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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 1996~2008 

나이 : 17~29 

 

 

return to love 上 

 

 

 

 

01. 

 

 

 

"먼저 가게?" 

 

"응. 내일 출근이라. 미안."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나를 오래 있게 하려 마땅히 질척이지 않았다. 

 

"시준희 씨, 파일 수정했어요?" 

"원본 카피 좀 부탁할게요~." 

"준희 씨! 작가님이랑 연락은?" 

 

팀 내에서 막내도 아닌데 발과 손은 서둘러야 했다. 다른 잡생각들을 할 시간도 없이 바빴다. 나는 이렇게 살아갔다. 

 

 

간만에 시간적 여유가 생겨 시작한 방 청소는 별 의미 없었다. 침대 위에 널브러진 허물들이나 여러 종이들로 뒤덮인 바닥을 보자니 정녕 사람이 사는 곳이 맞나 구분이 안 갔다. 정신없이 살았던 터라 청소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 내가 자리를 잡았다. 

그 의미 없는 방청소가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할 줄은 정말 몰랐지만. 

 

 

침대 밑에서 입체적인 실루엣이 보였다. 청소를 하다 말고 쾌쾌한 먼지투성이 틈으로 팔을 더듬었다. 이런 곳까지 공략할 생각은 없었지만 우연찮게 발견한 거였다. 

 

정리 중이던 물건들을 대충 옆으로 치워냈다. 다른 잡동사니들을 밀어내고 가운데에 차지한 건 적당한 크기에 상자였다. 집을 나오면서 방을 싹 비우기는 했다. 때문에 본가에 있어야 할 물건이 실수로 같이 딸려온 듯했다. 자취 6년 차에 알아챈 건 그만큼 이것에 대해 무관심했던 걸까. 아니면 바빠서 일지도 모른다. 

 

다시 열어볼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애석하게도 허무해졌다. 무진장 홀린 사람처럼 손을 댔다.  

 

" 엑.. " 

켁... 켁.... 

 

긴 세월 동안 묵힌 탓에 먼지가 풍겼다. 손으로 허공을 저으며 상자를 열었다. 책들과 액자, 교복이 흐트러져 있었다. 특히 교복은 똑바로 개어진 상태로 섞여 있었다. 셔츠 사이로 무언가 튀어나왔다. 어두침침한 상태에서 돌연 눈에 띄는 색이 바랜 하늘색 편지지였다. 정확히는 편지였다. 가장 위에 올려놓았었는데 움직이면서 안으로 이동한 거 같았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창문 틈새로 들어온 노을이 빛을 편지로 향해 비췄다. 

 

눈에 띈다.. 

 

지금은 흐려진 잔상이지만 잊을 수 없는 그가 아른거렸다. 앞뒤로 뒤집어 보다 입구를 열었다. 이미 여러 번 열어본 탓에 조금 흠이 간 편지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편지를 돌려 접었다. 구겨진 종이에는 흘겨 쓴 글씨체가 보였다. 내용은 전혀 그러지 않았지만.  

 

순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너는 이런 아이였다. 무심해 보이지만 속은 무척 따뜻한 사람. 너는 그랬다. 

 

 

10년이 지나니 상처로 가득 찬 과거의 내가 무색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반대였는데. 만일, 20년이 지나 그 이상의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이것을 다시 읽을 수 있는 날은 없을 거라 단언했던 적이 있었다. 가슴 한구석에 소년이던 그를 평생이고 끌어안고 살 거라 생각했다. 

 

나는 단지 겁쟁이었고, 그저 너를 다시 곱씹어 보는 게 두려웠으니까. 그건 하루, 한 달, 한 해가 지날수록, 빈 공간이 다른 것들로 채워 가면서 변했다. 두려움 따윈 희미해졌다. 모순적인 건 용기를 내지 못해 외면이 최선이었다. 맞다. 사실 나는 가면을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언제나 울고 있었다. 너무 보고 싶다. 보고 싶어 정우야. 

 

 

 

 

*1 

 

 

 

어딜 가던 눈에 띄었고, 어떤 날이던 밝게 빛나는 아이였다. 모두에게 친절했지만 낯도 가렸고, 선도 확실하게 긋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는 알았을까. 사람들이 속을 알려고 뱀처럼 설설 기었지만 실패했다는걸. 

 

 

소년이 앞에 있음에도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몰랐다. 저 내면에 뭘 숨기고 있는지 몰랐다. 항상 어딘가 몽실몽실한 느낌이 들었다. 어색한 감정이었지만 소년을 지켜보는 걸 관둘 수가 없었다. 경멸의 시선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왜 자꾸 보고 싶은 걸까. 이기적인 태도인 걸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얼마 안 가 그 이유를 짐작했다. 내 자리는 소년의 뒤였고, 너는 나의 앞자리였다. 그래서 항상 소년의 뒷모습이 내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우발적인 무의식이었다. 

 

"김.. 정우." 

 

".. 어?" 

너의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은 덤이었다. 

 

 

 

*2 

 

 

 

도서관은 내 학창시절의 키워드 중 하나였다. 3년 내내 도서부원으로 활동했으니까. 처음 다짐은 김정우는 도서관을 자주 가는 터라, 접점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도서부원이 되겠다고 신청서를 냈다. 수월하게 합격한 것도 신기했는데 이후로 김정우와 나의 관계가 급속도로 올라갔다. 그러다 슬슬 낡은 도서관의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나는 그때까지도 몰랐다. 이 선택이 얼마나 큰 파장을 가져올지. 그래도 더 가까워진 걸 후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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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너 우리 반 맞지?" 

 

티는 안 냈지만 내심 놀랐다. 김정우가 내게 인사를 건네고 아는 척을 해온다. 아, 갑자기 김정우의 이름을 읊었던 때가 떠올랐다. 열이 오르는 거 같아서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을 이용해 귀를 가렸다. 아마 엄청 붉어졌겠지. 이런 사실을 김정우가 몰랐으면 했다. 

 

"시준희.. 맞나?" 

 

"...." 

 

두 번째 질문이었다. 명찰을 슬쩍 보던 김정우가 확인차 물었다. 조심히 끄덕이는 날 보고 확신을 받았는지 표정을 풀며 말했다. 

 

"그럼 책 좀 찾아주라. 직접 찾으려니까 도저히 안 보여서." 

 

정신을 차린 내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예의상 물어본 거구나. 애초에 당연한 일이었다. 여긴 도서관이고, 김정우와 나는 동급생이었으니까. 

 

".. 무슨... 책?" 

 

하지만 다시 숙일 수밖에 없었다. 금방 눈이 마주치자 자동으로 떨구고 말았다. 가까이에 있는 김정우는 쳐다보기 어려웠다. 그런 나를 보며 김정우는 웃었다. 나도 내가 웃겼다. 그저, 내가,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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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좋아함의 미학." 

 

 

 

*3 

 

 

 

그날을 기점으로 신기하리만큼 김정우와 가까워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비록 서로 장난을 던질 정도로 아주 친해진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김정우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항상 인사를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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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시준희! 안녀엉 ㅎㅎ." 

 

친구들과 있을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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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도서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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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왔네." 

 

등교할때. 

 

 

"준희, 잘 가. 내일 보자!" 

 

하교할 때도. 

 

매일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마치 '아는 사이' 라는 기적처럼. 

 

 

어쩌면 김정우라서 같은 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인사하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소심한 성격 덕에 친구가 별로 없던 나는 달랐다. 그게 김정우라면 더더욱.  

그러나 김정우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게 힘이 안 났다. 어찌 보면 인사 정도는 지나가는 개에게도 하는 거였다. 의미 부여를 심하게 하는 짓은 바보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그냥 나는 김정우여서. 그게 정우 너여서. 

 

심한 떨림에 벅차 슬프게도 주책맞았나 보다. 

 

 

비로소 인정해야 할 부분이었다. 인사를 하기 전부터 깨달았다. 김정우만 보면 가슴 한 켠이 구름처럼 몽실 거리던 이유도, 비정상적이게 뛰던 심장도, 얼굴을 보기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워 붉어지던 귀와 볼도. 다 한 가지가 원인이었다. 

 

 

좋아한다. 

 

좋아해서 그런 거였다. 

 

나는 너를 좋아했다. 

 

 

 

*4 

 

 

 

우리는 흐지부지한 사이다.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다. 그렇다고 사이가 평소보다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딱 같은 반, 뒷자리, 도서관에서 부원을 맡고 있는 아이. 나는 네게 그 정도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사실 '일'이라고 할 정도로 거창한 것은 아니다. '친해진 계기' 정도로 하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헐? 밖에 비 오는 거?" 한 아이가 창문을 내다보더니 소리쳤다. 그 말에 창문을 열자 다른 아이가 성질을 냈다. 

 

"아! 이동혁. 비 다 튀기잖아!!" 

 

"ㅋㅋㅋㅋㅋ 교과서 다 젖었죠~?" 

 

덕분에 창가 쪽에 앉아있던 이시민에게로 피해가 왔다. 또 다른 아이가 또 싸우냐며 창문을 내렸다. 한바탕 난리가 난 뒤로 주변이 웅성거렸다. 

 

분명 아침까진 쨍쨍했던 거 같은데.. 오전 날씨만 믿고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나한텐 별로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선은 자연스레 너에게로 향했다. 습관이 되어 버렸다. 

 

 

[김정우] Return To love 上~下(재) | 인스티즈

 

"준희, 잘 가. 내일 보자!" 

 

하교할 때도. 

 

매일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마치 '아는 사이' 라는 기적처럼. 

 

 

어쩌면 김정우라서 같은 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인사하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소심한 성격 덕에 친구가 별로 없던 나는 달랐다. 그게 김정우라면 더더욱.  

그러나 김정우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게 힘이 안 났다. 어찌 보면 인사 정도는 지나가는 개에게도 하는 거였다. 의미 부여를 심하게 하는 짓은 바보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그냥 나는 김정우여서. 그게 정우 너여서. 

 

심한 떨림에 벅차 슬프게도 주책맞았나 보다. 

 

 

비로소 인정해야 할 부분이었다. 인사를 하기 전부터 깨달았다. 김정우만 보면 가슴 한 켠이 구름처럼 몽실 거리던 이유도, 비정상적이게 뛰던 심장도, 얼굴을 보기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워 붉어지던 귀와 볼도. 다 한 가지가 원인이었다. 

 

 

좋아한다. 

 

좋아해서 그런 거였다. 

 

나는 너를 좋아했다. 

 

 

 

*4 

 

 

 

우리는 흐지부지한 사이다.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다. 그렇다고 사이가 평소보다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딱 같은 반, 뒷자리, 도서관에서 부원을 맡고 있는 아이. 나는 네게 그 정도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사실 '일'이라고 할 정도로 거창한 것은 아니다. '친해진 계기' 정도로 하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헐? 밖에 비 오는 거?" 한 아이가 창문을 내다보더니 소리쳤다. 그 말에 창문을 열자 다른 아이가 성질을 냈다. 

 

"아! 이동혁. 비 다 튀기잖아!!" 

 

"ㅋㅋㅋㅋㅋ 교과서 다 젖었죠~?" 

 

덕분에 창가 쪽에 앉아있던 이시민에게로 피해가 왔다. 또 다른 아이가 또 싸우냐며 창문을 내렸다. 한바탕 난리가 난 뒤로 주변이 웅성거렸다. 

 

분명 아침까진 쨍쨍했던 거 같은데.. 오전 날씨만 믿고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나한텐 별로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선은 자연스레 너에게로 향했다. 습관이 되어 버렸다. 

 

 

[김정우] Return To love 上~下(재) | 인스티즈

 

"준희, 잘 가. 내일 보자!" 

 

하교할 때도. 

 

매일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마치 '아는 사이' 라는 기적처럼. 

 

 

어쩌면 김정우라서 같은 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인사하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소심한 성격 덕에 친구가 별로 없던 나는 달랐다. 그게 김정우라면 더더욱.  

그러나 김정우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게 힘이 안 났다. 어찌 보면 인사 정도는 지나가는 개에게도 하는 거였다. 의미 부여를 심하게 하는 짓은 바보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그냥 나는 김정우여서. 그게 정우 너여서. 

 

심한 떨림에 벅차 슬프게도 주책맞았나 보다. 

 

 

비로소 인정해야 할 부분이었다. 인사를 하기 전부터 깨달았다. 김정우만 보면 가슴 한 켠이 구름처럼 몽실 거리던 이유도, 비정상적이게 뛰던 심장도, 얼굴을 보기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워 붉어지던 귀와 볼도. 다 한 가지가 원인이었다. 

 

 

좋아한다. 

 

좋아해서 그런 거였다. 

 

나는 너를 좋아했다. 

 

 

 

*4 

 

 

 

우리는 흐지부지한 사이다.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다. 그렇다고 사이가 평소보다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딱 같은 반, 뒷자리, 도서관에서 부원을 맡고 있는 아이. 나는 네게 그 정도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사실 '일'이라고 할 정도로 거창한 것은 아니다. '친해진 계기' 정도로 하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헐? 밖에 비 오는 거?" 한 아이가 창문을 내다보더니 소리쳤다. 그 말에 창문을 열자 다른 아이가 성질을 냈다. 

 

"아! 이동혁. 비 다 튀기잖아!!" 

 

"ㅋㅋㅋㅋㅋ 교과서 다 젖었죠~?" 

 

덕분에 창가 쪽에 앉아있던 이시민에게로 피해가 왔다. 또 다른 아이가 또 싸우냐며 창문을 내렸다. 한바탕 난리가 난 뒤로 주변이 웅성거렸다. 

 

분명 아침까진 쨍쨍했던 거 같은데.. 오전 날씨만 믿고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나한텐 별로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선은 자연스레 너에게로 향했다. 습관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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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도 나와 동일한 상황인지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안심이 되었다. 요즘 말로는(2020) 은어로 핵인싸의 타이틀에 걸맞게 친구가 많은 김정우였기에 충분히 누군가와 함께 우산을 쓰고 갈 게 보였다. 스쳐 지나가는 아쉬움에 후회가 밀려왔다. 차라리 내가 우산을 가져왔더라면 뭔가 용기를 내보지 않았을까. 물론 가져왔어도 그러지 못할게 뻔했지만. 네게서 시선을 떼고 창문을 바라봤다. 비가 정말 많이 내리고 있었다. 폭풍우처럼 창문을 거칠게 구타했다.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었나? 

 

 

하필 오늘 같은 날 주번인 건 클리셰처럼 적용되는 건가? 내게만 해당인 걸까? 이건 현재로 돌아와서 한 의문이다. 

오전에는 다른 학생이 교실을 열었지만 나는 오후 담당이었다. 평소보다 더 늦게 하교하게 생겼다. 비는 더욱더 거세졌다. 

 

 

야자가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다. 남아있는 아이들도 하교를 위해 가방을 쌌다. 나도 가방을 챙기고 애들이 빠져나갈 때까지 대기했다. 혼자 남아서 불을 끄고 교실 밖으로 나와 문을 잠갔다. 밖으로 나와 시계를 보자 그나마 비가 와서 그런 지 10분 더 일찍 마친 상태였다.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연락을 할까 했지만 관뒀다. 전화를 하러 가려 해도 비는 맞는다. 그리고 이제서야 불러봤자 시간만 흐르지. 후딱 정류장까지 뛰어가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이다. 

 

 

중앙현관으로 나오자 남아있던 사람들도 다 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어두운 학교, 고요한 공기, 거세게 내리는 비. 이 셋이 합쳐지자 왠지 으스스 한 느낌이 들었다. 습기 때문에 약간 추운 것도 같았다. 가방을 앞으로 매고 자세를 잡았다. 뛰어갈 준비는 마쳤다. 

 

중간에 끼어든 그림자만 없었어도. 

 

 

 

*5 

 

 

 

지금부터 내가 놀란 이유를 설명하자면 

 

 

첫째. 

 

 

갑자기 옆으로 훅 끼쳐오는 그림자 때문에 당황했다. 뜬금없는 인기척을 풍기며 등장 때문도 있지만. 그림자 주인을 보고서 놀라 자지러질 뻔했다. 공포영화보다도 로맨스 영화가 심장이 많이 뛰는 것처럼. 

 

"... 김정우..?" 

 

분명히 다른 친구에 옆에 붙어서 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더욱이 비까지 오니까. 

 

 

둘째.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셋째. 

 

 

"아, 미안. 너도 비 맞고 가려는 거 같길래." 

 

심연을 들여다보면 이런 느낌일까. 주체할 수 없는 떨림 위에 무언가 드리웠다. 

 

"이건..." 

 

 

 

"그냥 젖는 것보단 낫지 않아? ㅎㅎ" 

 

"어? 어어." 

그건.. 그렇지. 

 

 

정확히 남색 가디건이 내 머리 위를 가려줬다. 당황해서 횡설수설 묻는 내게 그 특유의 아무렇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다시 한 번 더 심장이 

 

쿵- 

 

세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지진 났냐? 진정해라... 외적으로도 들릴까 봐 생각했다. 빗소리에 묻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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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갈까?" 

 

사랑, 사랑 거리던 저들은 나를 공감시키지 못했다. 그러던 내게 조용히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고로 설렘이란, 너를 의미하는 단어이자 청춘을 뜻했어.' 

 

'좋아해서 그래.' 

 

'흔적을 남기지 않던 늪은, 네가 사랑이야.' 

 

 

큰 계기 없이 빠지게 된 사랑, 첫사랑이었다. 

 

 

 

 

02. 

 

 

 

"네, 내일이요." 

"걱정 마세요. 엄마." 

 

근심 가득한 말투로 걱정을 물어오는 건 여전했다. 통화를 끊고 방청소를 시작했다. 정확히는 이삿짐 정리였다. 2개월 전, 추억을 회상 시켰던 상자를 꺼냈다. 뜯겨 있는 봉투 앞부분이 너덜했다.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을 털었다. 두드리자 추억이 가득한 교복이나 고등학생 때 썼던 필기도구들 등등이 봉투 안에서 뒹굴었다. 그러다 금이 간 액자가 떨어졌다. 혼자서 존재감을 보이는 액자로 팔을 뻗었다. 

 

"이건 버리지 말까.." 

 

뒤에 있던 다른 박스를 앞으로 끌고 왔다.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그곳에 액자를 툭- 놨다. 깨지는 수고는 없었다. 

 

 

 

 

*4 

 

 

 

"오~ 그림 좋은데." 

 

찰칵- 소리를 내며 카메라가 흔들렸다. 렌즈가 찰나의 빛났다. 김정우의 친구 짓이었다. 비싼 카메라 같아서 건들지도 못하고 가만히 굳어버린 나를 보고 김정우가 친구의 손에서 카메라를 뺏어왔다. "야! 그거 외국에서 사온 거라고." 활기를 띠던 친구는 은근히 자부심을 드러냈다. 키가 컸던 김정우는 친구를 한 손으로 놀리며 훨씬 높이 들었다. 옆으로 넘기는 소리가 삑- 삑- 거리며 났다. 교실에 가만히 있다가 뜬금없는 날벼락이었다. 

 

 

"도촬은 아니지. 친구야?" 

김정우가 저리 말하며 사진을 지우려 할 때였다. "정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소한 질문도, 대화도 못하던 내가 우리를 감싸는 묘한 분위기에 용기를 냈다. 

 

"그거, 뽑으면 안 될까?" 

 

너무 주제넘었나. 김정우는 싫을 수도 있을 텐데. 아차 하고 손등을 가린 상태로 꼬집었다. 다시 어색해지나 싶었을 때 김정우가 고개를 내게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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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싶어? 그래." 

예상보다 더 쿨하게 카메라를 친구에게 도로 건네고 자리에 앉은 김정우는 말했다. "처음으로 같이 찍은 사진이겠네. 아쉽다. 이런 식으로.." 목소리가 줄어들더니 다시 한 번 말했다. "아, 어떻게 나왔는지 안 봐도 되겠어?" 떨리는 눈동자에 끄덕이며 눈을 돌렸다. 너는 참 친절하다. 낯간지러울 정도로. 

 

 

 

*5 

 

 

 

고등학생의 나는 실수의 대명사였다. 주변에선 덤벙쟁이라고 불렀는데 처음 듣는 별명이었다. 덤벙 거리는 게 강아지를 연상시킨다는 뜻이었다. 김정우가 먼저 그렇게 불러서인가 싫지는 않았다. 내가 귀엽다는 건가..? 

 

이런 사소한 말 하나하나에도 의미 부여하게 되는 건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당연한 걸까. 

 

 

김정우를 만나고 내 행동에 의식을 부여했다. 이리도 사고 안치려 노력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할 거다. 추측만 난무한 궁리지만. 가방 메고 책상 사이를 지나다 학습지를 떨어트려 욕먹은 적도 있었다. 심지어 오늘만 해도 저 별명에 걸맞게 실수를 했다. 단순히 잃어버리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쨍그랑- 

 

"어휴! 준희야 또 깼니!?" 

 

교무실에서 화분을 깼다. 야단치는 선생님께 고개를 바짝 숙였다. 등살을 한대 맞은 나는 죄송하다 연거푸 사과했다. 오늘 밤 부모님께 연락이 갈 예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정우는 많이 비웃었다. 내가 허물 없이 행동 해대는 게 웃긴 건지. 가끔은 선생님들이 진지하게 충고도 해줬다. 다르게 말하면 꾸중이었다. 

 

 

어떤 때는 김정우가 수업시간에 뒤를 돌아본 적이 있다. 1학년 2학기가 끝나가던 때라 추웠다. 삐삐를 가리키며 보라는 신호를 취했다. 

 

'100' 

 

제대로 골탕 먹이는 듯이 숫자가 정갈하게 쓰여있었다. 

 

돌아와..? 보낸 의도를 처음엔 잘 몰랐다. 그러나 김정우의 속삭이는 입모양을 보고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연락 방식 외에는 잘 쓰지도 않던 삐삐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란 걸, 김정우를 통해 처음 알았다. 

 

 

칠판을 등져 흉흉한 눈빛으로 수업 중인 선생님을 피해 엎드렸다. 불안하게 조용한 교실 속에서 겨우 끅끅대며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선생님 목소리가 크셔서 마음을 한결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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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젖는 것보단 낫지 않아? ㅎㅎ" 

 

"어? 어어." 

그건.. 그렇지. 

 

 

정확히 남색 가디건이 내 머리 위를 가려줬다. 당황해서 횡설수설 묻는 내게 그 특유의 아무렇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다시 한 번 더 심장이 

 

쿵- 

 

세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지진 났냐? 진정해라... 외적으로도 들릴까 봐 생각했다. 빗소리에 묻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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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갈까?" 

 

사랑, 사랑 거리던 저들은 나를 공감시키지 못했다. 그러던 내게 조용히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고로 설렘이란, 너를 의미하는 단어이자 청춘을 뜻했어.' 

 

'좋아해서 그래.' 

 

'흔적을 남기지 않던 늪은, 네가 사랑이야.' 

 

 

큰 계기 없이 빠지게 된 사랑, 첫사랑이었다. 

 

 

 

 

02. 

 

 

 

"네, 내일이요." 

"걱정 마세요. 엄마." 

 

근심 가득한 말투로 걱정을 물어오는 건 여전했다. 통화를 끊고 방청소를 시작했다. 정확히는 이삿짐 정리였다. 2개월 전, 추억을 회상 시켰던 상자를 꺼냈다. 뜯겨 있는 봉투 앞부분이 너덜했다.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을 털었다. 두드리자 추억이 가득한 교복이나 고등학생 때 썼던 필기도구들 등등이 봉투 안에서 뒹굴었다. 그러다 금이 간 액자가 떨어졌다. 혼자서 존재감을 보이는 액자로 팔을 뻗었다. 

 

"이건 버리지 말까.." 

 

뒤에 있던 다른 박스를 앞으로 끌고 왔다.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그곳에 액자를 툭- 놨다. 깨지는 수고는 없었다. 

 

 

 

 

*4 

 

 

 

"오~ 그림 좋은데." 

 

찰칵- 소리를 내며 카메라가 흔들렸다. 렌즈가 찰나의 빛났다. 김정우의 친구 짓이었다. 비싼 카메라 같아서 건들지도 못하고 가만히 굳어버린 나를 보고 김정우가 친구의 손에서 카메라를 뺏어왔다. "야! 그거 외국에서 사온 거라고." 활기를 띠던 친구는 은근히 자부심을 드러냈다. 키가 컸던 김정우는 친구를 한 손으로 놀리며 훨씬 높이 들었다. 옆으로 넘기는 소리가 삑- 삑- 거리며 났다. 교실에 가만히 있다가 뜬금없는 날벼락이었다. 

 

 

"도촬은 아니지. 친구야?" 

김정우가 저리 말하며 사진을 지우려 할 때였다. "정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소한 질문도, 대화도 못하던 내가 우리를 감싸는 묘한 분위기에 용기를 냈다. 

 

"그거, 뽑으면 안 될까?" 

 

너무 주제넘었나. 김정우는 싫을 수도 있을 텐데. 아차 하고 손등을 가린 상태로 꼬집었다. 다시 어색해지나 싶었을 때 김정우가 고개를 내게로 돌렸다. 

 

 

[김정우] Return To love 上~下(재) | 인스티즈

 

"가지고 싶어? 그래." 

예상보다 더 쿨하게 카메라를 친구에게 도로 건네고 자리에 앉은 김정우는 말했다. "처음으로 같이 찍은 사진이겠네. 아쉽다. 이런 식으로.." 목소리가 줄어들더니 다시 한 번 말했다. "아, 어떻게 나왔는지 안 봐도 되겠어?" 떨리는 눈동자에 끄덕이며 눈을 돌렸다. 너는 참 친절하다. 낯간지러울 정도로. 

 

 

 

*5 

 

 

 

고등학생의 나는 실수의 대명사였다. 주변에선 덤벙쟁이라고 불렀는데 처음 듣는 별명이었다. 덤벙 거리는 게 강아지를 연상시킨다는 뜻이었다. 김정우가 먼저 그렇게 불러서인가 싫지는 않았다. 내가 귀엽다는 건가..? 

 

이런 사소한 말 하나하나에도 의미 부여하게 되는 건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당연한 걸까. 

 

 

김정우를 만나고 내 행동에 의식을 부여했다. 이리도 사고 안치려 노력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할 거다. 추측만 난무한 궁리지만. 가방 메고 책상 사이를 지나다 학습지를 떨어트려 욕먹은 적도 있었다. 심지어 오늘만 해도 저 별명에 걸맞게 실수를 했다. 단순히 잃어버리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쨍그랑- 

 

"어휴! 준희야 또 깼니!?" 

 

교무실에서 화분을 깼다. 야단치는 선생님께 고개를 바짝 숙였다. 등살을 한대 맞은 나는 죄송하다 연거푸 사과했다. 오늘 밤 부모님께 연락이 갈 예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정우는 많이 비웃었다. 내가 허물 없이 행동 해대는 게 웃긴 건지. 가끔은 선생님들이 진지하게 충고도 해줬다. 다르게 말하면 꾸중이었다. 

 

 

어떤 때는 김정우가 수업시간에 뒤를 돌아본 적이 있다. 1학년 2학기가 끝나가던 때라 추웠다. 삐삐를 가리키며 보라는 신호를 취했다. 

 

'100' 

 

제대로 골탕 먹이는 듯이 숫자가 정갈하게 쓰여있었다. 

 

돌아와..? 보낸 의도를 처음엔 잘 몰랐다. 그러나 김정우의 속삭이는 입모양을 보고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연락 방식 외에는 잘 쓰지도 않던 삐삐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란 걸, 김정우를 통해 처음 알았다. 

 

 

칠판을 등져 흉흉한 눈빛으로 수업 중인 선생님을 피해 엎드렸다. 불안하게 조용한 교실 속에서 겨우 끅끅대며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선생님 목소리가 크셔서 마음을 한결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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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젖는 것보단 낫지 않아? ㅎㅎ" 

 

"어? 어어." 

그건.. 그렇지. 

 

 

정확히 남색 가디건이 내 머리 위를 가려줬다. 당황해서 횡설수설 묻는 내게 그 특유의 아무렇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다시 한 번 더 심장이 

 

쿵- 

 

세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지진 났냐? 진정해라... 외적으로도 들릴까 봐 생각했다. 빗소리에 묻히길. 

 

 

[김정우] Return To love 上~下(재) | 인스티즈

 

"그럼 갈까?" 

 

사랑, 사랑 거리던 저들은 나를 공감시키지 못했다. 그러던 내게 조용히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고로 설렘이란, 너를 의미하는 단어이자 청춘을 뜻했어.' 

 

'좋아해서 그래.' 

 

'흔적을 남기지 않던 늪은, 네가 사랑이야.' 

 

 

큰 계기 없이 빠지게 된 사랑, 첫사랑이었다. 

 

 

 

 

02. 

 

 

 

"네, 내일이요." 

"걱정 마세요. 엄마." 

 

근심 가득한 말투로 걱정을 물어오는 건 여전했다. 통화를 끊고 방청소를 시작했다. 정확히는 이삿짐 정리였다. 2개월 전, 추억을 회상 시켰던 상자를 꺼냈다. 뜯겨 있는 봉투 앞부분이 너덜했다.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을 털었다. 두드리자 추억이 가득한 교복이나 고등학생 때 썼던 필기도구들 등등이 봉투 안에서 뒹굴었다. 그러다 금이 간 액자가 떨어졌다. 혼자서 존재감을 보이는 액자로 팔을 뻗었다. 

 

"이건 버리지 말까.." 

 

뒤에 있던 다른 박스를 앞으로 끌고 왔다.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그곳에 액자를 툭- 놨다. 깨지는 수고는 없었다. 

 

 

 

 

*4 

 

 

 

"오~ 그림 좋은데." 

 

찰칵- 소리를 내며 카메라가 흔들렸다. 렌즈가 찰나의 빛났다. 김정우의 친구 짓이었다. 비싼 카메라 같아서 건들지도 못하고 가만히 굳어버린 나를 보고 김정우가 친구의 손에서 카메라를 뺏어왔다. "야! 그거 외국에서 사온 거라고." 활기를 띠던 친구는 은근히 자부심을 드러냈다. 키가 컸던 김정우는 친구를 한 손으로 놀리며 훨씬 높이 들었다. 옆으로 넘기는 소리가 삑- 삑- 거리며 났다. 교실에 가만히 있다가 뜬금없는 날벼락이었다. 

 

 

"도촬은 아니지. 친구야?" 

김정우가 저리 말하며 사진을 지우려 할 때였다. "정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소한 질문도, 대화도 못하던 내가 우리를 감싸는 묘한 분위기에 용기를 냈다. 

 

"그거, 뽑으면 안 될까?" 

 

너무 주제넘었나. 김정우는 싫을 수도 있을 텐데. 아차 하고 손등을 가린 상태로 꼬집었다. 다시 어색해지나 싶었을 때 김정우가 고개를 내게로 돌렸다. 

 

 

[김정우] Return To love 上~下(재) | 인스티즈

 

"가지고 싶어? 그래." 

예상보다 더 쿨하게 카메라를 친구에게 도로 건네고 자리에 앉은 김정우는 말했다. "처음으로 같이 찍은 사진이겠네. 아쉽다. 이런 식으로.." 목소리가 줄어들더니 다시 한 번 말했다. "아, 어떻게 나왔는지 안 봐도 되겠어?" 떨리는 눈동자에 끄덕이며 눈을 돌렸다. 너는 참 친절하다. 낯간지러울 정도로. 

 

 

 

*5 

 

 

 

고등학생의 나는 실수의 대명사였다. 주변에선 덤벙쟁이라고 불렀는데 처음 듣는 별명이었다. 덤벙 거리는 게 강아지를 연상시킨다는 뜻이었다. 김정우가 먼저 그렇게 불러서인가 싫지는 않았다. 내가 귀엽다는 건가..? 

 

이런 사소한 말 하나하나에도 의미 부여하게 되는 건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당연한 걸까. 

 

 

김정우를 만나고 내 행동에 의식을 부여했다. 이리도 사고 안치려 노력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할 거다. 추측만 난무한 궁리지만. 가방 메고 책상 사이를 지나다 학습지를 떨어트려 욕먹은 적도 있었다. 심지어 오늘만 해도 저 별명에 걸맞게 실수를 했다. 단순히 잃어버리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쨍그랑- 

 

"어휴! 준희야 또 깼니!?" 

 

교무실에서 화분을 깼다. 야단치는 선생님께 고개를 바짝 숙였다. 등살을 한대 맞은 나는 죄송하다 연거푸 사과했다. 오늘 밤 부모님께 연락이 갈 예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정우는 많이 비웃었다. 내가 허물 없이 행동 해대는 게 웃긴 건지. 가끔은 선생님들이 진지하게 충고도 해줬다. 다르게 말하면 꾸중이었다. 

 

 

어떤 때는 김정우가 수업시간에 뒤를 돌아본 적이 있다. 1학년 2학기가 끝나가던 때라 추웠다. 삐삐를 가리키며 보라는 신호를 취했다. 

 

'100' 

 

제대로 골탕 먹이는 듯이 숫자가 정갈하게 쓰여있었다. 

 

돌아와..? 보낸 의도를 처음엔 잘 몰랐다. 그러나 김정우의 속삭이는 입모양을 보고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연락 방식 외에는 잘 쓰지도 않던 삐삐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란 걸, 김정우를 통해 처음 알았다. 

 

 

칠판을 등져 흉흉한 눈빛으로 수업 중인 선생님을 피해 엎드렸다. 불안하게 조용한 교실 속에서 겨우 끅끅대며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선생님 목소리가 크셔서 마음을 한결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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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희 물건들아.' 

 

 

 

*6 

 

 

 

이윽고 김정우와 나는 점심도 같이 먹을 정도로 친해졌다. 우리는 서서히 알아갔고, 일상에서 너는 가랑비처럼 스며들었다. 

 

내 앞으로 불쑥 내밀어진 책의 표지에는 '사랑, 좋아함의 미학' 이라는 제목이 먼저 보였다. 운 좋게도 반납까지 내가 하게 되었다. 

 

김정우는 책을 참 빠르게 읽었다. 한 권 조차도 기본으로 3일은 잡아놔야 하는 나와 달리 김정우는 몇 시간도 안 되어서 금세 두꺼운 페이지를 덮었다. 끈기가 좋은 건가. 특히나 어려운 책일수록 빌려 가는 횟수가 늘었다. 도중에 따라 읽다가 포기한 적이 몇 번 있을 정도로. 

 

 

부들거리는 손을 애써 숨기고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펜을 들어 김정우-사랑, 좋아함의 미학 장부를 꾹 눌러 잉크를 짜냈다. 그런 내가 애석하게도 두꺼운 책들이 가득한 바구니로 올려놓는 도중에 손이 덜덜 떨었다. 이걸로 내가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인기척이 가까이서 느껴졌다. 두터운 카운터를 앞에 두고 김정우가 계속 서있었다. 내 동공이 마주하면 안 될걸 봤다는 듯 정신없이 움직였다. 왜 안 가는 거지? 김정우를 향한 첫 의문이었다. 

 

"너. 점심시간마다 있는 거 맞아?" 

 

훅 치고 들어온 질문에 무방비하게 어퍼컷을 맞았다. 가시 박힌 듯 어딘가 따끔댔다. 우리 학교에선 나포함 도서부원이 별로 없었기에 나는 혼자 점심시간마다 자리를 지켰다. 간과해야 할 게 나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적어도 목요일과 금요일은 사람이 없었으니 괜찮았다. "혹시 스스로 지원하겠다 하는 사람 있니?" 사서 선생님의 강요 담은 말씀에 다들 머뭇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런 불리한 조건에 손을 번쩍 드는 건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표정이 밝았다. 

특히 금요일은 김정우가 무조건 오는 날이었다. 

 

고로 도서부원은 맞았지만 매일 있는 건 아니었다. 김정우는 도서관에 자주 오는 편이라 대충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편견이었다. 

 

"응. 맞는데.. 아, 아니, 아니다." 

"목요일이랑 금요일만... 있어! " 

 

조용한 목소리로 우물쭈물 말하는 내가 답답하지도 않은지 바로 이해했다는 듯  

 

"그랬구나." 

 

하는 김정우였다. 그러다 잠깐 딴 곳을 보는데. ..? 왜 설레지.. 시선을 돌려 먼 곳을 보던 김정우가 똑바로 나를 보다 잔망스레 웃는다. 

 

 

 

"그럼 그 날만 와야겠다." 

 

대박..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꿈인가? 싶어 김정우가 떠나고서도 여러 번 뺨을 쳤다. 꿈은 아니었나 보다. 

이게 시발점이었다. 이후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Return to love 中 

 

 

 

 

 

[김정우] Return To love 上~下(재) | 인스티즈

 

-그는 좋은 아이였어.- 

비록, 일방적인 짝사랑일지라도. 

 

 

 

*7 

 

 

 

도서관에서 속삭이며 장난을 치는 것도, 복도에서 만나면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이자 하교를 같이 하는 것도. 어느새 1학년 내내 일상이 되었다. 

 

2학년이 되어서는 각각 2반과 7반으로 멀리 떨어지게 됐지만 그래도 함께 교문을 나섰다. 

 

 

아무리 일상이 되어 버렸다지만 설레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이제는 행복이라 불렸다. 친구라서 그런 거라 해도 좋았다. 아무렴 터져 나오려는 욕심을 눌러내고 너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8 

 

 

 

"오늘은 그래도 쨍쨍하다." 

 

그러게. 창밖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네게 대꾸했다. 그런 나를 보다가 살짝 웃어버리는 정우다. 

 

" 언제 끝날까.. 강의 지루해. " 

 

입가에 걸친 미소를 유지하다 곧 저리 말하며 엎드린다. 

 

 

얼마 전부터 학교에서 프로그램을 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처럼 외부에서 강사님이 와서 1시간 동안 강의를 하는 거였다. 딱 3일 동안만. 우리 학교가 최초로 시행한다는 소문에 많은 애들이 신청서를 넣었다. 오로지 실험적이었을 테지만. 근데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재밌어 보인다는 정우의 "들어볼까?" 라는 한마디로 신청했다. 그러다 문득 잘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엔 잘 듣나 싶다가도 금방 졸아버리는 나였다. 고개가 밑으로 푹 꺼지는 게 느껴졌다. 아마 옆에서 턱을 받쳐주는 손이 없었다면 책상에 얼굴을 박았을거다. 어젯밤을 새우는 게 아니었는데. 

 

익숙한 향기가 코밑으로 훅 풍겨온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본건 아직도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김정우의 눈동자였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안 난다. 그새 잠든 게 분명했다. 일어났을 때에는 김정우와 나밖에 없었으니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학주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진지한 눈빛이었을까. 아니면 아무 감정 없는 시선이었을까. 1년 정도로는 너를 알 수 없나 보다. 가끔씩 훅 느껴지는 너의 모습이 나는 아직 너무 어려웠다. 

 

 

 

 

03. 

 

 

 

비 냄새와 섞인 남색 가디건에서 흘러나오던 특유의 향기. 다 젖어선 숨넘어가기 직전처럼 웃던 우리. 이래서는 생으로 맞은 것보다도 못했지만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아직도 애달프게 기억난다. 아련한 추억 속 너는 정말 나에게 마음이 없었던 게 맞을까. 

 

과거를 외면하면 회상을 할 이유도 없었다. 미루고 미루던 방청소를 계기로 처음 다시 떠올랐고, 이삿짐을 정리하다 한 번 더 생각했다. 지난번처럼 과거의 기억을 열었던 상자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상시켰다.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했느냐, 목적을 계기로 했느냐의 차이는 있었지만. 공통점은 '청소' 하나였다. 

 

 

둘 다 무표정으로 찍힌 터라 결과물이 웃겼다. 그도 당연한 게 갑작스러워서 포즈를 취할 새도 없었다. 멍한 얼굴로 김정우를 보고 있었다. 액자에 넣어 상자에 보관할 정도로 이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가 적나라했다. 김정우를 품은 내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애정이 갔다. 잊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이미 잊어버렸지만. 

 

액자를 들어 다시 봉투에 던졌다. 필름이 덧씌워진 과거를 정리하고 싶었다. 

 

 

29살의 나는 무관심하게 추억을 회상했다.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서 오랫동안 썩혀 색이 바래졌다. 손톱을 이용해 편지를 꺼냈다. 아무 생각 없이 버리려다 멈칫했다. 그리고 입을 틀어막았다. 

 

10년 만에 발견한 무언가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한탄스러운 마음 한구석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여러 번 읽어 닳았음에도 너의 진심을 이제서야 보았다. 

 

'편지 끝자락에 눈물 자국으로 번져 뭉개진 글씨를 발견했다.' 

 

 

 

 

*9 

 

 

 

"와, 시준희. 내 삐삐 안 봤지?" 

 

월요일 아침, 교실에서 네가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본인 자리였다는 듯 다른 친구들과 허허실실 웃고 떠들며 정신을 못 차렸다. 내가 성큼 다가가 가방을 책상 위에 올리자 떠들다 말고 내게 집중된 시선이었다. 김정우는 그런 나를 보고 표정이 싹 바뀌더니 서운하단 말투를 표출했다. 주변에 있던 애들도 돌아가고 나는 말없이 김정우를 쳐다보다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전화 달라고 했는데." 

 

"시험기간이어서 놓고 왔어." 

 

시험이 겨우 1주일 남은 시점이었기에 곧이곧대로 말했다. 쭉 내밀던 입술을 안쪽으로 말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러네. 다음 주가 시험이네." 

 

 

[김정우] Return To love 上~下(재) | 인스티즈

 

"그럼 그 날만 와야겠다." 

 

대박..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꿈인가? 싶어 김정우가 떠나고서도 여러 번 뺨을 쳤다. 꿈은 아니었나 보다. 

이게 시발점이었다. 이후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Return to love 中 

 

 

 

 

 

[김정우] Return To love 上~下(재) | 인스티즈

 

-그는 좋은 아이였어.- 

비록, 일방적인 짝사랑일지라도. 

 

 

 

*7 

 

 

 

도서관에서 속삭이며 장난을 치는 것도, 복도에서 만나면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이자 하교를 같이 하는 것도. 어느새 1학년 내내 일상이 되었다. 

 

2학년이 되어서는 각각 2반과 7반으로 멀리 떨어지게 됐지만 그래도 함께 교문을 나섰다. 

 

 

아무리 일상이 되어 버렸다지만 설레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이제는 행복이라 불렸다. 친구라서 그런 거라 해도 좋았다. 아무렴 터져 나오려는 욕심을 눌러내고 너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8 

 

 

 

"오늘은 그래도 쨍쨍하다." 

 

그러게. 창밖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네게 대꾸했다. 그런 나를 보다가 살짝 웃어버리는 정우다. 

 

" 언제 끝날까.. 강의 지루해. " 

 

입가에 걸친 미소를 유지하다 곧 저리 말하며 엎드린다. 

 

 

얼마 전부터 학교에서 프로그램을 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처럼 외부에서 강사님이 와서 1시간 동안 강의를 하는 거였다. 딱 3일 동안만. 우리 학교가 최초로 시행한다는 소문에 많은 애들이 신청서를 넣었다. 오로지 실험적이었을 테지만. 근데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재밌어 보인다는 정우의 "들어볼까?" 라는 한마디로 신청했다. 그러다 문득 잘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엔 잘 듣나 싶다가도 금방 졸아버리는 나였다. 고개가 밑으로 푹 꺼지는 게 느껴졌다. 아마 옆에서 턱을 받쳐주는 손이 없었다면 책상에 얼굴을 박았을거다. 어젯밤을 새우는 게 아니었는데. 

 

익숙한 향기가 코밑으로 훅 풍겨온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본건 아직도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김정우의 눈동자였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안 난다. 그새 잠든 게 분명했다. 일어났을 때에는 김정우와 나밖에 없었으니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학주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진지한 눈빛이었을까. 아니면 아무 감정 없는 시선이었을까. 1년 정도로는 너를 알 수 없나 보다. 가끔씩 훅 느껴지는 너의 모습이 나는 아직 너무 어려웠다. 

 

 

 

 

03. 

 

 

 

비 냄새와 섞인 남색 가디건에서 흘러나오던 특유의 향기. 다 젖어선 숨넘어가기 직전처럼 웃던 우리. 이래서는 생으로 맞은 것보다도 못했지만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아직도 애달프게 기억난다. 아련한 추억 속 너는 정말 나에게 마음이 없었던 게 맞을까. 

 

과거를 외면하면 회상을 할 이유도 없었다. 미루고 미루던 방청소를 계기로 처음 다시 떠올랐고, 이삿짐을 정리하다 한 번 더 생각했다. 지난번처럼 과거의 기억을 열었던 상자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상시켰다.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했느냐, 목적을 계기로 했느냐의 차이는 있었지만. 공통점은 '청소' 하나였다. 

 

 

둘 다 무표정으로 찍힌 터라 결과물이 웃겼다. 그도 당연한 게 갑작스러워서 포즈를 취할 새도 없었다. 멍한 얼굴로 김정우를 보고 있었다. 액자에 넣어 상자에 보관할 정도로 이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가 적나라했다. 김정우를 품은 내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애정이 갔다. 잊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이미 잊어버렸지만. 

 

액자를 들어 다시 봉투에 던졌다. 필름이 덧씌워진 과거를 정리하고 싶었다. 

 

 

29살의 나는 무관심하게 추억을 회상했다.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서 오랫동안 썩혀 색이 바래졌다. 손톱을 이용해 편지를 꺼냈다. 아무 생각 없이 버리려다 멈칫했다. 그리고 입을 틀어막았다. 

 

10년 만에 발견한 무언가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한탄스러운 마음 한구석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여러 번 읽어 닳았음에도 너의 진심을 이제서야 보았다. 

 

'편지 끝자락에 눈물 자국으로 번져 뭉개진 글씨를 발견했다.' 

 

 

 

 

*9 

 

 

 

"와, 시준희. 내 삐삐 안 봤지?" 

 

월요일 아침, 교실에서 네가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본인 자리였다는 듯 다른 친구들과 허허실실 웃고 떠들며 정신을 못 차렸다. 내가 성큼 다가가 가방을 책상 위에 올리자 떠들다 말고 내게 집중된 시선이었다. 김정우는 그런 나를 보고 표정이 싹 바뀌더니 서운하단 말투를 표출했다. 주변에 있던 애들도 돌아가고 나는 말없이 김정우를 쳐다보다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전화 달라고 했는데." 

 

"시험기간이어서 놓고 왔어." 

 

시험이 겨우 1주일 남은 시점이었기에 곧이곧대로 말했다. 쭉 내밀던 입술을 안쪽으로 말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러네. 다음 주가 시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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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날만 와야겠다." 

 

대박..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꿈인가? 싶어 김정우가 떠나고서도 여러 번 뺨을 쳤다. 꿈은 아니었나 보다. 

이게 시발점이었다. 이후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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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좋은 아이였어.- 

비록, 일방적인 짝사랑일지라도. 

 

 

 

*7 

 

 

 

도서관에서 속삭이며 장난을 치는 것도, 복도에서 만나면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이자 하교를 같이 하는 것도. 어느새 1학년 내내 일상이 되었다. 

 

2학년이 되어서는 각각 2반과 7반으로 멀리 떨어지게 됐지만 그래도 함께 교문을 나섰다. 

 

 

아무리 일상이 되어 버렸다지만 설레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이제는 행복이라 불렸다. 친구라서 그런 거라 해도 좋았다. 아무렴 터져 나오려는 욕심을 눌러내고 너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8 

 

 

 

"오늘은 그래도 쨍쨍하다." 

 

그러게. 창밖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네게 대꾸했다. 그런 나를 보다가 살짝 웃어버리는 정우다. 

 

" 언제 끝날까.. 강의 지루해. " 

 

입가에 걸친 미소를 유지하다 곧 저리 말하며 엎드린다. 

 

 

얼마 전부터 학교에서 프로그램을 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처럼 외부에서 강사님이 와서 1시간 동안 강의를 하는 거였다. 딱 3일 동안만. 우리 학교가 최초로 시행한다는 소문에 많은 애들이 신청서를 넣었다. 오로지 실험적이었을 테지만. 근데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재밌어 보인다는 정우의 "들어볼까?" 라는 한마디로 신청했다. 그러다 문득 잘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엔 잘 듣나 싶다가도 금방 졸아버리는 나였다. 고개가 밑으로 푹 꺼지는 게 느껴졌다. 아마 옆에서 턱을 받쳐주는 손이 없었다면 책상에 얼굴을 박았을거다. 어젯밤을 새우는 게 아니었는데. 

 

익숙한 향기가 코밑으로 훅 풍겨온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본건 아직도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김정우의 눈동자였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안 난다. 그새 잠든 게 분명했다. 일어났을 때에는 김정우와 나밖에 없었으니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학주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진지한 눈빛이었을까. 아니면 아무 감정 없는 시선이었을까. 1년 정도로는 너를 알 수 없나 보다. 가끔씩 훅 느껴지는 너의 모습이 나는 아직 너무 어려웠다. 

 

 

 

 

03. 

 

 

 

비 냄새와 섞인 남색 가디건에서 흘러나오던 특유의 향기. 다 젖어선 숨넘어가기 직전처럼 웃던 우리. 이래서는 생으로 맞은 것보다도 못했지만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아직도 애달프게 기억난다. 아련한 추억 속 너는 정말 나에게 마음이 없었던 게 맞을까. 

 

과거를 외면하면 회상을 할 이유도 없었다. 미루고 미루던 방청소를 계기로 처음 다시 떠올랐고, 이삿짐을 정리하다 한 번 더 생각했다. 지난번처럼 과거의 기억을 열었던 상자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상시켰다.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했느냐, 목적을 계기로 했느냐의 차이는 있었지만. 공통점은 '청소' 하나였다. 

 

 

둘 다 무표정으로 찍힌 터라 결과물이 웃겼다. 그도 당연한 게 갑작스러워서 포즈를 취할 새도 없었다. 멍한 얼굴로 김정우를 보고 있었다. 액자에 넣어 상자에 보관할 정도로 이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가 적나라했다. 김정우를 품은 내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애정이 갔다. 잊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이미 잊어버렸지만. 

 

액자를 들어 다시 봉투에 던졌다. 필름이 덧씌워진 과거를 정리하고 싶었다. 

 

 

29살의 나는 무관심하게 추억을 회상했다.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서 오랫동안 썩혀 색이 바래졌다. 손톱을 이용해 편지를 꺼냈다. 아무 생각 없이 버리려다 멈칫했다. 그리고 입을 틀어막았다. 

 

10년 만에 발견한 무언가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한탄스러운 마음 한구석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여러 번 읽어 닳았음에도 너의 진심을 이제서야 보았다. 

 

'편지 끝자락에 눈물 자국으로 번져 뭉개진 글씨를 발견했다.' 

 

 

 

 

*9 

 

 

 

"와, 시준희. 내 삐삐 안 봤지?" 

 

월요일 아침, 교실에서 네가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본인 자리였다는 듯 다른 친구들과 허허실실 웃고 떠들며 정신을 못 차렸다. 내가 성큼 다가가 가방을 책상 위에 올리자 떠들다 말고 내게 집중된 시선이었다. 김정우는 그런 나를 보고 표정이 싹 바뀌더니 서운하단 말투를 표출했다. 주변에 있던 애들도 돌아가고 나는 말없이 김정우를 쳐다보다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전화 달라고 했는데." 

 

"시험기간이어서 놓고 왔어." 

 

시험이 겨우 1주일 남은 시점이었기에 곧이곧대로 말했다. 쭉 내밀던 입술을 안쪽으로 말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러네. 다음 주가 시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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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시험 공부해야겠다." 

 

왜인지 삐뚤어진 말투였다. 교실을 나가버린 김정우는 삐진 거 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번에 시험 망치면 죽음뿐이었으니까.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어떻게 풀어줄지 생각하는 내가 어지간히 진심이다 싶었다. 

 

"김정우!" 

 

분명히 들었음에도 모르는 척 걷는 김정우였다. 얄밉게도 김정우는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아도 잘했다.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하는 중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나는 아니니까 김정우가 이해를 못 해주는 게 나는 이해가 안 갔다. 나 말고도 친구는 많으면서. 물론 이 말은 암묵적인 금기어였다. 김정우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다리가 짧은 나에겐 김정우의 한 걸음마다 보폭이 넓었다. 결국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뛰어가자 점점 느려지는 걸음이 느껴졌다. 등을 툭툭 치자 불렀냐며 멈춰 선다. 이 자식이. 

 

애초에 김정우의 기분은 내가 뛰었을 때부터 풀려있었다. 길게 늘어졌던 보폭을 슬며시 내게 맞춘 것만 봐도 그랬다. 그렇다 해도 바뀔 수 있는 태도였다. 이 다음이 중요했지만, 한마디면 됐다. 

 

"오늘 뽑기 하러 갈까?" 

 

그러면, 허공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란히 걷는 김정우의 표정은 새침하지만 피하지 않는 걸 보니 벌써부터 기분 좋아졌다는 뜻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모를 정도로 이만큼이나 김정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10 

 

 

 

김정우는 가끔 글을 썼다. 실제로 번번이 상도 탄 적이 있었고, 무진장 볼을 붉혔다. 책을 자주 읽는 이유도 작가가 된다는 전제하에서였다. 결의가 단단했던 김정우는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야지 글이 잘 써진다고 했다. 책에 대해 문외 했던 나는 그럴 성격이 못됐기에 그저 고개만 흔들었다. 

 

"나중에 책 내면 읽을게." 

 

"그 정도는 아니거든 ㅋㅋㅋㅋㅋ"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모르는 게 아니라. 그냥 아니야." 

 

 

그다지 열정적이지 못했던 나는 김정우의 결해를 아는 척 굴었다. 장부에는 김정우 이름만이 수두룩이었다. 도서관에 익숙해진 분위기에서 김정우는 필수로 등장했다. 핑계처럼 가볍게도 그를 떠올리고 합리화는 플러스였다. 

 

 

 

 

*11 

 

 

 

 

2반과 7반은 굉장히 멀었다. 복도를 걷고 걸어야 서로가 보였으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핑계를 대서라도 찾아갔다. 체육시간에는 체육복을 빌렸고,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슬쩍 보고 오기고 했고, 김정우는 교과서를 안 가져왔다며 우리 반을 자주 놀러 왔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행복이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김정우의 낯빛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어두워졌다. 삐삐를 통해 연락을 시도해봐도 받지 않았고, 집으로 전화해도 걸리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이 지나서야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희망을 놓은 적은 없다. 개인 사정 때문에 일시적인 거겠지. 개학하면 평소처럼 나타나겠지. 설령, 내가 싫어진 거라 해도 이유는 알 수 있겠지. 네가 어떤 애인지 적어도 나는 아니까. 그러나 시간이 흘러 개학날이 다가와도 김정우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연락하면 꼭 꿀밤을 줘야지. 라고 장난스레 했던 다짐도 슬슬 불안해져갔다. 

 

비참하게도 돌아오는 건 형태 없는 소문이 다였다. 들려오는 소문만이 무성하게 퍼졌다. 

 

자퇴, 유학, 전학이라는 말도 들려왔다. 나는 그중에 이유가 뭐인지도 몰랐다. 그것에 대해 몰랐던 둔한 내가 신기했다. 그저 소문에 휘둘려 궁예를 하는 게 최선이었다. 단지, 말로 가득 찬 무기였을 뿐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2학년 층으로 달려갔다. 아직 새로운 2학년들이 사물함을 열기 전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은 고요했지만 사물함을 여는 소리는 요란했다. 비어있는 공간에는 달랑 하늘색 편지만이 남겨져있었다. 먼지 쌓인 어둠 위로 빛이 반사되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이유가 적혀있지 않아서 답답함에 억눌려 터져 나왔다. 그렇게 펑펑 울어본 건 태어날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유치원 때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어도 이렇게 울어본 적은 없는데. 

 

노을에 비쳐 온통 주황빛인 교실에서 꾸깃 해진 편지지를 꼭 안고 나의 눈물 자국을 남겼다. 

 

너는 나에게 큰 발자국을 남기고 떠났다. 

 

 

정우야, 우리 둘만 아는 암호 만들어볼래? 

우리 둘만? 

응. 우리 둘만. 

그래. 좋아. 재미있겠다! 

0027-3.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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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네게 서운했지만 미안하더라. 나중에는 내가 서운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하게 되더라. 왜 마냥 원망이 다였을까. 어리숙했던 우리는 배려하며 이별하는 방법을 몰랐나 봐. 너의 편지 속엔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말투성이다. 모두가 휘청거리던 시기, 너는 3학년 교육과정도 못 마치고 연락을 끊었다. 그건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싫다. 그래도 이만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걸까. 내가 사물함 잘 안 보는 거 알면서 뻔히 그 안에 뒀다. 학년이 올라갈 때까지도 열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뒤늦게 발견했을 땐 혹시나 하는 불암감과 안도감이 덮쳐왔다. 새 학기가 지나서야 열어보았다면? 만약 너를 잊기로 하고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이 편지는 내게 오지 못한 채 다른 곳을 둥둥 떠다녔겠지. 그곳이 다른 누군가의 품속이든, 쓰레기장이든. 

 

 

 

05. 

 

 

 

편지지를 슥슥 문질렀다. 그래봤자 떨어져 나가는 건 소량의 먼지들 뿐이었지만.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빡빡 문질렀다. 눈물 자국 때문에 젖어서 번진 부분. 공백을 남겨두고 아주 중요한 것이 쓰여있었다. 아마 이 편지를 나에게 보낸 가장 큰 이유겠지. 

 

 

'안녕. 0024. 둘만의 암호라며 입을 꾹 다물던 너였어. 해석 능력이 부족했나 봐. 네가 제안했던 이 암호, 사실 외면했었는데. 서툴렀던 나는 이제야 말해. 고마워. 나도 그럴게. 이게 영원한 이별이라고 뜻하지 않을게. 섬세한 부분이 있던 너는 튕기기도 했고, 들어주기도 했어. 땡땡이치고 분식집 가자고 하던 내게 긍정의 표시를 보이기도 했었어. 즐거웠어. 

준희야, 시준희. 희희. 시~준희. 이렇게 쓰니까 특이하고 웃기다. 매일같이 부르던 이름이 새롭게 다가오네. 보지 못해도 좋아. 읽지 않아도 좋아. 나를 미워해도 좋아. 이것조차도 어쩌면 내 혼잣말이 담긴 편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용서했다면. 처음처럼 찾아와주겠니. 우연이라도, 운명이라도.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나중에도 떡볶이 먹으러 가자.' 

 

 

마지막 문장 밑에 ps처럼 적혀있는 글씨가 보였다. 

 

' jeus@..... ' 

 

정우의 이메일이었다. 나와 연락을 끊은 게 아니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너는 나를 시험하려던 게 아닌 저를 찾아와주길 바랐던 것이다. 홀로 외로이 시간 사이에 서있던 건 내가 아닌 너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우리는 너무 단순했다. 암호를 만들어 자주 주고받던 우리의 전달은 다 티 나고 쉬운 비밀 쪽지였다. 당시 주변 애들이 신기하게 봤던 것도 같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누가 먼저 해석하는지의 대결이 되었다. 고작 삐삐 번호를 조금 변형한 거인데. 

 

'0027' 

 

소리를 내어 울린 삐삐를 들고 앞을 쳐다봤다. 입모양으로 '땡땡이 치자~' 하는 김정우였다. 처음엔 거절하다가도 결국엔 같이 떡볶이 먹으러 튄 적도 있었다. 현재는 그날 항상 가던 분식집이 폐업을 했다. 체인 지점이 생기고, 자주 가던 다른 장소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디오 방이었던 작은 구멍가게와 지날 때마다 고소한 냄새가 났던 개인 빵집. 그 외에도 몇몇을 제외하고서 재개발로 인해 점점 변하기 시작한 동네였다. 

 

 

그 시절에 보았던 장면과 지나가던 상황, 추억, 향기들은 더 이상 없었다. 한꺼번에 이별이 서운했지만 수긍했다.  

 

편지를 읽었을 당시 우리나라 경제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를 못한 건 아니었다. 구석에 쓰여있는 작은 글씨를 보니 아주 조금 후회가 되었다. 아니, 사실 견딜 수 없을 만큼, 많이. 내 몸이 부서지도록 후회가 되었다. 나는 또 버릴 수 없었다. 가슴속에서 울분이 터졌다. '0024 - 영원히 사랑해.' 

 

"좋아해." 

 

너는 기회를 줬고 나는 잡지 못했다. 고작 3글자인 거대한 한마디. 더 빨리하지 못한 말. 후회해도 늦었다. 

 

 

 

06. 

 

 

 

무엇도 올리지 않은 이메일을 검색해봤자 비어있는 창 외에는 뜨지 않았다. 정확히는 광고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업무용 메일이 아니어서 더 쓸데없었다. 안 쓴지 오래되어서. 스펨 메일에도 들어가 봤지만 똑같았다. 바보같이 뭐 하는 건지. 10년.. 아니, 11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들어와 보는 것도 우스웠다. 

 

현타가 확 밀려오면서 정신이 들었다. 컴퓨터를 끄려고 전원 버튼을 누르려 할 때였다. 내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의 메일이 아니었다면 그랬을 거다. 

 

 

'시티 고등학교 제34회 동창회' 

"고등학교 동창회는 추억입니다." 

 

'안녕하세요. 시티 고등학교 동창회 총무입니다. 

어느새 저희 동창회가 벌써 9회차가 다가왔어요. 

(중략) 

그러니 가능한 모든 ' 친구 ' 여러분들이 와주셨으면 합니다.' 

'- 시티 고등학교 9회차 동창회 총무 알림. - ' 

 

 

동창회라는 단어에 이끌려 클릭했다. 새벽도 아닌데 감성이 나를 콕콕 찔렀다. 편지 때문일까. 

어느새 9회차나 되었구나. 20살 첫 동창회 때도 간 적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연락 오는 친구도 없었다. '새삼 인맥 참 얕게도 사귀었구나' 깨달았다. 

졸업을 후에 대학에 합격하고 고등학교와는 아예 단절되어 살아왔다. 대학 입학식을 곱씹어 보니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정우가 없는 나의 세상이 인정하기 싫다는 이유로 숨었다. 

 

벌써 해가 져 방이 어두워졌다. 정리는 이쯤 해둬야겠다. 나는 여전히 자신감이 부족했다. 현실에 부딪히기 싫어서 흔한 동창회조차도 참석하지 않았다. 

 

추억이 아픔이 되어 다가왔다. 그곳에 너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냥, 확신이 들었다. 메일로 건진 건 하나였다. 동창들을 만나서 훌훌 털어볼까. 네가 없어도 상관없다. 그래서 다짐했다. 

 

이렇게 회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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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장소는 도시 술집이었다. 처음 가보는 동창회가 어색해서 떨렸다. 거울을 보자 고등학생 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엿한 성인의 탈을 쓴 나만이 거울을 대면해 앉아있었다. 오버인가 싶어 분홍 하게 칠한 블러셔를 문질렀다. 항상 해오던 화장이 오늘따라 신경 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한 번은 나가볼걸. 

 

옷장을 열어, 제일 앞 옷걸이에 걸려있던 연하늘색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3년 전 엄마의 등쌀에 떠밀려 소개팅을 갔을 때 한번 입고 안 입었던 옷이다. 그래도 애프터 신청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없었지만. 

 

도시 술집은 집에서 가까운 편이었다. 애초에 원래 살던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이사를 간 아파트조차도 동네에서 두 정거장 거리니까. 이사는 1주 전에 완벽히 마쳤다. 

 

 

 

08. 

 

 

 

'Nobody Nobody but you~♩♩' 

 

오래된 도시 술집에선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어폰 음질을 타고 나오는 거 같았다. 도시 술집은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동네에 자리 잡은 가게였다. 미성년자는 당연히 지나가다 보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상하게 친근한 느낌이 드는 가게였다. 

 

간판이 번쩍거렸다.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밑으로 자리 잡은 좁은 문을 열자 역시나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넘쳤다. 절반이 대부분 동창회 사람들이었는데 다들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성숙해져 있었다. 

 

 

그중에 나와 음악실을 팔짱 끼고 가던 친구 한 명이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들었다.  

 

"준희야! 여기!!" 

젖살이 빠진 김민희는 다른 사람 됐다는 말이 잘 어울렸다. 

 

그 소리에 시선 집중이 된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다시 소란스러워지는 가게 안이었다.  

"와아! 시준희~ 완전 오랜만이다?? " 

 

"맞아~ 못 알아보겠어. 너무 예뻐진 거 아니야? 나는 이름도 까먹을뻔했잖아!" 

 

"제일 가까우면서 안 온 거 누구더라?" 

 

취기가 벌써 올랐는지 얼굴이 벌게진 아이가 뒤이어 비꼬는 투로 말했다. 이건 진심 같다. 

 

 

다들 나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먼저 능글거리며 잔을 든 아이는 학창시절 반에서 가장 활발한 아이였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아이기도 했다. 들려오는 말로는 저저번 달에 결혼을 해서 벌써 애도 있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말을 꺼낸 아이는 내가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청첩장을 돌리는 손놀림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에게로 가더니 찰싹 붙은 채 애교를 부렸다. " 내 신랑이야~^^ "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이어 축하해줬다. 경악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어이가 없네? 너 미쳤냐?!' 

 

'네가 미친 거겠지. 너처럼 미친놈은 살다 살다 처음 봐! 미친놈아!!' 

 

학창시절 3년 내내 앙숙이었던 둘이기 때문이었다. 치를 떨며 미워하던 둘이 현재는 저렇게 애교 부리며 결혼한다 발표했다. 둘의 모습은 내 맞은편에 앉은 한 아이가 헛구역질을 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소란스러웠던 자리가 어느 정도 정돈이 된 후에 고개를 사방으로 돌아봤지만 내가 찾는 이는 없었다. 11년 전 이후로 누구에게도 연락이 닿았다는 소리는 없었기에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발끝부터 쥐어왔던 힘이 빠지고, 경련이 올 거 같이 움찔거렸던 어깨가 내려갔다. 그리고 흠칫했다. 왜 실망하지? 스쳐간 아쉬움에 놀랐다. 완전히 잊었는데. 

 

"저기, 민희야. 물어볼 거 있는데." 

 

시끌벅적한 틈을 타서 옆에 있는 민희의 어깨를 두드렸다. 혹시나 해서, 그래도 연락이 된 사람이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설마 아예 사라져 버린 걸까. 

 

"응응." 

 

젓가락으로 생선과 싸우던 민희는 말해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우는 안 와?" 

그리고 민희는 생선을 놓쳤다. 

 

분명히 조용히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뒤바뀐 공기의 흐름에 내가 더 당황했다. 아까 결국에는 생선을 놓친 민희는 표정이 묘해지더니 내게 말했다. 

 

"어.. 준희야. 정우 동창회 날마다 안 왔어. 연락도 해본 적 없고." 

"너는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구나.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는 게 더 이상했다. 고개를 떨궜다. 떨군 채 끄덕였다. 분위기를 망친 거 같아서 아무렇지 않게 젓가락을 들었다. 

 

무던해 보이는 나를 보고 다시 제각각 시끄러워졌다. 나는 더 의식을 하지 않고 행동했다. 

'그래~ 정우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하며 눈치 없이 거드는 친구는 다행히 없었다. 

 

 

내가 김정우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을 거다. 쌍방이라고 착각했던 아이도 있었을 거고, 나만 진심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애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동창회는 그저 평범하게. 바싹 긴장했던 내가 우스워질 정도로 별거 없이 끝냈다. 오랜만에 본 편한 친구들과 회식한 기분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들어갈 땐 빈손이었지만 나올 땐 청첩장과 함께였다. 

 

'이동혁♡이시민.' 

'우리 결혼해요~! ' 

 

핑크색 종이에 하얀색 하트 스티커가 야무지게 붙어있었다. 마냥 평범하지 않은 게 그 애들 다웠다. 팔짱을 끼며 서로 쌈을 싸주던 모습이 생각나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어깨를 문지르며 집으로 향했다. 여름인데 왜 이렇게 춥지. 

 

비가 오려나. 

 

 

 

09. 

 

 

 

정작 변했으면 하는 건 변하지 않고 내 마음만이 변화했다. 바로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회의 제자리 걸음을 했다는 사실도 잊을 만큼 그렇게 분주해졌다. 

 

 

"오늘 우리 팀 회식 있으니까 다들 일찍 퇴근하죠." 

 

회식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 무슨 일찍 퇴근인가. 상사와 완전히 헤어져야 비로소 퇴근인 거지. 퇴근이라는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하.. 거지 같은 사회생활. 아니지. 나는 사회가 아니라면 그냥 거지였기에 순응하기로 했다. 언젠가 이 마음속에 고이 품어둔 사표를 내는 날만 기다리며. 키보드를 전투적으로 눌렀다. 아무도 눈치 못 챘길 바라며. 아~. 모순적이다. 그래, 

 

원래 인간은 다 모순적인 거니까. 

 

 

"준희 씨!내일 봐요!" 

 

"네. 김사원 님도 내일 뵙겠습니다!" 

 

어느 때처럼 회식이 끝나고 열이 오르는 몸을 이끌며 걸어갔다. 조금 취했나. 

분명히 회식 전까지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조금씩 끼기 시작했다. 그걸 나중에서야 눈치챘다. 

 

얼마 안 가 톡- 톡- 

 

손등과 얼굴로 떨어지는 빗방울에 그제서야 멈춰 섰다. 왜 하필.. 아직 정류장까지 가려면 더 걸어야 했다. 북적거리던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고, 이제는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는 수없이 중간에 편의점에라도 들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뛸 준비를 했다. 

 

중간에 끼어드는 그림자만 없었어도. 

 

 

 

10. 

 

 

 

술기운에 헛것을 보나. 머리 위로 올린 핸드백이 무색하게 한 뼘 더 큰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웠다. 아니, 술 때문이 아니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고의적인 만남인지. 그게 뭐든 인생은 무심했다. 가려진 하늘에 의문을 가져 올려다 본 얼굴은. 내가 가장 잘 아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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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 to love 下 

 

 

 

 

04. 

 

 

 

네게 서운했지만 미안하더라. 나중에는 내가 서운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하게 되더라. 왜 마냥 원망이 다였을까. 어리숙했던 우리는 배려하며 이별하는 방법을 몰랐나 봐. 너의 편지 속엔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말투성이다. 모두가 휘청거리던 시기, 너는 3학년 교육과정도 못 마치고 연락을 끊었다. 그건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싫다. 그래도 이만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걸까. 내가 사물함 잘 안 보는 거 알면서 뻔히 그 안에 뒀다. 학년이 올라갈 때까지도 열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뒤늦게 발견했을 땐 혹시나 하는 불암감과 안도감이 덮쳐왔다. 새 학기가 지나서야 열어보았다면? 만약 너를 잊기로 하고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이 편지는 내게 오지 못한 채 다른 곳을 둥둥 떠다녔겠지. 그곳이 다른 누군가의 품속이든, 쓰레기장이든. 

 

 

 

05. 

 

 

 

편지지를 슥슥 문질렀다. 그래봤자 떨어져 나가는 건 소량의 먼지들 뿐이었지만.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빡빡 문질렀다. 눈물 자국 때문에 젖어서 번진 부분. 공백을 남겨두고 아주 중요한 것이 쓰여있었다. 아마 이 편지를 나에게 보낸 가장 큰 이유겠지. 

 

 

'안녕. 0024. 둘만의 암호라며 입을 꾹 다물던 너였어. 해석 능력이 부족했나 봐. 네가 제안했던 이 암호, 사실 외면했었는데. 서툴렀던 나는 이제야 말해. 고마워. 나도 그럴게. 이게 영원한 이별이라고 뜻하지 않을게. 섬세한 부분이 있던 너는 튕기기도 했고, 들어주기도 했어. 땡땡이치고 분식집 가자고 하던 내게 긍정의 표시를 보이기도 했었어. 즐거웠어. 

준희야, 시준희. 희희. 시~준희. 이렇게 쓰니까 특이하고 웃기다. 매일같이 부르던 이름이 새롭게 다가오네. 보지 못해도 좋아. 읽지 않아도 좋아. 나를 미워해도 좋아. 이것조차도 어쩌면 내 혼잣말이 담긴 편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용서했다면. 처음처럼 찾아와주겠니. 우연이라도, 운명이라도.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나중에도 떡볶이 먹으러 가자.' 

 

 

마지막 문장 밑에 ps처럼 적혀있는 글씨가 보였다. 

 

' jeus@..... ' 

 

정우의 이메일이었다. 나와 연락을 끊은 게 아니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너는 나를 시험하려던 게 아닌 저를 찾아와주길 바랐던 것이다. 홀로 외로이 시간 사이에 서있던 건 내가 아닌 너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우리는 너무 단순했다. 암호를 만들어 자주 주고받던 우리의 전달은 다 티 나고 쉬운 비밀 쪽지였다. 당시 주변 애들이 신기하게 봤던 것도 같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누가 먼저 해석하는지의 대결이 되었다. 고작 삐삐 번호를 조금 변형한 거인데. 

 

'0027' 

 

소리를 내어 울린 삐삐를 들고 앞을 쳐다봤다. 입모양으로 '땡땡이 치자~' 하는 김정우였다. 처음엔 거절하다가도 결국엔 같이 떡볶이 먹으러 튄 적도 있었다. 현재는 그날 항상 가던 분식집이 폐업을 했다. 체인 지점이 생기고, 자주 가던 다른 장소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디오 방이었던 작은 구멍가게와 지날 때마다 고소한 냄새가 났던 개인 빵집. 그 외에도 몇몇을 제외하고서 재개발로 인해 점점 변하기 시작한 동네였다. 

 

 

그 시절에 보았던 장면과 지나가던 상황, 추억, 향기들은 더 이상 없었다. 한꺼번에 이별이 서운했지만 수긍했다.  

 

편지를 읽었을 당시 우리나라 경제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를 못한 건 아니었다. 구석에 쓰여있는 작은 글씨를 보니 아주 조금 후회가 되었다. 아니, 사실 견딜 수 없을 만큼, 많이. 내 몸이 부서지도록 후회가 되었다. 나는 또 버릴 수 없었다. 가슴속에서 울분이 터졌다. '0024 - 영원히 사랑해.' 

 

"좋아해." 

 

너는 기회를 줬고 나는 잡지 못했다. 고작 3글자인 거대한 한마디. 더 빨리하지 못한 말. 후회해도 늦었다. 

 

 

 

06. 

 

 

 

무엇도 올리지 않은 이메일을 검색해봤자 비어있는 창 외에는 뜨지 않았다. 정확히는 광고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업무용 메일이 아니어서 더 쓸데없었다. 안 쓴지 오래되어서. 스펨 메일에도 들어가 봤지만 똑같았다. 바보같이 뭐 하는 건지. 10년.. 아니, 11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들어와 보는 것도 우스웠다. 

 

현타가 확 밀려오면서 정신이 들었다. 컴퓨터를 끄려고 전원 버튼을 누르려 할 때였다. 내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의 메일이 아니었다면 그랬을 거다. 

 

 

'시티 고등학교 제34회 동창회' 

"고등학교 동창회는 추억입니다." 

 

'안녕하세요. 시티 고등학교 동창회 총무입니다. 

어느새 저희 동창회가 벌써 9회차가 다가왔어요. 

(중략) 

그러니 가능한 모든 ' 친구 ' 여러분들이 와주셨으면 합니다.' 

'- 시티 고등학교 9회차 동창회 총무 알림. - ' 

 

 

동창회라는 단어에 이끌려 클릭했다. 새벽도 아닌데 감성이 나를 콕콕 찔렀다. 편지 때문일까. 

어느새 9회차나 되었구나. 20살 첫 동창회 때도 간 적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연락 오는 친구도 없었다. '새삼 인맥 참 얕게도 사귀었구나' 깨달았다. 

졸업을 후에 대학에 합격하고 고등학교와는 아예 단절되어 살아왔다. 대학 입학식을 곱씹어 보니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정우가 없는 나의 세상이 인정하기 싫다는 이유로 숨었다. 

 

벌써 해가 져 방이 어두워졌다. 정리는 이쯤 해둬야겠다. 나는 여전히 자신감이 부족했다. 현실에 부딪히기 싫어서 흔한 동창회조차도 참석하지 않았다. 

 

추억이 아픔이 되어 다가왔다. 그곳에 너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냥, 확신이 들었다. 메일로 건진 건 하나였다. 동창들을 만나서 훌훌 털어볼까. 네가 없어도 상관없다. 그래서 다짐했다. 

 

이렇게 회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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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장소는 도시 술집이었다. 처음 가보는 동창회가 어색해서 떨렸다. 거울을 보자 고등학생 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엿한 성인의 탈을 쓴 나만이 거울을 대면해 앉아있었다. 오버인가 싶어 분홍 하게 칠한 블러셔를 문질렀다. 항상 해오던 화장이 오늘따라 신경 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한 번은 나가볼걸. 

 

옷장을 열어, 제일 앞 옷걸이에 걸려있던 연하늘색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3년 전 엄마의 등쌀에 떠밀려 소개팅을 갔을 때 한번 입고 안 입었던 옷이다. 그래도 애프터 신청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없었지만. 

 

도시 술집은 집에서 가까운 편이었다. 애초에 원래 살던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이사를 간 아파트조차도 동네에서 두 정거장 거리니까. 이사는 1주 전에 완벽히 마쳤다. 

 

 

 

08. 

 

 

 

'Nobody Nobody but you~♩♩' 

 

오래된 도시 술집에선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어폰 음질을 타고 나오는 거 같았다. 도시 술집은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동네에 자리 잡은 가게였다. 미성년자는 당연히 지나가다 보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상하게 친근한 느낌이 드는 가게였다. 

 

간판이 번쩍거렸다.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밑으로 자리 잡은 좁은 문을 열자 역시나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넘쳤다. 절반이 대부분 동창회 사람들이었는데 다들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성숙해져 있었다. 

 

 

그중에 나와 음악실을 팔짱 끼고 가던 친구 한 명이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들었다.  

 

"준희야! 여기!!" 

젖살이 빠진 김민희는 다른 사람 됐다는 말이 잘 어울렸다. 

 

그 소리에 시선 집중이 된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다시 소란스러워지는 가게 안이었다.  

"와아! 시준희~ 완전 오랜만이다?? " 

 

"맞아~ 못 알아보겠어. 너무 예뻐진 거 아니야? 나는 이름도 까먹을뻔했잖아!" 

 

"제일 가까우면서 안 온 거 누구더라?" 

 

취기가 벌써 올랐는지 얼굴이 벌게진 아이가 뒤이어 비꼬는 투로 말했다. 이건 진심 같다. 

 

 

다들 나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먼저 능글거리며 잔을 든 아이는 학창시절 반에서 가장 활발한 아이였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아이기도 했다. 들려오는 말로는 저저번 달에 결혼을 해서 벌써 애도 있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말을 꺼낸 아이는 내가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청첩장을 돌리는 손놀림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에게로 가더니 찰싹 붙은 채 애교를 부렸다. " 내 신랑이야~^^ "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이어 축하해줬다. 경악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어이가 없네? 너 미쳤냐?!' 

 

'네가 미친 거겠지. 너처럼 미친놈은 살다 살다 처음 봐! 미친놈아!!' 

 

학창시절 3년 내내 앙숙이었던 둘이기 때문이었다. 치를 떨며 미워하던 둘이 현재는 저렇게 애교 부리며 결혼한다 발표했다. 둘의 모습은 내 맞은편에 앉은 한 아이가 헛구역질을 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소란스러웠던 자리가 어느 정도 정돈이 된 후에 고개를 사방으로 돌아봤지만 내가 찾는 이는 없었다. 11년 전 이후로 누구에게도 연락이 닿았다는 소리는 없었기에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발끝부터 쥐어왔던 힘이 빠지고, 경련이 올 거 같이 움찔거렸던 어깨가 내려갔다. 그리고 흠칫했다. 왜 실망하지? 스쳐간 아쉬움에 놀랐다. 완전히 잊었는데. 

 

"저기, 민희야. 물어볼 거 있는데." 

 

시끌벅적한 틈을 타서 옆에 있는 민희의 어깨를 두드렸다. 혹시나 해서, 그래도 연락이 된 사람이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설마 아예 사라져 버린 걸까. 

 

"응응." 

 

젓가락으로 생선과 싸우던 민희는 말해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우는 안 와?" 

그리고 민희는 생선을 놓쳤다. 

 

분명히 조용히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뒤바뀐 공기의 흐름에 내가 더 당황했다. 아까 결국에는 생선을 놓친 민희는 표정이 묘해지더니 내게 말했다. 

 

"어.. 준희야. 정우 동창회 날마다 안 왔어. 연락도 해본 적 없고." 

"너는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구나.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는 게 더 이상했다. 고개를 떨궜다. 떨군 채 끄덕였다. 분위기를 망친 거 같아서 아무렇지 않게 젓가락을 들었다. 

 

무던해 보이는 나를 보고 다시 제각각 시끄러워졌다. 나는 더 의식을 하지 않고 행동했다. 

'그래~ 정우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하며 눈치 없이 거드는 친구는 다행히 없었다. 

 

 

내가 김정우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을 거다. 쌍방이라고 착각했던 아이도 있었을 거고, 나만 진심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애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동창회는 그저 평범하게. 바싹 긴장했던 내가 우스워질 정도로 별거 없이 끝냈다. 오랜만에 본 편한 친구들과 회식한 기분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들어갈 땐 빈손이었지만 나올 땐 청첩장과 함께였다. 

 

'이동혁♡이시민.' 

'우리 결혼해요~! ' 

 

핑크색 종이에 하얀색 하트 스티커가 야무지게 붙어있었다. 마냥 평범하지 않은 게 그 애들 다웠다. 팔짱을 끼며 서로 쌈을 싸주던 모습이 생각나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어깨를 문지르며 집으로 향했다. 여름인데 왜 이렇게 춥지. 

 

비가 오려나. 

 

 

 

09. 

 

 

 

정작 변했으면 하는 건 변하지 않고 내 마음만이 변화했다. 바로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회의 제자리 걸음을 했다는 사실도 잊을 만큼 그렇게 분주해졌다. 

 

 

"오늘 우리 팀 회식 있으니까 다들 일찍 퇴근하죠." 

 

회식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 무슨 일찍 퇴근인가. 상사와 완전히 헤어져야 비로소 퇴근인 거지. 퇴근이라는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하.. 거지 같은 사회생활. 아니지. 나는 사회가 아니라면 그냥 거지였기에 순응하기로 했다. 언젠가 이 마음속에 고이 품어둔 사표를 내는 날만 기다리며. 키보드를 전투적으로 눌렀다. 아무도 눈치 못 챘길 바라며. 아~. 모순적이다. 그래, 

 

원래 인간은 다 모순적인 거니까. 

 

 

"준희 씨!내일 봐요!" 

 

"네. 김사원 님도 내일 뵙겠습니다!" 

 

어느 때처럼 회식이 끝나고 열이 오르는 몸을 이끌며 걸어갔다. 조금 취했나. 

분명히 회식 전까지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조금씩 끼기 시작했다. 그걸 나중에서야 눈치챘다. 

 

얼마 안 가 톡- 톡- 

 

손등과 얼굴로 떨어지는 빗방울에 그제서야 멈춰 섰다. 왜 하필.. 아직 정류장까지 가려면 더 걸어야 했다. 북적거리던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고, 이제는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는 수없이 중간에 편의점에라도 들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뛸 준비를 했다. 

 

중간에 끼어드는 그림자만 없었어도. 

 

 

 

10. 

 

 

 

술기운에 헛것을 보나. 머리 위로 올린 핸드백이 무색하게 한 뼘 더 큰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웠다. 아니, 술 때문이 아니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고의적인 만남인지. 그게 뭐든 인생은 무심했다. 가려진 하늘에 의문을 가져 올려다 본 얼굴은. 내가 가장 잘 아는 얼굴. 

 

 

[김정우] Return To love 上~下(재)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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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네게 서운했지만 미안하더라. 나중에는 내가 서운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하게 되더라. 왜 마냥 원망이 다였을까. 어리숙했던 우리는 배려하며 이별하는 방법을 몰랐나 봐. 너의 편지 속엔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말투성이다. 모두가 휘청거리던 시기, 너는 3학년 교육과정도 못 마치고 연락을 끊었다. 그건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싫다. 그래도 이만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걸까. 내가 사물함 잘 안 보는 거 알면서 뻔히 그 안에 뒀다. 학년이 올라갈 때까지도 열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뒤늦게 발견했을 땐 혹시나 하는 불암감과 안도감이 덮쳐왔다. 새 학기가 지나서야 열어보았다면? 만약 너를 잊기로 하고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이 편지는 내게 오지 못한 채 다른 곳을 둥둥 떠다녔겠지. 그곳이 다른 누군가의 품속이든, 쓰레기장이든. 

 

 

 

05. 

 

 

 

편지지를 슥슥 문질렀다. 그래봤자 떨어져 나가는 건 소량의 먼지들 뿐이었지만.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빡빡 문질렀다. 눈물 자국 때문에 젖어서 번진 부분. 공백을 남겨두고 아주 중요한 것이 쓰여있었다. 아마 이 편지를 나에게 보낸 가장 큰 이유겠지. 

 

 

'안녕. 0024. 둘만의 암호라며 입을 꾹 다물던 너였어. 해석 능력이 부족했나 봐. 네가 제안했던 이 암호, 사실 외면했었는데. 서툴렀던 나는 이제야 말해. 고마워. 나도 그럴게. 이게 영원한 이별이라고 뜻하지 않을게. 섬세한 부분이 있던 너는 튕기기도 했고, 들어주기도 했어. 땡땡이치고 분식집 가자고 하던 내게 긍정의 표시를 보이기도 했었어. 즐거웠어. 

준희야, 시준희. 희희. 시~준희. 이렇게 쓰니까 특이하고 웃기다. 매일같이 부르던 이름이 새롭게 다가오네. 보지 못해도 좋아. 읽지 않아도 좋아. 나를 미워해도 좋아. 이것조차도 어쩌면 내 혼잣말이 담긴 편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용서했다면. 처음처럼 찾아와주겠니. 우연이라도, 운명이라도.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나중에도 떡볶이 먹으러 가자.' 

 

 

마지막 문장 밑에 ps처럼 적혀있는 글씨가 보였다. 

 

' jeus@..... ' 

 

정우의 이메일이었다. 나와 연락을 끊은 게 아니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너는 나를 시험하려던 게 아닌 저를 찾아와주길 바랐던 것이다. 홀로 외로이 시간 사이에 서있던 건 내가 아닌 너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우리는 너무 단순했다. 암호를 만들어 자주 주고받던 우리의 전달은 다 티 나고 쉬운 비밀 쪽지였다. 당시 주변 애들이 신기하게 봤던 것도 같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누가 먼저 해석하는지의 대결이 되었다. 고작 삐삐 번호를 조금 변형한 거인데. 

 

'0027' 

 

소리를 내어 울린 삐삐를 들고 앞을 쳐다봤다. 입모양으로 '땡땡이 치자~' 하는 김정우였다. 처음엔 거절하다가도 결국엔 같이 떡볶이 먹으러 튄 적도 있었다. 현재는 그날 항상 가던 분식집이 폐업을 했다. 체인 지점이 생기고, 자주 가던 다른 장소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디오 방이었던 작은 구멍가게와 지날 때마다 고소한 냄새가 났던 개인 빵집. 그 외에도 몇몇을 제외하고서 재개발로 인해 점점 변하기 시작한 동네였다. 

 

 

그 시절에 보았던 장면과 지나가던 상황, 추억, 향기들은 더 이상 없었다. 한꺼번에 이별이 서운했지만 수긍했다.  

 

편지를 읽었을 당시 우리나라 경제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를 못한 건 아니었다. 구석에 쓰여있는 작은 글씨를 보니 아주 조금 후회가 되었다. 아니, 사실 견딜 수 없을 만큼, 많이. 내 몸이 부서지도록 후회가 되었다. 나는 또 버릴 수 없었다. 가슴속에서 울분이 터졌다. '0024 - 영원히 사랑해.' 

 

"좋아해." 

 

너는 기회를 줬고 나는 잡지 못했다. 고작 3글자인 거대한 한마디. 더 빨리하지 못한 말. 후회해도 늦었다. 

 

 

 

06. 

 

 

 

무엇도 올리지 않은 이메일을 검색해봤자 비어있는 창 외에는 뜨지 않았다. 정확히는 광고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업무용 메일이 아니어서 더 쓸데없었다. 안 쓴지 오래되어서. 스펨 메일에도 들어가 봤지만 똑같았다. 바보같이 뭐 하는 건지. 10년.. 아니, 11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들어와 보는 것도 우스웠다. 

 

현타가 확 밀려오면서 정신이 들었다. 컴퓨터를 끄려고 전원 버튼을 누르려 할 때였다. 내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의 메일이 아니었다면 그랬을 거다. 

 

 

'시티 고등학교 제34회 동창회' 

"고등학교 동창회는 추억입니다." 

 

'안녕하세요. 시티 고등학교 동창회 총무입니다. 

어느새 저희 동창회가 벌써 9회차가 다가왔어요. 

(중략) 

그러니 가능한 모든 ' 친구 ' 여러분들이 와주셨으면 합니다.' 

'- 시티 고등학교 9회차 동창회 총무 알림. - ' 

 

 

동창회라는 단어에 이끌려 클릭했다. 새벽도 아닌데 감성이 나를 콕콕 찔렀다. 편지 때문일까. 

어느새 9회차나 되었구나. 20살 첫 동창회 때도 간 적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연락 오는 친구도 없었다. '새삼 인맥 참 얕게도 사귀었구나' 깨달았다. 

졸업을 후에 대학에 합격하고 고등학교와는 아예 단절되어 살아왔다. 대학 입학식을 곱씹어 보니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정우가 없는 나의 세상이 인정하기 싫다는 이유로 숨었다. 

 

벌써 해가 져 방이 어두워졌다. 정리는 이쯤 해둬야겠다. 나는 여전히 자신감이 부족했다. 현실에 부딪히기 싫어서 흔한 동창회조차도 참석하지 않았다. 

 

추억이 아픔이 되어 다가왔다. 그곳에 너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냥, 확신이 들었다. 메일로 건진 건 하나였다. 동창들을 만나서 훌훌 털어볼까. 네가 없어도 상관없다. 그래서 다짐했다. 

 

이렇게 회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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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장소는 도시 술집이었다. 처음 가보는 동창회가 어색해서 떨렸다. 거울을 보자 고등학생 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엿한 성인의 탈을 쓴 나만이 거울을 대면해 앉아있었다. 오버인가 싶어 분홍 하게 칠한 블러셔를 문질렀다. 항상 해오던 화장이 오늘따라 신경 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한 번은 나가볼걸. 

 

옷장을 열어, 제일 앞 옷걸이에 걸려있던 연하늘색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3년 전 엄마의 등쌀에 떠밀려 소개팅을 갔을 때 한번 입고 안 입었던 옷이다. 그래도 애프터 신청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없었지만. 

 

도시 술집은 집에서 가까운 편이었다. 애초에 원래 살던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이사를 간 아파트조차도 동네에서 두 정거장 거리니까. 이사는 1주 전에 완벽히 마쳤다. 

 

 

 

08. 

 

 

 

'Nobody Nobody but you~♩♩' 

 

오래된 도시 술집에선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어폰 음질을 타고 나오는 거 같았다. 도시 술집은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동네에 자리 잡은 가게였다. 미성년자는 당연히 지나가다 보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상하게 친근한 느낌이 드는 가게였다. 

 

간판이 번쩍거렸다.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밑으로 자리 잡은 좁은 문을 열자 역시나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넘쳤다. 절반이 대부분 동창회 사람들이었는데 다들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성숙해져 있었다. 

 

 

그중에 나와 음악실을 팔짱 끼고 가던 친구 한 명이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들었다.  

 

"준희야! 여기!!" 

젖살이 빠진 김민희는 다른 사람 됐다는 말이 잘 어울렸다. 

 

그 소리에 시선 집중이 된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다시 소란스러워지는 가게 안이었다.  

"와아! 시준희~ 완전 오랜만이다?? " 

 

"맞아~ 못 알아보겠어. 너무 예뻐진 거 아니야? 나는 이름도 까먹을뻔했잖아!" 

 

"제일 가까우면서 안 온 거 누구더라?" 

 

취기가 벌써 올랐는지 얼굴이 벌게진 아이가 뒤이어 비꼬는 투로 말했다. 이건 진심 같다. 

 

 

다들 나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먼저 능글거리며 잔을 든 아이는 학창시절 반에서 가장 활발한 아이였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아이기도 했다. 들려오는 말로는 저저번 달에 결혼을 해서 벌써 애도 있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말을 꺼낸 아이는 내가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청첩장을 돌리는 손놀림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에게로 가더니 찰싹 붙은 채 애교를 부렸다. " 내 신랑이야~^^ "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이어 축하해줬다. 경악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어이가 없네? 너 미쳤냐?!' 

 

'네가 미친 거겠지. 너처럼 미친놈은 살다 살다 처음 봐! 미친놈아!!' 

 

학창시절 3년 내내 앙숙이었던 둘이기 때문이었다. 치를 떨며 미워하던 둘이 현재는 저렇게 애교 부리며 결혼한다 발표했다. 둘의 모습은 내 맞은편에 앉은 한 아이가 헛구역질을 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소란스러웠던 자리가 어느 정도 정돈이 된 후에 고개를 사방으로 돌아봤지만 내가 찾는 이는 없었다. 11년 전 이후로 누구에게도 연락이 닿았다는 소리는 없었기에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발끝부터 쥐어왔던 힘이 빠지고, 경련이 올 거 같이 움찔거렸던 어깨가 내려갔다. 그리고 흠칫했다. 왜 실망하지? 스쳐간 아쉬움에 놀랐다. 완전히 잊었는데. 

 

"저기, 민희야. 물어볼 거 있는데." 

 

시끌벅적한 틈을 타서 옆에 있는 민희의 어깨를 두드렸다. 혹시나 해서, 그래도 연락이 된 사람이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설마 아예 사라져 버린 걸까. 

 

"응응." 

 

젓가락으로 생선과 싸우던 민희는 말해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우는 안 와?" 

그리고 민희는 생선을 놓쳤다. 

 

분명히 조용히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뒤바뀐 공기의 흐름에 내가 더 당황했다. 아까 결국에는 생선을 놓친 민희는 표정이 묘해지더니 내게 말했다. 

 

"어.. 준희야. 정우 동창회 날마다 안 왔어. 연락도 해본 적 없고." 

"너는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구나.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는 게 더 이상했다. 고개를 떨궜다. 떨군 채 끄덕였다. 분위기를 망친 거 같아서 아무렇지 않게 젓가락을 들었다. 

 

무던해 보이는 나를 보고 다시 제각각 시끄러워졌다. 나는 더 의식을 하지 않고 행동했다. 

'그래~ 정우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하며 눈치 없이 거드는 친구는 다행히 없었다. 

 

 

내가 김정우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을 거다. 쌍방이라고 착각했던 아이도 있었을 거고, 나만 진심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애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동창회는 그저 평범하게. 바싹 긴장했던 내가 우스워질 정도로 별거 없이 끝냈다. 오랜만에 본 편한 친구들과 회식한 기분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들어갈 땐 빈손이었지만 나올 땐 청첩장과 함께였다. 

 

'이동혁♡이시민.' 

'우리 결혼해요~! ' 

 

핑크색 종이에 하얀색 하트 스티커가 야무지게 붙어있었다. 마냥 평범하지 않은 게 그 애들 다웠다. 팔짱을 끼며 서로 쌈을 싸주던 모습이 생각나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어깨를 문지르며 집으로 향했다. 여름인데 왜 이렇게 춥지. 

 

비가 오려나. 

 

 

 

09. 

 

 

 

정작 변했으면 하는 건 변하지 않고 내 마음만이 변화했다. 바로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회의 제자리 걸음을 했다는 사실도 잊을 만큼 그렇게 분주해졌다. 

 

 

"오늘 우리 팀 회식 있으니까 다들 일찍 퇴근하죠." 

 

회식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 무슨 일찍 퇴근인가. 상사와 완전히 헤어져야 비로소 퇴근인 거지. 퇴근이라는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하.. 거지 같은 사회생활. 아니지. 나는 사회가 아니라면 그냥 거지였기에 순응하기로 했다. 언젠가 이 마음속에 고이 품어둔 사표를 내는 날만 기다리며. 키보드를 전투적으로 눌렀다. 아무도 눈치 못 챘길 바라며. 아~. 모순적이다. 그래, 

 

원래 인간은 다 모순적인 거니까. 

 

 

"준희 씨!내일 봐요!" 

 

"네. 김사원 님도 내일 뵙겠습니다!" 

 

어느 때처럼 회식이 끝나고 열이 오르는 몸을 이끌며 걸어갔다. 조금 취했나. 

분명히 회식 전까지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조금씩 끼기 시작했다. 그걸 나중에서야 눈치챘다. 

 

얼마 안 가 톡- 톡- 

 

손등과 얼굴로 떨어지는 빗방울에 그제서야 멈춰 섰다. 왜 하필.. 아직 정류장까지 가려면 더 걸어야 했다. 북적거리던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고, 이제는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는 수없이 중간에 편의점에라도 들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뛸 준비를 했다. 

 

중간에 끼어드는 그림자만 없었어도. 

 

 

 

10. 

 

 

 

술기운에 헛것을 보나. 머리 위로 올린 핸드백이 무색하게 한 뼘 더 큰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웠다. 아니, 술 때문이 아니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고의적인 만남인지. 그게 뭐든 인생은 무심했다. 가려진 하늘에 의문을 가져 올려다 본 얼굴은. 내가 가장 잘 아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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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이 지난 김정우였다. 

 

 

머리 위로 쓰인 검은 우산의 높이를 보자 키는 더 커진 거 같았다. 얘는 그날보다 얼굴도, 우산도 더 업그레이드 되어서 내게로 왔다. 

 

딸꾹- 

 

 

 

11. 

 

 

 

민망해지게 딸꾹질이 나왔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김정우를 쳐다보았다. 그날의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똑바로 마주해도 동공 지진이 나지 않는다는 거. 

 

분명히 데자뷔가 일어났지만 다른 상황이었다. 번듯한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의 소녀와 소년을 투영해 봤다. 이 공간에는 커버린 우리가 있었다. 

 

"오랜만이야."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을 이런 식으로 마주할 줄은 몰랐다. 동네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내가 맴돌았다. 너의 소식을 기다렸다. 

 

 

 

12. 

 

 

 

비가 그쳤다. 소나기였는지 점점 빗소리가 작아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내리지 않았다. 이미 술은 다 깨서 근처 공원 벤치고 가 앉았다. 왜 아무 말 하지 않았으며, 사물함을 보러 안 갔다면 그 원망을 받으며 어쩔 셈이었는지. 직접 전해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압박감에 눌려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그리고....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냥 그전에 사과하고 싶었다. 미안해. 몰라줘서 미안해. 

 

한동안 아무 말 없던 우리는 김정우의 첫마디로 말을 트기 시작했다. 김정우는 마냥 말갛기만 했던 시절과 달리 여러 면으로 바뀐 분위기였다. 마음이 11년 만에 학창시절 때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잘 지냈어?" 

 

"응.. 나는 원래 그랬으니까. 너는?" 

 

"나도. 맞아." 

 

"그렇구나.." 

 

"널 보면 답답하던 게 확 풀릴 거 같았는데. 지금 네 표정 보니까 속은 몰라도 의문은 풀리네." 

 

우산이 말라갈 때쯤, 김정우가 입을 열었다. 그 속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뱉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뜬금없이 등장해서 한다는 말이 이거라서 미안해. 그래도 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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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봤지? 준희야." 

 

 

 

13. 

 

 

 

씻고 침대에 몸을 기댔다. 어깨 위에 걸쳐진 수건을 치우기 귀찮았다. 불순한 의도 없이 눈이 커져선 날 쳐다보는 네가 왜 그렇게 웃겼을까. 웃을 상황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짓궂은 말이 나왔다. 

'미안해. 내가 너무 울었나 봐. 조용히 전한 의미를 몰랐어. 정우야.' 

 

설마 내가 울 거라곤 생각 못 한 걸까. 눈치가 빠르다 싶다가도 이럴때 보면 정말 바보 같다. 맨날 나보고 바보라고 했었던 게 기억났다. 이번엔 반대의 상황이었지만. 이 장면이 추억의 한 장면과 비슷해서 또 깔깔댔다.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아 창을 켰다. 특별히 번호도 교환하지 않았던 우리였기에. 내가 알고 있는 건 이메일 주소 하나였다. 

 

 

'안녕하세요. 준희 씨, 작가님 메일입니다.' 

 

[email protected] 

 

 

영업용 이메일을 로그아웃하려다 '취소'를 눌렀다. 그리고 나는 굳어갔다. 너의 메일이 나를 향해 있었다.  

 

희미한 미소가 걸쳐졌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웃었는지 울었는지 헷갈려서 저렇게 표현했다. 

 

내가 좋아하던 글은 너였고, 나는 네 글을 사랑했다. 

 

 

이번에는 진짜 로그아웃을 하고, 다른 이메일로 로그인을 눌렀다. 빈 창을 써 내려갔다. 목적지는 김정우, 너였다. 

 

 

'제목 : 안녕, 정우야. 나 시준희야.' 

 

타자를 천천히 쳤다. 여러 번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꼭 읽어주길 바라며. 

 

'내게 먼저 와줘서 고마워. 그건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아. 29살이 되어서 이런 말 하기에는 유치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부탁할게. 0027. 그리고 0024. 해석해줘. 이거 기억나지? 우리 암호잖아.' 

'ps. 혹시 아직도 이 메일을 쓰고 있니. 만약 여전하다면 기한 없이 기다릴게. 자유로이 답변해줘.' 

'발신인 : Seejun1234' 

 

영원히 사랑해. 

 

 

 

14.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첫사랑이었고, 그 누군가도 또 다른 사람에게 첫사랑이었다. 예외는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확신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다 결국 다시 만나게 되며 끝은 없다. 

 

누가 첫사랑은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는 아름다움이라고 하지만 나는 달랐다. 소심했던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너. 책을 멀리하던 나를 책을 내는 출판사에서 일하게 만든 너. 이 모든 게 너로 인해 시작되었고 끝을 봤다. 아니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너와 시작한 이 첫사랑의 끝은 어떨지. 너와 나. 오직 둘만이 알았다. 정우야.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잖아. 미숙한 우리에게는 그랬었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고 봐. 

 

나는 우리 둘 사이에 끝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첫사랑이 아닌 사랑으로 마무리되었으면 좋겠어. 

 

 

29살의 내가 17살의 너에게 

17살의 내가 29살의 너에게 

 

다시 말할게. 

 

 

[김정우] Return To love 上~下(재) | 인스티즈

 

좋아해.  

 

나는 너를 사랑해, 정우야. 

 

안녕, 그럼 진짜 안녕. 

 

 

 

 

 

 

+번외 

 

 

 

 

"미안하다." 

 

"아버지." 

 

여기저기 붙어있는 딱지들이 아니꼬웠다.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 비참해질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작은 회사를 다니시던 아버지는 우리 앞에 무릎 꿇었다. 외동이던 정우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무너지는 어머니를 부축했다. 

 

누구의 잘못이라 단정 지을 수가 없었기에 더 애처로웠다. 그날 방에 들어가서 편지를 썼다. 학교에 가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편지를 넣으면서도 망설였다. 여러 번 고민 끝에 결국엔 사물함을 닫았다. 손에 들린 편지는 없었다. 

 

 

"가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상처받을 시준희를 보기 힘들었다. 아니, 사실 약해지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가장이 되어 우리를 보태야 했기에 자영업을 시작한 아버지는 정우와 정우의 어머니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갔다. 

 

조용한 공기 속에서 정우는 눈을 감았다. 이상하게 시준희가 보고 싶었다. 

 

 

 

-2-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알바를 시작하고서였다. 19살이 되자마자 온갖 고생은 다했다. 연탄을 나르는 건 고됐고, 인생은 거칠었다. 원래도 그다지 잘 살던 때가 아니었기에 두 배는 힘들었다. 그러다 오래간만에 책상에 펜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여러 욕구가 생겨났다. 이걸 글로 표현한 거였을 뿐인데. 26살,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다. 

 

 

"저작권 등록이 무조건 중요한 거 아시죠." 

 

"네." 

 

"이메일 번호, 그리고 닉네임도 jeus 맞으시죠? 작가님?" 

 

모든 게 낯설었던 내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가 치밀하게 작전을 수행했다.' 보다는 '그가 합리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이렇게 바꾸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요." 

 

 

나이를 먹은 너를 보았다. 자세히는 분위기가 달라진 네가 보였다. 너의 소식이 공간 안에서 떠돌았다. 직접적인 언급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애매했다. 반가워할 자격을 따졌다. 모니터 뒤로 모르는 사이처럼 굴었다. 

 

 

[김정우] Return To love 上~下(재) | 인스티즈

 

그러나 유난히 비를 가만히 맞고 있는 너는 여전히 볼 수가 없었다. 

 

 

 

 

 

 

 

 

 

 

 

 

 

 

 

 

 

 

제가 'Goodbye Summer' 를 들어버렸지 뭡니까.... 그래서 다시 연재해봤슴다. 조금? 이 아니라 많이 바뀐 부분도 있을 거예요. 

안녕이라는 인사는 작별할 때도 하고, 다시 만날 때에도 하잖아요. 그래서 열린 결말이 맞겠죠? ㅎㅎ  

참고로 모든 내용이 픽션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찾아보니까 기존에 썼던 '사랑의 물리학' 시가 2014년?에 발매됐더라고요. 설정 붕괴 올 거 같아서 그냥 지어서 써봤습니다.. 제가 시에 소질이 없어서 구릴 수도 있어요! 그리고 중간 워딩 같은 게 그 시절 쓰지 않았던 말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신경 쓰이신다면 죄송합니다.. 

애초에 90년대가 배경이긴 하지만 솔직히 그런 분위기가 들어간 거 같지는 않아요. 너무 욕심만 앞섰나 봅니다... 하하 

점점 길어질수록 변명만 늘어 가네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리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아니다. 조만간 시즌 2 -다른 멤버 이야기- 로 찾아올게요! 

(이제서야 말하지만.. 비지엠은 자유롭게 하셔도 됩니당.....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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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헉 재업하셨길래 또 읽었는데 디테일까지 신경 쓰시는군여,, 최곱니다 자까님,,,걱정마세유ㅠㅠㅠㅠ진짜 넘 재밌어서 찬찬히 또 읽었는 걸요(ღ•͈ᴗ•͈ღ) 간질간질하고 설레고 그러네요. 다음작도 기대할게요💚
4년 전
비회원173.4
헐..가볍게 읽을려고 들어왔는데 필력 멍쩔어 버리시네용..댑악댑악 혹시 마지막 비지엠 먼지 알려주실수 있을까요??노래 너무 좋고 글이랑 잘어올려요ㅠㅠ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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