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생 환상소설집 :첫번째 이야기(달의 밀회)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의 밤하늘은 말이죠, 달이 훤해요. 오죽이나 달이 밝으면 가로등이 없어도 될 정도라니까요. 그리고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어요. 가끔 부둣가에 서 있노라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 가슴이 벅찰때도 있어요. 물론 낮에만 말이죠. 밤은요, 바다는 칠흑같아서 무서워요. 낮은 끝이 보이지 않을 뿐이지만 밤의 바다는 수평선 조차 보이질 않죠. 정말 그 끝이 없거든요. 온통 까매요. 그래도 날이 맑다싶은 새벽엔 부둣가로 나오곤 해요. 달이 밝거든요. 따스한 달빛이 해수면에 부딪혀 내리면 온통 까맸던 바다는 또 자신만의 색을 찾아요. 우아하고 은은한 색을. 꼭 그런 날에만 찾아와요. 누가 찾아오느냐고요? B요. B가 이곳을 찾아와요. 당신은 오늘 운이 좋아 B를 볼 수 있겠어요. 아, 저기요. 저어기- 보이죠? 달빛이 쏟아지는 부둣가, 그곳에 그가 있잖아요. 맞아요. 저 사람이에요. 특이하죠? 혼자 춤을 추고 있잖아요. 그것도 왈츠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B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가 나타나는 날이면 가리지 않고 이 부둣가로 걸어 나오죠. 정말이지, 그를 쳐다보잖아요?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만 같아요. 사람이 예뻐요, 그렇게. 근데 나는 그게 더 마음이 아파요. 그가 누군지 알기 때문에. 그가 사람이 아니란걸 알기에 그래서 내 사랑은 깊어질수록 길을 잃어요. 그래요, 그는 이 달빛 아래서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작은 소년일 뿐이죠. 난 그에게 묻고 싶었어요.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지, 그리고 수십년전, 왜 이곳에 몸을 던져야 했는지. 무성하기만한 그의 소문 중 도대체 뭐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헛소문일지. 아, 그의 몸짓이 점점 멎어가네요. 이제 돌아가려나 봐요. 항상 그는 실컷 춤을 추고 나면 방파제 절벽에 서서, 수면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봐요. 그리고 물속으로 몸을 던지고 말죠. 그가 물에 빠지면 물방울이 튀어 오르지도, 풍덩 소리가 나지도 않아요. 그저 바다는 조금 일렁일 뿐이죠. 나는 뒤늦게 그 곳으로 달려가보지만 그는 없어요. 가지말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 비명은, 그 애달픈 외침은. 내 안에 맴돌 뿐이었어요. 그래요, 그가 갔네요. 저도 이제 그만 자러가야겠어요. 내일 밤은 맑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그에게 말이나 걸어볼 수 있을까요. "에고,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나, 억수로 쏟아지는구만." "그러게요, 그래도 오늘은 이장님 고것 안봐서 좋겠구만요." "어후, 말도 마. 생각만해도 몸서리가 쳐져, 아주 그냥." "굿판이라도 벌여야 하는 거 아녀유?" "안 그래도 그 집, 허물고 그럴 참이었어. " 이장님과 만수아저씨께서 그물 정리를 하고계시네요. 비가와서 바다로는 못 나가시나봐요. "만수아재, 그런 얘기 함부러하고 댕기면 부정탄데이." 아, 요 꼬맹이는 우리 동네에 몇 없는 미취학 아동이죠. "우리 엄마가 그 사람 나쁜 사람 아니라캤다! 불쌍하댔지!" 어찌나 똑부러진지, 나는 태어날때부터 말을 못해서 다들 저는 듣고있겠거니-하는데. 요 꼬맹이 말은 거슬리시나봐요. 만수 아저씨 얼굴이 막 붉으락 푸르락 하시네요. "민아 니는 뭘 안다꼬 씨부리노! 가만히 몬 있나!" 만수 아저씨는 민아 머리를 콩하고 때려요. 그럼 나랑 이장님은 깔깔 웃죠. 아...오늘은 비가 와서 그가 올지 모르겠어요. 괜시리 울적해지네요, 기분이. "그 집." "예?" "그 집 허물고 나면 굿도하고 새 건물 반듯하게 짓자. 그러면 될끼다." 네? 방금 이장님께서 B의 집을 허물거라 말씀하신거 맞아요? 저는 말을 못하니까 입만 벙긋거렸어요. 그러자 이장님은 정색하시더니 고개를 푹 숙이셔요. 나는 뭔가에 홀린 듯이 마을 구석 자락에 있는 폐가로 뛰었어요. 만약, B의 집이 없어진다면. 그가 사라진다면. 난 어떡해야하지? 으스스한게 너무 무서웠지만 나는 그의 집으로 들어갔어요.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간 집, 뿌옇게 쌓인 먼지들. 그 안에는 B의 사진도, 어떠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지요. 누군가 치웠나봐요. 그때였어요. "안에 누구 있습니꺼!?" 아무래도 이장님인듯한데 나는 너무 놀라 벽장안으로 숨었어요. 굳이 숨을 이유는 없었지만 들키면 귀찮기만 했을거예요. 이장님은 대충 방안을 슥 훑어보시더니 나가버리세요. 들키지 않은 모양이에요. 벽장안에서 나가려하는데 뭐가 손에 잡혀요. 일기장이었죠. 네, B의 일기장이요. 창밖을 보니 벌써 밤이었어요.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렸지만요. 나는 그의 일기장을 펼쳐 들었어요. 그리고 천천히 읽어내리기 시작했죠. 날짜가 적히지 않은 짧막한 일기들. '내 몸은 저주 받았다, 또한 삶 조차도.' '나를 가축 취급하는 아빠한테 또 맞았다. 그녀가 어서 빨리 돌아왔으면.' '밥을 사흘째 굶고있다. 외롭고, 춥고, 서럽다. 그래도 그녀의 존재가 나를 버틸 수 있게 한다.' '친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학교라는 곳에 다니고 싶다.' 일기는 대충 이런 내용이 전부였어요. 맞고, 굶고, 그리워하는. 그리고 이 일기의 끝은. '친구가 생겼다. 친구와 함께 부둣가에서 춤을 췄다.' '배는 여전히 고프고, 맞은 곳도 욱씬거리지만, 외롭지는 않다. 내가 기다려왔던, 간절히 바랬던 친구라서.' '오늘은 유난히 달빛이 예뻤다. 나는 내 손으로 그녀와 나를 괴롭히던 그를 죽였다.' '이제는 내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그 애마저 떠나려한다. 안돼, 이런 날 두고 떠나지마, 제발.' '이 순간을 마지막으로 그 애를 따라가려한다. 그 애가 버릇처럼 말했던 누구나 행복하고, 더 이상 힘든 일은 없는 그곳으로.' 결국 마지막은 죽음이었어요. 아아, 갑자기 뭔가 떠오르려고 해서 머리가 아파오네요. 그가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이 나요, 계속. 그를 만나러 뛰쳐나왔어요. 비 때문인지 오늘 밤은 더욱 춥게만 다가오네요. 부둣가에 다 다르자 오늘은 그가 비를 맞으며 왈츠를 추고 있네요. 처음봐요, 저런 모습은. 나는 그를 향해 다가 섰어요. 그의 모습이 낯설 듯, 이런 내 모습도 낯설게 느껴졌지만 난 멈추지 않고 다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어요. "백현아." 그래요, 기억 났어요. 그의 이름은 백현이죠, 변백현. 그러자 그의 몸짓이 갑자기 멎네요. 곧 바다에 뛰어들기라도 할 것처럼. 그 것보다 나는 내 목소리에 놀랐어요. 정말이지, 정말 오랜만에 해본 말이라. 그것도 잠시, 나는 그가 바다에 뛰어들까봐 더 이상 그의 등판만 보고 서 있을 수가 없었죠. 난 그를 돌려세워 손을 마주잡았어요. 그리고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내가 아는 얼굴이었어요.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얼굴. 내 연인이자, 친구이자, 쉼터 같았던 사람. 그가 내게 말해요. "왜 이제야 왔어." 나는 모든게 떠오르기 시작해요. 마치 낮의 바다를 보는 듯한 느낌이네요. 벅차고, 끝이 없는 이 기분. "그 동안 많이 아팠지." 이상하게 기쁜데 자꾸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 "기다렸어, 여기서 계속." 그가 내 손에 쥐어진 일기장을 보며 말해요. "이거, 드디어 찾았구나." 그리고는 옅게 웃으며 날 꼭 안아주죠. "이 일기장, 여기에 너와 내 이야기가 다 담겨 있어." "....." "이건 챙겨가자." 그리고 그는 나의 손을 더욱 꽉 잡아요. 나는 홀린 듯, 중얼 거리죠. "....다 나였어, 나였던 거야. 사람들이 무서워하던 것도, 그 일기장도, 그 집도." "응, 다 너였어." 달빛의 비친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예뻐서, 환해서. 나는 눈이 부셨나봐요. 눈이 아플 정도로 울고 있네요. "백현아, 넌 더 이상 내 환상 속 인물이 아니야." 우린, 오늘 밤 떠날거예요. 그는 내 상처들일지도 몰라요. 내 곪아버린 상처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환영, 말이에요. 그러나 지금 그의 손은 따뜻해요. 그리고 날 쳐다보죠. 난 더 이상 아프지도, 외롭지도 않아요. 그와 함께니까요. "우리, 이제 더 이상 달빛이 울지 않는 곳으로 떠나자." 후, 이렇게 첫번째 이야기가 끝이 났군요. 정말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가 시작하고 끝이 났겠어요. 아직 7개의 이야기가 더 남았어요. 네?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하시겠다고요? 이 책 작가가 좀 그래요. 자기 느낌만 살리겠다고 글을 살리지 못하죠. 전개가 급해요, 그죠? 근데 이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지라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대신, 다음 이야기는 좀 더 많이 풀어서 가져 오도록 하죠. 워워- 그만 울어요. 당신 얘기도 아닌데 왜 그렇게 울어대요? 눈물 좀 닦아요. 그렇게 울면 다른 이야기를 하지 못해요.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7개나 남았다고요. 네, 그럼 당신이 진정이 될때까지 저는 또 바람을 잠시 쐬러 다녀오겠습니다. 이만 진정하시고 푹 주무시길. 다음이야기를 위해 당신이 안정된 꿈을 꾸었으면 좋겠네요. ![[EXO] 밀생 환상소설집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70519/25c824fd20f88ed3232a9cae588b2b8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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