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는 윤기를 싫어함.
이유는 글쎄... 윤기가 엄마친구아들이라고 할까. 매번 비교당하는 데에 지친 거. 엄마들끼리도 친한 소꿉친구 사이였는데 중학교 들어가고서부터 엄마가 윤기랑 비교를 하기 시작한 거임. 여주는 한 학년에 500명짜리 학교에서 20~30등 정도 하는데 윤기는 10위권 내에서 놈. 그렇다고 전교 1등, 이 정도는 아니고 그냥 10등 내외.
윤기는 무뚝뚝한 듯 다정한 성격이고 여주는 활발한 성격? 이라 둘의 초등학교 때까지의 사이는 여주가 주도함. 옆집 문 똑똑 두드려서 윤기 잡아끌고 놀이터 가고, 학교랑 학원도 같은데 다니니까 등하교할 때도 윤기 찾아가서 같이 감. 윤기는 그냥 거부 없이 끌려다니는? 그래도 다정하니까 여주가 하는 말 다 귀기울여 들어주면 여주가 또 신나서 얘기하겠지.
중학교 처음 올라갔을 땐 당연스레 등하교 같이 하고 심심하면 옆집 놀러가는 사이였는데 어느샌가부터 조금씩 멀어짐. 윤기가 남자애들 성화에 못 이겨 PC방으로 가는데, 처음엔 여주한테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하더니 좀 지나니까 그런 말도 없음. 여주는 여주 나름대로 여자애들이랑 어울리느라 바빠지기도 했고. 게다가 초등학교 때 애들은 윤기랑 여주가 워낙 어렸을 때부터 친한 걸 아니까 그냥 남매처럼 보는데 중학교는 어쩌다 둘만 배정이 멀리 간 거라 둘이 등하교 같이 하는 거 본 애들이 둘이 사귀냐고 하도 놀려서 의식적으로 안 붙어있게 된 것도 있음.
하여튼 둘 다 서로한테 약간 서운하면서도 그래 나도 친구 만나야지... 하면서 살고 있었음. 그래도 등교는 항상 같이 하고 가끔은 하교도 같이 하면서. 그러는 와중에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오는데, 여주가 학원을 수학에 영어에 중국어, 피아노까지 다니게 된 거임. 아무래도 방학이니까 특강 때문에 시간도 길어서 여주는 하루 종일 학원에만 있게 됨. 그래도 주말에는 시간이 좀 나서 윤기한테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하면서 힘들다고 투정도 부리고.
그리고 2학기 개학. 스킵스킵해서 2학기 중간고사를 봤는데 여주가 성적이 하나도 안 오른 거임. 그냥 현상 유지. 성적표 보고 엄마가 넌 학원을 그렇게 다녔는데도 성적이 왜 안 오르니? 윤기는 혼자 하면서도 항상 10등 안에 들더만... 이러면서 슬슬 비교 시전. 한두 번이야 그냥 넘어가지만 여주도 힘들어 죽겠는데(방학 때 시작한 학원을 하나도 안 끊고 그대로 다니는 중. 중국어는 심지어 주말 시간이라 이젠 주말도 못 놈) 자꾸 비교하니까 짜증남.
처음엔 엄마 왜 저래!!로 시작해서 등교하면서 윤기 툭툭 치면서 야 우리 엄마가 너랑 자꾸 비교해. 하는 정도였는데 점점 들으면 들을수록 엄마가 나한테 저러는 게 민윤기 탓 같은 거임. 어차피 등교 같이 하는 것 외에 주말에 만나거나 하는 건 다 여주가 찾아가서 만나는 거였어서 여주가 윤기한테 안 찾아가니까 둘은 만날 일이 별로 없음. 등교 때도 점점 말 없어지더니 하루는 문자로 [민윤기 미안. 내일부턴 등교 같이 못하겠다]이러고 일방 통보 후 사라짐. 500명짜리 학교다 보니까 반이 13개라서 두 층으로 나뉘어 있어서 아래층인 여주랑 위층인 윤기는 지나가다도 만나기가 힘듬.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사춘기가 오면서 여주는 윤기를 정말 싫어하게 됨. 내 세상의 불행은 다 쟤 때문 같고 옆집이니까 쓰레기 버리러 나가다 눈만 마주쳐도 못 본 척 휙하니 사라짐. 윤기는 그런 여주가 이상하고 답답하긴 하지만 사춘기 남자애의 가오가 있지 여자애가 자기 피한다고 어떻게 가서 질질 짜겠음. 그냥 니가 싫으면 나도 됐다, 하는 마인드로 내버려둠.
그렇게 옆집에 살면서도(!!) 서로 안 보는 게 중학교 내내 이어짐. 윤기는 사춘기가 끝나서 여주한테 토라진 마음 다 없어지고 그냥 음 예전 친구? 같은 느낌만 남았는데 둘이 얼굴 안 보는 와중에도 계속 윤기랑 비교당한 여주는 사춘기가 끝났는데도 윤기만은 지독하게 싫음. 이 와중에 윤기는 사립 외고로 가버리고 여주는 집 근처 자공고에 간신히 붙어서 또 열등감. 1학기가 지나고 성적이 나오니까 엄마는 또 윤기는 거기 가서도 상위권이더라. 너는 뭐니? 이럼. (하... 내가 쓰면서도 이 엄마 너무 싫다...)
뭐 하여튼 여차저차 해서 애들의 고3 가을?이 다가 옴. 그 때 체육 대회 하잖아. 체육 대회할 때 시끄러우니까 고3은 다 집에 보내는 거임. 그래서 평일인데도 윤기는 드륵드륵 캐리어 끌고 집에 옴. 마침 여주네 학교 체육 대회도 그 날이라 여주도 집에 있었음. 윤기는 캐리어 끌고 올라오고, 여주는 도서관 가야지 이러고 준비하고 나오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딱 마주침. 윤기가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워서 어, 김여주! 잘 지냈어? 하는데 여주는 스윽 보고 그냥 지나침. 윤기가 순간 기분 나빠져서 여주 손목 딱 잡고 뒤 돌려서 야, 사람이 인사를 하면 받는 성의는 보여야지. 하는데 여주가 하, 내가? 내가 네 인사를 왜 받아야 하는데? 하고 손목 탁 털어내고 엘베 타고 내려감.
히...힘들다...!!!! 일단은 여기까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