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훈] 무제
형. 좀 어때요?
조용한 병실에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지훈은 그저 침대헤드에 기대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작은 빛들을 물끄러미 응시할 뿐이었다. 그런 지훈을 바라보던 민규도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지훈이 이 작은 병실에서만 생활한 지가 1년이 다 되어간다. 짧았던 머리는 그새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길어져 버렸고, 오랜 기간 빛을 보지 못한 피부는 투명해졌다. 그리고 민규가 지훈의 해사한 웃음을 본 지도 많은 시간이 지났다. 4년간의 기다림 끝에 거의 임박한 데뷔에 더욱 더 자신을 세차게 몰아붙이던 지훈은 결국 목소리를 잃었다. 노래가 세상의 전부이던 지훈은 절망했고 돌이킬 수 없을만큼 무너져 내렸다.
부스럭
의식하지도 못할 지훈의 작은 움직임에 헐렁한 병원복 소매가 걷혀 올라갔다. 부스러질 듯 가늘고 새하얀 지훈의 여린 하얀 손목은 붉고 잔인하게 난도질된 흔적으로 가득했다. 어떤 이에게는 짧겠지만, 지훈에게는 그 누구보다 견딜 수 없이 길었던 1년이 새겨 놓은 낙인이었다. 민규는 투명하게 가득찬 물병을 지훈의 옆에 내려놓았다. 어느 새 밤이 깊었는지 그려놓은 듯 하얗고 둥근 달이 떠올랐다. 달빛이 생기없는 지훈의 얼굴에 포근히 내려앉았다. 민규는 그런 지훈을 건너편 침대에 걸터앉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형. 여전히 지훈은 반응이 없다.
"지훈이형. 오늘 대표님이 형 자는 사이에 잠깐 오셨어. 걱정 많이 하시더라. 요즘 형 잠 들어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고 말이야. 대표님 가시고 원우형이랑 순영이형도 왔다갔어. 바보들 같이... 자기들 왔다고 형 깨우지도 못하고 자는 것만 두 시간이나 보다가 갔지뭐야 하하하."
지훈의 몫까지 대신 다 말해주려는 듯 민규는 유난히 밝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쉴틈없이 얘기했다. 지훈은 원우와 순영이 왔다갔다는 이야기에만 조금 반응했을 뿐, 그 이상의 감정 변화는 비추지 않았다. 초점이 없던 지훈의 눈이 달력으로 향했다. 5월 26일. 만약 지훈이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세상에 나올 날이었다.
나만 아니였으면. 나만…
검은 생각들이 점차 지훈을 품어갔다. 옅게 동공이 흔들리며 서서히 돌려진 지훈의 눈에 창문이 들어왔다.
…없었으면…
지훈은 말을 하지 않는 그를 위해 민규가 오래 전부터 준비해 놓았던 스케치북과 펜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승철이형은 오늘 바빠서 못왔다고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 . . 형 . . ?"
계속해서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던 민규는 갑작스런 지훈의 움직임에 말을 멈췄다. 민규가 말을 멈춘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지훈은 조용히 펜 뚜껑을 열었다. 한동안 병실에는 사각대는 소리만 들렸다.
'민규야 나 딸기 케이크 먹고싶다'
오랜만에 글씨를 쓴 탓일까 예전보다 더 삐뚤삐뚤한 그 글씨는 현재의 지훈과 지독하게 닮아있었다. 한동안 잘 먹지도 않아 링거액으로 하루 하루를 버티던 지훈이 써 내려간 그 말에 민규는 떨려오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의자가 뒤로 넘어갈 정도로 벌떡 일어난 민규는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만 더듬더듬 남기고 곧바로 병실을 뛰어나갔다. 탁탁탁. 병실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발걸음 소리를 한동안 듣고만 있던 지훈은 주위가 조용해지자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어두운 공간 속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기만 하던 지훈이 조용히 가는 손목에 이질적이게 박혀있던 링거 바늘을 뽑아냈다. 하얀 손목과 대조적인 붉은 빛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건 보이지 않는 듯, 지훈은 서서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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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는 빠르게 어디론가 향했다. 같이 연습생으로 지내던 시절, 유난히 단 것을 좋아하던 지훈에게 딸기 케이크를 한 조각 건내주었다. 그 이후, 틈만 나면 그가 사주었던 것과 같은 딸기 케이크를 먹으며 좋아하던 지훈을 그는 똑똑히 기억했다.
어서오세-
막 마칠 준비를 하는 카페에 들어선 민규는 종업원의 인사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지 그저 진열대로 향해 있는 딸기 케이크를 전부 포장해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종업원은 늦은 시간에 갑작스레 뛰어 들어와 울먹이며 말하는 민규에 당황한 듯 그저 묵묵히 포장하기 시작했다. 병원과 이 곳까지의 거리를 가늠도 하지 못한 채 몇 십분 동안이나 무작정 뛰어왔던 민규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 문득 얼굴이 축축해 손으로 닦아낸 민규는 자신이 울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자각한 순간부터 끝 없이 터져나오는 울음에 민규는 케이크를 가져온 종업원이 휴지와 함께 봉투를 손에 들려줄 때까지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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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갈 때와는 다르게 한 손에는 카페로고가 쓰여있는 봉투를 들고 병원에 들어온 민규는 받아들고 좋아 할 지훈의 얼굴을 상상하며 엘레베이터에 올랐다. 지훈이 있는 층은 17층. 바깔 풍경을 좋아하는 지훈을 향한 그의 배려였다. 17층에 멈춘 엘레베이터는 서서히 문을 열었다. 어두컴컴한 복도 사이를 빠르게 지나간 민규는 지훈이 있을 병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형 저 왔어요!"
하지만 그런 민규를 기다리는 건 삭막한 공기와 빈 침대 뿐이었다. 그리고 억지로 뽑아낸 듯한 링거 바늘에 어지럽게 흘러내린 핏방울도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민규는 문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쿵.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문이 큰소리를 내며 닫혔다. 불어오는 바람을 민규도 느낀 듯 주위를 다급히 둘러보는 눈에 활짝 열려있는 큰 창문과 창 밖에 다리를 내고 위태롭게 앉아있는 지훈이 비춰졌다. 순간 민규의 손에서 봉투가 툭 떨어졌다.
"형....? 왜.. 왜...거기 그러고 있어요...하하... 거기 위험해요 형...제발...제발"
지훈은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어지럽혀져 있는 침대. 병실 안으로 빨려가듯 거세게 들어가는 바람. 그리고 민규... 지훈의 눈에 곧 쓰러질 듯 위태로운 민규가 보였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보며 제발 내려오라는 민규를 바라보는 지훈의 눈빛도 떨려왔다. 그렇지만 이미 마음을 정한 듯, 지훈은 다시 눈을 밖으로 돌렸다.
"형!!!!!! 제발 지훈이형.... 윽..."
울부짖는 민규에 지훈의 눈에서도 작은 물방울이 흘렀다. 어느 새 두 눈을 꼭 감고는 두 팔을 서서히 벌리는 지훈을 지켜보는 민규의 마음이 처참히 난도질되고 있었다.
"지훈이형!! 제발!!"
지훈의 움직임이 멈췄다. 민규는 붙잡으면 떨어질까 움직일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주저 앉아 오열하며 외쳤다. 그런 민규를 지훈은 다시금 돌아본다. 두 눈동자가 마주쳤다. 순간, 지훈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울먹이는 민규를 보고 지훈은 머뭇거리다 입을 떼었다.
고마워 민규야. 그리고 미안해... 많이
지훈은 검은 하늘을 날았다. 노래, 단 하나만을 위한 삶을 살았던 지훈은 그의 세상을 잃고 그렇게 저물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시 읽어보니 겁나 똥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겁나 용감해ㅋㅋㅋㅋㅋㅋ
미안해 안구테러해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야심한 밤에 생각해낸 소재라 감성팔이 대박인듯ㅋㅋㅋㅋㅋㅋㅋ
문제시 민훈 망태기에 싸서 납치ㅇㅇㅇㅇㅇ
아 만약 괜찮다면 제목 좀 정해주라....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오타 지적은 사랑...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