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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의자에 쪼그려 앉아 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내가 중얼거리자, 거실에서 카메라를 만지고 있던 그가 말꼬리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
내가 반색을 하고 묻자 그는 빙그레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누굴 위해 만들었는데요.
내 뒤에서 흐믓하게 웃으며 물어오는 그에게 한껏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게 말한 그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곧 뭔가를 가지고 나왔다. 피크닉 바구니였다. 이 집에 저런 것도 있었구나. 새삼 없는 게 없는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바구니에서 커다란, 아주 커다란 스카프를 한 장 꺼냈다. 지중해의 해안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파란 프린팅.
그가 바구니에서 꺼내든 것은 내가 좋아하는 과일들이었다. 아마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것을 가져온 것이겠지. 그는 빨간색의 낡은 라디오도 꺼내와, 흰 색 의자위에 올려 놓았다.
스카프 위로 벌렁 누웠다. 라디오에선 브릿팝이 나오고 있고, 달달하니 맛있는 과일과 레모네이드 같은 맥주 덕에 적당히 들떠 기분이 좋았다.
내가 눈을 감고 있자 졸린 건 줄 알았던 건지 그는 내게 물었다. 졸립다기 보단 나른했다. 햇살도 나른했고, 그의 목소리도 나른했다.
그러면서 내 위로 무언가를 덮어주었다. 파랑과 하양 줄무늬의 비치타올. 어린 시절 그는, 해변가에서 놀고 나오면 이걸로 몸을 덮고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어린 김명수.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을까? 여느 애들처럼 떼쓰고 칭얼거리며 자랐을까? 그의 학창시절은 어땠을까?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 때의 그는 전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나는 비치타올을 끌어올리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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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실눈을 하고 실내의 벽걸이 시계를 보고 답했다.
내가 머뭇거리다 그를 부르자 그는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웃으며 답했다.
그는 내 질문에 책을 옆으로 내려놓고 흥미롭다는 듯 바라봤다.
이상했다. 그 말에 당장 수긍이 갔다. 나는, 안 궁금해요, 명수 씨? 내가 그렇게 묻자 그는 내 머리칼을 다정히 넘겨주며 웃었다. 아니요. 난 궁금하지 않아요. 나는 그의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누워 있었고, 그는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고, 그의 깊은 눈이 점차 가까이 다가오더니 위에서 내 입술을 꾸욱 눌렀다. 그것이, 우리의 첫 신체적 접촉이었다. 키스, 라기엔 부족했다. 가벼운 입맞춤. 술기운인지, 잠결인지, 아니면 날씨에 취한 건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는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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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의 햇살이 두꺼운 아이보리색 커튼을 통과하여 거실 위로 노랗게 흩뿌려졌다. 그는 청소를 하다 말고 소파 위에 무릎을 세워 앉고 책을 읽고 있는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책을 세워 표지를 보여 주었다. 그는 알겠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묵묵히 청소에 매진하였다.
근데, 우리 아직 점심도 안 먹은 거 알아요? 우리는 오손도손 대화를 나눴다. 그 날 이후로도 바깥 외출은 금지되었지만, 가끔씩 그와 함께라면 뒷뜰 출입은 허락되었다.
그는 샌드위치를 넘기고 내게 물었다. 구스타프 클림트라면 키스와, 유디트의 그.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나를 바라보던 그는 내 입가의 빵가루를 엄지손가락으로 닦아 주었다.
나는 그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말에 동조했다. 누군가의 뮤즈로서, 후대에 길이 남겨져 영원을 선물 받는다니. 어쩌면 어자로서 최고의 행복일지도 모른다.
나를 보며 씩 웃는 그에게 나도 웃어보이고 욕실로 들어가 얼른 양치를 하고 나왔다. 그도 내 옆에서 양치를 했고, 나는 소파에 길게 누워 설거지 하려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어놓은 뒷뜰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산들바람에 잠이 솔솔 쏟아졌다. 나는 비치타올을 끌어올려 덮고 그의 모습을 눈에 담다가 잠이 들었다. |
안녕하세요. 밤비입니다.
왜 글이 똥글망글이냐고 물으시면 이게 다 한 템포 쉬는 복선... 이예요...☞☜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은근슬쩍 복선 조금씩 깔아놨습니다.
저는 소나기의 보라색 도라지 꽃이 좋으니까여!!!!!!!
는 다행히 이번 편 쓸 때 지병이 도져서 다행이였어요ㅋㅋ 다른 화 쓸 때 도졌으면 저 쥬금 ○)-
그리고 명수의 집은 전체적으로 파라다이스 MV의 그 집을 상상하시면 적절할 것 같아요. 대신 햇빛 많이 들어오는 집으로!
은근 파라다이스랑 잘 어울리는 것 같은 건 저번 화에서 독자분과 댓글 대화를 나누다 발견한 사실입니다ㅋㅋ
아무튼 장마가 시작되었다는데 건강 유의하시고 Schmetterling는 다음 주에 또 봬요!!
+) Schmetterling은 '슈메탈링'이라고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