 섬짓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했다. 그는, 분명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끔찍하게 가슴 아팠다. * 푸르스름한 새벽이 걷히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의 책상 서랍을 당겼다. 달그락거리며 서랍을 뒤졌지만 내가 찾는 것은 나오지 않았다. 다른 서랍, 다른 서랍, 그렇게 가장 아래쪽의 서랍. 내가 찾던 것 아래에 접혀 있는 흰 종이. 찾던 것을 꺼내 내 옆에 두고, 조심스레 종이를 꺼내 펼쳐보았다. 날개가 찢긴 마른 흰 나비. 그것을 다시 곱게 접어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생각했다. 증오와 연민 사이의 그 애매모호한 감정. 그리고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그는 만족하고 있을까. 애착으로 충만한 그는, 행복해하고 있을까. 고이 잠들어 있을 그를 예상하며 뒤돌았을 때, 그는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하려는 거예요..."
겁에 질린 표정. 미세하게 떨리는 어깨. 나는 조금 처량하게 웃으며 총구를 그에게 겨눴다. "그러지... 마요..." "..."
불안한 얼굴에 마주한 자조적인 웃음. 총구는 방향을 바꿔 이제 내 오른쪽 관자놀이 위에 있다. 이런 내가 애처로웠다. "나, 나는, 당신을 해칠 생각이 없어요. 당신이 잘못한 게 뭐가 있겠어요." "..." "오, 가여운 당신. 당신은 나를 당신의 잃어버린 조각이라 생각했겠지만, 정말 미안하게도 난 잘못된 조각이었어요."
맞지 않는 퍼즐 조각. "... 미안해요, 옳지 못한 조각이어서."
눈을 감았다. 그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인피니트/김명수빙의글/집착] Schmetterling 8(完)+마이크로 Ep | 인스티즈](http://img6.imageshack.us/img6/4446/f564946c2ddaa3bcf30ac8f.jpg)
(1)편의 BGM을 끄시고 2)의 BGM을 재생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2) * 그 날 아침, 남자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한다. 새벽 미사가 모두 끝나 한산한 성당으로, 새 아침의 하이얀 햇살을 받으며 꽃다발을 손에 든 남자는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검은 정장을 격식에 맞게 차려입은 그는 구두까지 검은색으로 골라 신었다. 뒤에서 네 번째 의자에 앉았다. 두 손으로 모아쥐고, 눈을 곱게 감은 얼굴을 그 손 가까이로 옮겼다. 남자답지만, 거친 일을 해본 적 없는 손이었다. 이른 아침의 깨끗한 볕이 그의 몸 위로 드리웠고, 그는 아주 작은 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아주 간절한 듯, 두 눈은 굳게 감겨있었고, 맞잡은 두 손도 애처로워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혼자만의 성당에서 애절한 기도를 올리고 난 그는 옆에 두었던 노란 프리지어와 안개꽃의 꽃다발을 두고 유유히 성당을 빠져나갔다. * 예. 엄마. 잘 지내시죠? 저도 건강히 잘 지내요. 응?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그냥, 하고 말꼬리를 흐리며 웃었다. "내가 다들 많이 사랑한다고."
몇 마디가 더 오고가고, 전화는 끝이 났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사왔던 노란 장미 꽃다발을 왼손에 들고 방문을 열었다. 다정하게 웃고, 꽃다발을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미리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것을 오른손으로 들고 한 번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여성이 이민 3세 남성에게 감금 당했다는 소식입니다."
단아한 여성 아나운서가 소식을 말했고, 화면은 곧 특파원으로 넘어갔다. "오늘 아침, 함부르크의 작은 마을에서 총성이 두 번 들렸습니다. 새벽의 총성은 주민들이 듣지 못했지만, 오전 9시 반 경의 총성을 들은 주민들은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한 구의 시신은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20대 여성으로, 또 한 구의 시신으로 발견된 이민 3세 남성 크리스티안 김 씨에 의해 감금되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크리스티안 김 씨는 유망한 사진작가로, 여성이 자살하자, 그녀의 뒤를 따라 자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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