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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꿔도 무슨 이런 개같은 꿈을 꾸지. 아침햇살의 기척에 서서히 눈을 뜬 나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꾼 꿈 속에선 김석진이 나왔다.좋은 것들만 나와도 모자랄 판에, 김석진이라니. 요며칠 너무 예민해져서 그런 건가보다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김석진 앞에서 취중진담이라니. 꿈이었어서 다행이지, 현실이었어봐. 벌써 바닥에 머리 백번은 더 박았을 법한 일이다. 나는 몸서리를 치며 부엌에 가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 이제 일어났냐? "



물을 마시던 손이 멈췄다. 등 뒤에서 들린 낯선 목소리때문이었다. 뭐지, 여기 분명 우리집인데….



" 아오, 내가 너때문에 어제 팔 빠질 뻔했다 진짜. "



아니, 아니다. 이건 익숙한 목소리다. 그것도 존나게 익숙한…



" …김태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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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휴, 빨리 씻기나 해. 몰골 진심. "


" 네가 왜 여기있어? "


" 뭐야…. 기억 안나냐? "



본가에 있어야 할 김태형이 왜 우리집에 있느냔 말이다. 화장실에서 막 씻고 나온 건지 내 수건으로 젖은 머리칼을 털고 있던 김태형이 어이없단 눈길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더욱 어이없었다. 쟤가 대체 왜 여기있어. 나는 여전히 상황파악을 못하고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런 나를 눈치챈 김태형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혀를 찼다.



" 그럴 줄 알았다. 그러게 왜 나잇값 못하고 죽어라 마셨어. 너 기억 안나지? "


" 기다려봐. 생각중이니깐. "


" 아휴~ 니가 아직도 새내긴 줄 알아? 괜히 학교 선배들 괴롭혀서는 나까지 부르게 하고.. "


" 뭐? 학교 선배? 누구. "


" 잘생긴 형아던데. "



순간 손에 힘이 빠져 들고 있던 컵을 놓칠 뻔했다. 내가 잘못들었나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태형이 말하는 게 김석진 같다는 더러운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 착각이길 바란다, 제발. 그렇게 기원하는데, 김태형이 아! 하고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 이름이 김석... 뭐라던데. 너랑 같은 과 선배라고. "


"…시발. "




그제야 꿈인 줄 알았던 기억들이 형형하게 머릿속에서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아마 동기들이 술에 꼴아 머리를 박은 나를 보고 김석진에게 연락했거니 싶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가 김석진의 이마를 쳤고... 김석진 앞에서 이런 저런 말을 했고.... 또.... 눈물을 달고 무릎에 코를 박기까지. 여러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자, 순간 죽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아, 왜. 식탁 위로 쓰러지듯 앉아 책상 위로 머리를 엎었다. 진짜 나한테 왜그래.




" 왜저래. 갑자기 죽고 싶어졌어? "


" 어.... 존나. "


" 끔찍한 사실 하나 더 알려줄까? "


"… "


" 지금 오후 3시야. "




그 말을 들은 내가 벌떡 고개를 일으켰다. 어쩐지, 너무 햇빛이 강렬하다 했다. 야, 너 일부러 안깨웠지? 보다못한 내가 김태형에게 소리지르자, 김태형이 혓바닥을 얄밉게 내밀고는 옷방으로 줄행랑을 쳤다. 진짜 저새끼는. 한참동안 머리를 굴리다, 결국 오늘은 자체휴강을 때리기로 결심했다. 학점을 생각하면 욕이 절로 나왔지만, 숙취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보니,어쩌면 김태형이 깨웠어도 못 일어났을 지도 몰랐다.












[김석진/민윤기] 무로맨틱 로맨스 08 | 인스티즈



무로맨틱 로맨스

08








야, 설명해봐. 내 말에 밥을 우걱 우걱 씹어먹던 김태형이 밥상머리에 내내 박혀있던 눈을 내게로 돌렸다. 전날 밤 내가 술에 꼴아 기절한 이후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보라는 뜻이었다. 김태형은 특유의 얄미운 표정으로 눈썹을 까딱거리며 맨입으로? 하고 나를 떠봤다. 그치, 쟨 저래야 정상이지.


내 친동생, 김태형. 풍기는 분위기나 말투, 식성 이런 걸 빼면 남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나와는 다른 애였다. 언제나 내 할 일이 1순위였던지라 대부분 집이나 학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나와는 달리, 김태형은 바깥으로 싸돌기를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공부에 관심이 워낙 없어서 대학은 갈 수나 있을까 온가족이 걱정했지만,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간신히 대학을 문 닫고 들어갔다.


그리고, 여자 갈아치우기를 밥먹듯이 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라면 차이였다.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매번 다른 여자애들을 꼬드겨 집으로 데려오는 게 취미였다. 개중엔 썸도 있었고, 여자친구도 있었고, 그냥 친구도 있었고, 하여튼 가지각색이었다. 개버릇 남 못준다고, 고딩때도 그 습성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태형이 수험생활을 할 때부터 얼굴을 자주 못봤긴 했지만, 계속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 나 재워주라. "


" 그래, 오늘만. "


" 아니, 이번주까지만. "


" 뭐? 너 학교는 어쩌고. "


" 나 휴학했어. 곧 군대가는뎅. "



예상 외의 소식은 나를 놀라게 했다. 대충 올해 갈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빠를 줄은 몰랐다. 결국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언제 가냐고 묻는 말에 김태형이 비실비실 웃으며 하반기에 간다고 답했다. 표정만 보면 무슨 당장 다음주에 입대하는 줄 알겠는데, 멀어도 한참 멀었다. 결국 이렇게 김태형에게 당해버렸다. 뭐가 좋은지, 김태형은 또 웃으며 이번에는 다소 조심스러운 눈빛을 내게 날렸다. 또, 왜. 오래 지켜봐온 결과로 김태형이 내게 부탁할 거리가 또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아미도 자고 가면 안돼? "



아미? 그 낯설지 않은 이름이 누군가 곰곰히 생각했더니, 1년 전에 수능을 끝내고 이 동네로 놀러온 김태형이 친구랍시고 내 집으로 데려와 하룻밤을 묵어간 애였다. 물론, 그냥 친구가 아니라 김태형의 '여자친구' 였다.



" 니네 아직도 안 헤어졌어?? "

" 아직도 안헤어졌냐니…. 누나 말투 진심 뭐냐? "

" …1년 동안 사귀었다고? 네가? 말도 안돼. "



더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다. 틈만 나면 여자친구가 매일 바뀌던 녀석이 아니었던가. 어디가서 머리를 얻어맞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김태형은 말도 안되긴, 뭐가 안돼. 아미를 향한 나의 사랑은 일편단심이야. 하고 의기양양하게 말하기까지 했다. 아, 그러셔……. 흘깃 꼬라봐주며 식탁에서 일어섰다. 김태형은 그런 내 표정을 보다가 재수없는 얼굴로 또 쪼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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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긴~ 솔로무새들은 이런 감정 모르겠지. "



저 새끼 또 발동 걸렸네. 보나마나 내가 연애를 한 번도 안한 걸 가지고 죽어라 놀려먹을 게 뻔했다. 김태형은 내 주위에 존재하는 연애 고나리단들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많이 깐족거렸다. 중고딩때도 퍽하면 불리할 때마다 꺼내는 레파토리였다. 누나는 모르겠지만 말야~ 사랑을 하면 원래 성장하는 법이거든~ 연애를 좀 하다보니깐 이제 좀 한 사람에게 정착할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들더라구~ 그래서 우리 아미랑 이러쿵 저러쿵 어쩌구 저쩌구…. 김태형은 어느새 젓가락질도 멈추고 쫑알쫑알 지 자랑을 늘어놓았다.



" 뭐, 이렇게 말해도 너는 모르겠지만 말야. "

" ……. "

" 아 어떡해~ 우리 누나 개같은 성격 누가 받아주지. "



마흔 살 될 때까지 혼자 이집에 눌러사는 거 아니야? 저게 진짜. 김태형은 사람을 빡치게 하는 데 도가 튼 녀석이었다. 왜 저런애를 다들 만나주는 거야?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갔다.



"야, 나도 있거든?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꺼... "



순간 말을 멈췄다. 아무래도 또 말실수를 해버린 것 같았다. 분명 또 꼬치꼬치 캐물을텐데. 저게 사람을 좀 기분나쁘게 했어야지, 입만 다물게 한다는 게 홧김에…. 말을 멈추기가 무섭게 김태형의 눈빛이 빠르게 변했다.



" 있어? 뭐가 있는데? 설마 남..친? "



은 아니겠지~ 그러면서 김태형은 혼자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게 얄밉지 않았다면 정말 거짓말이었다. 왜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 말에 김태형이 몰라서 묻냐?! 라며 또 내 신경을 긁었다. 황당한 내가 있어. 난 있으면 안돼? 하고 되받아치니 김태형의 눈이 다시 눈에 띄게 커졌다. 누나가 남친이 있다고? 다시 묻는 김태형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더니 이번엔 진짜? 진짜 살아는 있어? 하고 물어오길래 설거지통에 담궈져 있는 칼을 집어던질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 지랄, 속일 걸 속여야지. "

"… "

" 자, 생각해봐. 너가 남자친구가 있었다면 어제와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 아냐? "



그래. 들어나보자. 어제같은 상황이 대체 뭔데. 김태형이 얘기에 집중하는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분명 밤에 너한테 너네 집에서 하룻밤만 자고간다고 문자를 했고, 네가 알겠다고 답을 했어. 그 다음 도착해서 전화를 하는데, 갑자기 웬 남자가 받잖아. 근데 지금까지 누나한테 꼬였던 이상한 남자들을 몇 번 봐왔으니깐, 느낌이 쎄해서 연기 좀 했지.





- 나 여주 남자친군데, 너 누구야.

[ … ]

- 말 안해? 어?! 누구냐니깐.

[ 저기요. ]

- 뭐.

[ 핸드폰에 남동생이라고 찍혀있는데. ]





" 너 바보냐? "

" 아니, 어느 세상에 동생을 진짜 동생이라고 적어놓는 누나가 어딨어! 나는 당연히 이름 적혀있을 줄 알았는데. "

"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

" 아, 뭐 그다음엔 그러더라. "





[ 김여주네 과 선배 김석진이라고 하는데요, 술 취해서 바닥에 누워있거든요. ]

- 네? 누나가요?

[ 네. 그래서 좀 데려갔으면 해서요. ]





" 그래서 내가 거기까지 가가지고 어? 너 들쳐업고 어? 계단도 올라가고! 너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

" 그래서. "

" 뭐? "

" 끝이야? "




내 말에 김태형의 표정이 금세 얼빠진 얼굴로 변했다. 아, 아니. 내가 그 생고생하면서 누나 업고 집에 올라갔다니깐? 김태형이 어제 자신의 고생에 대해 열변을 토했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식탁 위를 치웠다. 다행히 별 거 없었다. 아니 생각했던 것보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와중에 김석진이 내 집 위치를 알면서도 직접 끌고 데려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내 웃음이 나왔다. 참 일관성있는 사람이다.




" 아무튼 뭐... 누나한테 남친이 있었으면 그 잘생긴 형이 아니라 남자친구가 옆에 꼭 붙어있어야 했겠지. 내가 아니라 남자친구가 집까지 들쳐 업고 와야했겠지. 안그러냐? "

"… "

" 그렇다고 또 그 잘생긴 형아가 남친이라기엔... 그런 바이브가 너~무 안느껴지고. "

" 아, 알겠어. "




니 맘대로 생각해. 결국 내가 김태형과의 말씨름을 포기하고 고무장갑을 껴 설거지를 시작했다. 등 뒤에서 김태형의 비웃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누나 너도 연애가 하고 싶긴 하구낭? 그런 깜찍한 구라를 다치고. 김태형의 말이 마냥 틀린 건 아니였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전부 거짓말투성이인 사이였으니깐. 매를 번 내가 잘못이지, 라고 생각하며 자책했다.




" 아. 이왕 이렇게 된 거 그 선배라는 사람 물어봐. 사람 괜찮아보여. 누나 길바닥에 아예 버리지도 않고, 동생한테 데리러 오라고 하기까지 하는 그 정직함. 그건 좀 내가 힘든 일이긴 했지만. "

"… "

" 아! 택시비도 그 형아가 내줬어. 대박이지. "

"… "

" 그리고, 나 그 형 맘에 들어. 잘생겼잖아. "

" 그럼 니가 사귀던가. "




김태형의 말을 듣곤 한 귀로 흘리며 설거지를 끝마치고 물기를 털어냈다. 드는 생각이라곤 택시비를 대신 내줬다는 말이 못내 거슬려, 돌려줘야겠다는 것 뿐이였다. 그러기도 전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는 있을까 싶었다. 벌써부터 김석진의 얼굴을 마주치기가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다 지껄이고, 어떻게 봐…. 자동적으로 내가 했던 말들이 떠오르는데, 그럴 때마다 시야가 저절로 아득해져오는 기분이다.




" 뭐래, 난 아미밖에 없거든. 아 벌써 보고 싶다~ "




김태형은 그러면서 핸드폰으로 아미에게 문자를 보내는 모양인지 엄지손가락을 빠르게 놀리며 킥킥 웃었다. 아주 좋아죽겠다는 표정이다. 생전처음보는 김태형의 표정에 오한이 들었다.




" 걔는 그래서 언제 오는데.또 둘이 놀러가냐? "

" 헐. 뭐야. 누나 허락해주는 거야? 아 역시 누나 짱이야, 진짜~ "

" ...지랄. "

" 내일 온대! 우리 국내 여행 다니기로 했거든. 숙박비 줄일겸 이번에는 누나집 당첨! "




대신 너 애정행각 절대 금지야. 내 말에 김태형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암요! 암요! 당연하죠~! 누나집에선 누나의 말이 법이죠!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부를 떨었다. 참, 이럴때만 누나고, 이럴때만 칭찬일색이다.




그때,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가 들려오고 단순히 김태형 거라고 생각했던 핸드폰 벨소리의 주인이 나라는 걸 알자 바로 화면을 확인했다. 그러나 모르는 번호란 걸 안 내가 이내 떨떠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다시 내려놨다. 왜 안받아? 교수야? 어느새 과자를 까서 하나 집어먹으며 말하는 김태형의 말에 문득 섬짓해지는 거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교수 번호가 바뀌었나…. 혹시 몰라 다시 화면을 들어가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는데, 그 순간 같은 번호로 문자가 왔다.





- 나 민윤긴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었기에 문자를 받고 좀 놀랐다. 그리고 놀랄 틈도 아주 잠시였다. 민윤기가 나한테 전화할 일이 어딨겠어, 알바 때문이겠지. 그제야 오늘 나에게 알바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은땀이 삐질 흘러나오려는 것과 동시에 빠르게 눈동자가 상단바로 향했다. 현재 시각 5시 35분. 명백한 지각이었다.




" 어, 어, 민윤기. 저... 내가 지금. "


[ 오늘도 아파? ]


" 어? 아… 아니 아픈 건 아닌데. "




이번엔 진짜 짤려도 할 말 없다, 하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민윤기의 목소리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하나도 날카롭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러울 정도라고 해야하나. 민윤기는 엊그제 알바를 빠진 것 때문에 내가 아파서 못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딘가 걱정어린 말투에 조금 죄책감까지 들 정도였다. 음, 그게 있잖아. 내가 지금 술병이 나서....내 말에 민윤기가 뭐? 하고 조금은 격정된 목소리로 되물었다. 솔직히 민윤기라도 이것만큼은 못 넘어가겠지. 체념하는데, 갑자기 전화기 너머로 민윤기의 바람빠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웃는 거야? "


[ 어. 웃는 거야. 너 진짜 웃겨서. ]


" 야, 미안. 좀... 빡쳤지? "


[ 어. 빡치지. 누구는 무슨 일 있나 엄청 걱정하고 있었는데, 누구는 술병나서 여태 누워있었을 거 생각하니깐. ]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내가 지금 갈게. 하고 대답했다. 오히려 민윤기는 어? 하고 내 말에 적잖이 당황한듯 했다. 지금 바로 가겠다고. 민윤기는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안와도 되는데. 라며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는 듯 대답했다. 누가보면 민윤기가 사장인 줄 알 것 같다. 사람도 많을텐데 쟨 뭔 생각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는 건지.





" 너 나만 그렇게 봐주지마. 내가 다른 애들이랑 다르기라도 해? 똑같이 화내도 나 다 받아낼 각오 되어있어. "





민윤기는 잠시 수화기 너머에서 말을 멈추었다. 스피커를 설정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김태형이 그런 나를 뚫어져라 보며 어디가? 하고 입모양으로 물었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외투를 팔에 끼우고 민윤기가 전화를 끊기만을 기다리는데, 웬 한숨소리가 스피커폰을 통해 방 안에 가득 울렸다. 이윽고 민윤기가 입을 열었다.





[ 달라. ]


" … "


[ 너는 다르다고, 여주야. ]


" … "


[ 그냥 니가 좀 나한테 특별해. ]





천천히 와, 이따 보자. 그 담백한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고, 일순 내 사고회로도 끊겨버렸다. 멍하니 그 자리에서 방금 들었던 말을 곱씹는데 별안간 짝 짝 짝, 하고 김태형의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와, 누나는 진짜 클라스가 다르구나? 비꼬는 건지 감탄하는 건지 모르는 말투도 함께. 순식간에 얼굴에 피가 몰렸다. 혼자 들었다 해도 도저히 못견뎠을 것 같은 말을 하필 김태형까지. 하지만 이럴 여유가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았던 나는 머리를 쓸어넘기고 대충 하나로 묶어 빠르게 폰을 챙겨 현관문을 나섰다.



" 나 알바 갔다 온다. "


[김석진/민윤기] 무로맨틱 로맨스 08 | 인스티즈

" 알았어~ 여주 조심히 갔다와야해. 우리 여주는 특.별.하니깐~! "



김태형의 말을 가볍게 씹어주며,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금세 시원한 바람이 뺨과 몸을 강타함과 함께 정신이 말똥말똥해져왔다.













무로맨틱 로맨스













" 먹어. "

" 이게 뭐야? "

" 뭐긴. 숙취해소제잖아. "


내 인생에서 누군가가 특별해지는 기분은 대체 어떤 걸까. 이따금씩 이렇게 잘해주는 민윤기를 보면 그런 의문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내게 숙취해소제를 쥐어주고 카운터 밖만 쳐다보는 민윤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내리깔곤, 뚜껑을 까서 마셨다.


" 다음부턴 적당히 마셔. "

" 응. 진짜 미안. "

" 누구랑 마셨냐, 친구? "

" 어... 뭐. "


이 상황이 어색한 건 그저 나 하나뿐일까. 민윤기는 가만 보면 참 뻔뻔했다. 그런 참기 힘든 낯간지러운 말을 잘도 해놓고선, 오히려 밑질 거 없다는 태도로 나를 대했다. 확실히 미안한 거 맞아? 민윤기의 의심가득한 말에 내가 고개를 여러번 끄덕였다. 당연히 미안하지. 두번이나 이렇게 나를 봐줬는데. 내 말에 민윤기는 미안하면 나중에 나랑 밥 한끼 먹자, 라고 대놓고 데이트 따위를 신청했다. 황당한 얼굴로 민윤기를 바라보는데, 민윤기는 아랑곳 않다가, 아. 술이 더 좋겠다. 하고 말을 정정하기까지.



" 너 내가 남자친구 있다는 말 까먹은 건 아니지? "

" 뭐, 너만 괜찮으면 날 세컨으로 둬도 상관 없어. "



진짜 뭐라는 거야....? 어이없어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쟨 지금 자기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긴 하는 걸까? 이젠 제법 이러는 민윤기에게 익숙해지기까지 하려고 한다. 내가 말이 없자, 민윤기가 또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농담이고,



" 너 미안하다며, 미안한 값은 해야지. 나 다른 뜻 없었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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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네가 나한테 특별하다는 얘기 때문에 신경 쓰여서 그래? 그런 거면, "

" 알았어. 먹어! 먹자고. "



그 얘기라면 다시 듣고 싶지 않아, 결국 먼저 백기를 들었다.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 건지 민윤기가 입꼬리를 끌어올려 씨익 웃었다. 얘가 이렇게 자주 웃는 애였던가. 민윤기의 웃음이 오늘따라 더없이 의뭉스럽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얘를 두고 벽을 치는 것은 그저 달걀로 바위를 치는 일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취해소제가 효과가 있다는 것은 다 상술일지도 모른다. 결국 화장실로 가서 한 번 게워내버렸다. 그치만 전혀 시원해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차라리 학교 수업을 갔던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숙취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알바는 역시 무모한 짓이였나보다. 왜 하필 어제 그렇게 달렸을까, 그냥 대충 대답하고 떼울 걸. 지나간 날이 몹시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해서 또 언제 걸어가지. 집 가는 길이 천근만근했다.



" 너 걸어갈 수 있겠어? "

" 응, 아마도. "

" 숙취는 이제 좀 괜찮아? "

" 어... 괜찮은 것 같아. "

" 아니다. 너 그냥 차타고 가자. 빨리 집까지 데려다줄게. "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런 민윤기의 제안이 내심 달가워졌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니 차 타다 토하면 어떡해, 그냥 찬바람 쐐면서 걸어갈게. 그게 더 나을 것 같아. 내 말에 민윤기가 무언가 맘에 안드는 표정으로 한숨을 지었다. 그냥 가자면 가, 혹시 오늘도 남자친구가 데리러 와서 그래? 나는 민윤기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올렸다.



물론 김석진과는 어젯밤 이후로 오간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으니 당연히 안 올 것이다. 그리고…어제의 취중진담을 생각하면, 이젠 나를 향한 혐오도가 최대치를 찍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데려오라고 해도, 꺼지라고 욕을 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김석진과 부딪힐 일이 있을텐데, 불쑥 눈앞이 캄캄해져오는 기분이었다. 어쩐지 속이 다시 끓어오르는 것 같다.



" 알겠지? "

" 응, 알겠어... "

" 그래. "

" 나, 먼저 나가있을게. "

" 응. 문 열어둘테니까 안에 타고 있어."



마무리를 하는 민윤기를 뒤로하고, 먼저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 공기를 맡자마자, 물 속에서 방금 나온 돌고래마냥 숨이 탁 트이는 자유를 느꼈다. 와,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 "

"… "

" 김여주, 내가 먼저 타고 있으라... "



발이 땅에 묶인 것 마냥 떨어지질 않았다. 저 인간이 왜 여깄어? 아니, 저 인간이 대체 왜 여기…. 말문이 막혀 끔뻑끔뻑 눈을 뜨고 바라보는데, 그 인간, 아니 김석진은 아무런 말과 표정 없이 주머니에 손을 꼽은 상태로 내 시선을 받아낸 채 서있었다. 그렇게 잠시 시선이 얽히는데, 카페문을 열고 나온 민윤기로 인해 정적은 깨졌다. 민윤기 역시 문 앞에 서있는 김석진을 보고 놀란듯 멈춰섰다.



김석진의 등장은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다. 게다가 민윤기의 차를 얻어탄다고 하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아직 어젯밤 상황 이후로 김석진을 다시 마주칠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김석진을 만나자, 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김석진이 성큼성큼 내 앞으로 걸어왔다.




" 속은, 괜찮아? "


" 네? "


" 다음부턴 그렇게 마시고 일 할 생각하지마. "


" 네? "


" 걱정했잖아. "




그리고,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 김석진이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쓸어넘긴다. 아주 다정한 연인처럼. 나는 넋을 놓고 김석진이 하는 짓을 바라봤다. 갑자기 왜이래? 밥을 잘못 먹었나?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표정이 자연스레 썩어들어갔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김석진의 손짓이 세 번 정도 반복되었을 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인간, 지금 연기하는 거다. 민윤기 앞에서 보란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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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인사 드려서 죄송해요. 여주 남자친구입니다. "


" 저, 저요? "


" 네. 여주 늘 신경써주셔서 감사해요. "


" 아, 저는 뭐.... "


" 여주가 잘 챙겨준다고 그러던데요. 집에 데려다주려고도 한다고. "




김석진이 금세 민윤기에게 시선을 돌려 먼저 입을 열었다. 뜻밖의 말에 나만큼이나 놀랐는지, 얼빠진 얼굴로 김석진을 보는 민윤기였다.




" 마음은 고마운데, 굳이 안그러셔도 돼요. "

" 아…. "

" 그럼."



가자. 다정한 얼굴로 내게 말하는 김석진이 퍽 낯설었다. 아니, 굉장히 낯설었다. 저런 모습은 자기 동성인 친구들이나, 남자후배나, 정호석 같은 애들 앞에서만 보여주던 모습이었는데. 너무 이질감 있는 거 아닌가. 적응이 안되다 못해, 소름이 끼쳤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민윤기에게 못했던 인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민윤기는 짐짓 굳은 표정으로 김석진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 어쩐지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였다.




" 잘 가, 민윤기. "

"…응. 잘 가고. 그쪽도 잘 가세요. "




한 방 먹인거다. 지금 김석진은, 민윤기에게 명확한 경고선을 제시했다. 한껏 부드러운 말투로 포장했지만, 뼈가 있는 말이였다. 얼떨떨하긴 했으나, 내 입장에선 나 혼자 민윤기에게 선 긋는 것보다 궁극적으로 훨씬 효과적인 셈이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김석진이 갑자기 왜 이러냐는 거다. 김석진과 집까지 걷는 내내 옴짝달싹 못했다. 머리 끝에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아 닭살이 오소소 돋았다. 싸가지가 심해지면 더 심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젠 눈길조차 안 줄 줄 알았단 말이다. 구구절절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충 내가 뱉었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김석진욕, 욕, 욕의 맥락이었다. 이렇게 서로에게 악심을 품은 사이는 김석진이나, 나나 둘 다 이골이 났다. 그게 어젯밤은 절정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근데 갑자기 알바에도 찾아오고, 다정한 연인 코스프레까지 자처해주니 내 입장에선 반갑기보다는.. 어쩐지 무서운 마음이 더 컸다.




" 배우해야하는 거 아니예요? "




넌지시 물은 말에 김석진이 낮게 조소를 흘렸다.




" 비꼬지마. 네가 먼저 해달라고 찡찡댔어. "




싸가지의 컴백이다. 웃기게도, 다정한 모습보단 이쪽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동시에 아까 내가 봤던 김석진의 모습이 정말 김석진이 맞긴 한 건지 순간 헷갈릴 정도로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도대체 자아가 몇개야? 완벽하게 둘로 분리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제가 언제 그랬다고…. "

" 기억 못하는 게 자랑이야? "

" 저 기억하거든요? "

" 그럼 다행이고. "




어젯밤 사건에 대한 대화는 싱겁게 종결되었다. 이상하게 김석진이 전보다 누그러진 것 같았다. 다행인 건가. 기분이 얼떨떨하긴 했지만, 어쨌든 한시름 놓은 건 사실이다. 딱히 김석진의 눈치를 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욕한 걸로 모자라 취한 상태로 민폐를 끼쳤으니 무조건 내가 김석진에게 감사해야 할 상황이다. 술 하나때문에 내가 대체. 한 번만 더 그렇게 마시면 내가 개다, 진짜.




" 근데 저 오늘 알바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




김석진은 대답이 없었다. 정말 일도 관심 없어보여서, 당연히 모르는 줄 알았는데. 가볍게 무시를 당한 채로,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김석진을 향해 손바닥을 폈다. 김석진이 내 손바닥을 향해 의문 가득한 시선을 내리깔았다.




" 주세요. "

" 뭘. "

" 그거 저 주려고 가져온 거 아니예요? "




아까부터 김석진의 반대편 손에 이온음료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설마 이 밤에 뜬금없이 포카리가 마시고 싶어서 샀다기엔 한 모금도 줄지 않은 새 거였기도 하고, 그냥, 내 눈엔 주려고 했는데 차마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기도 하고.그래서 선수를 치고 말해준 거다. 김석진이 나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 "

"… "

" 네 꺼 아냐. "

" 그럼요? "

" 나 먹으려고 산 건데. "



뭐, 아니였나. 아님 말고. 그렇게 입맛을 다시며 손을 제자리로 가져다놓다가, 다시 올렸다. 그냥 주세요. 내 뻔뻔한 말에 김석진의 미간이 좁혀졌다. 내가 왜? 하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 저 지금 속이 안좋아서 그래요. 아직 숙취가 안 가라앉았거든요. "

"… "

" 그거 마시면 좀 괜찮아질 것 같아서요. "



별 이런 게 다있나, 하는 얼굴로 김석진이 마지못해 내 손 위로 이온음료를 쥐어주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음료를 받아들고 뚜껑을 따서 바로 마셨다. 그 때 알아차린 사실이, 신기하게 아까까지만해도 불편했던 속이 지금은 꽤나 가라앉았다는 것이였다. 감사. 내 간결한 인사에 김석진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저희 다음주 발표인 거 알죠? 뜬금없이 든 과제 생각에 김석진에게 냉큼 물었더니, 김석진이 알아, 하고 대답했다. 초조한 나와는 다르게 김석진은 놀라울 정도로 별 생각이 없어보였다.




" 정호석은 어떡하냐는 말이예요. "

"… "

" 이것도 그냥 넘어갈 건 아니죠? 그래도 과젠데. "

" 내가 알아서 말 잘 해볼게. "




역시나, 혼자만 태평한 소리였다. 뭐, 아무리 그래도 자기 과제인데, 저렇게 말하는 거 보면 믿는 구석이 있겠거니 싶었다. 둘이 어느정도 군대 이외에 자리에서 만난 적도 있는 것 같고, 둘만의 유대감이 있을테니깐 알아서 잘 말하겠지. 체념하며 집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문득 김석진을 보니 어딘가에 시선을 빼앗겨 있는 모습에 내 눈동자도 따라서 그쪽을 향했다.



" 꽃이네. "



집 옆 나무에 꽃이 작게 움트고 있었다. 어느새 나도 그 광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러게요. 넋을 놓고 말하니, 작게 난 꽃잎 하나가 똑,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봄이였다.












무로맨틱 로맨스













조별과제 발표 시간이 어느새 다가왔다. 나는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까지 초조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옆에 앉은 김석진은 팔짱을 끼고 아무 걱정 없는 태도로 앉아 있었다. 게다가 정호석은 이 시간까지 나오지도 않고 있었다. 다들 준비하고 있는데 말이다. 진짜 오는 거 맞아요? 내 물음에 김석진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것이 벌써 5번째 같은 질문이였기 때문이다.



" 그냥 얌전히 좀 기다리고 있어. "



결국 될 대로 되라, 하는 심산으로 이따 받을 질문에 대해 대비하기 위해 정리한 자료를 다시 훑었다. 두 장쯤 넘겼을까, 옆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호석이였다. 잠깐 시선이 마주쳤지만, 정호석은 어설프게 입꼬리를 올렸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선 자리에 앉았다. 교수님의 안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조별발표시간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우리 조는 발표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정호석도 발표를 끝까지 잘 해냈고, 몇몇 질문에도 다 적절한 대답을 꺼냈다. 교수님도 별다른 지적 없이 만족스럽다는 듯 표를 작성하셨다. 발표가 다 끝나고 돌아와 자리에 앉는데도 기분이 얼떨떨했다. 그때, 흥분해서 정호석에게 화를 냈던 날 이후로 솔직히 망했다고 생각했었다. 이 상태면, 팀워크고 뭐고, 붕괴 직전 아닌가. 정호석도 정호석이었지만, 흥분을 못참고 화를 낸 나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좀 더 평정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정호석은 지나치게 멀쩡해보였다. 나만 보면 울 것 같은 얼굴로 도망만 치던 애가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바뀌었다. 어딘가 이상하단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나도 모르게 정호석을 힐끗 쳐다보는데, 정호석은 그런 나를 눈치 채고 내게 다가왔다. 놀란 내가 몸을 움찔댔다.








사진 터치 후 저장하세요

" 누나, 수고하셨어요. "



이건 좀, 많이 심하지 않나. 진짜 지킬 앤 하이드야, 뭐야. 눈에 띄게 달라진 정호석의 태도에 오히려 내가 당황해서 답할 거리를 찾느라 머리를 굴려야 했다.



" 어, 어 그래. 너도. "

" 누나. "

"…응? "

" 그동안 제가 계속 사심으로 대해서 죄송했어요. 많이 불편하셨죠. "

" 어? "



그리고 이건 또 무슨 상황일까. 정호석이 내게 진중하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정호석의 말에 되려 당황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사과까지…어쩐지, 그때와는 포지션이 많이 바뀐 것 같단 말이다. 앞으로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정호석은 그렇게 덧붙이며, 내 어깨 위로 손을 뻗었다. 갑작스런 손길에 움찔 거리는데, 무언가 집은 정호석이 바닥으로 툭 흘렸다. 꽃잎이 천천히 살랑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 그래도, "


"… "



사진 터치 후 저장하세요

" 선후배 사이로 지내는 건 되죠? "



정호석의 물음에 내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응, 당연하지. "



내 말에 정호석의 얼굴이 그제야 환해졌다. 제법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걸까. 이제는 좀 낯설어진 정호석의 웃는 얼굴을 보니 어쩐지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 어떻게 한 거예요? "


김석진은 역시나, 묵묵부답이였다. 나를 완전히 먹금하며 걷는 김석진의 뒤를 쫄래 쫄래 따라가 아, 어떻게 한 거냐구요. 하고 묻는데도 완강했다. 글쎄, 저 이제 안 따라다니겠다잖아요. 그것도 갑자기. 진짜 얘기라도 나눈 거예요? 따끔하게, 혼, 뭐 이런 거예요? 내 말에 김석진이 걸음을 멈추었다. 어지간히 귓구멍이 따가웠나보다.



" 발표 잘 끝났으니까, 된 거 아니야? "

" 그렇죠. "

" 그럼 된 거지. 뭘 계속 물어. "

" 이상하잖아요. "

" 뭐가 이상한데. 다행인 거지. "



말은 또 아주 잘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김석진을 바라보다가, 그래, 좋은 게 좋은 것이다 하고 결론을 짓기로 했다. 결국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 거나 다름없으니, 김석진 말대로 이건 다행인 거다. 그럼 끝인 거지 뭐. 더 궁금해 해봤자 득이 되는 것도, 실이 되는 것도 없고. 그런 무의식에 빠지며, 걷는데 어느순간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고, 누군가 팔을 붙잡았다.




" 두 분 커플이세요? 사진 찍고 가세요! "

" 네? "

" 저희 그냥 사진 동아리인데요, 캠퍼스 내 자연경관과 함께 재학생들 사진 찍어서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거든요. "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 순간에 사람들에게 휩쓸렸다. 김석진도 마찬가지였다. 사진 동아리라는 무리들은 우리를 둘러 싸고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며 사진 찍기를 권유했다. 원하시면 인화사진 뽑아서 따로 더 드리구요, 초상권 악용하는 일은 절대 없어요! 그냥 소소하게 추억만 전해주는 순수한 취지에요. 당연히 이런 추억 따윈 필요 없던 나와 김석진은 동시에 손사래를 쳤다. 아니예요, 저희 그런 사이, 절대...



" 어? 김여주? "



아는 얼굴을 마주치고, 열심히 부정하던 손길은 고스란히 제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필 과 동기가 이 동아리야, 왜 또…. 동기 녀석은 반갑다며 내게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김석진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헐! 둘이 저희과 cc거든요. 완전 잘 만났다. 빨리 다들 카메라 들어요! 결국 김석진과 나는 그렇게 어거지로 붙잡혀 벚나무 아래에 나란히 섰다. 시발, 그런 사이 아니라고 이제와서 부정하지도 못하고....




" 둘이 좀 가까이 붙어봐요! "




내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김석진을 올려다보며 한 발 옆으로 가 거리를 좁혔다. 김석진의 표정도 썩 좋은 것은 아니였다. 두 분 그림 아주 예쁜데요! 사진기를 든 남자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예쁘긴 뭐가 예뻐 시발. 존나 어색한 거 안보이나…. 셔터소리가 들리기만을 기다리는데, 남자가 에이~ 둘이 더 붙어봐요, 어깨동무도 좀 하고. 그 말에 안면이 천천히 굳어갔다. 뭘 해? 어깨동무? 경악스러웠지만, 이대로 가다간 안끝내줄 것 같아서 결국 김석진의 옆에 바짝 붙어서 섰다. 김석진이 뻣뻣하게 고개를 내려 나를 쏘아봤다.




" 뭐요. 어쩌라구요. 빨리 끝내야죠... "

"… "



헛기침을 한 번 한 내가 이번엔 김석진의 팔꿈치 안쪽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제법 팔짱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입은 웃고있었는데, 기분은 되게 엿같았다. 아 그렇죠~! 그거죠! 남자는 만족한다는듯이 카메라를 다시 들다가, 저, 두분 좀 웃으세요, 특히 남자분. 하고 또 지적을 해왔다. 머리 위로 김석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보다못한 내가 김석진의 살을 살짝 꼬집었다. 빨리요….그냥 대충 입꼬리 올리면 되잖아요.



"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



셔터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김석진과 거리를 떨어트리며 손을 털어냈다. 그건 김석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에겐 관심 없다는 듯 다들 사진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만하면 된 거겠지, 하며 빠져나오려고 했는데, 아까 그 동기가 또 내 팔을 붙잡았다.



" 이건 내가 따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인데, 원래 유료야. "

" 아.... "

" 근데 넌 아는 사람이기도 하고, 다들 둘이 잘 어울린다길래. "

" …고마워. "



정말 고마워서 눈물 겨웠다. 이런 수고까지 해줄 줄이야. 떨떠름하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받아냈다. 아직 모습이 나오지 않아, 그냥 흰색 무배경의 상태였다. 굳이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정말 필요없는데.이걸 어떻게 처리해야하지 하다가 김석진에게 슬쩍 내밀었다.



" 가질래요? "

[김석진/민윤기] 무로맨틱 로맨스 08 | 인스티즈

" 아니. "


저 대답이 나올 걸 알았지만,그냥 한 번 물어본 거였다. 가방에 넣기 좀 그런데. 그럼 진짜 간직하는 것 같잖아.그래도 땅에 버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냥 가방에 넣었다. 넣는데 속으로 욕지기가 저절로 나왔다. 이깟 사진 하나 가방에 넣는데 자존심이 상할 정도면, 정말로 내가 김석진을 싫어하긴 하는 게 확실했다.
















>> p.s. 태형과의 문자







남동생

야 누나 나 오늘 너네집 ㅇㅋ?




ㅇ어기만

해ㅣ뱌



남동생

​으 술냄새




오지ㅁㅏ


남동생

​ㅇㅋ?




노리ㅏ고


남동생

ㅇㅋ?



지랄


남동생

이럴때만 오타가 없다니깐;

ㅇㅋ????





옴ㅕㄴ 지나 죽



남동생

어라구?

ㅇㅋㅇㅋ~~~~~

































*

😎....약간..... 무로맨틱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같습니다 ( 네??? )

여주의 동생 언급을 꽤 많이 했었는데 초기 설정부터 태형이로 잡아서 빨리 나오기만을 기다렸어요 드릉드릉 태형 짤 넣을 때 진심 행복했어요 ㅠ.ㅠ.... 짤넣는게 젤 기분좋아 ~!

오늘 좀 허접하죠 ;ㅅ; 약간 개그물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ㅋㅋㅋㅋㅋㅋㅋㅋ원래 이번주안에 9화까지 쓰고 올리려 했는데 말짱도루묵 됐네요 빨리 올리고 싶어서 퇴고도 안했어요 (자랑?)


글고.......




ㅋㅋㅋㅋㅋㅋㅋㅋ........

가이드들의 유혹 댓글을 본 나 :

[김석진/민윤기] 무로맨틱 로맨스 08 | 인스티즈

(ㅇㅅㅇ...동공지진....영혼 가출....)

하하하 정말 장편연재 기원을 많은 분들이 해주셔서...... 뜨거운 반응 넘 감사하지만🙏🏻........

단편이 끝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 처음부터 단편으로 구상하고 끝낸 거라서ㅎㅅㅎ..... 보통 제가 장편 쓰기 싫을 때 단편을 휘갈기는데 아마.. 언젠가 다시 쓰고 싶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녀러분 저 센티넬 정말 일도 몰라요 ㅠㅅㅠ 흑흑 백퍼 다음화~ 산으로~ 갈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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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헝 작가님 보고 싶었어요 사랑해요💜
•••답글
독자2
작가님 어서오세요😄요옷..여주의 동생은 태형이었네요👍🏻
이제 야깐.. 현실 남매 보는 것 같아서 보는 내내 즐거웠는데, 태형이의 여자친구 '아미' 에서 동공지진.. (๑°ㅁ°๑)‼✧
우리 태형이가 아미 언급을 많이 해주는게 행복☺️
그래서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았답니다💜💜
후 여주의 감정이 터져나온 다음 날 생각지도 못했던 석진이의 등장은 너무 놀라다 못해 머리가 아플 정도로 충격..
스....스킨쉽 헐..!! 여기서 여주 만큼이나 소름 돋았던 독자..
아니 뭐 고마운데 무서운..(?) 여주가 석진이를 너무 싫어 하는데 이쯤 되면 그냥 윤기랑 이어주세요( *• ̀ω•́ )b
앞으로 구르고 뒤로 굴렀다가 텀블링을 하고 다시 봐도 윤기가 제일 잘 어울려😍
그나저나 이번 화에 호석이도 무서운데..아니 갑자기 저렇게
암시랑토 않을 수 있다?!
석진이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두려움) 하루만에 저렇게 바뀌나요...😭😭 우리 호석이가 웃을 수 있게 되었으면 다행이지만, 이 심상치 않은 기분은 뭘까여 따흐흑... (꒦໊ྀʚ꒦໊ི )
센티넬 재미있었는데 단편이라니 아쉽다..센티넬 완전 처돌이라 엄청 기대하고 있었거든용🤔
그래도 가뭄에 단비처럼 막라의 가이딩 들고 와주셔서 감사드려용😆😆😆💜💜 아주 오랜만에 흥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화도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음 화에서 또 뵈영⭐️

•••답글
독자3
대체 석진이가 무슨 말을 했길래 호석이가 바뀐거죠???!? 궁금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기다리다보면 밝혀지겠죠???
그나저나 윤기 끼부리는거 너무 귀엽습니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다음편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답글
독자4
헐 석지니 갑자기 스윗할때 심장멎을뻔,.. 이제부터 시작이라니 더욱 기대가 되네요ㅠㅠㅜㅜㅠㅜㅜ 윤기가 너무짠하구...ㅠㅠㅠㅠ 결국 호석이는 이렇게 지나가나요... 나름 호석이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흑흑 오늘도 너무 재밌습니다ㅜㅜㅠㅡ
•••답글
독자5
기다렸어요 작가님 ㅠㅠㅠ퓨ㅠㅠㅠㅠㅠㅠㅠㅠㅜㅠㅠㅠㅠㅠㅠㅠㅠ
•••답글
독자6
ㅠㅜㅠㅜㅜㅜㅜ 기다렸어요 진.....ㅏ.... 아니 태형이가 동생이면 여주는 얼마나 더 예쁜건지... 흡끄그그규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음화도 기대할게오>♡<

•••답글
독자7
재미져,,,,오늘도 푸욱 빠져서 봐버렸자나?????
내심 달짝찌근한 석진이도 얼른 보고싶다......ㅎㅎㅎㅎ

•••답글
독자8
작가님 ㅠㅠ 이제 시작이라뇨ㅠㅜㅜㅜ 넘후 좋자나여 아직 볼게 많이 남았다뉘ㅠㅠㅎㅎㅎㅎㅎ 호석이는 이제 아예 마음을 접은 건 가요??? 밍숭맹숭하네요ㅜㅜ 그리고 태형이 너무 동생이미지랑 찰떡ㅋㅋㅋㅋ가이드들의 유혹이 장편연재 되면 좋겠지만 아어어ㅓㅏ주 나중에라도 생각나시면 또 써주세욤ㅎㅎ
•••답글
독자9
작가님~~~~보고싶었슴다ㅠㅠㅠ석지니와 여주의 럽럽..드디어 먼가 선덕선덕해지는거같은..ㅎㅎㅎㅎ뉸기한테 철벽치는거 넘 설레네용..잘보구갑니다><💜
•••답글
독자10
뭔가 태도가 바뀐느낌이에요~~~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해요ㅎㅎㅎ 글 너무 재밌게 봤습니당~~!!
•••답글
독자11
작가님!!!!!!!!!석진이 무슨일이까요????? 그때 여주가 술취하고 그랬어도 역시 변한건가.....?? 뭐가 됐든 작가님 글 읽는 지금이 제일 행복해ㅜㅜㅜ❤️❤️
•••답글
독자12
친동생이 태형이면 여주외모 알법하다,,,,
석진여주 어색해서 불편해하는거 눈앞에 그려지곸ㅋㄱㅋㄱㄱㄱㅋㄱ 암튼 어남윤ㅠ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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