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들이 좋아하는 것은 울타리가 없는 양이다. 빠르고 손쉽게 잡아먹을 수 있으니까.
더러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면, 겁에 질린 양은 이내 도망치다가 결국 늑대에게 물려 피를 흘리며 파르르 떤다.
하얀 양은 죽지도 않았는데 마치 죽은 듯이,
아무런 미동도 없이 피를 흘리며
새까만 두눈은 죽음만을 기다린채 깜빡거린다.
나는 그냥, 네가 미웠다.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했던 네가 짜증났다.
나와 같은 구정물에 살면서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만 같았던 네가 미워서,
5학년때에 준비물로 챙겨가야 했었던 네 색연필을 모조리 부숴트렸고
중학교땐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며 공부만 하던 너를 못살게 굴기도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너는 그런 나에게 화 한번 내지 않으며
원장에게 혼날때마다 나를 감싸주었고
학교에 불려가 혼이 날때도 나를 변호해주었으며
내가 원장에게 맞은날은 남몰래 마데카솔 같은 것도 챙겨주었다.
너는 너무 잘났으니까,
그런 네가 그냥 미웠다.
삐그덕,
낡은 매트리스가 내는 잡음이 조용하던 공간을 일깨운다.
습기가 가득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이 방에 풀썩거리며 먼지가 휘날렸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너는 꿈 속에서 조차 끙끙 앓으며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고,
그런 너의 잠버릇이 시끄러운 듯 다른 녀석들이 깨어나 도경수 쟤 왜저러냐, 라는 말만 내뱉을 뿐이다.
최근 너의 몸에 생채기가 늘었다.
우리와 같이 샤워하려는 것도 꺼려했다.
새까만 검정색 눈동자는 그저 먼 곳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미동이 없었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했던 공부도 하지 않은채 이불을 몸에 꽁꽁 감싸며 자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너를 보고 침묵했다.
요새 왜 그러냐는 그 간단한 말 한마디조차 목 안에서 끄집어 내지 못했다.
네가 미웠으니까,
너무나도 잘난 네가 미웠으니까.
"더럽게도 많이 시켜먹네."
주문받은 치킨들을 쑤셔넣듯 넣으며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구식 오토바이는 털털 거리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메깨한 매연만을 뿜어내다가, 이내 몸통이 덜덜덜 떨려왔다.
참 뭣같은 승차감에 나는 퉤, 하며 죄없는 바닥에다 침을 뱉고서는 이내 행성 고등학교로 방향을 틀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사실, 공부를 지지리도 못해서 실업계에 다니긴 했었지만
실업계 다닐꺼면 너네가 직접 돈 벌어서 다니라는 원장의 말과 함께 거의 반강제로 학교에 자퇴서를 내야만 했다.
그래서 이 고아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인문계에 재학중인 녀석들 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가 도경수였다.
"아, 진짜. 아빠 짜증나 죽겠어."
치킨을 건네주다가 문득 한명이 폰을 집어던지며 짜증을 부렸다.
내가 힐끗 쳐다보자 조금 당황했는지, 이내 폰을 다시 주으며 계산하고 있는 친구에게 계산 끝났어? 라며 말을 돌리려는 듯 조신하게 물어온다.
손 끝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눈만 돌려 힐끗 나를 바라보는 그 학생를 보며 작게 웃어보였다.
사람은 구덩이에 빠져보지 못하면 그 구덩이가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 알지 못한다.
자신을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얼마나 크고 탄탄한지, 그 감사함을 모른채 갑갑하다며 투덜대기 일쑤다.
나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가족이 없었다.
엄마,아빠의 얼굴은 모르는게 당연했고, 이름도 어디에 살았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얼추 알고있는 것은 아빠는 엄마의 임신사실을 듣자마자 버리듯이 도망가버렸고, 미혼모였던 엄마가 나를 낳자마자 자살했다는 것.
병원 측에서는 아빠는 찾으려는 생각도 안했고, 그대로 나는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도경수는 그런 나와 조금 달랐다. 내가 처음 너를 본 5학년때에, 너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 곳에 나타났다.
네 아버지는 자상하게 네 머리를 쓸며 자주 찾아오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너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한번도 이 곳에 찾아온 적이 없었다.
너의 운동회에도 온 적이 없었고, 네가 교육청 주관 글짓기 상을 받을 때도 없었고, 네가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갈때도 없었다.
도경수도 아마 알고 있겠지.
나와 같은 버림받은 신세라는걸.
"...미치겠네."
탈탈 거리는 소음을 만들어내던 이 고물 오토바이가 드디어 일을 벌렸다. 킥스타터를 밟아 겨우겨우 시동을 걸었지만 기어를 1단에 넣고 스로틀을 당기자마자 얼마 안가서 시동이 꺼져버렸다. 기어를 바꿔서 스로틀을 당겨도 마찬가지. 굴러가는 게 신기했던 오토바이니까 뭐, 놀랄일도 아니지만 짜증나는 건 어쩔수 없어서 한껏 달궈진 엔진통을 걷어찼다. 고물은 쓰러져도 고물 소리를 내는건가,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는 쓰러진다.
일단 사장님께 전화해서 여차저차 상황을 설명 드리니 그 오토바이를 끌고 걸어오라는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씨발, 욕할 수도 없고 일단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핸드폰에 잠금을 걸어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휑하니 쓰러져 있는 오토바이를 그냥 나두고서 일단 화장실이나 가기로 했다. 학교 화장실에 외부인이 들어갈 순 없으니까, 학교에서 좀 떨어진 휑한 공터에 있는 공중화장실로.
"으...으...ㅅ..."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낮게 깔린 신음이 들려왔다. 아마도 맨 마지막 장애인 전용칸에서 들리는 소리인듯 했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입을 틀어막은 듯 소리가 줄어들어서 무슨 호기심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손을 씻는척 물을 틀었다 껐고, 혼자 발을 굴려 나가는 듯한 발자국 소리를 냈다. 발자국 소리가 그치고 몇 분 안지나서, 나갔지? 씨발, 여기 왠일로 사람이 오냐라는 말소리와 함께 다시끔 그 신음소리가 울려왔다.
"으..아..아...ㅅ..아..아파.......아파.."
"아프긴, 씨발, 아프다는 새끼가, 존나 허리나 치들고. 어?"
아마도 강간인것 같은데, 일단 나는 세 명의 목소리가 다 남자라는 점에 조금 경악하며 112에 신고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굳어버렸다. 이 공간을 헐떡 거리는 숨소리와, 살이 맞닿으며 내는 소리, 아프다고 약간 쉰 목으로 소리치는 소년의 목소리가 메워온다. 순간 그 목소리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야, 문열어."
문을 아무렇게나 걷어찼다. 확인하고 싶었다.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문열라니까, 씨발!!!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일까, 머리 속에서 맴도는 그 얼굴일까 싶어서. 문을 몇번이고 세차게 걷어차자 급하게 옷을 입은 모양인지 땀을 뻘뻘 흘리며 누군가가 빼꼼히 문을 열고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 얼굴을 보던 그는, 내가 저와 똑같이 어려보이자 뭐냐 씨발? 하며 위협하듯 말을 건네어 온다. 그런 새끼를 밀치며 문을 똑바로 다 열었다. 나는, 나는 그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너무나도 잘난 네가,
얼굴에 새로운 생채기를 달고서, 반쯤 풀린 눈으로, 억지로 입혀진 듯 와이셔츠 단추가 처음부터 하나 엇나가있는,
엉망이 된 모습으로 설마했던 네가 화장실 벽에 기대어 비틀거리며 서 있다.
반짝반짝 빛이 났던 네가,
"너 뭐냐니까, 씨발."
그런 네가 나는 너무나도 미웠다.
말 안들리냐? 문을 열었던 새끼가 내 멱살을 움켜쥐며 잡아흔든다. 정신이, 시야가 어지러워서 인상을 찡그렸다. 다른 한 녀석은 이 상황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도경수를 바라보며 낄낄 댄다. 도경수는 그저 멍한눈으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후들거리는 다리가 그의 상태를 보여주는 듯 했다.
늑대들이 좋아하는 것은 울타리가 없는 양이다. 빠르고 손쉽게 잡아먹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늑대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한가지 있다.
울타리가 없는 양은, 갖혀있지 않다.
빠각, 몇번이고 내리쳤다. 변기레버 위, 도자기로 만들어진 뚜껑이 이내 깨져서 조각났다. 나는 그 조각들마져 움켜쥐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내리쳤다. 아프다는 말 소리조차 이젠 들려오지 않는다. 이미 다른 한명은 기겁하며 이 곳에서 도망쳐버렸다.
팍, 한껏 망가진 얼굴에서 피가 아무렇게나 튀어 내 뺨에 묻는다. 이내 뚜껑이 산산조각 나며 부숴져 버렸다.
"..조..종인...아.."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찢어진 입술로 겨우겨우 말을 내뱉는 너를 보고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몰래 입 밖으로 웃음을 흘려버렸다. 엉망이 된 모습을 하고 있는 건 너면서, 이 와중에 내 걱정이나 하고 있는, 정말 멍청하게도 착해빠진 너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나는 주저앉아 있는 너를 조심스레 일으켰다. 내 어깨를 잡으며 작게 몸을떠는 너는 이내 울음을 터트린다. 종인아, 어떡해. 어떡해, 종인아. 너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5학년때 이후로 네가 우는 모습은 처음이라서, 나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괜찮아. 그러니까 울지마. 괜찮다니까."
어차피 나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아무도 나를 입양해가지 않은 그 순간부터, 악취나는 구덩이에서 뒹굴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너는 아니니까. 너는 항상 반짝 반짝 빛이 났으니까. 이 악취나는 구덩이 속에서도 빛이 바래지지 않았으니까.
너는 괜찮을꺼야.
나 때문에, 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울어버리는 네가 시끄러워서 작게 타박을 주었지만, 넌 끝끝내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달래는 것을 포기하고서 나는 너를 등에 업었다.
바깥에선 사이렌 소리와 함께 아까 도망쳤던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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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쓰고 나니까 뭔가....그..변기 레버위 뚜껑..으로 사람때린게 왜케 웃기지.
이 글에서 밉다를 좋다로 보시면 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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