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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세훈] 그대라면 좋으니 그냥 안아주세요 01 | 인스티즈

 

 

 

 

 

 

 

"할머니 안 깨실까?"

 

 

"잠귀 어두우셔, 괜찮아 자주 와놓고 오늘따라 더 그러네."

 

 

"비 오고 있잖아"

 

 

유독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나였다. 우울하고 음침하고 무엇보다 비 오는 날이면 내 머릿 속을 채우는 아빠의 존재 때문이기도 했다. 오늘 하루 일을 쉬는 날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세훈이네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마치니 어느새 아침이 밝았고, 그와 동시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운전도 자기가 하겠다는 세훈이였지만, 끝까지 괜찮다고 일 열심히 한 남친은 차에서라도 좀 쉬세요하고 웃자, 아무 말 없이 머리를 쓰다듬더니 어깨를 두드려준다. 고마워, 세훈아. 아무 말 안 하고도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줘서. 사실 세훈이가 이 시점에 무언가를 얘기 하려고 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운전을 멈췄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나보다 세훈이가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세훈이는 차에서 내려 뒷자석에 있는 우산을 꺼내더니 운전석 문을 열며 우산을 씌어주었다. 고마워. 살짝 미소를 지은 세훈이는 내 어깨를 감싸고, 입구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집 앞에 서자, 자연스럽게 비밀번호를 누르는 세훈이였다.

 

 

"왔어? 어유 왜 이리 늦었어 일이 바빠? 쉬엄쉬엄...... 어이구 세훈이도 있었네"

 

 

"잘 지내셨어요?"

 

 

세훈이는 웃으며 할머니를 안아주었고, 할머니 역시 기쁜 표정으로 세훈이를 쳐다보셨다. 언제나 봐도 뿌듯하고 기분 좋은 상황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계속해서 찾아오는 우울함에 세훈이 밥을 대충 차린 뒤, 먹으라고 일러두곤 방으로 들어왔다. 너무 조용해서 할머니와 세훈이의 대화가 더 깊이 들려왔다. 고마워, 항상 징어 챙겨줘서. 할머니의 말에 세훈이는 아니라고, 제가 더 복 받았죠. 하며 웃었다. 다행이다. 비가 와서 우울하게 있으면 할머니가 걱정되고 신경이 쓰이면서도 그렇다고 말은 커녕, 내 우울함이 너무 크게 느껴져 잠만 자거나, 방에만 있거나 해서 항상 할머니는 걱정하셨다. 우리 손녀, 항상 예쁜데...... 비만 안 오면 얼마나 좋아...... 할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박히자 눈물이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훈이와 할머니는 식사를 마쳤는지 서로 설거지를 하겠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서랍장 위에 올려둔 휴대폰을 들어 정성들여 세훈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일 하고 왔는데 미안해 비가 올 줄은 몰랐어 항상 고마워]

 

 

 

문자를 보내고 잠들었는지, 잠에서 깨 커튼을 걷으니 꽤 어두워져있었다. 비는 그친 거 같아 보여서, 피식 웃음이 났다. 난 안 괜찮은데 하늘은 괜찮은가 보네. 머리를 정리하고 거실로 나가자, 세훈이가 앉아 티비를 보고 있다. 세훈이 옆으로 앉아 품으로 파고 들자, 세훈이가 바람 빠지게 웃었다. 할머니는? 방금 들어가셨어 방에, 주무셔. 따뜻한 대답에 노곤한 느낌이 들어 세훈이의 어깨에 기댄 채,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말들을 뱉기 시작했다. 고마워, 세훈아. 정말 정말로 사랑해. 세훈이는 웃으며 매일 비 오면 이런 소리 들어? 하고 물었고, 난 웃으며 글쎄, 항상 사랑하고 고마운데 말을 안 하는 거야. 하고 대답했다.

 

 

 

"스케줄은?"

 

 

"일주일 뒤에 화보촬영 그리고 한 달 휴가"

 

 

"그럼 계속 우리 집에서 지내, 우리 할머니 좀 챙겨주면 고맙구"

 

 

"바빠?"

 

 

바쁘지, 곧 행사에 세일에 사람들 몰려들 건 뻔한데. 세훈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 새까만 놈이 작업은 안 걸고? 하고 물어왔다. 종인이 얘긴가. 사실 종인이랑은 처음부터 친한 사이는 아니였다. 백화점 구역 마다 팀을 정해 단합대회를 한 적이 있는데, 우리는 화장품 계열사 중에서도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시계나 악세사리 종류 매장 직원들이랑 팀이 만들어졌는데 거기서 유일한 동갑내기 친구라 친해지게 되었다. 가끔 점심을 같이 먹고, 주말에 백화점 얘기로 가끔 연락하는 거 빼면 서로 인사도 잘 안 하는 편이지만, 어색해서가 아니란 걸 서로가 알고 있기에 그런 점도 서로 배려할 수 있는 친구랄까? 그런데 세훈이는 일차 남자라서, 이차 꽤 잘생겨서. 이 이유로 종인이를 굉장히 싫어한다. 세훈이가 잘나서 그런지 질투하는 일은 드문데, 종인이가 아마 사람으로써 처음 질투를 느낀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 정도로 티를 안 낸다. 물론 내가 남자랑 있으면 손을 꼼지락거리고 눈빛이 변하는 사실을 오세훈은 모르지만 말이다.

 

 

"단합대회 또 이딴 거 하는 거 아니지?"

 

 

"학교로 치면 체육대회 같은 행사야 너로 따지면 워크샵이고 이딴 거라니"

 

 

"이딴 거지 그거 때문에 그 새끼랑 너랑 친해졌는데"

 

 

그렇게 말을 하는 세훈이를 쳐다보며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렇게 보지 말라고 투정하는 세훈이다. 예전이랑 달리 서로 표현도 많이 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도 커진 거 같다는 생각에 또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세훈이는 너 자꾸 막 그런 눈빛으로 보면서 웃지마라고 하기에. 내 눈빛이 어때서! 하고 소리치자, 세훈이는 너 강아지랑 애기 볼 때 그런 눈으로 보는 거 알아? 하며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새삼 세훈이 얼굴을 보고 감탄하며 진짜 잘생겼다고 중얼거리자 못 하는 말이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신발을 신는다. 집에 가게? 하고 묻자 아까 할머니 빵 드시고 싶으시댔어 사올게 하며 신발을 고쳐 신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진짜 예뻐 죽겠어, 오세훈.

 

 

 

"할머니 일어났어? 왜 좀 더 쉬지"

 

 

"세훈이는 갔어?"

 

 

"다시 올 거야 밑에 뭐 잠깐 사러 갔어"

 

 

"그래? 징어야 세훈이 꼭 잡어 저런 남자 찾기 힘들다 우리 손녀같이 참한 아가씨 찾기 힘든 거 만큼"

 

 

비만 오면 이렇게 센치해지신다니까, 우리 할머니. 괜히 코끝이 찡해져 할머니를 끌어안고 할머니한테 고개를 묻었다. 할머니는 계속 있어야 해. 내 말에 할머니는 내 얼굴을 잡더니 우리 손녀 힘들어? 하며 손을 옮겨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언제나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셨던 내겐 하늘과도 같던 분이. 사고였다. 경찰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렇다고 할 수 밖에.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늦은 새벽 야근을 하고 집으로 오던 아빠 차로 이름도 알아듣기 힘든 외제차가 신호위반을 하며 돌진했다. 피한다고 핸들을 꺾은 게, 벽을 박아버렸다. 음주운전. 그 사람은 술에 취한 상태였다. 나이는 내 또래 같았고,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비가 거세게 오던 밤이였다. 장례가 치뤄지는 내내 비는 참 거세게 내렸다. 엉엉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조문객들이 떠나가고 할머니 마저 지쳐 주무시면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책임감이였다. 그저 그런 표정으로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할머니를 챙겼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아이처럼 떼쓰고 투정부리기엔 난 이미 어른이였다. 아니, 어른이여야만 했다.

 

 

 

그 뒤로 비가 오는 날이면 자꾸 생각이 난다. 사고의 현장? 장례식? 아니, 아빠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 딸 하며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지금은 집을 옮긴 상태지만, 함께 살던 그 집은 차마 팔지도, 거기에 살기엔 심적으로 힘들 거 같아 그대로 두고, 지금 오피스텔로 이사를 왔다. 할머니는 가끔도 아빠 사진을 쓰다듬으시며 눈물을 훔치신다. 어린 것 두고 간 네 맘은 어떠랴. 나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척 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다. 내가 3살 때, 부잣집 손자와 재혼을 해 외국으로 훌쩍 떠나버려 얼굴 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 내가 의지하고 믿었던 건 아빠 뿐이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이 악화된 후, 자연스레 가장인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양하게 되었고 그 뒤로 난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키워졌다. 할아버지는 이미 우리의 곁을 떠난지 오래 되었다. 할머니는 아빠의 사진을 보다 항상 앨범을 꺼내들곤 하셨다. 할아버지 사진을 보시며 그리 심심했어요? 날 데려가지, 나 두고 왜 얠 데려가...... 저 어린 것은 어찌 살라고...... 나 마저 가면 쟤는 어찌 살아요 당신 참 못났어. 하고 중얼거리시곤 한다.

 

 

난 어린 애처럼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항상 어른스러워야 돼. 징어야, 넌 가장이야. 혼자 다 할 수 있어야지. 어릴 때 부터 꾸준히 들어온 말이였다. 나도 사랑스러운 철부지 딸이고 싶었다. 가끔 투정도 부리고, 애교도 부리면서 가족들과 친한 딸이고 싶었지만. 어른스러워야한다는 관념 때문에 지금은 사진을 앞에 두고 수없이 외치는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해요, 아빠. 보고 싶어요. 할아버지, 죄송해요. 여러 생각이 겹치면서 눈물이 터졌다. 숨겨보려 입술을 깨물어도 터져나온 눈물을 멈출 수는 없었다. 도어락 소리가 들리고 세훈이가 들어왔다. 빵 사왔어요, 할머니. 자기 딴에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세훈이를 보자, 더 코가 찡해졌다. 고마웠다, 내가 빈자리를 느낄 틈이 없이 내 모든 것 가득 채워 들어오는 세훈이가.

 

 

울고 있는 할머니와 나를 보고 세훈이는 놀란 기색 없이 우리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마주 잡고 있는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어 꽉 잡아주었다. 할머니는 그런 세훈이를 보며 얼굴을 쓰다듬으시며 고맙다, 너무 고맙다. 하며 고맙다는 말만 계속 하셨다. 그러다 할머니는 눈물을 닦으시더니 조금 자야겠다고 하시곤 세훈이에게 웃으며 고맙다고 하신 뒤, 방으로 들어가셨다. 세훈이는 고맙게 아무 소리도 없이 내 옆에 앉아 어깨를 빌려줬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상처를 보듬을 줄 안다. 세훈이는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지 티비를 켜, 영화를 찾고 있었다. 공포영화는 못 보는 스타일인 걸 잘 아는 세훈이였기에 공포는 체크리스트에서 제외한 채 찾던 중이였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하나를 고른 세훈이가 봉지 속에서 맥주를 꺼냈다. 한 모금만 마셔. 오늘은 마셔도 돼. 항상 내가 술을 마시는 걸 싫어해 말리던 세훈이가 먼저 마시라고 권하기에 몇 모금 마시고 세훈이에게 넘겨주었다. 캔 소리와 동시에 영화가 시작되었고, 세훈이 팔을 끌어안은 채 영화 관람을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오빠 그런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됐어, 나 갈래. 연락 하지 마.]

 

 

 

 

영화를 보는 내내, 옅게 미소만 짓던 세훈이가 내가 웃는 모습을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랑 받고 있구나, 나. 온갖 달디 단 말로 사람을 꼬시는 능력은 둘 다 없었기에 서로가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세훈이랑 있으면 사랑이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기분이 조금은 좋아져서 세훈이에게 웃으며 고맙다고 하자, 맨날 뭐가 그렇게 고마워 하면서 뒤로 몸을 눕힌다. 거의 눕다싶이 앉아있는 세훈이를 보며 웃다가, 방에 들어가서 좀 쉬자. 나 피곤해. 하며 세훈이를 끌어당기자 일어나더니 뒤에서 나를 안은 채로 뒤뚱뒤뚱 걸어 방으로 들어왔다. 누워서 옆자리를 치며 누우라고 하자, 옷이 불편하다며 좀 갈아입겠다고 자기 옷을 찾는 세훈이다. 제일 밑에 있는 서랍에서 반팔티와 반바지를 꺼내자 갈아 입고 올게 하며 화장대 뒤 쪽으로 가는 세훈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와선 옆자리에 누워 팔을 뻗더니 토닥토닥 내 등을 두드려준다. 그 손길이 너무 따뜻해서 얼마 못 가 잠든 거 같다. 눈을 떠보니 세훈이는 없었고, 주방에서 칼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긁적이며 밖으로 나가자, 할머니는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고 계셨고 세훈이는 주방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할머니는 나를 보시곤 우리 강아지 많이 피곤했나 봐 이렇게 오래 잔 적이 없는데 하며 시계를 가리키셨고, 시계는 10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할머니 배 안 고파? 괜찮아요? 하고 묻자, 괜찮다고 대답하시곤 옆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하신다. 세훈이한테 가 보고. 대답을 한 내가 세훈이 뒤로 살금살금 가자, 세훈이가 뒤로 확 돌며 가서 쉬고 계세요 하며 내 등을 떠민다. 아 예예 하고 대답을 하곤 힐끔힐끔 보다가 거실로 나와 할머니 옆에 앉았다. 드라마 이거 새로 해? 안 보던 거네. 내 말에 할머니는 신이 나셔서 드라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셨고, 나는 들으며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세훈이가 웃으면서 보고 있었고.

 

 

"세훈아 우리 결혼하면 할머니 모시고 살자"

 

 

"아냐 뭘 모시고 살아 나는 그냥 옛날 살던 고향에 가서 살면 돼 우리 강아지 결혼하는 것만 보면 내려가야지"

 

 

"무슨 소리세요 저희랑 사셔야죠"

 

 

듬직한 세훈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할머니가 내 손을 꽉 잡으셨다. 어휴 평소엔 안 그러면서 이럴 때만 이래요, 여사님 가서 식사하십시다. 할머니 어깨를 잡고 일으켜 식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훈이가 준비한 밥에 박수를 치고 다들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진짜 세훈아, 넌 못 하는 게 뭘까. 혼자 생각한다는 게 입 밖으로 말이 나오고 말았다. 피식 웃은 세훈이가 그러게 못 하는 게 뭘까 하며 내 말투를 따라했고, 할머니는 못 하는 거 없지, 없어 하며 웃으셨다. 오랜만에 나랑 세훈이 둘 다 안 바쁘고 한가한 하루였다. 할머니는 둘이 오랜만에 보는데 데이트라도 하고 오라며, 우릴 밖으로 내미셨고 덕에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카페도 갔다가, 밥도 먹고, 길거리를 걷기도 하고. 오랜만에 남들이 하는 데이트를 했달까? 간혹 가다가 모델 아니야? 오세훈 아니야? 하는 여학생들 목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세훈이가 마스크를 쓰거나, 선글라스를 챙기지도 않았고 너무 편한 차림으로 나왔기에 주위에서 아니야 저렇게 입고 다니겠어 설마 하며 돌아선 게 대부분이였다. 덕에 에이 오세훈 인기 없네 하며 놀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긴 했지만.

 

 

오랜만에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데 세훈이가 일주일 동안 너네 집에 있을까? 할머니도 좋아하시고. 하며 물었고, 나는 너만 괜찮으면 뭐, 할머닌 늘 너 좋아하셨어. 하고 대답하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세훈이였다. 결국 세훈이네로 가던 발길을 돌려 우리 오피스텔로 향했고 할머니는 티비를 켜놓은 채 잠들어계셨다. 할머니를 조심스럽게 깨워 할머니, 세훈이 일주일 동안 여기 지낸대요. 나 바빠서 못 들어와도 세훈이 있으니까 괜찮지? 하고 묻자, 세훈이 바쁜데 괜히 있는 거 아니냐고 되물으셨고, 세훈이는 아니라고 좋아서 있는 거고 당분간 일도 없다며 할머니 옆에 자연스레 앉았다. 복 받았어, 김징어. 저런 남잘 어디서 만나. 뿌듯한 마음에 세훈이를 쳐다보자 웃으면서 엄지를 올려 보인다. 귀여워, 진짜.

 

 

 

 

"징어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까, 전 쇼파에서 잘게요. 시간 늦었어요, 들어가서 주무세요."

 

 

"왜 불편하게 쇼파에서 자, 징어랑 같이 자지."

 

 

"그럼 징어 또 늦잠 자요, 내일은 일찍 가야죠."

 

 

"누가 들으면 맨날 늦게 일어나는 줄 알겠다."

 

 

"우리 공주 맨날 일찍 잘 일어나잖아, 그럼 세훈이랑 알아서 자. 쇼파는 안 돼, 불편해."

 

 

 

끝까지 쇼파는 안 된다고 당부하신 할머니가 문을 닫고 들어가자, 세훈이는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가까이 가자 자기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더니,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잘 자하고 담요를 덮고 쇼파에 누운 세훈이를 보며 웃다가, 고개를 숙여 볼에 뽀뽀를 하곤 잘 자, 오빠 하고 손을 흔들자 웃으며 같이 손을 흔들어주는 세훈이다. 일어나 화장을 하고 매장에 가서 옷 갈아 입기 편하게 반팔티에 반바지를 입은 뒤, 집을 나서는데 세훈이가 가서 먹으라며 도시락 통을 내민다. 너 바쁠 때랑 반대로네 하며 웃자, 세훈이가 내조의 여왕 남자친군데 이 정도는 해야지? 하며 어깨를 으쓱한다. 갔다 올게, 할머니 아직 주무시지? 깨면 밥 좀 부탁할게. 쉬고 있어. 말을 마치고 까치발을 들어 볼에 입을 맞추자, 반대쪽 뺨을 내미는 세훈이다.

 

 

"완전 능글맞아"

 

 

반대쪽 뺨에도 입을 맞추자, 그제서야 손을 흔들어주는 세훈이다.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와서 버스를 타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매장 정리를 대충 마친 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데스크에 앉아 생각을 하는데, 출근을 하던 종인이가 커피를 내려놓으며 좋은 아침하고 인사를 한다. 커피를 받아들고 잘 잤어? 하고 묻자 그럭저럭 하더니 매장으로 가 오픈 준비를 한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발소리 마저도 엄청 크게 느껴졌다. 야, 내가 항상 느끼는 건데. 이 시간에 발소리 혼자 듣고 있으면 되게 무섭다? 하고 종인이에게 말하자, 웃으면서 네가 제일 무서워하며 놀리는 표정을 짓는다. 얄미워, 진짜. 웃으면서 쳐다보자, 한쪽 입고리만 올려 씨익 웃더니 시계를 정리한다. 쟨 왜 여자친구가 없을까. 보면서 항상 드는 생각 중에 하나다. 저 정도면 멀쩡한데, 아니 잘생겼지.

 

 

"근데 넌 왜 여자친구 안 사겨?"

 

 

"정답이야 못 사귀는 게 아니라 안 사귀는 거야 사귀면 뭐 해 헤어질 거"

 

 

"역시 쿨해 김종인다워"

 

 

박수를 치며 엄지를 세우자, 호탕하게 웃는 종인이다. 옆에 그건 뭐야? 하고 묻길래 시선을 돌리자 도시락 가방이 보인다. 아 맞다 이거 넣는다는 걸 까먹었네. 하고 도시락 가방을 들자, 뭔데? 하고 되묻는 종인이다. 남자친구의 내조랄까? 하고 어깨를 으쓱한 뒤, 스텝룸에 들어가 냉장고에 도시락을 넣었다. 이따 매니저 언니랑 먹어야겠다. 스텝룸을 나와 자리로 이동하자, 매니저 언니가 유니폼을 들고 두리번 거리고 있다. 언니 왜요? 하고 묻자 립스틱 떨어트렸나? 없어 가방에 하며 바닥을 쳐다봤고, 나 역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헐 언니 그거 신상 맞죠? 얼마 전에 산? 고개를 끄덕이는 매니저 언니를 보고 더 열정적으로 립스틱을 찾기 시작했고, 그 광경을 보던 종인이 마저 합세해 립스틱을 찾기 시작했다. 립스틱은 시계 진열대 밑까지 굴러가 있었고, 종인이가 발견해서 찾을 수 있었다. 박수를 치며 고맙다고 인사하던 언니가 그럼 오늘 징어랑 종인이랑 같이 셋이 밥 먹자, 내가 쏠게 하고 외쳤고 나는 곤란하다고 남자친구가 도시락을 싸줬다고 얘기하자 언니가 눈에 띄게 시무룩해지면서 뭐야 쏜다 쏜다 쏜다! 실패야? 하고 되물었다. 그리고 종인이가.

 

 

 

 

 

 

 

 

 

 

"그거 같이 먹으면 되잖아 아 조금 실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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