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만에서 글공하다...2차 창작은 여기로 오는게 맞다네요ㅎㅎ
암튼 잘부탁드려요
1
그를 발견한건 정말 우연이었다.
내가 순찰하는 구간도 아닌 그곳에서, 이제 더는 보지못할거라고 생각했던 그와 마주쳤을때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뭐라고 말해야할까. 반갑다고 해야하나?보고싶었다고 해야하나? 순식간에 밀려드는 여러가지 상념들로 눈 앞이 어지러웠다.
가게에서 경단을 계산하고 우물거리며 돌아서는 그는 여전했다.
그의 곱슬거리는 작은 양같은 하얀 머리도, 반쯤 감긴 순한 눈도, 코도, 입도, 손가락도, 예전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여전히....내 마음속에 이상한 느낌이 들게했다.
그가 그곳에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결사 일을 한다고 했다.
야토족 여자아이와 안경을 쓴 남자아이와 함께있는 그는 매우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차마 다가갈 수 없었다.
하지만 또, 또만나고 싶었다. 그도 날 기억하고 있을까? 그 어린 날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와 반대로 그런 날은 영영 기억하지 못했으면 하는 모순된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 매일같이 그곳에 출퇴근 하는것이 나의 하루 일과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항상 같은 시간에 그 가게에 갔다. 그리고, 나도 항상 같은 시간에 그곳에서 경단을 먹고 있었다.
"어이, 형씨. 같이 좀 앉읍시다?"
아.
갑자기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드니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있는 그가 보였다. 그가 다른곳으로 가버릴까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피식 웃으며 테이블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불량스럽게 입은 그의 흰 옷자락이 날리는 모습에 그만 넋이 나가버렸다.
"형씨."
나직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나는 그의 옷자락에서 눈을 떼고는 그를 바로 바라보았다. 깍지낀 손 위에 턱을 괸 그는 관찰하듯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온몸이 굳어졌다. 대답이라도 하고싶었지만 역시나 내 입은 내 의지를 배신했다.돌맹이를 물고있는듯 차갑고 묵직한 것이 혀를 짓누르고 있었다. 내가 대답도 않은 채 계속 바라보고만 있자 그는 응답을 포기한 듯 말을 이었다.
"요즘 왜 자꾸 이 주변을 맴돌지? 신센구미가 말이야.."
헉-
짧게 숨을 들이켰다. 알고있었던 건가?
"그리고 형씨 왠지 낯이 익단말야...우리 어디서 봤었던가?"
혹시-그도 날-기억하고 있는건가? 그 날을, 이 나를 기억하고 있는건가? 가쁜 숨이 가슴을 짓눌렀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그리고, 기뻤다. 그도 날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아, 맞아. 당신-신센구미의 귀신부장이라고 불리는 히지카타 토시로, 맞지?"
아..가쁘게 차올랐던 숨이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기뻤던 마음이 삽시간에 바닥에 처박혔다.
그는 날 기억하지 못하는 구나.
안도감도 들면서 갑자기 서글퍼졌다.
그에게 나는 신센구미의 귀신부장이라는 사람 밖엔 되지 않는구나. 날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난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가 떠나가는데도 인사한마디 하지 못했다. 차가운 어둠이 목구멍을 짓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시큰하니 아파왔다. 가슴속에는 벌레가 한마리 산다. 그리고 그 벌레는 내가 괴로울때마다 내 마음 한구석을 갉아먹는다. 가슴이 좀먹고 좀먹어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더이상 아프지 않을까. 말 할 수 없는 이 마음도 다 갉아먹혀 사라질까.
나무로 된 테이블에 물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져 진한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방울들은 점점 늘어갔다.
쏴아아
급살스럽게 소나기가 쏟아졌다. 아까부터 하늘이 우중충 하더니 기어이 비가 쏟아지나보다.
쏟아지는 비에 아까의 물방울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우산이 없지만 그것 나름대로 괜찮았다. 비를 피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터덜터덜 둔영을 향해 걸어갔다. 차가운 비가 추적거리며 스며들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진득한 진흙이 발길을 붙잡았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아니, 괜찮지 않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2
-
콜록-콜록-
"히지카타씨도 왜 그렇게 비를 맞고 다니는지, 부장이란 사람 꼴이 이게 뭡니까?"
정신이 들었을때는 난 둔영의 내방에 누워있었다. 무슨 정신으로 이곳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눈을 돌리자 팔을 걷어부치고 대야에 물수건을 비틀어 짜고있는 소고가 보였다.
매일같이 투닥거리고 싸웠지만 미운정도 정이라고 내가 아플때 곁에 있어주는 것도 녀석이었다.
"..그러는 넌....왜여기...있는거냐...콜록-"
내가 잘 나오지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묻자 그녀석의 눈이 샐쭉하니 가늘어졌다. 그리곤 아무말도 않고는 거칠게 수건을 이마위에 내리누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 거친 손길에도 걱정스러운 그 마음이 느껴져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뭐가 좋다고 그리 웃습니까? 고작 비좀 맞았다고 늘어져서는. 난 바쁘니까 이만 갑니다."
내 미소를 보았는지 미간을 구기며 마구잡이로 자기 머리를 헝크러트린 녀석은 발간 얼굴로 벌떡 일어나 씩씩대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설마 부끄러운건가?
아직도 어린애같은 녀석의 행동에 작게 웃으며 평소엔 입에 잘 담지도 않던 말을 내뱉었다.
"..고맙다.."
너무나도 작은 목소리에 그녀석이 듣긴 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녀석이 잠시 멈칫하는것으로 보아 들은 모양이다.
이내 다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발자국 소리는 아까처럼 거칠지만은 않았다.
"아프지나 마요."
문을 닫기 전 들려오는 그녀석의 목소리. 역시 미운정도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인가보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방금 전 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몸의 상태가 너무도 잘 느껴졌다. 열이 화악 오르며 전신의 힘이 빠졌다. 누군가 천근 무게로 누르는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가빠져 오는 숨 사이로 문득 그가 떠올랐다.
잘..들어갔으려나. 그날 비도 왔는데 행여나 비를 맞지는 않았으려나.
그가 날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만에 하나라고 하나 예상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나를 너무나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가 싫지 않았다. 지금도 보고..싶었다.
뭐야. 이건 꼭 내가 그를 짝사랑이라도 하는 것 같잖아.
뜨거운 눈꺼풀을 감았다. 여전히 그때 처럼 턱을 괴고 날 반히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생각났다.
이것도 병이라면 어지간한 중병인 모양이다. 습한 숨을 내쉬며 짐승처럼 흐느꼈다.
그가, 그가 너무 보고싶다.
배겟머리가 축축하게 젖어들어갔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왜, 왜 넌 날 기억하지 못하는 거냐. 난 널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너의 머리칼 하나, 손가락 하나, 찡그리는 콧등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왜 넌 날 알지못할까.
꿈을 꾼것 같다. 어린 그와 내가 고향의 풀밭에서 함께 웃고있는 꿈이었다. 나를 향해 환히 웃고있는 그를 보며 나도 환히 웃었다.
너와 내가 서로 통하던 그 시절, 어린 그 날이 너무나도 시리게 내 맘속에 틀어박혔다. 왠지모르게 너무나도 가슴이 아려왔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으면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으련만.
3
-
내가 다시 눈을 떳을때는 환한 낮이었다.
몸살은 이제 다 나은건지 몸이 제법 가뿐하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결리는 몸을 추스며 일어나 앉자 이마위에 얹혀있던 수건이 침상으로 툭 떨어졌다.
소고녀석, 또 왔다간 모양이다.
옆에 놓여있던 대야에 수건을 대충 걸쳐놓고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뜨거운 6월의 열풍이 불어왔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상쾌했다.
"어? 토시! 이제 괜찮은거야?"
아, 곤도다. 어딜 다녀온 모양인지 그의 양손에는 봉투들이 잔뜩 들려있었다. 내 눈이 봉투로 향하자 그는 민망한듯 재빨리 그것들을
등 뒤로 숨겼다. 그래봤자 이미 다 봤지만.
"..장..본거야?.."
"어? 아, 아하하..하하하하!!!!그게 말이지-토시! 간만에 몸보신이 필요한것 같아서 말이야-아하하하!!"
별로 민망할것 없는데.
지나치게 과민반응하는 그를 위해 화제를 돌리기로했다.
"..곤도상, 지금..몇시야..?"
"어?아!!지금?! 지금이..어디보자..1시반쯤 됬네. 그건 왜??"
한시반...지금쯤이면 그가 그 가게에 갈시간이다. 그를 떠올리자 견딜수 없이 그가 보고싶어졌다.
지금가도 늦지 않을거다.
재빨리 벽에 걸려있던 옷을 집어들고 신발을 신으며 곤도에게 말했다.
"..곤도상, 나.. 어디 좀.. 다녀올게,"
"에?어디?! 아픈사람이 그렇게 돌아다니면 안되지!!"
"..잠시.. 급하게.. 다녀올 데가.. 있어서 그래. 금방.. 다녀올게."
"토시!토시!!!"
곤도의 부름을 뒤로하고 둔영을 뛰쳐나왔다. 그가 너무 보고싶다.
숨이 턱에닿아 헐떡거리면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더 늦는다면 그가 가버릴 것 같았다.
며칠을 누워만 있다 급작스럽게 움직이고있는 근육들이 끊어질것 처럼 아파왔다.
이제 저 모퉁이만 돌면 그 가게다. 조금만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모퉁이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심장박동이 급박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밭은 숨을 내쉬면서도 즐거웠다.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지
는 것 같았다. 나도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이제 바로 이 모퉁이만 돌면...!
"아.."
아무도 없다. 그는 오지 않았다.
상실감이 파도가 치듯 밀려왔다. 여기에만 오면 그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고개를 툭 떨궜다. 아까 바람과 함께 날아간 줄 알았던 무게감이 다시 어께를 짓눌렀다.
다시 힘없이 둔영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는 그를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설마 이젠 안오는 건가.
아닌걸 분명히 아는데, 오늘만 오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자꾸만 머릿속의 망상은 커져만 갔다.
혹시 사고라도 난건가. 그날 내가 그의 주변을 맴돈다는 걸 알고는 오지않는건가.
혹시..
또 영영 사라져버리는 건가..
"여어-형씨, 오랜만이야?"
4
-
낯익은 목소리와 말투. 휙소리가 날만큼 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흰 곱슬머리의 남자가 서있었다.
..그다.
항상 시큰둥했던 얼굴에 능글능글한 미소를 띄운 채 한 손을 옷자락속에 넣은 그가 내쪽으로 건들거리며 걸어왔다.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뻣뻣하니 굳어있었다. 너무나 반가운데, 오랜만이라고 한마디 하고싶은데..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대체 어딜 그리 바삐가시나 몰라. 인사나 하려는데 너무 빨라서 따라가기도 힘들었어-"
"아.."
그가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치자 그제서야 주박에서 풀린 듯 입이 떨어졌다.
뭐라고 할까. 반갑다고? 잘지냈냐고?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그 말은 입가에서만 맴돌 뿐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 쓸데 없는 입은 꼭 필요할때 말을 듣지 않는다. 온전치 못하게. 바보같은 말일지라도 하고싶었다.
어떻게든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럼 난 지금 급해서 이만- 뭣좀 사러 가는길이었거든."
그는 그말만 남기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잠시. 기다려줘.. 나도, 나도 네게 말하고 싶어. 나도...
"..아...."
열리지 않는 입을 겨우 떼어 한마디 내뱉으려 했을때는 그가 이미 나를 지나쳐간 후였다.
그를 붙잡으려다 갈곳을 잃은 손이 초라하게 늘어졌다.
또 이런식이다. 왜, 왜
"아..오, 오랜만 입니다. 사, 사카타 긴토키 상."
어느 새 내 입은 바보같은 말만 내뱉고 있었다. 이미 그는 들리지 않을만큼 멀리 사라졌는데, 난 계속 그자리서 홀로 계속 그리운 이름을 되새기고 있었다.
사카타 긴토키.
사카타 긴토키.
사카타 긴토키.
입안을 굴러다니는 그의 이름이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에-형씨 벙어리가 아니었네- 난 하도 말을 안하길래 벙어린줄 알았지."
심장이 쿵하고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아까 가버린 줄 알았는데-!!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니 그가 손에 책 한권을 들고 싱글싱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내 말을 들은건가..바보같이 서투른 내 말을..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그냥 말하지 말걸..내가 말더듬이라는 것을 알면.. 어쩌지?
너무나도 창피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내 말버릇이 부끄러웠다.
날 바보같다고 생각할거야. 신센구미 부장씩이나 되서 말이나 더듬는다고 멍청하다고 생각할거야.
그래서 날..싫어하게 되면 어쩌지..
그렇게 어쩔줄 몰라하며 심장소리를 삭이고 있는데 고개 숙인 내 눈앞으로 낯익은 검은 신발이 멈춰섰다.
심장이 점점 크게 뛰었다. 마치 고막에 심장이 존재하는듯 그에게 들리면 어쩌나 싶을정도로 소리가 점점커졌다.
"근데-우리 부장님이 말더듬이라니, 다들 이걸 알려나 몰라-?"
달큰한 향기가 확 풍겨왔다. 내 귓가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그가 속삭였다.
행위자체는 달콤하기 그지없었으나 그 내용은 선뜩하기 그지없었다.
역시..그는 들은것이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이 수치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아무말 못하고 잘게 몸을 떠는 날 그는 어딘가로 잡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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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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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여기는..어, 어딥니까?"
그가 이끄는대로 따라가 도착한 곳은 굉장히 아기자기한 가게였다.
여기저기 핑크빛으도 도배되어 있는걸 봐선 딱봐도 사춘기 여자애들끼리나 올법해보였다.
내가 얼결에 멈추어 서자 그는 뭐냐는 듯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설마 저곳에 들어가자는 건가? 이사람, 부끄럽지도 않은건가!!!
내가 절대 못들어간다는 듯이 결연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는 나를 더 세게 잡아끌며 짜증스런 말투로 말했다.
"보면 몰라? 카페잖아."
아니, 카페라는걸 몰라서 묻는것이 아니라- 가게의 외관이 다큰 성인 남자 둘이서 들어가기에는 굉장히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냐고 묻는거라고!!
그는 여전히 날 계속 잡아끌었다. 그의 힘은 호리호리한 몸매에 어울리지않게 굉장히 셌다.
이대로라면 저 남사스러운 가게로 들어갈 것 같았기에 난 다급히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 저기는 성인남자 두, 둘이서 들어가기엔 조, 조금 그렇지 않나요? 차, 차라리 다른 카,카,카페에!!!!"
"무슨소리야, 여기 파르페가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다고. 그럼 넌 파르페 먹자고 저 옆동네까지 가자는거냐?"
"그, 그렇지만.....우왓-!"
결국 억센 그의 팔힘에 못이겨 끌려들어왔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호기심 어린 사람들의 시선이 이곳저곳에서 날아와 꽂히는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그는 창가자리까지 날 끌고 들어와 앉혔다.
"여기, 특제 파르페 대로 부탁해."
종업원이 쿡쿡 웃음을 메뉴판으로 가리며 다가오자 그는 소파에 늘어지듯 기대며 다짜고짜 주문을 했다.
저렇게 여유로운걸 봐선 여기 꽤나 많이와본 모양이다.
아직까지도 계속 느껴지는 호기심 찬 시선들에 손으로 슬쩍 얼굴을 가리며 그를 불렀다.
"저....사, 사카타상..."
"왜불러-형씨."
"그...자, 자리라도 구석으로 옮,옮기면 안될...까요..?"
"여기가 제일 전망이 좋아."
그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깍지낀 손 위에 턱을 괴었다.
"아, 아니. 저,전망이 문제가...아니라...이, 일단 저는 신,신센구미고.."
"아아-부장 체면에 이런곳에 들어온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이거지?"
그의 말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곳에서 남자랑 둘이 마주보고 앉아있다는 것을 다른 대원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신센구미의 체면이 뭐가되겠는가.
그와 마주보고 있는것은 좋았지만 그게 또 다른 이들의 눈에 띄어서는 곤란했다. 나도, 긴토키도.
자칫하면 신센구미의 체면을 세우겠다고 그의 암습을 시도하는 이들이 생길 수 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뒤로 기대 콧노래를 부르며발끝을 까딱거리고 있기까지 했다.
"싫은데?"
"..네?"
갑작스런 그의 말에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는 냉소를 짓고 있었다.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싸해졌다.
왠지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내가 왜 네 사정을 봐줘야 하지?"
"그, 그-..."
저런 얼굴의 그는 처음본다.
갑자기 목이 조이는 느낌이 들더니 어느 새 그가 테이블을 넘어 내 목덜미를 쥐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소름끼치게 날카로웠다.
그는 갑작스런 상황에 어찌할 줄 몰라 굳어진 내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네 약점을 쥐고있는건 나야. 지금 이 상황을 결정하는것도 나고,"
그의 눈이 위험스레 빛났다.
마른침이 절로 꿀꺽 넘어갔다.
"그리고, 지금 너를 쥐고있는것도 나지."
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나의 당황한 얼굴이 그의 어두운 동공에 선명하게 비쳐졌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잡아먹을 듯 내게 달려들었다.
6.
-
점점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입술을 보며 점차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짐을 느꼈다.
내게 왜이러는 거지? 장난인가? 아니면 이것도 놀림의 일종인가?
어느덧 그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 또 내가 누구인지 조차도.
이대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있고싶었다.
사실 싫은척 하지만 정작 그를 원하는건 나였지 않았을까.
맑은 그의 동공에 비친 나를 한번 더 바라보고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달큰한 향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그의 입술이 내게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갑작스런 충격과 함께 사방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유리와 테이블들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폭발의 중심에 있던 나 역시 그 여파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 큰 충격과 함께 누군가 날 세게 밀어냈다.
그 힘덕분에 폭발에서 멀리 떨어진 카페 벽 한 구석으로 나가 떨어졌다.
충격으로 몽롱한 내 시선에 카페안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하는것이 보였다.
누가 날 밀어냈을까. 아니, 이 폭발을 일으킨 이는 누굴까.
모든것이 혼란스러운 와중이었다.그런데..
그는?!
머릿속에서 환한 전등이 켜진것마냥 삽시간에 생각이 말끔히 정리되었다. 날 밀쳐낸건 바로..그였다.
다급히 형편없이 널부러진 몸을 일으켜 그를 찾았다. 다행히도 그는 근처에 주저앉아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고 있었다. 무언가로 막은 모양인지 큰 상처는 없어보였다.
그의 멀쩡한 모습을 보자 생각은 다른곳으로 돌아갔다.
대체 누구지?
날 노린 양이지사들의 소행인가? 아니면-
"아, 히지카타상을 노린거였는데, 빗나갔네요. 아까워라."
태평한 목소리. 저 목소리는 매일같이 듣는 낯익은 목소리였다.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자 역시나 검은 연기를 헤치고 나타난건 어께에 바주카포를 맨 소고였다.
저녀석이 여긴 어쩐일이지?
얼떨떨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소고는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콘도상이 찾더라구요. 빨리 안오면 저녁 없답니다."
머릿속이 점차 혼란해졌다. 녀석이 날 공격했단건 날 보고 있었다는 말이고, 그때 난-
... 소고는 어디서 부터 보고있던걸까.
그렇게도 무사도를 강조하던 날-뭐라고 생각할까.
어려서부터 기르다시피 했던 녀석인데 날- 어떻게 생각할까.
위서....ㄴ......
"뭐해요 얼른 안일어나고. 나 바쁜 몸입니다."
하지만 소고는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않은채 평소처럼 날 재촉해왔다.
무슨 생각이지? 어째서 아무말도 않는거지?
"아...으응..."
잠시 주춤했던 나는 녀석의 손을 잡았다. 녀석은 내 손을 세게 잡아왔다. 화가난...건가?
소고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자 저 편에서 주저앉아있던 그가 씩씩대며 다가왔다.
그리곤 내 어깨를 잡으며 녀석에게 으르렁거렸다.
"너이자식-이게 무슨짓이냐?!죽을 뻔 했잖아!!"
탁-
"만지지 마시죠. 안죽었으니까 된거 아닙니까 백수형씨. 여기저기 지저분한 짓 벌이지 말고 그만 비키시죠-"
소고의 '지저분한 짓' 이라는 말에 움찔했다. 역시나 다 보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그런 짓을 저지른 내게도 화가났나보다.
그런데 소고의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이 전에없이 매서웠다. 그가 진심으로 화내는 것은 처음보았다..
내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점점 세지는 악력이 생각보다 커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뭐-?! 지저분한짓? 어디가 지저분한 짓인데?앙-?!"
소고에게 으르렁대는 그는 마치 야차마냥 무서웠다.
헐렁해 보였던 아까와는 분위기가 천지차이였다. 우리쪽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던 종업원이 꽁지가 빠져라 도망갈 정도로.
내 어깨를 잡은 그의 손은 탁 뿌리친 소고는 아직도 혼란스러운 날 이끌고 그 곳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 착각일진 모르나 가지말라는 것 같았다.
자꾸 뒤를 돌아보는 날 소고는 세게 붙잡고 더욱 빠르게 걸어갔다.
둔영으로 가는 길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석은 녀석대로 냉랭하고 나는 나대로 녀석에게 변명할수도 없고..
하지만 더이상 이대로 어영부영 지나갈 수 없었던 나는 둔영이 희미하게 보일 때 즈음 입을 열었다.
"..저...소고.."
"네, 히지카타상."
앞을 바라본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대답하는 녀석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그런 소고의 목소리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역시..난 녀석에게 실망을 안겨준건가.
"아,아까 그 일은.."
"말하지 마십시요."
"아..."
화가 단단히 났던걸까. 이젠 나란놈이 진절머리나게 싫어져 말조차 듣기 싫은걸까.
미운정이라지만 그 정이 단단히 든 녀석이었던지라 상실감이 머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내겐 소중한 가족같은 녀석이었는데..
"화난거 아닙니다."
"..으응?"
"실망한 것도 아닙니다."
"..."
하지만 날 향해 돌아서는 녀석의 얼굴은 평소와 별 다를것이 없어보였다.
그 사실이 의아해 뭐라 하려 입을 열었지만 이어지는 녀석의 말에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말 안해도 어찌된건지는 대강 아니까 말하지 말라고요."
"어, 어떻게.."
내 대답에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헝크린 녀석이 내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뻔한거 아닙니까. 히지카타상이 말더듬는걸 백수형씨가 알아채고 그걸로 울궈먹고 있던 중 아닙니까."
백수..형씨? 그를 잘 아는 듯한 말투였다. 그를 이미 알고있었던건가?
"..그, 그남잘..아,알아?"
"...어쩌다 보니까요."
소고가 그를 알고있었다니. 얼떨떨한 내 얼굴을 보며 작게 투덜거리던 녀석은 오랜만에 내 손을 잡고는 둔영쪽으로 당겼다.
"콘도상이 몸보신되는 저녁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늦게 오면 저녁 없대요."
이미 뒤돌아 서서 소고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걱정이 마음깊이 와닿았다. 따스하다.
하지만 소고, 고맙긴 한데.. 앞으로는 그러지 않아도.......
7.
-
그날 이후 난 이주가량 둔영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려고 할때마다 소고가 휴식이 필요하단 명목으로 다시 끌고들어왔기 때문이다.
단 이주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르지 않는 갈증처럼 그가 보고싶었다.
"소, 소고...제발..!"
"안되요, 히지카타상. 지금 딱봐도 요양이 필요한데 어딜간다고 그러는겁니까."
또, 이번에도 몰래 나가려는 날 소고가 붙잡았다. 왜? 왜지?
요양이라는 것이 핑계라는건 잘 알고있다. 신센구미에서는 감기몸살쯤은 아픈것으로 치지도 않았으니까.
게다가 이주라는 긴시간동안이면 일반인도 이미 낫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소, 소고 대체 왜이, 이러는거야?!"
"왜긴요, 히지카타상이 더 잘 알잖아요."
설마..내가 부끄러운건가..
말더듬는 부장이 밖에 나가서 아무한테나 우습게 보이고 약점잡히는것이..부끄러웠던 건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자 힘이 쭉 빠져버렸다.
역시.. 그랬던 건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고가 날 이렇게 둔영에만 붙들어놓을 이유가 없었다.
힘껏 버둥대던 팔다리의 힘이 빠졌다. 고개를 푹 숙인채 뒤돌아섰다.
그래..신센구미의 체면을 땅에 떨어트리느니 차라리 내가 이곳에 숨어있는게 나을 것이다.
"..부,부끄러운 거였...구나."
"..네?"
"내가..마, 말을 더듬어서..아, 아무한테나 우습게 보, 보여서.."
"..."
역시 아무말 하지 않는다.
헛웃음이 나왔다. 난 왜 이걸 이제야 안건가. 진작 알았다면...
"미안..내, 내가 진작 눈치 챘다면...시, 신센구미를 부끄럽게 하,하는 일은 없었을텐데...미안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곤도와 소고, 그리고 신센구미 대원들 모두가 날 얼마나 배려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런 그들에게 피해만 주고 있었을 뿐인 것이었다.
"..아니에요."
천천히 내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뒤에서 소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발걸음이 멈추어섰다. 소고의 목소리가 조금 젖어있었기 때문이다.
왠지모를 느낌에 뒤돌아 서지 못했다. 그럴린 없지만 소고가 울고있는 기분이었다.
"아니라구요. 히지카타상..당신은. 당신은 몰라.."
뭘 모른다는거지?
척척하니 젖은 그 말에 망황히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손바닥에 땀이 고였다.
"..나가든지 말던지 맘대로 해요."
그 말을 뒤로하고 소고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왠지모르게 엿보면 안될것을 본 느낌이었다.
"아.."
생각을 털어내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모른다. 나는 모른다.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눈을 질끈감고 무작정 달렸다. 중간에 사람들에게 부딪히기도 했지만 무작정 달렸다.
모른다. 모른다.
정신을 차렸을때는 낯이 익은 동네였다.
내가 왜 여기까지 온걸까.
"어라? 형씨 오랜만인데? 그동안 뭐한거야? 대체."
익숙한. 아니, 익숙해진 목소리.
그 목소리가 심장을 거세게 뛰게 만들었다.
아. 왜 이곳에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그가 보고싶다.
내 마음속에서 쉴새없이 속삭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고싶다고.
"긴토키..보고싶었..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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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프가 계류유산됐대...내가 말실수한건지 봐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