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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팬픽 / 찬백팬픽 / 찬열x백현

장르는 판타지/모험/코믹물/중장편 입니다 ^ㅡ^

이 글은 제가 쓰는 시리즈 중 1부에 해당되며 오늘부터 2부... 쓰고있습니다 ><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모티브로 한 팬픽입니다 :)

사실 커플링이라고 붙이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찬백이가 서로 사랑하는건 아니구요

그렇다고 커플링을 빼기엔 미묘한 게이게이한 면이 있어서 넣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ㅠㅠ ㅎㅎㅎ


[EXO/찬백] Tree of Life (생명의 나무) | 인스티즈


제가 직접 그린 소설속 백현이... //ㅅ//



재미없더라도...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_ _)





w. 반찬백반





칠흙같은 어둠속 검은 돛이 달려있는 배가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유령선이 등장한 것 처럼 배의 주변은 철썩 철썩 얕은 파도가 치는 것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개와 어둠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배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고 뱃머리에는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그 사람은 남자였다. 남자는 흐르는 바닷물을 보며 주머니에서 총들을 꺼내 총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가 칠칠 맞아도 그렇지, 그 칼을 잃어버리다니…."


자기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듯 연신 한숨을 내뱉으며 총의 녹슨 부분을 닦아내었다.

한숨을 내뱉는 남자의 짙은 눈썹은 한숨을 쉴 때마다 씰룩거렸고 장난기 가득한 눈매는 축 처져있었다. 반듯한 이마를 가린 두건 아래로 보이는 뾰족한 귀와 이마를 타고 내려오는 높은 콧날은 남자의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만들었다.

남자는 쭉뻗은 자신의 다리 옆에 손질한 총 하나하나 놓으며 중얼거렸다. 내일 우리 멍뭉이를 어떻게 깨울까. 일어나면 칼부터 다시 맞추러 가자고 해야지.

남자의 즐거운 상상을 방해하는 듯 아래 계단에서 누군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턱- 턱- 거칠게 올라오는 소리에 남자는 손질하는 총에서 눈길을 거두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남자가 자신을 보기 기다렸다는 듯 배가 툭 튀어나온 늙은 선원은 남자에게 비틀비틀 술냄새를 풍기면서 다가가며 말을 건냈다.


"선장님."


항상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자다. 그가 오밤중에 왜 나를 찾지?


"한밤중에 자지않고 나는 왜 찾아? 내 잘생긴 얼굴 보고싶어서?"


평소대로 능글맞게 대응해줬다. 원래대로라면 욕지거리라도 뱉어야 할텐데, 표정에 미동이 없다. 남자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무슨일인데? 할 말있어?"

"할 말이야, 있습죠."


무언가 불안한 듯 연신 양손을 비비며 잠시 망설이던 선원은 이내 결심한 듯 남자에게 다가가며 품에서 총을 꺼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반란을 꿈꿔왔습죠. 갑판장님이 캡틴이 되는것을! 선장님은 곧 쫒겨날거요. 클클클…."


누런 이를 드러내 미친놈처럼 웃으며 자신을 향해 총을 삿대질하는 선원에 기가 찬 남자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게 무슨말이냐. 하고 묻기도 전에 선원은 그의 총머리를 자신의 등에 두었다. 자신의 등에 총을 겨눈 선원은 남자가 입을 때기도 전에 총을 발사했다.

순식간이었다.

선원의 피가 남자의 옷과 하얀 얼굴에 튀었고 선원은 일그러진 미소와 환희에 빛나는 눈을 번뜩이며 뒤돌아 배에서 뛰어내렸다. 남자는 떨어지는 그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었다. 물거품만이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선원이 한 말을 되씹었다. 내가 쫒겨나게 되다니?

일단 피를 닦으려 몸을 트는순간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모든 선원들은 일어나라!! 당장!!"


술에 절어 배위에서 잠들어있는 선원들 사이로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누군가가 선원들을 거칠게 깨우고 있었다. 밤눈이 좋은 남자는 깨우는 자가 백현이란걸 알 수 있었다.

백현도 선원을 깨우다 말고 고개를 두리번 거리더니 뱃머리에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한걸음에 그쪽으로 다가왔다. 남자가 백현에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지만. 백현의 표정은 그저 싸늘할 뿐이었다. 그리고 백현은 남자에게 총을 겨눴다.

남자는 손질한 총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천천히 피묻은 손을 뒷통수로 올렸다. 그런 남자의 모습을 보고 백현은 총을 겨눈채 그에게 다가갔다.


"박찬열, 내 아버지가 살해당하셨어."


목메인 목소리로 백현은 찬열이라 불리우는 남자의 심장에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아버지 손끝에는 다잉메세지가 있었어. 그 글자는 '찬열'이었고."

"백현아, 오해야. 내가 그런게 아니라…"

"닥쳐! 네 몸, 얼굴, 손에 묻은 이 피들은 뭐고!?"


처음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찬열이 잠깐 망설이는 사이 백현이 악에 받친 듯 그에게 소리 질렀다.


"너를 친아들처럼 여기며 키워줬고 이 블랙펄의 선장에 되도록 도와준 아버지를 어째서!!!"

"아니야! 이 피는 네 아버지 것이 아니야. 내 말 좀 들어!"


찬열이 손을 내려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시선을 맞췄다. 백현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들며 그를 바라보았다. 적의가 사라진 눈동자를 바라보며 찬열이 설명을 하려는 순간 아래서 소리가 들려왔다.


"갑판장님!! 시신 아래에 이런 칼이 있습죠!! 선장님의 칼입니다!"


순간 눈동자에 살기가 가득해지며 고개를 팍 돌린 백현이 달려가 칼을 확인했다. 자신을 생각한다며 강아지 문양을 칼 손잡이에 세겨넣은 칼의 주인. 확실했다. 찬열의 칼이었다.

백현의 손에 들려있는 칼을 보며 아득해진 찬열이었다. 어제 없어진 칼이 저기에 있다니! 찬열이 급하게 백현에게 달려가 말했다.


"내 칼은 어제부터 없어져있었어. 내가 왜 너의 아버지를 죽이겠어!? 백현아, 백현아!"


절박하게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어깨를 세게 움켜쥔 찬열을 보며 이미 표정을 굳힌 백현은 그의 얼굴을 보며 조소를 지었다.


"내가 반란이라도 일으킬까봐 겁이라도 났겠지."


백현의 말과 동시에 칼을 치켜든 선원들은 고함을 지르며 찬열에게 달려들어 찬열의 몸을 밧줄로 꽁꽁 묶었다. 백현아! 오해야! 내 말을 들어봐! 찬열의 외침을 뒤로하고 백현은 눈을 질끈 감으며 그를 감옥에 가두라고 명했다.

음모다. 스스로 자살한 그 인간도 그렇고 어제 없어진 내 칼이 그 시신 밑에 있다는 것도!… 누가 그런거지? 분해 이를 가는 찬열의 앞에 누군가가 살금살금 걸어왔다. 누군지 얼굴을 확인한 찬열은 금방 미소가 얼굴에 퍼졌다.


"민석이형!"

"쉿!… 아직 선원들 사이에 어지러운 틈을 타서 온거니까 조용히해. 잠깐 얼굴 보러 온거야."

"날 믿는거죠?"

"말이 더 필요해? 당연하지. 백현이 지금 아버지 돌아가신 것 때문에 판단력 안서는거 딱 보이는데 뭐. 이성 되찾으면 널 바로 꺼내줄거야. 백현이 괜찮아지는 기색 보이면 내가 설득해볼게."

"고마워요. …형은 누가 아버지를 살해했는지 짐작가요?"

"아니…."


민석은 골똘히 생각하다 누군가 저 멀리서 걸어오는 소리를 듣고 찬열에게 미안하다. 가볼게. 하는 말과 찬열의 옆을 떠났다. 이어 감옥의 앞에 나타난건 크리스와 타오였다.


"크리스…. 타오."


평소에 친하지 않았던 그들, 아니 오히려 자신을 경계하는 듯 했던 그들이 온 것에 찬열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의 이름을 말했다. 찬열의 표정을 보며 크리스는 그를 비웃으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것에 너무 원망은 하지 말라고."


원망을 하지마? 이렇게 된 거에?


"다음은 변백현 차례니까."


저 말은 곧…!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린 찬열이 눈을 번뜩이며 분개했다.


"그럼 백현이 아버지를 죽인 것도…!!"

"그래. 나야."


크리스는 담배를 태우며 연기를 찬열의 얼굴에 훅 내뱉었다.


"생명의 나무로 가는 해도의 일부를 네가 갖고 있다지?"


그 말과 동시에 찬열의 목을 움켜잡은 크리스는 타오에게 눈짓을 주었다. 타오는 그의 옷을 끌어당겨 안쪽 주머니에서 납작하고 울퉁불퉁한 돌조각을 꺼냈다. 돌조각의 오른쪽 위에는 나무 형상의 그림과 문자가 파여있었다. 타오에게 돌을 받아든 크리스가 돌을 품속에 넣으며 그를 노려보는 찬열에게 미소를 지었다.


"나머지 하나. 백현이 것과 합치면 해도가 완성되겠지."


크리스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일어서려고 하자 그들을 조용히 노려보던 찬열이 얼굴에 조소를 띄웠다.


"그 해도를 풀 수 있는 비밀은 아나? 단순한 돌멩이 나부랭이를 합치면 끝날 것 같지?"


크리스의 눈썹이 꿈틀했다.


"오직 나와 백현이만 안다. 자기가 승리한마냥 웃는 꼬라지 하고ㄴ… 컥!"


순식간에 크리스가 철창 사이로 손을 넣어 찬열의 목을 움켜쥐었다. 찬열은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듯 계속 컥컥 거렸다. 이글거리는 눈빛을 언제 냈냐는 듯 손에 힘을 푼 크리스는 그에게 속삭였다.


"난 네가 처음부터 싫었어. 뭐라도 되는마냥 백현이 주변에 얼쩡대고 백현이랍시고 칼 손잡이에 강아지를 세겨 넣으며 설레발 치고. 늘 너희 둘은 죽고 못살았지."

"그건 그저 옛날부터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닥쳐. 어차피 그 낯짝도 바다에 쳐박히면, 이제 볼 수도 없겠지."


바다에 쳐박히다니? 찬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 찬열의 반응을 놓치지 않은 크리스가 읊조렸다.


"지금은 카이의 해역이다. 아까 들어섰지."


움찔- 찬열이 크리스의 말에 심하게 동요했다. 그런 그에게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크리스는 타오에게 수갑과 족쇄를 묶은채 그를 바다에 빠트리라고 명령했다.

몇 분 후, 찬열은 검푸른 바다에 떨어졌다.





"미안하지만, 질투가 나는걸 어쩌겠어."

바다에 퍼지는 물거품을 보며 크리스가 중얼거렸다. 백현이를 가지려면, 미안하지만 네가 사라져줘야겠다. 질투에 못 이긴 날 용서해라. 크리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목에 묶인 팬던트를 바닷속으로 던졌다.




비단, 옷, 곡물, 채소 등 가득 들어있는 상자들이 배에 채워지고 있었다. 세훈은 강아지풀을 입에 물고 상자 옆에 앉아 농땡이를 피우고 있었다. 바다로 나가고 싶다…. 해적이 되고 싶다! 탁 트인 푸른 바다를 보며 세훈은 즐거운 망상에 빠졌다.
영국에 가면 그리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많다지? 양 팔에 아가씨 끼우고 술마시면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지!"

"지상낙원 좋아하네!!"


행복한 듯 외치는 세훈의 등을 뻥 발길질한 루한은 두건을 고쳐쓰며 씩씩거렸다.


"세훈!! 농땡이 그만 안펴?"


바다에 떨어질 뻔 했잖아! 세훈이 입에 물고있던 강아지풀을 뱉으며 투덜거렸다. 세훈이 투덜거리든 말든 루한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빨리 끝내지 하며 감자가 가득 담긴 상자를 세훈에게 건냈다. 그리고 옆에 3개나 쌓아둔 상자를 끙차- 하고 품에 안더니 앞으로 휙 가버렸다. 이상하다 언제부터 저 형이 저리 힘이 좋았지? 세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루한의 상자를 살펴보았다. 그럼 그렇지. 김 상자였다.


"나한텐 무거운 감자 상자나 주고… 자긴 가벼운 김 상자나 들고…."


세훈은 입술을 삐죽이며 상자를 들어올렸다. 워냑 무거워 잠시 휘청이는 사이 감자 몇 알이 데굴데굴 굴러 바다속으로 떨어졌다. 아우 아깝다. 입맛을 쩝쩝 다시며 나머지 감자가 든 상자를 배 위로 옮겼다.

짐 상자들이 모두 운반되고 배는 출항하였다. 붉은 햇빛이 넘실대는 곳으로 떠나는 배를 보며 세훈은 판자에 주저앉았다. 멍하니 바다를 보는 세훈을 보며 세수를 마친 루한이 세훈의 옆에 주저앉았다.

세훈이 떠나가는 배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것을 보는 것도 몇 년째. 바다에 나가고 싶어하는 세훈을 잘 아는건 루한뿐이었다. 멍하니 붉은 노을 빛 바다를 바라보는 세훈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루한은 자신의 왼쪽 손매를 걷어 올렸다.


"나 문신 다 만들었어."


루한은 기쁘다는 듯 곱게 웃으며 가는 팔목을 세훈 앞에서 흔들었다. 세훈은 무슨 문신?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루한의 왼쪽 손목에 세겨진 문신 모양은 자신의 왼쪽 손목에 세겨져있는 문양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세훈은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똑같지? 하며 자신의 팔을 세훈의 팔에 교차시키는 루한을 보며 세훈도 슬핏 웃었다.


"이런걸 뭐하러 했어… 그리고 난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건데."


문신 하는거 아픈데…. 세훈이 중얼거렸다. 그런 중얼거림을 놓치지 않은 루한은 그저 우정의 징표? 하고 해맑게 웃었다.





「해적들에 대한 경고」

마을 입구마다 저런 경고는 흔하게 보았다. 하지만 저렇게 강한 경고는 처음인데?…. 찬열은 목만 잘려 걸린 얼굴들을 보며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게다가 한쪽은 까마귀에게 파먹히고 있다…. 찬열은 몸서리 치며 선실에서 나왔다.

지금은 저녁이 다 되가니까 다른 선원들이 선실에 들어올 것이다. 약 몇 분 정도만 몸을 숨기고 있으면 마을에 도착할 것이다.

무역 배에 몸을 숨기며 목숨을 연명해오는 것도 5년 째였다. 블랙펄에 다시 가야하는데…. 다시 백현이를 봐야하는데…. 넓디 넓은 바다에서 피튀기며 싸움을 하고 보물을 찾는 해적선이 일반 항로로 운항하는 무역 배와 마주칠리는 없었다. 그리고 블랙펄이 마을로 쳐들어오지 않는 이상 마을에서도 보기 힘들다.

블랙펄을 다시 만날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은 어느정도 예상 한 바였지만…. 찬열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블랙펄을 만나지 않은 것은 백현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행운이기도 했다. 그들보다 내가 먼저 '그것'들을 찾아야 하니까.


"꺼억- 럼주가 다 떨어졌네…."


왠 늙은 선원이 트름 시원히 하고 비틀비틀 술 창고로 걸어오며 럼주 타령을 했다. 아씨, 선실에 럼주 잔뜩 안챙겨가고 뭐한거야? 찬열은 투덜거리며 술더미 속 사이로 몸을 낮췄다. 대부분 이 시간대면 걸신들린마냥 밥먹는게 정상인데…. 해적도 아니면서 이 시간대에 술을 왜 먹는거야? 그런데 저 인간이 이쪽으로 온다. 내가 있어서 술도 잘 생겨 보이는건가? 술에서 후광이 빛나는건가? 훠이! 저리가!!


"어? 누구야?"


낭패다.

찬열은 재빠르게 일어나 옆에있는 술로 선원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와장창! 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늙은이가 쓰러졌다. 찬열이 한시름 내려놓기도 전에 뒤에서 무언가가 갑판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휙- 고개를 돌리니 깨진 병을 들고 있는 찬열과 엎어져있는 사람을 본 한 꼬맹이가 입을 벌린채 멍하니 서있었다. 찬열이 꼬맹이에게 뛰어갔지만 꼬맹이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찬열과 그의 차림새를 보고 문밖으로 나가 해적이다!! 해적이야!!!! 하고 비명을 질렀다.


"난… 왜 항상 술취한 인간들이랑 이리 재수없게 꼬이는거지?"


찬열은 자신의 주위로 둘러 쌓인 선원들을 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집에서 저녁을 만들고 자신들을 기다릴 준면을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세훈과 루한은 뻥- 하는 소리에 뒤돌아 보았다. 저 멀리 들어오는 배에서 빨간 신호탄이 노을 빛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다. 붉은 탄은 해적이 발견 되었을 때 배에서 쏘아올리는 건데….


'해적?'


또 다른 해적이 오나보다. 가슴이 설렜던 것도 잠시, 분명 다른 해적들처럼 목이 메달려 죽고 까마귀들에게 시신이 먹히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실망감이 밀려왔다. 세훈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눈치 챈 루한은 세훈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가자, 준면이 기다려."


그래도, 그래도…. 미련이 남는다. 하지만 집에 있을 준면을 생각하며 세훈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해군들이 총을 들고 오는 것이 보인다. 손목은 밧줄로 묶인 상태. 양 팔은 냄새나는 더벅머리들에게 잡힌 상태. 찬열은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해군에게 끌려가는게 낫지. 퀴퀴한 냄새 하고는…. 끌려가더라도 내 외모에 맞게 품위있게 끌려가고 싶다. 찬열이 투덜거리는 사이, 배는 항구에 도착했다.

찬열이 해군들 앞에 끌려나가고 그들 주변에는 금방 사람들이 몰렸다. 찬열의 양팔에서 팔을 푼 남자들은 해군 앞에 찬열의 무릎을 꿇게 했고, 한 해군이 찬열의 소지품을 빼앗기 시작했다. 찬열의 소지품들이 찬열 앞에 가지런히 놓여지고. 장교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어디보자…. 오호, 누군가 했더니."


찬열의 오른팔을 걷어보더니 장교가 그를 비웃었다. 그의 오른팔에는 알찬 열매가 그려져 있었다.


"박찬열 아닌가? 명색의 해적 영주께서 잡혀드셨군 그래."

"미남 박찬열."


찬열은 미남이란 단어를 강조하며 그의 비웃음을 맞받아쳤다. 그런 그의 반응에 장교는 건들거리며 그의 소지품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오래된 총 두자루. 낡아빠진 모자. 녹슨 단도. 짧은 망원경. 유치한 개새끼 그림있ㄴ…"


장교가 찬열의 칼 손잡이를 잡으며 칼을 빼내자 찬열이 재빠르게 칼에 자신의 팔을 갖다대어 밧줄을 끊었다. 그리고 장교의 주머니에 꽂혀있던 총을 빼내 그의 멱살을 쥐고 자신쪽으로 끌어 당겼다. 까득- 총알을 장전시킨 총을 장교의 관자놀이에 갖다대었다. 장교가 부들부들 떨자, 찬열이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그의 귀에 속삭였다.


"허세는 이쯤하고 내 물건 좀 다시 입혀주겠어?"


찬열의 행동에 해군들이 총을 겨누자 못마땅하는 듯 찬열이 장교에게 다시 말했다.


"저 짜증나는 것들도 치우게 하고."

"총 내려라!"


해군들이 주춤하자 장교가 다시 윽박질렀다.


"내리라니까!"


모든 해군들이 총을 내리고 차렷 자세로 서자, 장교가 찬열에게 빌어먹을 자식… 하며 모자, 총, 단도, 망원경, 칼 모두 씌워주었다. 그런 장교 반응에 영주가 괜히 영주겠어? 하며 찬열이 능글맞게 받아쳤다. 그리곤 장교의 관자놀이에 총을 꾹 누른채 해군들을 향해 외쳤다.


"친애하는 해군여러분! 그리고 장교나으리."


씨익- 웃는 찬열의 모습에 해적이라도 설레는 마음을 주체 못하는지 여럿 여성들의 탄성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다섯 해적 영주 중 최고 미남 얼굴을 감상한 날이 될테니 밤에 괜히 설레지말고 발닦고 다리 쭉뻗고 잘자길 바래. 난 게이가 아니니까 말야. 그리고 이 총은 기념으로 가져가도록 하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찬열은 장교을 바다에 밀어버리고 군중들 사이로 뛰어갔다. 해군들이 장교을 바다에서 건져내느라 허둥대는 사이 찬열은 멀리 도망갔고 뒤늦게 꼬라지가 엉망진창이 된채 바다에서 나온 장교는 총살하라! 하며 명령했다.





"밖이 왜 이리 소란스럽지?"


준면은 설거지를 하다말고 밖을 내다보았다. 해군들이 횃불을 들고 정렬을 맞춘채 어둠 속에서 어지럽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마 해적이 들어와서 그럴껄? 아까 붉은 신호탄 봤어."


루한이 이불을 펴며 말했다. 여자들이 말하는걸 들었어…. 박찬열이라던가? 루한이 중얼거리든 말든 창문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바다를 바라보는 준면의 표정이 굳어갔다. 그게 아닌거 같은데…? 분명 저 멀리 보이는건 배다. 어둠속에서도 확실히 보였다. 그리고 달빛 아래 비춰지는 해골 깃발과 검은 돛.


"루한이 형! 세훈아! 대문 꼭 걸어잠궈!!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얼른!!"


왜? 하고 묻는 세훈에 준면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면서 말하였다.


"해적선이야! 단순한 해적이 아냐!"


해적선이라니? 놀라는 것도 잠시 세훈과 루한은 얼른 대문을 잠궜다. 그리고 평소 연마해오던 칼을 챙겼다. 준면은 평생 칼의 칼자루도 만져보지 못했지만 세훈은 어렸을 때부터 꿈꿔오던 해적 때문에 하루하루 몇 시간씩 칼 다루는 연습을 했던 것이다. 루한은 그런 세훈의 파트너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실력이 늘었다.

달그락-

그새 해적이 문을 뚫고 들어온건가? 방 안에 있던 세훈이 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리 난 쪽으로 뛰쳐나갔다.


조용조용 들어왔는데 문틈에 쇳덩이가 끼어있었을 줄이야…. 문을 여는 순간 쇳덩이가 빠져 큰 소릴 냈다. 아무것도 없는 마굿간에서 찬열은 떨떠름한 표정을 하며 숨을 만한 공간을 찾았다. 우당탕탕- 계단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신보단 아니지만 꽤나 키가 큰 사내가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눈다. 그리곤 그가 조심스래 물었다.


"해적인가?"

"해적의 영주, 미남 박찬열이지."


조심스럽게 물어보는데 그에 걸맞게 대답해줘야지. 찬열은 빙긋 웃으며 생각했다. 그런 그를 보며 세훈은 찬열에게 칼을 휘둘렀다. 웃으며 방심했던 찬열은 갑작스럽게 공격해오는 세훈에 당황해하며 칼을 맞받아 쳤다.

챙- 챙-

달빛이 스며 들어오는 빈 마굿간에서 짚을 휘날리며 두 사내가 칼을 휘둘렀다. 아래, 위. 찬열이 휘두르는 곳마다 잘 막아낸다. 자신보다 어려보이는데 연무를 꽤나 한 솜씨다. 찬열은 기둥들을 흘끗 쳐다보았다. 기둥마다 칼자국이 움푹 패여있다.


"꽤 잘하는데? 이 곳은 연무하는 공간인가보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해왔다."

"왜지?"


챙-! 강한 파음이 울리며 검이 부딪혔다.


"당신같은 해적을 무찌르고 내가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다. 난 바다에 나가고 싶거든."


호오- 그렇단 말이지? 그의 당찬 말에 씩 웃은 찬열은 그의 검을 쳐낸 후 장화 굽으로 땅바닥을 힘껏 쳤다. 바닥이 움푹 파이며 돌멩이들과 흙먼지들이 세훈의 얼굴에 강타하였다. 눈을 못뜨게된 세훈은 눈을 감고 콜록거렸다. 콜록 거리는 사이 찬열은 세훈의 칼을 발로 찼고 그를 향해 총을 겨눴다.


"비겁해!"

"해적이니까."


웃으며 대답해준 찬열은 총을 장전시켰다.


"검 실력은 충분히 좋아. 다만, 싸움에 있어서 좀 더 비겁해져야 되겠어. 해적 꿈나무씨."


찬열의 말에 입을 열려던 세훈은 콰광-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러운 폭발 소리에 놀란 두 남자는 작은 창문을 통해 집안을 들여다 보았다. 저자들은…! 낯설지 않은 자들의 얼굴이다. 찬열은 세훈에게 속삭였다.


"오늘 들어온 해적선을 보았나?"


도리질 치는 세훈을 보며 찬열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제발… 블랙펄만은 아니길. 아직은 만날 때가 아니다.



세훈을 기다리던 루한과 준면은 방을 부수고 들어온 해적들과 대면했다. 준면은 루한의 뒤에서 덜덜 떨었고 루한은 두말할 것 없이 칼자루에서 칼을 빼들고 싸웠다. 허나, 세 명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는지 루한의 손에서 칼은 튕겨져 나갔고 목에 칼이 겨눠졌다.


"우린 그저 너희들 왼쪽 손목만 보면 된다."


무리 중 한 명이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루한에게 손목을 보이라고 손을 뻗었다. 루한은 잠시 망설이며 왼팔을 들었다. 해적들은 그의 소매를 거칠게 끌어올렸다. 그리고 손목에 그려진 문양을 보고 미친듯이 웃더니 끌고가! 하며 루한을 속박했다.


"루한이형!!!"


해적들은 루한에게 손을 뻗으며 소리지른 준면을 낚아채어 그의 왼쪽 손목을 확인하였다. 잠시 어리둥절 한듯 보였으나 칼을 치켜들고 환희의 비명을 질러대었다. 이게 왠 럼주야!! 그들은 루한과 준면을 끌고 아랫층으로 내려왔다.



위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린 듯 싶더니 누군가가 내려온다. 벌거숭이들에게 잡혀서 내려오는 준면과 루한을 본 세훈이 저 개새끼들!! 하면서 뛰쳐 나가려 하자 찬열이 그를 붙잡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정의감도 상대를 가려서 하던가!"

"저들은 내 가족이란 말야!!"


찬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던 세훈이 찬열에게 금방 압도당했지만 아래서 깔린 세훈이 계속 발버둥 치자 찬열이 그의 이마에 총을 갖다대었다. 자신의 이마에 닿은게 총이란걸 알자 세훈의 반항은 줄어들었지만 눈빛만은 사납게 빛났다.


"이래야 대화가 통하는건가?"


찬열이 그의 멱살을 풀고 옆으로 몸을 비키자 세훈은 그를 거칠게 밀어내며 씩씩거렸다.


"니 가족을 끌고 나간게 누군진 알아?"

"내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내가 니보다 나이 많다. 존댓말 써."


그래도 세훈이 못들은척 하며 이 곳에서 벗어나려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자 찬열이 총으로 세훈의 머리를 빡 쳤다.


"아!! 왜때려!! 왜!!!"

"요 안붙여 요?!"


요 붙일 때까지 때릴 기세인 찬열에 세훈은 울먹이며 그만 때려요 그만!! 하며 소리질렀다.


"이제 존댓말 붙이네."

"근데 저들은 누군데요."


아씨 혹난거 같아…. 머리를 문지르며 세훈이 묻자 찬열이 총을 꽂으며 대답했다.


"블랙펄의 선원들."

"블랙펄?"

"유일하게 해적선 중 검은 돛을 달고 있는 배지. 해적선 중에서도 으뜸이기도 하고."

"그럼 왜 저들이 내 가족을 끌고 가는건데요?!"

"가능성은 두 가지. 첫째, 얼굴이 반반하니 따먹으려고 데려갔거나."


그 말에 바로 벌떡 일어나 나가려는 세훈을 저지한 찬열이 말을 이었다.


"둘째, 내가 찾는걸 먼저 선수쳤거나."


두번째 말을 하는 찬열의 표정이 아까와 다르게 무덤덤했다. 내가 찾는 것?


"형이 찾는게 뭔데요?"


찬열은 그를 빤히 쳐다보다 괜한 억울함을 느꼈다. 얘는 내 이름을 아는데 난 모르잖아? 물론 내 자발적인 소개였지만.


"네 이름이 뭐지?"


"…오세훈이요."


오씨?… 흔하지 않은 성이다. 찬열은 그의 이름을 되뇌이다 너 왼손 좀 내밀어봐. 하고 손을 뻗었다. 세훈이 왼손을 내밀자 그의 손목을 확인한 찬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토록 찾는 것이 눈앞에 있는게 당황스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혹시 이 집안 사람들 중 다른 문양이 손목에 그려져있는 사람이 있어?"

"준면이 형은 물방울 모양이 있고 루한이 형은 절 따라한답시고 손목에 이 모양을 문신으로 세겼는데요?"


세훈의 말에 찬열이 허탈한 듯 웃어댔다. 이것 참 일이 꼬였다. 두 명이 잡혀갔는데 한 명은 진짜고 다른 한 명은 가짜고. 그 가짜의 진짜가 내 앞에 있고. 아까 끌려가던 두 명이 설마 두 개의 문양을 다 갖고 있는 사람이면 어쩌나 했던 불안감이 사라지고 여유가 생겼다. 아직 내가 지지 않았다. 승산이 있는 게임이다.


"전 가족들 찾으러 갑니다. 수고하세요, 영주씨."


그대로 가버리려는 세훈을 찬열이 급히 붙잡았다.


"블랙펄에 혼자서 가기엔 무리야. 그 수 많은 해적들을 어떻게 상대하려고?"

"몰래 들어가서 내 가족들만 빼오면 되요! 시간 없어요. 좀 놔요!!"

"오세훈. 나랑 동행하겠다고 약속만 하면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널 블랙펄에 데려다주마. 그리고 앞으로 며칠 동안은 네 가족은 절대로 안전할거야. 해적 영주 미남 박찬열 이름 걸고 맹세한다."


앞의 말은 믿음직한데 말의 마무리가 왜 저래? 이와중에 미남을 힘주어 발음하는 찬열에 세훈은 잠시 갈등이 생겼다. 믿어도 되는거지? 영주는 확실한거야?


"어떻게 그걸 장담해요?"

"이유는… 나중에 말해줄게. 어때? 나와 동행할래?"


동행한다고? 나랑 해적이? 자신의 앞으로 뻗은 찬열의 손을 보며 세훈은 가슴에 무언가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해적과의 여행. 드넓은 바다. 펄럭이는 자유로운 해적기. 세훈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배로 끌려오며 심하게 반항을 한 루한의 손목은 뻘겋게 쓸려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 했다. 누런이를 드러내며 웃는 이들과 자신을 한 주먹으로 죽일 수 있을거 같은 거대한 사나이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배에 자신이 있다니. 준면은 그저 이를 악물고 루한의 옆에서 떨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안그래도 준면이 형 겁이 많은데… 자신조차도 무서운 이 상황에서 울지 않는 형이 대견스러울 따름이었다.


"이자들인가?"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든 루한은 자신의 앞에 서있는 남자의 위에 내리빛춰지는 달빛 때문에 인상을 찡그렸다. 천천히 윤곽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이 배 사이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순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모자 아래의 두건을 쓰고 길게 내려오는 머리카락. 그 사이 진한 아이라인의 눈. 허나, 눈꼬리가 축 쳐진 눈은 아이라인을 해도 감춰지지 않았다. 그자는 백현이었다. 준면은 그저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고 루한은 백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소매를 걷어올려라. 확인을 해야겠다."


남자의 말에 예! 하고 우렁차게 대답한 선원들은 루한과 준면의 손에 묶인 밧줄을 풀어내고 그들의 왼쪽 소매를 찢어 백현의 앞에 들이대었다. 둘의 문양을 확인한 백현은 만족스럽게 씨익 웃었다. 확실하다. 아버지 설계도에서 보았던 그 문양이 확실하다. 다시 보름이 오는 날까지만 이 둘을 잘 지킨다면….


"이 두 분을 극진히 대접하도록."


얼굴에 퍼진 미소를 지운 백현이 말을 마치고 몸을 휙 틀어 선장실로 들어갔다. 백현이 들어가자 선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둘을 다시 포박했다.





날이 밝았다. 잠을 설친 세훈은 옆에서 팔자좋게 자고있는 찬열을 째려보았다. 얼씨구- 입가에 침도 흘리면서 잘도 잔다. 이쯤되면 깨워도 되겠지. 세훈은 그의 등짝을 두들겼다.


"일어나봐요 좀!"


등에서 느껴지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찬열이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나이도 한참 어린 녀석이 어른 주무시는데 때려? 원래 미남은 잠꾸러기인거 몰라? 고놈 손 맛 참 맵네. 차마 아픈걸 티내지는 못하겠고 아픈 등을 슥슥 문지른 찬열은 옆에 높은 칼을 허리춤에 차며 일어섰다. 세수를 한 뒤 창문을 열어 해군의 동태를 살펴보았다.


"재들은 잠도 없나…."


이른 아침까지 일자로 대열을 서서 빈틈없이 해안을 막고있는 모습이라니…. 찬열은 망원경을 든채 고개를 쑥 내밀어 시선을 부드러운 해안선에서 옆의 거친 바위쪽으로 옮겼다. 역시 저런 곳에는 보초를 서지 않았구만. 내가 저런 곳에 갈 거라고 생각은 못했나보지. 휑해보이는 거친바위 앞의 해안가에는 굴러다니는 작은 배와 포도주를 담는 통이 즐비하였다.

좋아, 저것들만 있으면 탈출은 식은 죽 먹기다. 그리고 저 앞에 정박되어 이는 해군 선만 빼앗으면 되는 것이다. 해안선 오른쪽 거친바위 앞에 있는 여러 작은 배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해군선. 해군선 반대쪽에는 무역선이 있다. 머릿속으로 도망칠 동선을 모두 짠 찬열은 웃으며 창문을 닫았다.

해안 쪽에 경비가 쏠린 탓인지 마을 거리에 돌아다니는 해군은 없었다. 게다가 이른 아침이라 지나다니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한적한 거리를 지나 거친 바위 쪽으로 갔다.


"해안까지 간다 쳐도, 배는 어떻게 구하려구요."


삼엄한 경비에 불안한 듯 세훈이 물었다. 그런 세훈에 찬열은 울퉁불퉁한 바위 뒤로 몸을 숙이며 걱정말고 따라오기나 해. 하고 앞으로 훌쩍 뛰어넘었다.




해군들은 새벽 내내 해적을 잡는답시고 해안에 서 있있더니 피곤하고 온 몸이 쑤셔오는 것을 느꼈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모든 해군들 뇌를 지배했다. 사람을 구별하기 힘든 야밤에 해적이 탈출할 것이라는 장교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안그래도 어제 저녁, 검은 돛이 달린 배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떠나, 장교의 눈에 독기가 서려있었다. 이미 떠나간 배는 못잡으니 아직 이 곳에 있는 낯짝 뺀질난 박찬열이라도 잡겠다! 이를 가는 장교에 누가 토를 다리오. 그저 몰려오는 졸음을 간신히 내쫒으며 경비를 설뿐이었다.

차가운 아침바람을 부는데 따뜻한 느낌이 온 몸을 타고 흐른다. 이상하게 여긴 한 해군이 뒤로 돌아섰다. 어제 마을로 들어온 거대한 무역선이 타고 있었다.


"무역선이 불에 탄다!!!"


이 곳의 물자를 제일 많이 실어나르고 들여오는 배다. 게다가 어제 들여온 식량은 풀지도 못했다. 해적들 때문에 골머리 앓는데 설상가상 이게 무슨일이냐며 장교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졌다.


"전원 무역선에 붙을 불을 꺼라!… 아니, 1조는 이 곳에서 대기한다! 해적 놈을 발견하면 즉시 보고하도록!"

"예!"


해군들은 우렁차게 대답했지만 바로 옆에서 작은 배가 뒤집어진채 지나가는 것을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소수를 남겨둔 나머지가 무역선에 붙은 불을 끄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무역선과 반대편에 있던 해군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쩡히 정박해있던 해군선이 움직이다니…! 장교는 망원경을 꺼내 배의 조종키를 잡고있는 자를 보았다.


"박찬열…!!"


남아있던 1조마저 자신이 발견하기 전에 보고할 생각을 할 커녕 우왕자왕 하는 모습을 보자 장교는 깊은 빡침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허나, 장교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떠나가는 배를 보며 이를 가는 것 뿐이었다.





"…지금 어디가는거죠?"


배를 뺏긴 빼앗았는데 자기한테는 말 한마디도 없이 나침반만 보며 조종키를 돌리는 찬열에 세훈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연히 블랙펄에 가는거겠지?


"내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엥? 블랙펄이 아니라? 계단에 주저 앉아있던 세훈이 벌떡 일어나 찬열에게 다가왔다.


"블랙펄엔요?"

"너 혼자 가는 것도 무리. 나 혼자 가는 것도 무리. 우리 둘이 가는 것도 무리. 블랙펄을 찾으려면 이 바다를 꿰뚫고 있는 친구를 데려와야지."


항해사를 말하는건가…. 세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틀어 바다를 바라보았다. 맑은 하늘 아래 저 멀리 뻗어있는 푸른 수평선을 바라보는데 찬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방울 문양이 그려져있다는 친구 이름은 뭐지?"

"준면이 형이요."

"그럼 성이 김씨나 도씨겠네."


그걸 어떻게…? 예전부터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대하는 찬열의 모습에 세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의 왼손 소매를 걷어 그에게 물어봤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이 문양에 대해서 알죠? 이게 뭘 뜻하는지…."


스스로 물어오는데 대답해 줘야겠지…. 찬열은 세훈에게 수영을 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세훈이 한 번도 없다고 하자, 찬열은 그에게 옷을 벗으라 말했다. 세훈의 눈이 휘둥그래지며 손을 양쪽 어깨로 교차해 X자로 만들었다.


"형, 혹시 그쪽 취향이세요?"


취향? 무슨 취향? 내가 제일 잘생기고 예쁘니까 상대방 얼굴 안보긴해. 강아지 같기만 하면 되거든.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오는 찬열에 세훈은 더 경악했다. 세훈의 얼굴엔 치한! 변태! 두 글자가 떠오르고 있었다. 설사 게이라 해도 내가 나만한 등치 가진애를 좋아할 일은 없을거다. 세훈에게 긴다리로 성큼성큼 다가가는 찬열은 세훈의 총, 칼을 벗겨내었다. 총, 칼을 벗겨낸 다음은 어딜 벗기게!? 이…이러지마세요! 난 아직-! 허우적 거리며 말을 더듬는 세훈을 볼 것도 없다는 듯 찬열은 그를 바다속으로 빠트렸다.

풍덩! 세훈은 긴 팔다리를 붕붕 돌렸다. 온몸에 처음으로 닿는 물의 감각. 지금까지 수영해본 적 아니, 물에 빠져본 적도 없는데! 불안한 것도 잠시, 세훈은 흐르는 바닷물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몸이 가벼워진다. 발로 물장구를 치니 몸이 앞으로 쭉쭉 나아간다. 우와-! 신나하는 세훈을 보며 찬열이 위에서 그만 올라오시지!? 하고 소리쳤다.

세훈이 배 위로 올라오자 어디서 구했는지 찬열이 그에게 여분의 옷과 수건을 던져줬다.


"바다에 빠지니 느낌이 어땠어?"


젖은 머리를 닦아내는 세훈이 신기했다는 듯 대답했다.


"몸이 굉장히 가볍고… 물장구 조금만 쳐도 몸이 앞으로 헤엄쳐졌어요."


그런 세훈에 찬열은 조용히 너는 바다의 엘프니까. 라고 말했다.


"네?"

"엘프라고. 날개없는 요정."


바다의 엘프? 지금 나랑 장난치는거 아니죠? 세훈이 벙쪄서 묻자 너가 나와같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널 데리고 바다에 나왔겠어? 하고 찬열이 대답했다. 무심히 대답하는 찬열과 달리 세훈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럼 이 문양도…?"

"그래. 지금은 멸종 상태인 엘프족의 상징이지. 내가 어렸을 때 본 마지막 엘프 후손의 아들 세 명 중 한 명이 너야."


준면이 자신과 배다른 형제라는건 알고 있었다. 세 명? 그럼 나와 형제인 사람이 한 명이 더 있다는건가? 아까 도씨랬지?


"아까 도씨인 그 분, 누군지 이름은 알아요?"

"아니 몰라. 그저 도씨가 한 명 더 있다고만 들었어."


아 그랬구나…


"그럼, 왜… 왜 엘프족이 실종되었어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찬열이 고개를 들이밀며 속삭였다.


"생명의 나무에 가려는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생명의 나무? 처음 듣는 단어에 어리둥절한 세훈을 보며 조종키를 돌렸다.


"생명의 나무에 가려면 엘프족의 피가 필요하거든. 소량의 피만 필요한데 소문이 과대 포장이 되어서 안그래도 희귀한 엘프족들은 인간들의 사냥감이 되었지. 결국 네 아버지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어."


조종키를 또 돌리며 찬열이 말을 이어나갔다.


"생명의 나무는 세상의 바다 중심에 있는 섬에 세워진 신전 속 나무다. 나무 안에 흐르는 여신의 눈물을 마신 사람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힘을 받아 바다를 지배 할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지."

"단순한 전설일 수도 있는데 왜 사람들은 엘프족을 말살시킬 정도로 집착을 하는거죠?"

"옛날만해도 전설이라며 치부하는 사람이 많았지. 하지만 그 눈물을 마시고 신의 힘을 가진 자가 나타난 이후의 얘기는 달라. 전 세계의 해적, 해군들 특히 저 윗대가리들 말야. 모든 사람들이 생명의 나무에 집착하게 됬어. 나도 그 중 한 명이고."


씩- 웃는 찬열에 세훈은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는지 계속 물어보았다.


"신의 힘을 갖게되면 뭐가 좋은데요?"


신이니까 좋지 뭘. 당연하다는 듯 말해오는 찬열에 세훈이 그게 아니구요. 구체적으로 뭐가 좋은데요? 하고 말했다.


"바다를 갖게 되지. 그리고 현재 세상의 바다 해역도 둘로 나뉘어져있다. 하나는 테티스의 바다. 나머지는 카이의 바다."

"카이?"

"최초로 신이 된 인간."


바다를 갖게 되다니…! 상상했던 것보다 이상인데? 이래서 모든 사람들이 신이 되려고 발버둥을 치는구나…. 바다 생활을 얼마 하지도 못한 자신마저 이리 가슴이 두근댈 정도인데, 오랫동안 해적질을 해온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럼… 제 피는 어디에 쓰여요?"

"길 안내용. 생명을 나무를 수호해온 엘프족들의 고대 지도에 너와 그 친구의 피를 흘려보내면 그 피가 생명의 나무로 가는 길을 안내해."

"잠깐!… 루한이 형은 진짜 엘프가 아니잖아요. 들키면 어쩌려구요? 죽잖아요!"


안절부절하는 세훈에게 진정하라며 찬열이 다독였다. 보름달이 뜨는 날 밤 아래서만 피가 길을 안내하니까 괜찮아. 아직 시간이 있어. 하는 찬열의 말에 세훈은 안심했다. 헌데… 찬열은 자신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이리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거지?


"형은 이런 것들을 다 어떻게 안거에요?"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침반을 확인하던 찬열이 조종키를 돌리며 대답했다.


"네 아버지가 그 지도를 내 아버지와 다름 없는분께 넘겼었거든. 뭐, 정확히는 내 친구의 아버지지만."





무리를 이어 헤엄쳐가는 돌고래떼, 햇빛에 비춰지는 은빛 비늘을 뽐내며 이동하는 물고기 등등 바다생물들을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구경했다. 그러다 루한, 준면이 형만 생각해도 미소가 사라졌지만 찬열의 말을 되새기며 애써 마음을 다 잡았다.

날이 저물어가고 배는 한 마을에 도달했다. 허나, 보통 마을과는 달라보였다. 가는 곳곳마다 술판이 벌려져 있었고 조용한 곳은 없었다. 사람들 모두 큰 목소리로 떠들거나 술병을 들고 싸웠다. 끼익- 쾅! 탁자가 넘어지든 말든 럼주를 흩뿌리며 싸움질 하는 진풍경을 보며 세훈은 몸을 움츠렸다.

남자들 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낡은 드레스를 입은채 술취한 남정네들에게 과자를 던지고 받아먹으라며 깔깔 웃고 있었다. 길가에 사람들이 지나가던 말던 화장이 번진채 젖가슴을 내밀고 널부러져 있는 여자들도 많았다. 움찔움찔거리는 세훈과는 반대로 이러한 모습을 많이 봤다는 듯 찬열은 요령있게 그들을 피하며 마을 깊숙히 들어갔다.

구석진 작은 술집 옆 돼지우리 앞에 누군가가 엎어져 있었다. 찬열은 문 앞에 물이 들어있는 양동이를 들어 쓰러져있는 남자를 향해 물을 촥- 뿌렸다. 쿨쿨 잘 자던 남자가 갑작스런 물 세례에 어푸어푸 인상을 쓰며 상체를 일으켰다.


"누구야!? 자는데 깨우는만큼 부랄 때버리고 싶은 순간은 없다니깐…."


아직도 잠에 취해 바닥을 뒹굴고 있는 남자를 향해 양동이를 던졌다.


"이런, 난 고자가 되고 싶진 않은데. 미남인데 거기가 불구면 여자들이 울거든."


능글거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정신이 확 깬듯 남자는 양동이 맞은 머리를 감싸며 일어섰다. 자신의 앞에 있는 찬열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박찬열!"


잠이 다 깬 듯 남자는 찬열을 향해 어버버거리며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찬열아! 너 그 때 분명 블랙펄에서… 읍!"

"자 자, 일단 오랜 공백의 만남을 가져볼까?"


자신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뜬 남자의 입을 막고 찬열은 유유히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간 작은 술집은 아까 지나쳐온 술집들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여전히 소란스럽고 여기저기 술이 흘러 더러웠지만 적어도 싸우는 사람들은 없었다.

저 멀리 세훈을 세워두고 두 남자는 비워진 탁자에 앉았다. 탁자 가운데의 양초에 불을 붙이고 주모가 준 럼주를 따르며 남자가 속삭였다.


"지금 민석이 형도 이 곳에 와있어."

"종대 너랑 민석이형? 둘이?"


종대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어 나갔다.


"네가 블랙펄에서 쫒겨난 5년 전, 네가 실종 된 이후 다음 마을에 도착하자 마자 너를 따르는 인원 모두 백현에게 이별을 고했지."

"백현이는… 어땠어?"


럼주 한 모금을 마시더니 탁자 한 가운데서 일렁이는 붉은 촛불을 보며 대답했다.


"아무말도… 그저 무표정으로 우릴 바라보더라."


가슴이 아프다. 아직도 내가 한 짓이라 생각하는건가…. 빌어먹을 크리스, 타오 자식.


"크리스와 타오는."

"그 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크리스는 블랙펄의 갑판장이 되고 타오는 나 대신 항해사 자리에 올랐다는군."


쾅-! 갑자기 울리는 소리에 칼을 만지던 세훈이 고개를 돌렸다. 찬열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종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탁자 위 주먹쥔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찬열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나를 쫒아내고 백현이 선장이 되어도 좋다. 기꺼히 블랙펄을 백현에게 줄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 개자식들은….

종대는 이 악물고 주먹을 부들부들 떠는 찬열을 묵묵히 바라보다 조용히 그의 주먹위에 손을 얹었다.


"찬열아 난 그들보다도 네 이야기가 듣고 싶다."


그 동안 어디있었어. 진지하게 물어오는 종대에 찬열은 시선을 피했다. 어? 재촉하는 종대에 입을 열려는 찬열의 등에…


"야이 망할놈의 자식아!"


볼이 오동통한 작은 체구의 남자가 찬열의 등을 덮쳤다. 작은 체구와는 달리 힘이 좋은 듯 찬열이 자신의 목에 둘러진 팔을 퍽퍽치며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허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익숙함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민석이형."


찬열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서야 민석은 욕지거리를 멈추고 찬열의 목에 두른 자신의 팔을 풀렀다. 그 동안 무슨 일 있었어. 형답게 내 옆자리에 앉으며 돌직구로 바로 물어온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두 동료의 진지한 눈빛에 찬열은 잠시 머뭇거리다 자신에게 있었던 일 모두 말해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종대는 입만 벌린채 말을 하지 못했고 민석은 두 손으로 입을 막은채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부정하고 싶다는듯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래도 지금 난 여기 있잖아."


럼주 한 모금을 마시며 찬열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민석은 입을 막던 한 쪽 손을 떼어 찬열의 왼손을 잡았다. 낡은 천으로 겹겹히 쌓여있는 왼손. 떨리는 손으로 천을 벗겨내니 핏빛 문양이 찬열의 왼손에 세겨져 있었다. 종대는 보기 괴롭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민석은 빠르게 천으로 손을 다시 덮었다.


"이제 어쩌려고 그래."

"아직 시간은 남았으니까 괜찮아. 하루빨리 블랙펄에 가야지."


백현이를 봐야해 를 얼굴에 붙이고 다니는 듯한 찬열의 모습에 종대가 픽 웃었다. 그래… 넌 늘 자기 자신보다도 백현이가 우선이었지.


"그래, 이 천재 항해사가 블랙펄에 가도록 힘 좀 보태주마."

"콜."


씩 웃으며 서로 하이파이브 하는 두 사내에 민석은 한숨을 쉬었다. 보통일이 아니다. 찬열아 넌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거야…. 게다가 그 선택의 기한은 얼마 남지도 않았다. 1년? 아니 고작 몇 개월만이 남았을 뿐이다. 몇 개월 뒤에 있을 네 고통, 아니 그 평생가는 고통을 어떻게 짊어지려고 그래….

몇 개월 밖에 남지 않은 찬열. 그리고 그가 4년이 지난 5년째 달려온 찬열의 목표에 내가 찬물을 들이 부을 수는 없지. 게다가 저기에 서있는 소년이 엘프족이란 말이지…. 민석은 세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민석이 쳐다보는 것도 이런 대화 내용이 떠도는 것도 모르는 세훈은 그저 언제 이야기가 끝나나 하품을 할 따름이었다.





'백현아, 우린 나중에 꼭 해적이 되는거야. 알겠지?'


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 마찬가지로 구름으로 가득 찬 바다를 바라보는 어린 네가 보인다.


'이 못난 얼굴에 그나마 나은게 이것밖에 없네.'

'뭐?'

'인상쓰지마. 아니다, 인상 써. 그래야 적들이 네 얼굴만 봐도 도망치지.'

'이게 진짜!'

'끄하하하학'


블랙펄 첫 출항 전날, 내 모자를 고르며 날 놀리는 네가 보인다.


'진짜 생명의 나무로 가는 지도인거지?'

'그렇다니깐. 엘프 아저씨가 나한테 줬어.'

'여기 도착하면 내가 신이 될테니까, 넌 여신이나 되라.'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지도를 품에 안고 기뻐하던 네가 보인다.

그리고… 그 날밤의 아버지.



"헉-!"


또다. 또 찬열에 대한 꿈을 꾸었다. 매일 매일 그에 대한 꿈을 꾼다. 그리고 날이 갈 수록 쌓이는건 그 날의 후회뿐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너가 그럴 애가 아니라는걸 제일 잘 아는 내가…. 아버지의 시신과 찬열의 몸에 묻은 피만 보고 꼭지가 돌았었다. 그 때 찬열이가 자신의 몸에 묻은 피는 아버지의 것이 아니랬는데…. 왜 그의 말을 듣지 않았던걸까.

선원들이 다시 잠들고 감옥에 갔었지만 내가 보았던건 배 바깥쪽으로 뚫린 구멍과 비어있는 감옥 뿐이었다. 가장 가까운 육지에 가려면 배로도 며칠이나 걸렸던 심해부분이었는데…. 배를 뚫고 자살한거야? 내가 널 믿지 않아서? 그 생각까지 미치자 백현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펑펑 울었었다.

지금도 그 때를 회상하면 눈물이 흐른다. 그만, 그만 생각하자. 백현은 도리질 치며 거울 앞으로 갔다. 내 눈에 세긴 이 아이라인 문신도 찬열이 추천해준 것이었다. 이 모자도 옷도… 머리도 기르면 예쁠 것 같다해서 기른 것이었다. 아직도 내 머리부터 발끝은 너로 묻어있구나.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한 백현이 엉엉 울었다.



백현아, 또 울어? 박찬열 그 자식 때문에?

그 놈이 사라진 이후 백현의 얼굴에서 진정 미소를 찾기 힘들었다. 자신이 아무리 곁에 있어도 사무적으로 웃는게 다였다. 크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안그래도 뒤에 루한과 준면까지 있는데…. 선장실에서 저리 울고있다. 크리스는 한숨을 푹 쉬고 문을 똑똑 두들겼다. 움찔하더니 얼굴을 마구 비비는게 보인다. 눈물을 다 닦았는지 문으로 오더니 문을 열어준다. 무표정해도 눈가가 빨갛게 변한건 못숨긴다. 이 바보같은놈….


"네 명령대로 이 둘 데려왔다."


퍽- 크리스는 심기가 불편한 듯 둘을 거칠게 선장실로 밀어넣고 휙 몸을 돌려 사라졌다. 경계를 하는 루한과 준면에 백현은 간단한 차를 끓이며 말했다.


"그리 경계 할 필요는 없어. 너희 둘은 보름달이 뜨는 밤, 피 몇 방울만 내어주면 되는거야."


나도 쓸데없이 사람 막 죽이고 싶진 않아. 그런 백현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준면이 그럼 피를 미리 주고 내리면 됬었잖아? 하고 말했다.


"해도에 흘릴 피는 방금 나온 신선한 피어야 되니까."


방 한 구석 두 개의 침대 위 나무 판자에 무언가의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루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글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칼로 세겨진 글씨였다. 주변에 석탄으로도 쓰여있는 낙서도 있었다. 바보 강아지… 왕눈이외계인… 못생긴 갑판장… 그리고 칼로 쓰여있는 글씨는.


"찬열 백현?"


게다가 두 이름 사이에는 칼이 꽂혀있다. 루한이 멍하니 내뱉은 말을 들은 백현이 싸늘하게 앉아 라고 말했다. 찬열? 찬열?…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백현은 차를 들고 자리에 굳은 듯 서서 루한을 노려보고 있었고 루한은 자신을 노려보든 말든 자신이 들은 익숙한 이름을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둘 사이의 분위기에 준면만이 기가 죽을 뿐이었다.


"찬열?"


분명 들었는데…. 루한이 끙끙거리자 준면이 조그마하게 말했다.


"어제 마을에 들어왔던 해적이라며…."


아 맞아! 루한이 손벽을 짝 치며 그랬었지! 하고 동의했다. 근데 왜 그 사람의 이름이 이 배의 선장실에 세겨져 있는거지?

쨍그랑-!!

백현의 발 밑에 잔이 산산조각 났다. 깜짝이야! 준면이 놀란 듯 백현을 쳐다보았다. 백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제 마을에 들어온 해적이라니….


"그럴리 없어."

"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루한에 백현이 쪼그려 앉아 깨진 잔을 주으며 말했다.


"그는… 바다 한 가운데 이 블랙펄에서 탈출해 죽었어. 자살했어…."


하지만… 그 자살 모습을 내가 직접 보진 못했잖아?… 만약… 만약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면….


"박찬열에 대해서 들었을 때… 여자들이 많이 수근대더라고."


그 날의 일을 회상하는 듯 눈썹을 찌푸리며 루한이 말을 이어 나갔다.


"해적 영주에다가… 잘생긴 외모… 키가 크다고 했어."


해적 영주? 잘생긴 외모? 큰 키?

쿵-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아침해가 밝았다. 먹구름이 잔뜩 낀 찝찝한 날씨였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했다. 찬열은 일찍 일어나 세훈과 함께 항구로 나갔다. 종대와 민석이 밤에 백현과 이별을 고하고 난 후 이 곳에 흩어진 옛 선원들을 찾는다 했는데 과연 찾았을지… 찬열은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꽤나 우글거리는 선원들을 보고 함박 미소를 지었다. 역시 종대와 민석이형.

배는 출항했다. 첫 날의 순조로운 항해와 달리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바다의 물살도 빨랐으며 바람은 사람이 날아갈 듯 거세게 불어댔다. 종대가 하늘을 바라보더니 찬열에게 급하게 외쳤다.


"3시 방향에서 폭풍우가 몰려온다!!!! 좌현으로 방향 틀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망원경을 쓸 때가 온거겠지…. 찬열은 오른쪽 허리춤에 있던 망원경을 빼 폭풍우 쪽을 향해 보았다. 잘 보이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여러 방향으로 망원경을 이리저리 두며 보더니 무언가를 보았다는 듯 망원경을 접고 나침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래고래 목청이 터져나가라 소리질렀다.


"그 말 무시해!!! 폭풍우 뚫고 지나가!!!!"

"미쳤어!?!!"


럼주에서 손 때자마자 물귀신 되라고!? 저 자식은 옛부터 지금까지 아주 그냥…! 종대가 욕하며 소리지르자 찬열이 조종키를 잡던 양손 중 오른손을 떼어 망원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돌아서가면 블랙펄을 놓쳐!!!"


저 망원경이 뭐 어쨌다고!? 비가 너무 심하게 쏟아져 앞이 분간이 되지가 않는다. 저거 망원경 맞지? 세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가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폭풍우랑 저거랑 뭔 상관인데? 종대가 그런 세훈의 표정을 보더니 찬열을 향해 일단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 세훈을 데리고 위치로 향했다.


"저 망원경이 뭔데요?! 짧아보이는데!"


빗줄기가 세훈의 얼굴을 마구 때렸다. 계속 얼굴에 쏟아지는 비를 쓸어내리지 않으면 눈을 뜨기도 힘든 상황이다. 종대도 얼굴을 왼손으로 계속 쓸어내리며 다른 손으로 양동이를 집어들었다. 비가 너무 쏟아져서 갑판에 물이 많이 고였어! 하고 외치며 물을 퍼내었다. 그리고 세훈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저 망원경은 보통 망원경이 아니야! 망원경의 주인이 보고싶어하는 형상을 띄우면 그 쪽 방향을 가르쳐주지!"


그런 망원경도 있어? 세훈이 멍해진 사이 종대는 투덜거리며 다른 곳에 물을 푸러 갔다.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에 민석은 갑판에 고인 물들을 바가지로 퍼내며 폭풍우 쪽을 바라보았다. 보통 해류와는 다른 곳이다. 뚫고 지나가려는구나. 설마, 명색의 함대인데 가다가 못견디는건 아니겠지?


"아씨 진짜!"


거칠어진 파도가 민석의 안면을 강타했다. 콜록콜록- 코에 물들어갔어!! 코를 감싸고 방방 뛰며 콜록이던 민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폭풍우 쪽을 바라보았다. 폭풍우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앞으로 몇 시간을 더 고생해야되는거야? 민석은 빗속에서 머리를 도리질 치며 바가지를 들고 물고인 곳으로 또 이동했다.






어두컴컴했던 하늘이 더욱 더 짙어지면서 이제 비까지 내린다. 타오는 돛대에 올라갔다. 오늘 밤은 바로 보름달이 뜨는 밤이다. 앞으로 몇 시간 후면… 해도가 완성되고 생명의 나무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은 타오가 좋은 눈썰미로 자신의 배 오른쪽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뭐지? 망원경을 빼 배를 보았다. 저건… 함대인데. 해군들이 어째서? 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이를 빠득 문 타오는 조종키를 잡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말도 안 돼!"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망원경에서 눈을 땐 타오가 다시 한 번 남자를 바라보았다. 몰아치는 빗속에서 잘 못본 걸 수도 있어….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보았지만 남자의 형태는 여전 했다. 저 키와 망토, 그리고 무엇보다 모자! 내 손으로 바다에 던져버렸는데 어째서 저 곳에 있는거지? 당장 크리스에게 알려야한다.

밧줄을 타고 내려온 타오는 즉시 크리스를 찾고 자신이 본 것을 전해줬다. 처음엔 농담하지 말라며 타오의 말을 가볍게 치부하던 크리스는 타오의 굳은 표정을 보고 농담이 아님을 인지했다.


"당장 우리 쪽 선원들을 시켜서 변백현을 잡아. 잡아서 영장에 쳐 넣어. 그가 알아선 안 된다. 그리고 준면, 루한은 포박해라."


사나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 타오가 자신의 뒤에 있던 두 선원에게 눈짓을 줬다. 선장실로 뛰어간 둘은 패기가 넘쳐 보인 듯 했으나 1분도 안 되어 백현의 손에 뒷목 잡혀 질질 끌려나왔다.

타앙-!!

퍼부어대는 빗속에서 울리는 총소리에 모두들 하던일을 멈추고 총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주목이 되자 뒷목을 잡은 두 선원의 등을 발길질한 백현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질렀다.


"이 선원들을 시켜서 날 잡으려고 한 사람은 누구냐!!!"


아 저 얼간이들… 타오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크리스는 픽 웃으며 선실에서 막 나오는 준면을 잡아채 목에 총을 겨눴다.


"뭐하는거야!?"


갑작스러운 크리스의 태도에 백현이 당황해 소리쳤다. 준면을 뒤따라 나오던 루한은 크리스를 향해 칼을 겨눴다. 겁에 질린 준면을 우악스럽게 끌고 난간쪽으로 다가섰다. 몸을 뒤로 젖히면 바로 바다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자세.

타앙-!

공중에 마찬가지로 총을 쏜 크리스는 다시 장전한 후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모든 선원들은 내 말을 듣도록 한다!! 지금 당장 선장 변백현을 감옥으로 끌고가라! 안그러면 이 자식은 영원히 못 볼줄알아!!!"


저 자식이 뭔데? 크리스가 이해가 안가는 듯 선원들은 우물쭈물 거렸다. 백현은 크리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어깨가 잡힘과 동시에 뒤에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타오가 그의 뒷통수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라."


까득-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를 듣자 백현이 침을 꿀꺽 삼키고 시선을 돌려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현재 블랙펄은 생명의 나무로 향하고 있다!! 생명의 나무로 향하려면 이 자식의 피가 필요하다! 지금 즉시 변백현을 감옥에 가두지 않으면 이 자식을 쏴 죽여 영원히 생명의 나무로 향하지 못하게 하겠다!!!"


생명의 나무라고? 그 곳에 가려면 누군가의 피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긴 한데… 그게 저 인간의 피구나! 크리스의 말이 이해가 간 듯 선원들이 일제히 총과 칼을 위로 치켜세우고 소리를 지르며 백현에게 달려들었다. 얼마 후, 백현은 무기와 해도를 모두 뺏긴 채 감옥에 던져졌다.




몇 시간 동안 함대의 블랙펄 추격은 계속 되었다. 비는 어느 정도 그치고 바람만이 세게 불뿐이었다. 폭풍우 지점을 거쳐 오니 선원들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지만 슬슬 블랙펄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세훈은 힘이 부친 듯 종대 옆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아까부터 궁금했다는 듯이 물어왔다.


"선장은 대체 무슨 사람이에요? 비상한 물건을 갖고 있고 또 별별 걸 다 알고있고."

"뭐하긴 뭐하는사람이야. 그냥 뺀질이 해적 영주이자, 블랙펄의 선장이었지."


옛날부터 얼굴믿고 이리저리 능글거리는건 아무도 못말린다니까. 양동이를 저 멀리 집어던지며 다가오는 민석에 세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디의 선장이라고?


"블랙펄이요?"

"어. 몇 명의 배신으로 선장 자리에서 쫒겨났지."

"…몰랐어요."


그 이상은 물어보지마. 입 밖으로 꺼내기에 그리 반가운 얘기는 아니니까. 민석이 세훈의 궁금증을 잘라내 듯 차갑게 말했다. 그런 민석에 세훈은 네…. 하고 그들로부터 시선을 때었다. 저 앞에 있는 검은 돛의 배. 블랙펄. 형들… 내가 꼭 구하러 갈게. 세훈은 블랙펄으로부터 시선을 때지 못했다.


"이 배의 구조는 이미 다 파악했어."


종대가 일어서며 말했다. 지금 이대로 서풍만 잘 타면 블랙펄을 따라잡는건 시간문제지. 게다가 거리도 얼마 차이 나지도 않고. 세훈의 옆으로 다가가는 종대에게 찬열이 말했다.


"저 쪽도 도망가려고 하는 것 같진 않아보이네."


이 함대 역시 빠른건 마찬가지 였지만 생각보다 빨리 따라잡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블랙펄이 속도를 점점 늦추고 있었다. 그렇다는건?


"설마?"

"그래, 모두 위치로!!!! 대포를 꺼내라!!!!"


아까의 빗속에서 고전때문에 주저 앉아있던 선원들이 다시 일어나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사이, 점점 두 배는 가까워져 갔다. 찬열은 망원경을 꺼내 조종키 쪽을 살펴보았다. 크리스! 그가 조종키를 잡고 있었다. 백현은? 백현은 어디에 있는거지? 아무리 배를 살펴보아도 백현은 없다. 망원경을 거칠게 허리춤에 찼다. 설마… 설마 백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니겠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돛을 최대한으로 펴!! 전속력으로 간다!!!"


쩌렁쩌렁하게 소리지른 찬열은 눈에 핏줄 설 듯 크리스를 노려보았다.





"대포를 꺼내라!!!"


박찬열….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지만. 어쨌든 지금 내 눈앞에 있으니 다시한번 내가 너의 목숨을 거두어 가주마. 블랙펄을 그 깟 함대로 무너뜨리려 하다니, 박찬열 너도 참 궁지에 몰린 듯 하구나. 썩소를 지은 크리스는 블랙펄에 다가오는 함대를 보며 조종키를 함대와 마주보게 돌렸다.

두 배가 서서히 마주보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민석은 아직… 아직… 하며 발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배가 더 가꺼워져야 한다. 그리고 배가 일직선으로 마주보게 되자 찬열이 목에 핏줄을 세우며 외쳤다.


"발사해라!!!!!"


찬열의 명령을 들은 선원들이 모두 대포를 발사했다. 마찬가지로 블랙펄에서도 크리스의 명령에 대포를 발사했다.

쾅-! 우직끈-

서로 대포를 쏘면서 배에 하나둘씩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내 배에 구멍 좀 그만 내!!!!"


블랙펄에 뚫리는 구멍을 볼 때마다 찬열이 비명을 질러댔다.


"박살을 어떻게 안낼 수가 잇겠어!!"


종대가 찬열의 비명에 버럭 소리질렀다. 말이 되는 소릴해 임마!!


"대포알을 정확히 사람에게만 명중시켜!"


블랙펄에 삿대질하며 찬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블랙펄이 부서지는거에 정신 놨구만 아주. 되도않는 찬열의 말에 혀를 끌끌 차던 종대가 대포알을 끌어당기며 외쳤다.


"답답하면 니가 하든지!!!"




"선승하라!!!!!"


크리스의 고함소리가 들려오자 선원들이 함대를 향해 줄을 타고 날아왔다. 지금이 기회다! 블랙펄에 갈 기회를 노렸던 세훈이 옆 선원의 총을 빼앗아 줄을 잡아당겼다.

대포소리가 들려오자 감옥에 있던 백현이 분주해졌다. 제발 대포 한 알만 이쪽으로…. 나무 틈새로 반대편 배를 바라보던 백현이 쾌재를 부르며 엎드렸다.

콰과과광-!!

굉음과 함께 대포알이 배를 뚫은 것도 모자라 철창마저 박살을 내버렸다. 백현은 숙였던 상체를 들었다. 어휴, 조금만 더 늦게 엎드렸다면 황천길로 갈뻔했네. 백현은 너덜너덜해진 감옥문을 열고 재빠르게 탈출했다.

갑판 위로 올라온 백현은 현란하게 발을 휘둘러 상대방의 칼과 총을 뺏었다. 찬열이 살아있다지? 가슴 속 한가닥의 희망을 갖고 반대편 배를 바라보았다. 버팀대에서 밧줄을 잡고 이쪽으로 승선하려는 종대가 보인다. 종대가 있다는건… 입꼬리가 점점 올라간다. 종대가 있다는 것은 찬열이도 있다는 것이다. 둘은 질투날 정도로 쿵짝이 잘 맞았으니까. 백현은 종대를 향해 총을 겨누는 선원을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총을 발사했다.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심장이 두근두근 터질 것만 같았다.


"으어어어어!!!"


옆에서 칼을 들고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는 선원에 백현은 고개를 돌렸다. 허나 이미 칼을 자신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고 백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어떠한 힘에 의해 끌려가 누군가의 품에 안겼다.

누군가가 칼을 휘두름에 상대방이 베였다는 것을 느꼈다. 눈뜨기가 힘들었다. 낯설지가 않다. 눈물이 감은 눈사이로 흐르기 시작한다. 몸을 들썩이며 우는 백현에 찬열은 곤란해졌다. 백현이가 울 때마다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울지마 백현아…."

조용히 속삭이자 엉엉 큰소리로 울며 품에 파고든다.

탕-! 탕-!


"아씨, 여기가 니들 선실이냐!? 연애질이나 하게!?"


자신의 뒤에있는 적에게 헤드샷을 날린 민석을 보며 찬열은 씩 웃고 백현을 한 손으로 어깨를 감싸안았다.




블랙펄에 탄 세훈은 칼솜씨를 뽐내며 갑판을 뛰어다녔다. 허나, 정신없이 터지는 대포와 달려드는 적 때문에 루한과 준면을 찾기란 그리 쉬운건 아니었다.

챙-! 챙-!

사방에서 날아오는 칼을 받아내며 세훈은 선장실 앞에서 싸움은 안하고 무기로 무장한채 주위를 경계하는이를 보았다. 수상한데? 하는 생각이 미치자 마자 바로 달려가 그가 공격하기도 전에 냅다 칼을 던져 그의 가슴에 명중시켰다.

선실문을 벌컥 열었다. 그 곳엔 루한과 준면이 있었다. 팔다리가 묶인채 재갈도 물려져있는 둘을 보며 세훈이 웃으며 다가갔다. 다친 곳은 없구나! 루한도 그를 바라보며 웃었고 준면은 세훈이 오자 긴장이 풀렸는지 눈물을 터뜨렸다.


"왜 울어 준면이 형."


세훈이 씩 웃으며 준면의 발목에 묶인 밧줄울 풀어냈다. 어서 나가자. 하며 세훈이 둘을 데리고 나가는 순간 크리스가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어떻게 잡은 둘인데! 크리스는 들고 있던 칼을 세훈에게 내리쳤다. 세훈은 그 칼을 막고 쳐냈다. 서로의 칼이 부딪히며 살벌하게 마주하는데 뒤에서 타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이 인간 목 날아가는 꼴 보고싶으면 계속 칼 휘둘러도 좋아."


루한의 목에 총 겨누는 타오를 본 순간 세훈은 동작을 멈추고 칼을 떨어뜨렸다.



상황은 찬열쪽에게 점점 불리해져만 갔다. 급기야 종대가 포위당했다. 함대에 있던 대다수의 선원들이 죽고 결국 함대는 폭파되고 말핬다. 흩뿌리는 잔해를 보며 찬열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그저 백현을 품에 안고 있는 찬열은 선원들에 의해 포위 당했다. 민석은 포위당한 그들을 보며 총을 바닥에 떨구었다. 그리곤 씩 웃으며 항복. 하고 양손을 들었다.


타오에 의해 끌려나오는 둘과 크리스에게 뒷목을 잡혀 질질 끌려나오는 세훈을 보며 찬열은 표정을 구겼다. 크리스는 세훈을 바닥으로 내동댕이 치며 물었다.


"넌 누구냐?"


안된다. 자신이 엘프라는걸 말해서는 안된다. 루한이 가짜고 세훈이 진짜라는 걸 알게되면…. 그들은 완성된 해도를 갖고 있으며 오늘 밤은 보름이다. 저들이 먼저 생명의 나무로 향하는 길을 알아서는 안된다.

민석과 종대도 찬열과 같은 생각 중인지 제발 그 입 다물어! 하는 눈빛을 발사하고 있었다. 우리의 텔레파시를 받아!

허나 텔레파시에 오류라도 생긴건지 세훈은 바닥에 떨어져있던 총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에 갖다대었다. 세훈아 안돼!!! 루한의 비명은 타오가 물리는 재갈속에 파묻혔다. 읍읍!!! 루한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세훈은 총알을 장전시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부터 내가 명령하는대로 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생명의 나무로 가지 못할 줄 알아라!!"


안 돼!!! 제발 그 입 좀 닥쳐!!! 민석의 눈동자가 두 배로 커졌다.


"생명의 나무고 나발이고 넌 누구냐니까?"


크리스가 얜 뭐야. 하는 눈빛으로 묻자 찬열이 크리스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나보단 덩치가 작고 나보단 좀 못하지만 얼굴이 한 미남 하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는 친구야. 내 친구의 친구의 사촌인데 함께하면 참 심심하지 않은 친구지."


하하하. 너스레를 떠는 찬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훈은 버팀대에 올라가 밧줄울 잡고 더 큰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엘프족 마지막 후손의 아들인 오세훈이다! 내 왼쪽 손목에는 엘프의 문양이 세겨져 있으며 너희들이 진짜로 착각하는 루한이 형은 내 문양을 따라 문신한 가짜다!! 내 말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총을 쏴 영원히 생명의 나무에 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저 둘 중에 루한이란자가 가짜고 저 떠드는 꼬맹이가 진짜라고? 선원들이 술렁이자 크리스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그에게 말했다.


"명령을 내려라."

"이 배에 우리쪽 선원들 모두 그리고 찬열이 형 품에 있는 남자까지!! 모두 이 배에 안전하게 있게해라!"

"그건 당연한거고. 또 다른건?"

"해도를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줘라!"


크리스의 눈썹이 꿈틀했다. 저 맹랑한 자식이…. 어쨌든 우리의 것이 될텐데. 헛수고를 하는구나. 크리스는 품안의 해도를 찬열에게 던졌다. 순순히 주다니…. 찬열은 받으면서도 찝찝했지만 해도를 안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나저나 백현이는 언제 얼굴을 보일까. 우리 멍뭉이….

타앙-! 크리스의 총알이 정확히 세훈이 들고있는 총에 명중했다. 세훈이 총을 놓치자 선원들이 고함소리와 함께 세훈을 포박했고 크리스가 소리쳤다.


"이들을 모두 감옥에 가둬라!!"

"감옥이라니! 이 비겁한 자식!!!"


세훈이 발끈해 반항하며 소리치자 크리스가 금방이라도 죽일 듯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비겁하다니? 그저 안전하다고만 했지 어느 장소인지 말하지 않은건 너다! 날 모욕하지마!!"


세훈을 향해 발길질 한 크리스는 가슴을 들썩이며 감옥에 내던지라는 말과 함께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크리스 갑판장님!!! 난 아직 살아있소!!! 날 데려가란 말이야!!!!"

한 선원이 바닷물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나무판자 위에 올라타 절박하게 소리쳤다. 얼굴에 화상을 입었는지 계속 쓰라려오고 핏물과 고름이 묻어나온다. 선원은 수평선으로 멀어져가는 블랙펄을 보며 소리지르는 것도 포기했는지 소리지르는 것을 멈추고 판자에 몸을 뉘었다. 이제 죽는건가? 선원은 떠다니는 동료들의 시체를 보며 눈을 감았다.





감옥에 올 때까지 품에 안겨있는구만…. 하여간 변백현. 종대와 민석이 끌끌대던 말던 찬열은 궁시렁 거리는 둘에게 인상을 썼다. 백현이한테 왜 그래. 하는 듯한 눈빛에 민석은 뒷목을 잡았다. 몇 년 안보니까 왜 더 징그럽게 지랄이야!?


"백현아 나 봐봐… 응?"


해적이 되더라도 깔끔하게 살겠다며 피부 관리 그렇게 하더니…. 여전히 말갛고 하얗네 우리 백현이. 찬열은 어허허 엄마 미소를 지으며 백현의 볼을 두들겼다. 우리 백현이 말랑한 볼살. 빙구같이 웃는 찬열을 보며 종대는 소금을 찾았다. 꼴보기 싫으니까 쟤들한테 소금 좀 뿌려.


"찬열아…."


살짝 쉰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백현에 찬열이 백현의 양 볼을 잡고 응? 응? 했다. 아직도 막 태어난 하얀 강아지처럼 눈을 못뜨는 백현이 말을 이었다.


"미안해… 네가 그런거 아닌데… 내가 너무 앞도 뒤도 안보고 널…."

"크리스였어."

"뭐?"

"크리스가 네 아버지를 죽였어."


더듬 더듬 말을 이어가는 백현을 끌어안았다. 괜찮아 백현아. 다 괜찮아. 미안해 할 필요없어. 나라도 너처럼 화났었을 거니까. 그리고 오해하기 좋은 상황이었잖아. 백현은 크리스가 한 짓이란 말에 입을 벌렸지만 이내 담담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귓속에 자신을 안심 시키려는, 듣기 좋게 울려 퍼지는 찬열의 목소리에 간지러운 듯 백현이 헤실 웃었다. 올라간 백현의 입꼬리에 찬열이 살짝 토라진 목소리로 백현아 눈떠봐. 우리 강아지 눈보고싶다. 하고 말했다.


"눈을 못뜨겠어…."


백현아. 아무리 오빠의 미모가 눈부셔도 그렇지. 이제 그만 눈 뜨는게… 악! 오랜만에 만난 찬열이라도 헛소리에는 매가 약이다. 백현은 찬열에게 꿀밤을 먹이고 뒤돌아 찬열의 가슴팍에 등을 댔다.


"너무 울었나봐 눈이 안떠져."

"그럼 우리 백현이 눈 마사지 해줘야지."


어화둥둥 내 강아지. 백현이 좀 더 편한게 앉도록 다리를 고쳐 앉은 찬열이 뒤에서 그를 끌어안아 눈을 만져줬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백현은 이내 편안한지 찬열에게 몸을 맡겼다.

어우씨, 쟤들 닭털 날린다. 세훈아 쟤들한테 욕 한마디만 해줘. 루한씨 준면씨. 초면에 박찬열 쟤는 욕해도 됩니다. 종대가 감옥에 깔려있는 짚을 찬열에게 던지며 투덜거렸다. 아, 백현이는 안됩니다. 만만한게 박찬열이거든요.


"사실 찬열이 형이 블랙펄에 가는 도중에 제 무기들을 빼앗더라구요. 그리곤 제 옷을…"


세훈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종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와~ 저놈시끼 저거. 민석이 추임새를 넣자 루한이 눈웃음 가득 지으며 마을에 왔을 때 여자들도 홀리고 다녔더라구요. 하며 장난끼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건데? 찬열이 아니야, 백현아. 여자들은 내 미모를 보고 반한 것 뿐이야. 이건 내 죄가 아니라고. 응? 응? 몇 근 썰어도 될 듯하게 입술을 삐죽이는 백현에게 찬열이 속삭였다.


"변태다…. 저 분 옷을 어떻게 했는데?"


뒤돌면서 백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사지 하니까 좀 낫나? 삐진 얼굴도 귀엽지. 찬열은 웃으며 대답했다.


"안 벗겼어! 그냥 바다에 떨어뜨렸어. 엘프족인걸 깨닿게 해주려고."


아… 맞아 저 소년이 진짜라고 했지.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우 백현이가 속아야 재밌는건데. 둘이 싸움도 붙이고 말야. 민석이 아쉽다는 듯 벌렁 누웠다.


"보름이 되려면 얼마나 남았죠?"


준면은 자신의 왼쪽 손목에 있는 물방울 문양을 보며 중얼거렸다. 몇 시간 남았겠지. 루한이 그를 다독이며 말했다. 집에 가는 것도 문제겠네. 준면은 한숨을 쉬며 몸을 바닥에 뉘었다. 그 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지 누운지 얼마 되지 않아 잠에 빠졌다.

자는 준면을 보자 다들 피로가 느껴지는지 찬열을 제외하고는 모두 잠이 들었다. 제 허벅지에 머리를 뉘고 잠자는 백현을 보며 행복하게 웃었다. 끙끙 앓는 백현을 보며 자신의 망토를 그에게 덮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왼손에 묶여있는 해진 천을 풀렀다. 지난번 민석과 종대가 봤었을 때보다 핏 빛 문양이 더 진해졌다. 자신이 마지막이 되기 전, 백현을 딱 한 번만 얼굴 보고 오해만 풀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 번 보니까 계속 보고 싶네."


백현의 긴 머리를 매만지며 찬열은 씁쓸하게 웃었다.





"일어나!!"


타오가 자신을 거칠게 흔들어 깨운다. 다른이들은 먼저 나갔는지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깐 잠이 들었었나보네…. 찬열은 눈을 깜빡이며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잠 잘 때 해도를 꿍쳐가진 않았네. 해도가 있는 것을 확인 후,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찬열이 나가자 크리스는 그를 배의 중앙으로 데려왔다. 중앙에는 백현, 민석, 종대, 세훈, 루한, 준면이 서있었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밝게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찬열은 달을 슥 올려다보곤 품 안의 해도를 꺼내어 크리스 앞에 놨다. 크리스는 찬열이 지켜본다는 것에 못마땅해했지만 자신을 노려보며 본인의 목에 총을 겨누는 세훈 때문에 성질을 죽였다.

철썩- 철썩-

고요한 밤, 모든 선원들이 침묵한 배에서는 파도 소리만 날 뿐이었다. 크리스는 조용히 해도를 달빛이 비추는 곳에 놓은 다음 세훈과 루한을 향해 고개짓을 했다. 세훈과 루한에게 단도를 쥐어주었다. 둘은 해도에 그려져 있는 자신들의 문양을 보고 손가락을 째 각각의 문양 쪽에 피를 흘렸다.

노란 달빛, 그리고 두 사람의 피가 닿은 순간 해도에서 빛이 났다. 피는 문양을 붉게 만들더니 파여져있는 길을 따라 붉은 선을 그려 나갔다. 세훈의 피가 왼쪽, 루한의 피가 오른쪽에서 시작해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 나무 형상을 만들었다. 이어 피는 더욱 퍼져나가 전체 해도를 그려나갔다.


"이 곳은…!"


많이 익숙한 곳이다. 이런 모양의 해도는 본 적이 없기에 머릿속에서 물음표를 때어내지 못하는 크리스, 타오 그리고 다른 선원들과 달리 백현은 눈이 두 배로 커졌다. 틀림없다. 나와 찬열의 고향이다. 또한, 이 블랙펄을 처음으로 바다에 띄운 곳이 그 섬의 해안가였다. 이 곳에 생명의 나무가 있었다니! 해안가에서만 살았지 섬 깊숙히 가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엘프 아저씨가 그 섬에 거주하고 있었던 거였구나…. 엘프족은 생명의 나무를 수호하는 종족이니까….


"아는 곳인가?"


백현의 반응에 타오가 물어왔다. 백현은 해도에서 시선을 때고 대답했다.


"당연하지. 여긴 나와 찬열이의 고향이니까."


백현의 말에 익숙하다… 어디서 봤지?… 하던 찬열이 손벽을 짝- 쳤다. 완성된 해도는 백현이의 아버지가 자신과 백현에게 바다에 대해서 가르쳐 줄 때 사용하던 그 낡은 지도와 비슷했다. 거기였구나! 망할 엘프 아저씨. 지도들고 생명의 나무에 갈꺼라며 방방 뛰던 나와 백현이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체 시간 낭비를 얼만큼이나 한거야…. 찬열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어쨌든 해도가 길을 안내했으니…"


너희들은 더 이상 필요 없다! 하고 크리스가 칼을 빼든 순간 뒤에서 루한이 그의 정강이를 걷어 찼다.


"악!"


크리스가 주저 앉자 타오가 루한을 향해 총을 겨누고 찬열이 양손으로 크리스와 타오에게 총을 겨눴다.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타오를 보며 루한이 화난 목소리로 내뱉었다.


"어이, 잘난 항해사씨. 지금 뒤에 안 보여?"

"뒤라니 무슨…!"


헉! 루한의 말에 버팀대로 다가가 뒤쪽을 바라본 타오가 잠시 눈을 찡그리더니 숨을 들이켰다. 함대다. 그것도 함대 중 가장 빠르다고 알려져있는 체이스호다. 아니, 어떻게 알고?

이 중에 배신자라도 있는건가? 타오가 사납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준면은 좋은 눈으로 함대의 조종키를 잡고 있는 사람을 알아챘다.


"우리 마을 해군 장교인데?"


준면의 말에 언제 꺼내들었는지 자신의 망원경으로 함대를 바라보던 찬열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 노인네 말고도 해군기지 준장급들도 여럿 계시네."


망원경으로 배를 들여다보던 찬열이 거칠게 망원경을 접더니 크리스의 멱살을 잡았다.


"장난해? 저 함대에 왜 네 부하가 있는건데!?"

"뭐?"


크리스가 당황한 듯 망원경을 꺼내들어 함대를 살펴보았다.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듯 보였지만 누군지는 알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부하가 맞다. 아까 찬열의 배에 선승하고 그의 배가 폭발함과 동시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은줄 알았는데…. 저기서 팔자좋게 커피를 마시는 꼴이라니.

크리스의 부하가 저기 있든 말든 일단 함대가 우리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훈은 지들끼리 싸움난 남정네들을 보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지금 적들이 오는데 멱살 잡을때야?!


"돛을 최대한으로 활짝 펴!!! 돛 묶은 줄 모두 풀어내!!!"


세훈이 선원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전 선장과 갑판장의 싸움날 분위기에 기가 죽어있던 선원들이 그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찬열은 크리스의 멱살을 풀며 속삭였다. 넌 해군 나부랭이들 무찌른 그 다음이다. 그런 찬열에 크리스는 그를 비웃으며 맞받아쳤다. 해군들 무찌르는 동안이라도 목숨 부지하는 것에 감사히 여겨.

백현은 한걸음에 조종키로 달려가 해도와 나침반을 번갈아가며 확인했다. 북동쪽으로 한 시간가량 가면 될 것이다. 가는 동안 꼭 따돌려야될텐데…. 


"전원 모두 함대를 따돌리는데에만 집중해라!!!!"


따돌리지 못해도 우리가 이긴다. 그래도 위치가 발각 되는 것보다 따돌리는 것이 낫겠지. 백현은 조종키를 돌렸다. 지금은 바로 생명의 나무로 가야한다. 해도가 엘프의 피에 의해 열린 순간부터 섬으로 향해 닫혀있었던 항로가 열리기 때문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항로는 닫히게 되고 다시 항로를 열려면 보름을 기다려야한다. 그 누구도 몰랐던 나와 찬열만이 아는 해도의 비밀 중 하나다.

그 섬에서 한 번 나가면 해도로 인해 항로가 열리기 전까진 다시 들어가지 못한다. 그 때문에 아버지를 모시고 바다에 나왔던 것이다. 저 함대들을 몽땅 바다에 가라앉히고 싶어도 아직은 아니다. 그리고 또 다른 비밀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추격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 격차는 일정했다. 배의 가장 앞쪽에 있었던 준면이 소리쳤다.


"앞에 안개가 잔뜩 꼈어요!!"


밝게 빛나는 달빛 아래 유독 한 곳에만 안개가 잔뜩 껴있다. 준면의 외침에 앞을 슥 보고 해도를 확인한 백현이 미소를 지었다. 시간 내에 도착했다. 저 곳만 통과하면 된다.


"쟤는 앞에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알았대?"


종대가 신기한 듯 중얼거리자 찬열이 엘프는 보통 사람보다 시력이 좋으니까. 하고 대답했다.


"노를 힘차게 저어라!! 안개속으로 돌진해버려!!!"


명령을 내린 찬열이 백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늘 안개로 뒤덮였었던 자신들의 고향…. 바로 저 곳이다. 백현을 바라보는 찬열의 옆에 있던 민석이 앞 쪽을 바라보았다. 거참 안개가 자욱히도 꼈다. 저 속에 들어가면 앞을 분간하는 것 자체가 힘들 듯 싶은데….  잡다한 생각에 빠진 민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배의 속도가 빨라지는 느낌인데?'


바다를 내려다본 민석이 고개를 쳐들었다. 물살이 점점 빨라진다. 앞에 소용돌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물살이 빨라지지? 민석은 찬열의 망원경을 빼앗아 안개 속을 들여다보았다. 안개 속을 들여다본 민석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헉소리가 튀어나왔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망원경에서 시선을 때지 못한 민석을 발견한 종대가 다가가 왜 그래? 하고 물었다.

간신히 망원경으로부터 시선을 땐 민석이 아무말 없이 종대에게 망원경을 쥐어줬다.


"말도안돼."


내가 지금 뭘 본거야? 눈을 비비고 다시 망원경을 들여다본 종대는 입을 떡 벌렸다. 우리가 지금 어딜 향해서 가는거야!? 어?! 그냥 우리 돌아가자, 응? 어린애처럼 때쓰고 싶어졌다. 저 구멍으로 이 배가 빠져들어가야 되는거야?

민석과 종대의 반응을 지켜보던 찬열이 혀를 끌끌 찼다. 저게 무서워?


"야, 앞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안무섭냐 이 오밤중에!?"


물살은 점점 더 빨라졌다. 배를 집어 삼킬 듯한 바다 속에 뚫린 거대한 구멍을 보며 종대는 다리를 달달 떨었다. 뒤에서 백현도 웃으면서 소리쳤다.


"그냥 통로일 뿐이야! 경사도 그리 크지 않아!"

"얼마정돈데!"

"잠깐 무중력을 느낄 정도?"


하하하. 미소를 짓는 백현과 달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선원들과 종대는 정색 했다. 지금 장난해?


"각자 위치로!!! 물살이 빨라진다!!! 배 단단히 잡아! 곧 통로 속으로 빠진다!!"


둘이 서로를 지지고 볶든 말든 심각하게 바다를 바라보던 루한이 외쳤다. 이상한 구멍이 있다는 걸 안개쪽으로 다가와서야 안 루한은 마룻줄을 꼭 잡았다. 종대와 백현이 투닥투닥 거리는 사이 어느새 배는 안개 코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혼비백산한 선원들은 저마다 밧줄과 난간을 꼭 잡았다.

안개속으로 블랙펄이 들어갔다. 배가 점점 기울어졌다. 배가 들어간 곳만 경사졌고 양쪽 바닷물은 평평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바다생활하며 처음이다. 선원들이 저마다 감탄을 했다. 배가 살짝 멈칫하나 싶더니 안개에 감싸여가며 빠르게 통로 사이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들을 기다리는 통로 속은 매우 어두웠다. 선원들의 비명소리가 통로 안을 메아리쳤다.





바닷물이 이리저리 튀며 얼굴을 때린다. 차가운 바람이 물이 묻은 얼굴들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세훈은 얼굴이 얼어붙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귀가 아렸다. 처음에 급 빨라지는 속도에 몸이 날아갈정도로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그것도 잠시 몸의 균형을 맞춘 세훈은 손에 밧줄을 꼭 쥐었다.

앞에서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선원들은 설렘과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통로 끝에 보이는 모습은 마치 동화를 보는 것 같이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하늘은 푸른 바다가 넘실거렸고 그 아래로 얕은 하얀 안개가 감싸고 있었다. 바다가 있어야할 아래는 구름이 대신했다. 앞에 보이는 섬은 초록빛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워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뒤이어 자신들을 따라 내려온 함대를 발견한 타오는 적이다!! 하고 외쳤다.


"전투 준비!!! 대포를 꺼내라!!"


찬열이 명령을 내리고 전부 분주하게 움직였다. 백현은 조종키를 왼쪽으로 돌렸다. 블랙펄이 좌측 뱃머리를 돌리고 이어 내려온 함대는 그에 대응하는 듯 우측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서로에게서 잠시 멀어진 두 배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뱃머리를 반대로 돌려 서로에게 다가갔다.


"갈고리를 준비해라!!"


두 배가 겹치기 시작했다. 대포를 맞대는 선원들은 서로를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넘쳐흐르는 함성소리에 분위기는 고조됬다. 이윽고 배가 겹쳤고 두 배의 갈고리가 떨어져 배가 고정되었다.


"발사!!!"


백현의 고함소리와 함께 대포가 펑펑 발사됬다. 준면에게 총을 쏘는 법을 빠르게 알려준 루한은 그를 데리고 도르래를 이용해 장루로 올라갔다. 탕-! 탕-! 익숙지 못한 총질에 준면이 움찔움찔 했지만 이어 자신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총알 덕분에 빡침 게이지가 오른 준면이 명사수 저리가라 할 정도로 분노의 총질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루한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준면아, 그 동안 이런 모습 어떻게 참아왔어?


"박찬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해군을 발로차 바다에 떨어뜨린 찬열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게 누구야?


"장교나으리!"


반갑다는 듯 찬열은 그에게 악수를 했다. 장교는 아래위로 흔들거리는 손이 기분 나쁘다는 듯 찬열의 손을 쳐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찬열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아해했다.


"우리 강아지는 내가 손 잡아하면 설레여 하던데, 그대는 아닌가?"

"저 미친자식이!!"


날 개새끼 취급해? 장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칼을 빼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싱긋 웃으며 미남의 손을 뿌리친 대가야. 하고 말한 찬열도 칼을 빼들었다.


"해도를 빼앗고 배 안을 샅샅히 뒤져 엘프를 사로잡아라!!!"


준장급 되보이는 해군이 소리지르는걸 들은 세훈은 이를 악물었다. 저들의 목적은 나와 준면이형인건가? 장루에서 열심히 총쏘는 준면을 보며 세훈은 안도했다. 차라리 저 위에 있는 것이 낫다. 지금은….


"블랙펄 선원들은 절대로 함대에 승선하지 말아라!!!!"


함대로 승선하려고 줄을 잡는 선원을 보자마자 백현이 총을 쏴 밧줄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얼떨떨해진 선원은 이어 날아오는 칼을 받아내며 해군을 상대했다. 하지만, 그 사이 타오는 줄을 타고 함대에 가버렸다. 백현은 타오를 노려봤다. 조금만 더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 그리고 백현은 함대의 아랫부분을 노려보았다.

왜 저쪽 함대에 승선하지 말라는거야?! 꾸역꾸역 이쪽으로 승선하는 해군들 때문에 좁아 터져 죽겠다 아주!!! 민석은 칼을 휘두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갑판 위가 좁아 터지는지 열오른 그만 좀 쳐와!! 여기 지금 포화상태야!!!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밧줄 타고 오는 해군들을 향해 총을 던졌다. 말 그대로 총을 던졌다. 퍽- 덕분에 얼굴에 총을 맞은 불쌍한 해군은 밧줄을 놓쳐 바다로 떨어졌다.

늙은이 주제에 칼질 꽤 잘하네? 근데 너무 거칠어. 찬열은 인상을 찌푸리며 장교의 칼을 계속 받아줬다. 어우씨! 갑자기 뒤에서 합동 공격해오는 해군의 칼에 찔릴뻔했다. 두 칼을 막아내다보니 조금은 벅차다. 자신보다 근거리 싸움에 강한 백현이라면 해치우고도 남았을텐데. 찬열이 슬슬 밀릴 때 즈음 뒤에서 공격해온 해군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순간 피를 뒤집어쓴 장교는 멈칫했고 그 순간을 타 찬열은 전에 들고 튀었던 그의 총으로 장교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장루에서 미소를 띄고 이 쪽을 바라보면서 총을 장전하는 준면을 향해 찬열도 윙크를 날렸다.

확실히 함대에는 머릿수가 많은가보다. 백현은 자신에게 몰려오는 5명의 해군에 으악! 소리를 지른 후 버팀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품안에 단도를 꺼내들어 그들에게 던졌다. 하나! 둘! 셋! 아씨! 아오 또 못 맞췄어! 찬열이라면 다 맞췄을텐데…. 총질 하나는 명품이었으니 말이다. 아쉬움에 백현은 그들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아직도 멀었어? 해군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품안에서 새로운 총을 꺼낸 백현은 함대의 밑바닥을 보았다. 함대의 밑바닥에 희미한 형상들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나이스! 쾌재를 부른 백현이 돛으로 기어올라가는 해군을 향해 단도를 던졌다.

정신없이 해군들을 베던 크리스가 떨어져있는 나무조각을 주워 위를 보며 윙크하는 찬열의 뒷통수에 명중시켰다. 아씨 누구야!? 뒷통수를 부여잡으며 뒤를 돌아본 찬열에게 크리스가 소리쳤다.


"뒤지면 알아서해!!!! 넌 내가 죽인다!!!"

"니 뒤나 조심해 이 새끼야!!"


나한테 소리나 지르지말고 지 뒤나 살피지. 찬열은 혀를 끌끌차며 백현에게 기어가는 해군의 궁둥이에 총을 쐈다.

왜 함대를 보면서 웃지? 백현의 행동에 세훈도 함대를 바라보았다. 저게 뭐야? 세훈은 휘둥그레 함대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함대를 기어올라간다. 자세히 보려고 하는데 해군 한 명이 뒤에서 달려들었다. 그의 칼을 받아내고 목을 발로 차 바다로 떨어뜨린 세훈은 다시 함대를 바라보았다. 근데 또 뒤에서 누군가가 달려들었다.


"야!!! 니네 함대 보려는데 뭐이리 방해질이야!!!!"


뭘 좀 보려는데 뭐이리 방해꾼들이 많아!? 승질내는 세훈에 쫄은 해군은 칼을 내려놓고 세훈을 따라 본인의 함대를 바라보았다. 함대로 오르는건 분명….


"함대에 유령이 올라간다!!!!"


해군의 입에서 비명이 마구 튀어나왔다.



쾅-! 쾅-! 어느 순간부터 함대가 밀리기 시작했다. 연신 퍼부어대는 블랙펄쪽의 대포 사격에 함대는 부셔져갔다. 우리가 이겼다!!! 이 기세를 입어 함대를 폭파시키려는 작정으로 대포를 사격하던 선원들도 함대로 기어올라가는 형체를 보고 포격을 멈추었다. 저게 뭐야? 이내 지하에서는 포격 소리가 아닌 선원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찼다.

세훈의 옆에있던 해군이 호들갑을 떨며 소리지르자 그 모습을 본 다른 해군들도 비명을 질렀고 이어 블랙펄의 갑판에는 해군들의 비명소리로 가득찼다.

함대에는 붉은색의 투명한 무언가가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형체들은 함대를 바닷속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천천히 입수되어가는 함대를 보며 블랙펄에 승선한 해군들은 망연자실했다. 함대가 저리 될 줄 알고 블랙펄 선원들은 저 곳에 승선하지 못하게 한건가? 민석은 처참한 모습을 한 채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함대를 보며 백현을 바라보았다.

도망칠 곳도 없어진 해군들은 들고있던 칼을 떨어뜨렸다. 본인들의 뒷통수로 손을 올리는 해군들을 보며 선원들은 칼을 치켜세우며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항복하는 해군들을 감옥에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 백현에게 민석이 다가갔다. 넌 알고있었어? 그래서 저쪽으로 가지 말라한거야? 민석의 질문에 백현이 힛- 하고 웃으며 몸을 빙그르르르 돌렸다. 이 곳은 엘프족의 수호를 받는 곳이라 엘프의 기운이 세겨진 배가 아니면 가라앉아. 하고 말했다.


"블랙펄은 엘프의 기운이 있다는거야?"

"우리 떠날 때 엘프 아저씨가 선물로 자기 기운을 줬어."


아저씨 고마워. 백현은 섬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해군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승리의 여운이 가지 않는 선원들은 저마다 기뻐하는데, 아하하하하. 끄흐흐흐흐. 어디선가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선원들은 이상한 웃음소리에 하나 둘씩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찬열과 크리스가 입을 활짝 벌리고 웃고 있었다. 왜 눈은 서로를 노려보고 난리인데!?

두 남자의 미묘한 기류에 선원들은 주춤주춤 둘 사이로부터 멀어졌다. 왜들 저래? 이제 막 도르래로 장루로부터 내려온 루한과 준면은 실성하는 듯 웃는 둘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까 싸우면서 거기라도 맞았어?

서로의 눈치를 보며 웃던 찬열과 크리스가 재빠르게 칼을 빼들어 서로에게 내리쳤다.

챙- 챙-

웃음소리는 사라지고 칼이 맞부딪히는 소리만이 배를 가득 채웠다. 찬열은 몸을 돌려 품에서 단도를 꺼내들어 크리스를 향해 던지고 버팀줄로 올라갔다. 날카롭게 지나간 단도는 크리스의 볼에 스쳐 지나갔다. 주륵- 크리스는 볼에 흐르는 따듯한 느낌에 볼을 슥 만졌다. 피…! 저 개자식이!! 붉은 피를 보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찬열을 향해 총을 꺼내 발사했다. 그가 총을 꺼내는 모습을 보고 빨리 몸을 숙였다. 총알은 찬열의 모자를 뚫고 지나갔다. 모자를 벗어 상태를 확인한 찬열이 버럭 소리질렀다.


"야!! 이게 얼마짜린줄 알아!?"


내 모자!!! 인상을 팍 쓰며 모자를 살펴보는 찬열에게 크리스가 어이없다는 듯 소리쳤다.


"내 얼굴은 어쩌게!?"

"나보다 못생겼으니까 괜찮아!!!"

"뭐!?"


저 뺀질이가 진짜…! 열받은 크리스는 그를 향해 밧줄을 집어 던졌다. 윽!! 제대로 안면 강타 당한 찬열이 난간에서 자빠졌다. 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찬열이 몸이 쑤시는 듯 바로 일어서지 못했다. 엎어져있는 찬열을 보며 크리스가 칼을 번쩍 들었다.


"내가 이겼네?"


넌 이제 끝이다. 승리의 미소를 지은 크리스가 칼을 내리치려는 순간 배가 쿵- 하고 크게 요동쳤다. 순간 중심을 잃은 크리스와 주변 선원들 모두 넘어졌다. 그런 그들을 보며 조종키에서 손 땐 백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항구에 도착했다."


항구에 도착했다는 백현의 말에 찬열이 난간을 붙잡고 항구로 점프해 착지했다. 아우 옆구리 아직도 쑤셔…. 인상을 찌푸리며 찬열이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뛰어내리는 찬열에 크리스 또한 그를 따라서 뛰어내렸다.

둘의 칼은 다시 부딪혔다. 싸움을 하며 위로, 위로 올라가면서 서로의 숨은 가빠져왔다. 어느새 둘은 섬 내의 산 속 깊숙히 올라가고 있었다. 계곡이 급하게 흐르는 길로 아슬아슬하게 올라가며 칼을 휘둘렀다. 챙-! 다시 칼을 마주친 둘은 서로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다 서로의 칼을 밀어버리고 주먹을 날렸다. 둘은 몸을 틀어 서로의 목을 향해 다리를 쭉 뻗었다.


"큭-"


몇 초뒤, 정적 속에서 울려퍼진건 크리스의 비웃음이었다. 찬열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씨, 쟤는 왜 나보다 다리 길이가 길어서…!! 떠벌리지 못하도록 반드시 죽여버려야지. 퍽- 크리스가 비틀거렸다. 돌멩이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눈에 보이는건 절벽과 폭포였다. 이를 악문 크리스가 찬열에게 달려들었다. 팔이 서로 엉퀴었다. 윽! 찬열의 목이 졸렸다. 찬열은 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걸 느끼며 크리스의 옆구리에 힘껏 팔꿈치로 가격했다. 옆구리를 부여 잡으며 떨어져 나간 크리스를 향해 총을 겨눴다. 총을 겨눈 것도 무색하게 크리스가 던진 돌멩이에 손을 맞아 총을 놓쳤다. 둘은 서로에게 달려들어 목을 졸랐다.


"윽…."

"큭…!"


눈이 새빨갛게 핏줄이 선다. 서로 몸싸움을 하다 크리스가 돌멩이에 걸려 중심을 잃자, 찬열이 그의 허리춤에 꽂혀있던 총을 꺼내들어 한쪽 무릎을 꿇은 크리스에게 총을 겨눴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크리스에게 찬열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바다가 아니라서 아쉽네. 니가 그 고통을 겪어봐야 하는데."


그런 찬열에 크리스가 거칠게 숨을 쉬며 물었다.


"너… 어떻게 살아 나온거지?"

"널 죽이려고 바다의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


악마…? 의아한 표정의 크리스에 찬열이 입으로 왼손에 덮인 천을 풀러냈다.


"………!!!"

"카이."


자신에게 속삭이는 찬열의 왼손에 세겨진 문양을 보더니 크리스가 벌떡 일어섰다.


"이 미친자식!!"


탕-!!

무언가 몸이 뚫린 느낌이다. 크리스는 왼쪽 가슴을 만졌다. 숨쉬기가 괴로움과 동시에 따듯한 무언가가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린다. 찬열이 든 총에서는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얼핏 찬열의 비릿한 미소가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언제나 나를 향해 하얀 얼굴로 눈웃음 짓던 네가 보인다. 그 모습에 절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시선이 흩뿌려지는 동시에 크리스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풍덩-!! 계곡으로 쳐박히는 그를 보며 찬열은 미소를 지웠다. 블랙펄에서 우정을 다지며 럼주를 마시다 같이 백현에게 바가지 긁히고 우정이랍시고 서로의 이름을 세긴 팬던트를 손목에 찼던 기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너는 어째서…. 찬열은 괴로움에 얼굴을 구겼다.

계곡에는 붉은 피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찬열은 산 속에서 내려가 블랙펄이 있는 해안가로 달려갔다. 백현, 세훈, 루한, 준면 그리고 다른 선원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스는? 하는 백현의 눈치에 찬열은 크리스는 죽었다. 하고 대답했다.

크리스 갑판장이 죽었다고? 해적에서는 강자만이 살아남는법. 자신에게 새로운 충성을 바칠 것인가? 갑판장의 복수를 할 것인가? 자신들에게 대답을 기다리는 찬열의 모습에 선원들은 와아아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다시 돌아온 선장님을 위하여-!! 환호성이 가득찬 해안가에서 준면은 미소를 씩 지으며 이리저리 섬의 산 꼭대기를 쳐다보았다. 저 곳에서 희미한 빛이 나는게 보인다.


"저기, 산 꼭대기에서 빛이 보이는데?"

"그렇네요, 형."


세훈이 동의하자 루한도 둘이 보는 쪽을 바라보았지만 울창한 나무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엘프가 눈이 좋긴 좋구나…. 찬열의 말을 떠올리며 루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찬열이 왔던 반대쪽으로 산을 타기 시작했다. 완만한 등선으로 올라가며 모두 가슴이 기대로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울창한 나무 사이 찝찝한 습기 속에서도 묵묵히 산을 탔다. 산을 한 시간가량 탔을까, 슬슬 지쳐서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게다가 습기가 가득한 안쪽이라 땀과 절여진 몸에서 육수가 흘러 나왔고 지친 몸은 물먹은 솜마냥 무겁기만 했다. 그런 선원들 앞에 영롱한 작은 보랏빛이 둥둥 떠다녔다.


"이히히! 생명의 나무를 찾았다!"


보랏빛에 정신을 뺏겨 헛소리를 하는 선원들도 있는가 반면 그 빛에 홀려 다른 쪽으로 따라가는 선원들도 있었다. 보랏빛이 루한 앞으로 다가왔다. 루한은 그 빛을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생명의 나무는 저곳에 있어…. 라고 말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목소리는 머릿속에 웅웅 퍼졌다. 자신도 모르게 그 빛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루한이 형!"


세훈이 루한을 낚아챘다. 형 정신차려요! 초점을 잃은채 비몽사몽한 루한의 따귀를 몇 번 때렸지만 여전히 자신을 멍하게 바라보는 루한을 업고 세훈이 앞서 가는 찬열, 백현, 종대, 민석, 준면을 뒤따라갔다.


"형들!!! 보랏빛 절대 보시면 안 되요! 보면 정신을 홀리나봐요!!"


뒤에서 소리치는 세훈에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종대는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열심히 올라갔다.




거대한 신전이 눈앞에 있었다. 저 곳이 바로… 생명의 나무가 있는 곳인가? 커도 너무 큰데? 민석은 입을 쫙 벌리며 주저앉았다. 아이고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종대도 민석을 따라 주저앉았다. 찬열은 땀을 닦으며 엘프 아저씨를 욕했다. 알려주면 좀 덧나? 헹-. 뒤이어 루한을 업고 다리를 후들후들거리며 기다싶이 올라온 세훈은 올라오자마자 자빠졌다.


"목마르다…."


헥헥거리는 백현에게 찬열이 욕을 멈추고 물을 건냈다. 꼴깍꼴깍- 물을 마시는 백현의 얼굴을 바라보던 찬열이 그의 얼굴을 손으로 문질렀다. 못생긴 강아지야, 땀에 쩔으니 더 못생겨보인다.

퍽-

박찬열 쟤는 잘 하다가도 가끔 저런 헛소리 한다니까…. 지친 두 남자는 정강이를 부여잡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찬열을 보며 소금을 뿌려댔다.


어느정도 쉬자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신전 앞에 도착하고 찬열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신전의 문을 열자 눈앞에 보이는건 거대한 나무였다. 나무는 자체발광을 하는지, 신전 내부는 노란 빛으로 가득 물들여 있었다. 나무 주변에는 푸른 빛으로 빛나는 웅덩이가 있었고 나무의 줄기에서는 물이 나와 웅덩이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의 뿌리쪽에 구멍이 파여있었다.


"저 곳에 여신의 눈물이 있을거야!"


찬열의 외침에 모두 우르르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터질 듯이 부풀어오는 기대와 함께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허나, 구멍속에 있는건 하나의 낡은 지도 뿐이었다.




"이게 뭐야, 그냥 낡은 지도일 뿐이잖아!"

"여신의 눈물은?"


종대가 실망하고 준면이 두리번 거리자 금방 어수선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생명의 나무에서 나오던 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무슨 잘못이라도 생긴건가? 모두 입을 다물고 주춤하는 사이, 다른 한 쪽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울리는 신전 내부에 전부 소리의 근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얼굴을 제외한 검은 천을 온몸에 두른 키 작은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걸어오는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찬열과 백현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번졌다.


"디오?"

"오랜만입니다. 해적 영주씨. 아니, 미남 해적 영주씨."


찬열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디오가 웃어보였다. 날 마주하고도 웃다니…. 찬열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 디오씨."


실례지만 뭐 좀 여쭈어볼게요. 하고 끼어든 민석이 미소를 지었다. 여신의 눈물은 어디있나요?


"여신의 눈물은 없어요. 이미 오래전, 한 인간에 의해 사라졌죠."


디오의 단호한 말에 모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없다니? 이 고생을 해서 왔는데, 없다니!? 바다의 주인이 되려는 야망은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인가? 모두 김이 새서 허탈해하자 디오가 종대의 손에 들린 지도를 슥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 지도가 뭘 가리키는지 아나요?"

"뭘 가리키는데요?"


준면이 묻자, 디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카이를 죽일 수 있는 무기."





모두 신전에서 디오를 데리고 해안가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도중 널부러져 있는 선원들을 이끌고. 그리고 블랙펄을 출항했다.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이 무기를 얻어서 카이를 죽이면, 카이의 바다가 내것이 된다고?"


찬열은 중얼거리며 지도를 품안에 넣었다. 곧 끝날 것 같은 자신의 운명선에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푸른 빛 바다가 일렁이는 하늘을 바라보는 찬열에게 백현이 다가갔다. 그리고 찬열의 손을 잡아 조종키 앞으로 그를 이끌었다. 백현아 왜 그래? 자신을 질질 끌고가는 백현에게 찬열이 당황해 물었다. 그런 그를 조종키에 손을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미소를 씩 지었다.


"블랙펄의 주인은 너야."


네거야.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백현에 찬열이 가슴속에서 끓는 뜨거움에 목이 메어왔다. 떨리는 입꼬리를 올린 찬열이 백현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품안에 가뒀다. 그리고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어 조종키 손잡이를 잡았다. 겹쳐진 손에 백현이 놀라 그를 올려다 보았다. 놀란 멍뭉이 같은 표정에 찬열이 웃으며 그의 귀에 속삭였다.


"내꺼긴. 우리꺼지."



둘을 보며 민석과 종대는 여전히 소금을 찾아댔고 루한과 준면은 세훈의 눈을 가렸다. 우리 세훈이 크는데 정서에 영향끼칠라.

그런 그들을 보며 찬열이 웃다가 정색하며 큰 소리로 위치로 가라!! 꾸물거리지말고 돛을 펴!! 하고 소리쳤다. 모두 선장과 갑판장의 미묘한 분위기에 눈치를 보던 선원들이 허겁지겁 움직였다. 밧줄이 모두 풀어져 돛이 크게 펼쳐졌고 바람에 맞춰 찬열은 조종키를 돌렸다.

그리고 검은 돛을 펄럭이며 구름 바다 위를 전진하던 블랙펄은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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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대박ㅠㅠㅠ대박ㄱ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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