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Vampire 作. 시나몬 루한X시우민 똑똑. 문을 가볍게 두드렸지만 반대편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험한 산중에 정말로 집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루한이 중얼거렸다. 하숙생이 들어가는 족족 한달을 버티지 못하고 짐을 챙겨 뛰쳐나오게 만든다던, 기괴한 소문들이 무성한 귀신의 집의 정체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루한은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이유는 루한이 바로 세간에 떠도는 소문의 실체를 파헤쳐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할 기자이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흥미로운 기삿거리를 찾지 못해서 굶주려있던 루한의 회사는 산중의 저택에서 귀신이 사는 집을 봤다며 걸려온 익명의 전화 한통에 곧바로 루한을 산 속으로 쫒아냈다. 뭐라도 건져오라는 말을 꼭꼭 덧붙이며 말이다. 덕분에 이를 바득바득 갈며 강제로 산행을 하게 된 루한은 속으로 몇 번씩이나 참을 인자를 되새기며 경사가 험한 산을 처절하게 기어올랐다. 그 결과가, 맥 빠지게 고작 평범한 저택이라니. 모던하고 살짝 올드한 갈색으로 칠해진 저택은 소문처럼 으스스하지도, 또는 사람을 홀리듯 어마어마하게 크지도 않았다. 기분이 급 추락한 루한이 속으로 욕을 곱씹었다. 물론 들을 수 있을 리는 없겠지만. 처음에 루한은 익명의 제보자에게 몇 번이고 접촉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그는 저주가 내릴 거라며 루한과 만나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이름 조차도 알지 못하는 제보자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연거푸 헛소리를 토해냈다. 눈이 홍옥처럼 새빨갛고, 손가락 길이만한 송곳니를 가졌으며, 몸이 얼음보다 차가운 귀신이 제 목덜미를 물어 뜯으려 했다고.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어이없는 말에 루한은 헛웃음을 지었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괴기스러운 물체가 하나가 더 있었는데, 커다란 뿔 두개를 가진 여자가 저를 산채로 집어 삼키려 했다며 숨도 쉬지 않고 말하는 그에게 루한은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을 듣고있으니 저까지 이상해 질 것 같은 기분 탓이었다. “귀신이 말이 돼?” 잠시 상황을 회상하던 루한이 볼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혹시 할 일 없이 회사에서 자리만 차지하며 빈둥거리는 루한을 쫒아내려는 회사가 벌인 일종의 연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스쳤다. 지금이 무슨 18세기도 아니고, 아직도 귀신 타령을 하다니. 좀비는 물론이고 소설이나 영화 소재에서 흔하디 흔하다던 뱀파이어 조차도 멸종한지 몇 백년 가까이 흘렀다. 그들이 생존했다는 증거는 기껏해봐야 고대 문서에서나 찾을 수 있다. 그러니 골때리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루한의 입술이 질근질근 짓이겨졌다. 산으로 무작정 쫒겨나기 전, 상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정 건질게 없다면, 가짜로라도 만들어 와. …네? 인터넷 상에서도 벌써 소문이 자자해. 허위로라도 밑밥을 던져주면 좋다고 달려들 인간들이야. 만에 하나, 들키면 뭐 어때. 다른 자잘한거 몇 개 터트려서 덮어버리면 그만이지. 일순간 찬바람이 일었다. 아직 가시지 않은 꽃샘 추위의 영향으로 루한이 몸을 파드득 떨었다. 아무래도 꽤 높은 산 위라서 더 기온이 낮은 것 같았다. 마당에서 자라던 여러가지 꽃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며 바스락거렸다. 마당은 꽃과 나무만 무성하지 전혀 관리가 되고있지 않았다. 조금만 관리해줘도 보기 드문 근사한 경관이 될텐데. 아쉬운 생각에 입맛을 쩝쩝 다셨다. 계속해서 부는 서늘한 바람에 춥다고 느낀 루한이 대충 꺼내입은 후드티를 손으로 여미며 가방에 넣어두었던 꼬깃꼬깃한 종이 하나를 꺼냈다. 김민석. 집 주인의 이름이었다. 귀신 치고는 무척 이름이 사람답네. 루한이 제가 한 생각이 웃겼는지 낄낄거렸다. 그래도 루한은 다행히 양심적인 사람인지라, 치졸하게 회사에서 짤리지 않으려고 가짜 증거를 만들어 가는 것 따위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적당히 하숙생처럼 연기하다가 한달 쯤 뒤에 내려갈 생각을 했다. 그게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슬슬 이딴 일까지 겪게 만드는 기자라는 직업에 회의감이 밀려오는 루한이었다. 루한의 손에서 자꾸만 종이가 날아갈 듯 팔락였다. 옆에 여러가지 기본적인 인적사항이 삐뚤삐뚤한 글씨로 쓰여있었다. 일단 전화번호를 찾은 루한이 휴대폰을 꺼내 민석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칙칙한 신호음이 가는가 싶더니 일순간 뚝 끊어졌다. 휴대폰도 안받고, 집에도 없으면 어쩌라는거야? 루한은 약간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찌푸려서 보기 흉하게 튀어나온 미간을 손가락 끝으로 꾹꾹 누르던 루한이 종이를 꼼꼼히 읽어내려갔다. 이름, 나이, 전화번호, 가족 관계…… 종이를 짚은 손 끝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빨간 볼펜으로 쓰인 글씨 부근에서 멈추었다. 시력이 나쁜 루한이 깨알처럼 쓰인 글씨를 보기 위해 미간을 좁혔다. 그러자 가물가물한 글자가 하나로 선명하게 맞춰졌다. 「집에 초인종이 없으니 반응이 없으면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잠시 생각하다가 초인종을 찾았다. 문을 더듬거려 보았으나 정말로 꼭 있어야 할 법한 초인종이라거나, 도어락이 달려있지 않았다. 이것도 수상한 점이라면 수상한 점일까. 루한은 아까 피다 만 담배 한갑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반쯤 타다 남은 꽁지가 들어있었다. 갑자기 담배를 피고 싶던 마음이 싹 가라앉았다. 그래서 그냥 곽 채로 마당에 보이는 쓰레기통에 처박은 뒤, 다시 종이를 읽기 시작했다. 별 거 없어보이는 이 인적사항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루한은 가족이라는 글씨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것과 민석의 가족 관계를 번갈아 보았다. 민석이라는 남자는 가족에 동그라미를 해 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과 딸의 이름만 달랑 적어둔 채였다. 그 어디에도 아내의 이름은 없었다. 이혼했나?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루한은 그저 집주인의 예민한 문제를 건드리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종이를 다음장으로 넘겼다. 민석이 연락을 받지 않아서 짜증 가득한 얼굴이던 루한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귀여워! 그는 제 입에서 저도 모르게 새어나온 말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루한이 넘긴 다음장에는 민석의 딸 사진이 붙어있었다. 오밀조밀해서는 볼살도 통통한데, 생긴게 꼭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만두, 꼭 만두같았다. 제가 한 생각이 웃겼는지 루한이 슬쩍 웃었다. 김윤이 (6). 딸의 나이는 무척이나 어렸다. 유치원에서 인기 많으려나. 루한은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문득 문이 질질 끄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는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문의 집이 드디어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입을 열고 있었다. 목구멍 아래로 침이 꿀꺽 넘어간다. 그는 정말로 홍옥처럼 붉은 눈에, 손가락 만한 날카로운 송곳니와 차가운 피부를 가지고 있을까. 순간 온갖 만감이 교차했다. 그 시간은 길고도 짧았다. 달칵, 문이 완전히 열리고 루한이 서둘러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안녕하세요.” “…….” 루한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한손에는 액정이 흉하게 다 깨져버린 휴대폰을, 다른 한손에는 여섯살배기 곱상한 딸아이를 안은 민석이 허둥지둥 고개숙여 인사했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오렌지 브라운 톤의 정갈한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목이 다 늘어났지만 귀여운 디자인의 후드티를 입은 그는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하며 반갑다는 듯 웃었다. 조금 어색한 감이 있었지만 말이다. 물론 루한도 예의상 눈 웃음을 지어주었다. 칭얼대는 아이를 현관에 잠시 내려놓은 민석이 가까이 다가와 루한의 가방을 들어주었다. 살짝 스친 몸에서는 진득하고 역겨운 피냄새 대신, 향긋한 비누향이 났다. 루한은 민석의 하얗고 동글동글한 얼굴을 빤히 보다가 묵을 방이 어디냐는 질문마저 잊어버릴 뻔 했다. 그는 무척 하얗고 말랑말랑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 딸이랑 판박이처럼 닮아있었다. 그는 꽤나 붙임성이 좋은 사람인 듯 했다. 루한이 어색해 하지 않도록 자꾸만 상냥하게 말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루한의 생각은 오로지 다른 데에 쏠려 있었다. 민석이 말을 하려고 입을 열때마다 자꾸만 치아에 시선이 갔다. 설핏 훔쳐본 송곳니는 보통 사람의 것과 같이 그리 길지 않았다. 루한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는 아무리 봐도 인간보다 더 인간 같았다. 민석이 절대 좀비나 뱀파이어 따위일 리가 없다고, 루한이 생각했다. “아빠, 이 아저씨 누구야?” “앞으로 잠시동안 윤이랑, 아빠랑 같이 살 오빠야. 인사해야지.” 요즘 유치원 생들은 명찰도 달아주나 보다. 김윤이. 파란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쓰인 글씨가 눈에 띄었다. 아빠를 닮아 동글동글하게 생긴 아이는 퍽이나 귀염상이었다. 윤이 안녕? 고개를 숙여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루한은 아이의 머리를 쓰담으며 말을 걸었다. 그러나 아이는 꽤나 낯가림이 심한 모양이었다. 윤이는 루한에게 인사하는 것 대신 쪼르르 제 아빠 뒤로 달려가 숨었고, 민석은 그런 아이를 타일렀다. “여기가 루한씨 방이에요.” “감사해요.” 탁. 윤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은 민석이 한숨을 쉬었다. 애가 낯가림이 좀 심해요. 나는 그 말에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귀찮게 하는 아이들은 딱 질색이지만, 윤이같은 귀여운 아이는 좋았기 때문이었다. 민석은 루한이 짐을 푸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있다가 제가 나서서 도와주었다. 덕분에 한결 짐정리를 손쉽게 끝낸 루한이 먼지 묻은 손을 허공에 대고 탁탁 털었다. 몇 번 움직이고 나니까 힘이 빠져서 침대에 걸터 앉았더니 그와 동시에 창문 밖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났다. 절로 고개가 돌아간 루한이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로우가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에요.” 민석이 싱긋 웃으며 넌지시 말했다. 루한의 시선 끝에는 꽤 늠름하게 생긴 골드 리트리버가 자리했다. 아까 마당을 둘러볼때 미처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오늘 까먹고 밥을 주지 못했거든요. 민석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우에게 밥을 주러가는 듯 했다. 잠시 방을 나가려던 민석이 몇 걸음도 채 되지 않아서 뒤돌아섰다. 깜빡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말에 루한이 고개를 들었다. “이 집은 루한씨 집처럼 편하게 써도 돼요.” “네?” “먹을 것을 마음대로 먹어도 되고, 방을 마음대로 뜯거나 꾸며도 상관 없어요. 그건 루한씨 마음이겠지만요.” “…….” “다만, 한 가지만 주의 해 주세요.” 그가 골똘히 생각하는가 싶더니 손톱을 이로 잘근잘근 깨물었다. 무언가를 생각할때 나오는 습관인듯 했다. 갑자기 조금 진지해진 표정이라, 루한이 고분고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민석이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2층 복도 마지막 방은 들어가시면 안돼요.” “…….” “절대로요.” * * * 다음 편은 언제쯤이나 가져올런지 모르겠습니다. 피드백은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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