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느날, 빤히 바라보던 나의 시선을 느낀 너는 잠깐의 침묵 후에 턱을 괴며 나에게 물어왔다. 아니, 별로. 아무것도. 대충 둘러대며 머리를 괜히 부비작 거렸다. 왜그러는데? 동글동글, 검은 눈동자가 나를 관통한다. 반짝반짝, 너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제나 밝고, 명랑하고 따뜻한 느낌. 타고난 아우라 자체가 따스한 사람. 잠깐 눈을 붙였다가 다시 떴다.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구나, 너는.
"너 혓바닥이 새빨개서."
"뭐야, 그거. 칭찬이야?"
역시 괴상해,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너는 웃어버린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목뒷덜미를 쓸며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사락, 책을 넘기는 소리만이 이 공간을 메운다. 책장을 넘기는 마른 손가락. 손가락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같은 색깔의 손목이 눈에 들어오고, 그 이후로 민트색깔 맨투맨을 입고 있는 너의 몸이 보이다가, 하얀 목이 나온다. 마지막은, 목을 타고 올라가다가 마른 입술에서 시선이 멈춘다. 껍질이 약간 까진듯한 까끌까끌한 느낌의, 마른 입술. 그런 입술을 작게 들썩이다가 마른침을 삼키며 너는 혓바닥을 내어 마른입술에 축축히 입을 적신다. 입술은 잠깐동안만 축축해질뿐 더 메말라버린다.
나에겐 너를 보는 일이 그러했다. 언제나 다 채워지는 날이 없었으니까, 잠깐의 수분으로는 감정의 메마름을 다 채워나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너는 동그랗고 검은 눈동자를 굴려 다시 나를 보았다. 왜 그러는데. 오늘 이상해. 알어? 작게 물어오는 그 말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눈을 감았다. 체념하는 것이 낫다.
"종인아, 김종인?"
내 이름을 부르며 너는 내 손가락을 잡았다. 왜그러냐? 어디 아파? 너의 다정한 물음이 웅웅 울리며 귓가를 진동시켰다. 머리가 어지러워, 약간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들자 너의 걱정하는 표정이 한가득 눈에 들어온다.
"도경수."
어쩌자고 나는 너의 이름을 불러버린 것일까. 왜 그래? 표정으로 말하며 그는 나를 바라본다. 그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너 몇살이더라."
"뭐야, 그거. 너 진짜 어디 아프냐? 너랑 나랑 동갑이잖아. 스물둘. 갑자기 왜 그래 진짜?"
"...너랑 나랑 어떻게 만났더라."
"....대학교 같은 과. 궁금하면 새터얘기도 해줄까?"
".......아. 그렇지."
담배좀, 그에게 그렇게 얘기해주고서 건물을 빠져나왔다. 익숙하게 라이터를 꺼내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잘근잘근 필터를 몇번이고 씹어본다. 답답한 마음은 이것 하나면 그나마 해소되곤 했다. 담배연기가 공중에 흩뿌려진다. 빨간 불은 담배 끝에서 몇번 깜빡거리며 타들어가다가 점멸했다.
툭,
갑자기 앞머리카락을 비집고 손이 들어왔다. 내 이마에 손을 대고서 열을 재던 너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열 없는 것 같은데. 너 이상해. 갑자기 진짜 왜그러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잔인하다. 개구리의 입에 돌을 집어넣으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어린아이처럼 가학적이고 잔인하다. 나는 주춤, 뒷걸음질치며 너의 손을 이마에서 떼어냈다. 너는 내 행동에 잔뜩 눈썹을 찡그려트리며 나를 본다. 못마땅한 얼굴이 한가득, 그렇다. 그랬다. 너는 감정을 숨길 줄 몰라서 언제나 얼굴에 다 드러내곤 했다. 어쩔땐 그런 모습이 귀엽다가도, 어쩔때엔 너무나도 잔인해서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나의 세계엔 비가 내린다. 언제나 그치질 않고 주룩주룩 내려서 나를 부식하게 만든다. 비를 맞고 있는 데도 메마르다.
언제나 나는 메마른 느낌에 감싸져있었다.
"도경수. "
"왜?"
내 말에 네가 대답했다.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간다. 너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가 계속 신경에 거슬렸다.
"딱히 무언갈 바라고 말하는 건 아닌데, 대답을 들으면 쉽게 정리 될 껏 같아서..."
말끝을 흐리는 나를 보며 너는 약간 눈썹을 찡그려트린다. 우리 둘 사이를 메꾸고 있는 균열을 그도 느낀 모양인거겠지. 나는 아무 말 없이 미소지으며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으로 던져 발로 아무렇게나 지졌다. 담배가 터져서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널 좋아해."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랗게 커지며 , 잔잔히 검은 눈동자가 떨렸다. 저기, 근데, 종인아 , 라고 말하려는 그의 말을 제지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놀랬냐? .....근데, 내가 더 떨려."
내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너는 알고 있을까, 당황한 기색을 가득 머금은 채로 나를 바라보는 네 얼굴을 보자니, 뭔가 웃겨서 작게 웃어버렸다.
"그러니까 아무런 대답이라도 해줘."
거절당할 것은 알고 있었다. 네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의 존재를 나는 알고있었으니까. 곤란해하는 그 표정에 미안해할 필요 없는데, 라는 말이 입에까지 머금었다가 다시 삼켜야 했다. 그러기엔 나 역시 너무나도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메마름이 채워질 꺼라는 생각과 기대는 하고 있지 않다. 알고있다.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너는, 너무 착해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도 나는 알고있다.
"저기,저, 그러니까, 내일....내일 보자. 내일 대답해줄께. 미안."
도망가듯이 황급히, 그렇게 퍼붓듯 얘기해놓으며 너는 뒤돌아 뛰어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잠깐 눈을 붙였다가 떴다. 너는 이제 내 시야에서 없다. 네 시선 속에서 언제나 머무르고 싶었던 나의 소망도, 비가 끊임 없이 내려 부식되어가지만 여전히 메마름을 느끼는 내 감정도, 이젠 모든게 다 끝이겠지.
고백하는 기간이 조금 시원찮았지만 곧 기말고사이고 방학이기 때문에 상관없을 것 같았다. 방학을 거치고 나면 조금은 완화될 꺼야, 속 편히 생각하고서 머리를 작게 헝클었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서 불을 붙였다. 빨간 불이 담배를 태워간다. 빨간 불을 보고 있자니 유난히도 빨갛던 너의 혓바닥이 생각났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손가락으로 건들여보았었던, 그 혓바닥.
예전에 언젠가, 술에 취해서 자고 있는 너를 내 자취집에서 재우며 네가 깨어나기 직전까지 너를 바라봤었던 적이 있다. 기분좋은 숨소리를 들으며 손가락으로 얼굴을 찌르는 장난을 치면, 너는 술김에 잠꼬대하며 파리가 얼굴에 앉은 듯이 손사래를 쳐댔다. 그런 네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문득 약간 벌려져있는 입 안의 혓바닥이 눈에 띄었다. 그냥,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으로 건들였을뿐이었는데, 말캉거리고 축축한 혀가 내 손가락을 햝았을때 하얀페이트를 실수로 부은 것 마냥 머리 속이 하얗게 변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그런 너를 향해, 그런 너를 보고서, 나는 눈을 감았다.
작게 입을 맞췄다. 술냄새가 진동 했지만, 그런 것 따위 그때의 나에겐 아무런 제재도 되지 못했다. 혀로 작게 입술을 햝으며 몇번이고 작게 깨물었다. 치열을 쓸고, 혀를 얽매였다. 내가 그토록 지켜왔던 친구의 선을 그때 넘어가버렸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말자, 라는 나의 신조가 와르르 무너졌다. 이때까지의 나를, 내가 쌓아왔던 나를 무너뜨린 너는 평안한 모습으로 자고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정말 편안하게.
내가 너를 만난건 고작 2년 남짓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너는 내 인생을 뒤흔들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매번 비가 내리는 나의 세계에, 햇빛처럼 빛나는 너는 나를 갈구하게 만들었다. 갈구할 수록 메말라졌다. 부식되어 간다. 너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채, 환하게 웃으며 다른 여자의 손을 잡는다. 네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는 눈부시게 빛이 났다. 항상.
어느 덧 담배가 필터까지 타들어갔다. 작은 한숨과 함께 담배를 떨어트려 발로 지졌다. 담뱃재가 아스팔트에 아무렇게나 갈려 번져진다. 멍하니 네가 사라진 길을 보다가, 잠깐 눈을 붙였다가 떴다.
허억허억,
가쁘게 숨을 쉬며 너는 갑자기 모습을 나타냈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는 나를 보며 내 이름을 부르고서 이 쪽으로 달려온다.
"...헉..허억...다시 생각해봤는데, 지금 대답할께. 대답해 줄께."
가쁜 숨을 몰아쉬며 너는 내 팔뚝을 잡았다. 그에게서 작은 위화감이 든다. 무언가 허전한 느낌. 목주변이 텅빈 느낌이 들었다.
겨우겨우 숨을 고르고서, 너는 굳게 다물었던 마른 입술을 떼었다. 입 안에 갇혀있던 붉은 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아마도, 이 후에 있어서도 혓바닥이 빨간 사람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고.
첫글이라 콩닥콩닥 하다능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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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 3까지 나온 마당에 이나은은 진짜 불쌍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