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umineers / Flapper girl
비지엠이랑 같이 들으면 더 좋아용
민윤기가 설레는 이유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내 타임라인을 지배하던 남자친구와의 연애 중 게시물도, 남자친구의 게시물들도 다 쥐도새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오래 가!" "축하해." 등등의 축하 댓글들과 좋아요가 완전히 다 없어져 버렸다. 매번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남자친구의 흔적도 사라졌다. 알림 창은 조용했다. 남자친구 노리던 애 있던데, 둘이 꽁냥대겠네. 그 꼴이 보기 싫어 앱을 삭제할 심산이었다. 정말 기록들은 굳이 지우려고는 하지 않았는데 남자친구가 그새 다 지워버린 모양이었다. 괜시리 속상했다. 헤어지자마자 잽싸게 연애 중 지울 정도로 내가 그렇게 못났나. 눈물로 침대를 잔뜩 적셨다. 그런 덕분에 날밤을 새웠다. 지금은 새벽 네시 사십삼분이다. 다섯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인데도 잠은 오질 않았다. 결국 앱을 지우지 못한 나는 간간이 핸드폰으로 페이스북을 열어 탐라를 훑었다. 하지만 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더럽게 조용하네, 훌쩍.
지잉-.
핸드폰을 던져두고 침대 위에서 쪼그려 앉아 훌쩍거리고 있는데 웬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문자였다. 잠깐 나올 수 있어? 민윤기였다. 멍청히 두 눈을 끔뻑였다. 훌쩍.
"미쳤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 야밤, 아니 이 이른 새벽에 만나자니. 창밖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직은 어두웠다. 나가지 말아야지. 새벽 감성 때문에 나가서 하늘을 봤다간 겨우 멈춘 눈물이 또다시 쏟아져 떨어질 것만 같았다. 민윤기의 문자에 답장도 않고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짱박아두던 내 손 부근께로 또다시 진동이 울렸다. 남자친구랑 깨진 거 다 알아. 잠깐만 보자. 순간 울컥했다. 우발적으로 머리를 고쳐묶고 민윤기가 만나자고 했던 집 앞 공원으로 나갔다. 아직은 어둑한 게 내 기분은 우울했다. 안 그래도 남친이랑 깨졌는데 정곡만 콕 찔러 날 괴롭히는 민윤기 때문에 더 그랬다. 오늘은 푹 쉬고 싶었는데 관둬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땅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민윤기가 나왔다.
"......"
나를 보더니 잠시 멈칫한 민윤기가 곧 내 손목을 붙잡고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반항할 힘은 없었기에 그냥 순순히 따랐다. 민윤기가 나를 벤치에 앉히고 내 옆에 앉았다. 옆모습을 힐끔 쳐다보니 약간 씩씩거리는 게 화가 난 듯 보였다. 내 착각인가. 혹시 내가 남자친구랑 깨졌다고 해서 화난 건가? 아님, 방금 좀 뛰어서 헉헉대는 건가? 근데 고작 그거 뛰었다고?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꽤나 긴 침묵이 이어져 할 말 없으면 가보겠다는 뻔하디 뻔한 말로 먼저 입을 열려고 했을 때쯤 민윤기가 선수를 쳤다.
"걔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
"......"
으음. 그러니까.. 대답을 늘였다. 입을 삐쭉 내밀고 공원 풍경을 감상했다. 이 곳에 남자친구와 왔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공원 모습은 참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다 별 거 아니었다. 어둡고 칙칙한 게 꼴보기나 싫었다. 멍하게 앞을 보고만 앉아 있자 민윤기의 재촉이 이어졌다. 빨리.
"응."
"......"
"내가 알았다고 했어."
이번엔 먼저 침묵이었다. 언제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고요한 분위기에 조용히 고개를 숙여 내 신발에 시선을 처박았다. 먼저 물어봐놓고도 무안한가 보지. 하긴, 그럴만 했다. 민윤기한테 그렇게 남자친구 얘기에 자랑을 해댔었으니까. 아마 헤어졌다니 놀랐을 것이다. 그냥, 이젠 나도 지치고 걔도 지쳤다. 불쑥 남자친구와의 추억이 떠올랐지만 다시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기에 난 너무 지쳐버렸으니까. 시야에 들어오는 신발이 오늘따라 서글퍼 보였다. 그러고보니 커플 신발이었다. 오른발로 왼쪽 신발을 괜히 짓밟았다. 이것도, 버려야지. 돈이 아까웠다.
"왜 알았다고 했어?"
"지쳐서."
"지쳐서?"
"힘들어서."
민윤기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아무 요동 없이 대답했다. 내 오른발은 여전히 왼쪽 신발을 더럽히고 있었다. 꾸깃 꾸깃. 정신사나운 내 발놀림을 눈치 챘는지 민윤기의 고개가 밑쪽으로 살짝 돌아갔다. 나는 발놀림을 살짝 멈췄다. 그리고는 다섯 살 배기 어린애마냥 바른 자세를 취했다. 민윤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참.."
"......"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민윤기를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민윤기가 손을 들어 뾰루퉁하게 튀어나와 있는 내 입술을 가볍게 꼬집었다. 아. 볼멘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민윤기가 손을 거두곤 말했다.
"늦었는데 가자. 데려다줄게."
늦긴 뭘 늦어.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새벽 다섯 시 이십 분쯤이다. 이건 이른 건데. 멀뚱히 앉아 움직일 시늉도 안 내는 나를 보더니 민윤기가 강제로 내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아! 또다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게? 불러놓고 웬 행패야!"
"안 나왔음 됐잖아."
"......"
뻔뻔한 입모양새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닥치고 그냥 집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요 앞이니까 그냥 나 혼자 갈게. 그러자 민윤기가 미쳤냐며 날 앞장서 간다. 여자애가 위험하게.
민윤기를 뒤따라가는 길은 정말 조용하고 지루했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쯤 민윤기가 뒤를 돌아봤다. 거리는 채 오분도 안 되는 거린데 도착하는 데에 십분은 걸린 줄 알았다. 뾰루퉁한 얼굴로 민윤기를 응시했다. 그러자 나를 보곤 말한다.
"다음부턴 내가 불러도 밤중이면 나오지마. 아무리 나라도 그렇지 여자애가 겁대가리도 없이."
"......"
"나 너무 믿지마."
"......"
"아무리 몇년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도 덜컥 나와버리면 어떡해."
"......"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민윤기는 참 맞는 말만 골라 했다. 그래서 가만히 민윤기의 말을 귀에 새겨 듣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순식간에, 멍 때리던 내 앞으로 민윤기가 다가오더니 그 큰 손으로 얼굴을 불만 가득한 볼을 우왁스럽게 쥐어잡는다. 아. 민윤기를 노려보니 금방 웃음을 지으며 내 얼굴을 놔준다. 민윤기 주제에 웃을 때 패이는 입동굴은 아주 명품이다. 넌 살 언제 뺄래. 안 그래도 짜증났는데 내 볼살을 늘려 놀며 말하는 윤기에 더 짜증이 났다. 손을 쳐내려는데 민윤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울지 말고."
심장이 덜컹했다. 멀뚱히 서서 두 눈을 끔뻑였다. 얘가 뭐래니. 한참을 멍청히 서있자 민윤기가 나를 지나쳐 가버린다.
"빨리 들어가라. 누가 잡아가기 전에."
그 말에 이끌리듯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도 민윤기가 벌써 가버렸나를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다시 나갔다. 어느새 민윤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오늘따라 츤츤거리는 게, 민윤기 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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