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이요? 얘기해보면 애는 착한거 같은데... 같이 다니는 애들이 완전 쓰레기라 별로...'
'중학교때 까진 착했는데, 지금은 뭐. 친구 잘 못 만났죠.'
종인에 대해 물으면 하나같이 나오는 대답이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만났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런것은 없지 않아 있었다. 잘난사람 노이로제에 걸린 종인은 부모님의 압박때문에 점점 엇나가기 시작했다. 종인보다 열살이나 많은 종인의 형, 종대는 학창시절 내내 전교 1~2등 자리를 놓치지 않더니 결국 정신과 레지던트가 되었고, 종인의 두살적은 동생 다해역시 과학고를 준비할 정도로 상위권을 유지해왔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은 종인밖에 없어서 계속 되는 비교와 차별에 결국 종인은 잘난사람 노이로제에 걸려버렸던 것이다.
겨우겨우 들어온 인문계에다가, 흥미도 없는 공부를 계속 강요하는 부모님 때문에 결국 종인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질 않좋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가끔씩은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삥을 뜯거나 애를 폭행할 정도로 엇나가진 않았지만 그런 일을 밥 먹듯 하는 종인의 친구들로 인해 종인의 이미지 역시 그렇게 굳혀졌다.
잘난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는 종인의 눈에 띈 것은 전학 온 지 이주밖에 지나지 않은, 자신의 왼쪽 사선자리에 전학생이었다. 그는 선생님이 하는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었으며, 누가봐도 모범생으로 보이는 이미지였다. 다른 애들의 말마따나, 어깨와 키가 약간 흠인것만 제외하면 얼굴도 스펙도 완벽한 사람이었다.
"야, 도경수. 너 우유 안먹냐?"
전학생의 이름은 도경수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독특한 점이 하나 있다면,
"우유 싫어해."
이상하리만치 우유를 병적으로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냄새만 맡아도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으며, 쳐다보려조차 하지 않았고 누군가 옆에서 우유를 먹고 있노라면 슬며시 자리를 피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런 경수의 행동은 종인의 꾸준한 관찰 덕에 발견되었다.
사실 종인은 경수에게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너무나도 잘났으니까, 짜증나네-라고 생각하는 정도일 뿐. 그런 종인만큼이나 경수역시 종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주변애들이 흘리고 다니는 정보들로 인해서 오히려 경수의 머리 속엔 문제아라는 인식만 강하게 자리잡았을 뿐이다.
경수가 보는 종인의 모습은 말이 적었으며, 눈빛으로 가오 잡으려고 허세를 부려대는 거 같았고, 가끔씩 자신을 무심한 눈으로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이 기분나빴다. 종인에게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던 경수가 종인에게 말을 건넨건, 교실에서 샤이니 뮤비를 보고 있을 때였다.
여자애들 몇몇의 주도하에 이번에 컴백했다는 핫한 그룹 샤이니의 뮤비를 공용 티비에 틀어서 몇번이나 돌려보고 있다. 경수는 점심시간 내내 돌려보는 저 끈기와 덕심에 감탄하며 기지개를 켰다. 하품하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종인과 눈이 마주친다.
"어? 너 샤이니 태민 닮았다."
무의식적으로 건넨 경수의 말에 종인의 눈썹이 노골적으로 찡그려졌다. 종인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치란 눈치는 점심과 함께 다 말아먹어버린 도경수는 반이 떠나갈듯이 크게 샤이니 태민 몰라? 저기 화면에 나오는 애! 라며 소리쳐댔고, 주변 아이들이 그 눈치없음에 조바심을 내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도경수를 바라보았다.
허나 뭐라 한마디 말할줄 알았던 종인은 의외로 말이 없었다. 그냥 눈썹만 찡그렸을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내심 좋아하는가보다 라고 잘못 판단한 도경수는 이내 무리수를 던져버린다.
"야, 박력탬!"
그리고 이 말은 도경수가 김종인을 부를때마다 매번 쓰곤 했다.
"너는 될수있으면 말하지 마라. 듣는 사람 짜증나니까."
계속되는 친한척에 짜증이 난 종인이 진심을 담아 하는 말이었지만 너 존나 웃기닿ㅎㅎ 라며 눈치가 가출해버린채 돌아올 생각을 하질 않는 도경수를 보고서 종인은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런줄도 모르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 도경수는 계속 김종인에게 말을 붙이며 장난을 쳐대고 있다. 눈치가 없어도 어떻게 저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며 걱정했지만 의외로 김종인은 도경수의 행동을 다 받아주고 있었다.
"박력탬, 매점 갈래?"
"박력탬이라고 한번만 더 부르면 입 찢어버린다."
"...그럼 요정이라 부를까? 일본팬들은 천사라고 부른다던데 천사는 어때?"
너 한테 말한 내가 또라이지. 한숨쉬는 종인의 모습을 보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 경수가 웃어보였다. 경수는 마치 츤데레같은 종인의 모습이 첫인상과 달라 신기하고 웃길뿐이였다.
"왜, 추석시즌에 아마 연예인 닮은꼴 대회 할꺼 같은데 샤이니 태민 닮은 꼴로 나가봐. 내 생각에 너 1등할듯? 혹시 아냐? 스엠에서 너 발탁할지?"
"아 시발. 쫑알쫑알 겁나 말 많네. 빵 먹으려면 빵만 먹으라고. 존나 다 튀잖아. 더럽게."
결국엔 매점까지 같이 와서 샤니빵을 먹고 있는 둘이다. 싫어하는 티를 내면서 은근히 챙기거나 받아주는 종인의 행동이 자꾸만 경수를 자극시켰다. 대체 이 남자의 츤데레 함은 어디까지인가. 너 존나 츤데레인듯, 경수가 그렇게 말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경수에게는 할말 못할말을 구분할만한 눈치는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더럽게 진짜, 험악한 얼굴로 쏘아붙이듯 얘기하지만 도경수가 인정한 츤데레 김종인은 경수의 가슴팍위로 떨어진 빵의 잔해물들을 치워주고 있다. 하늘이 내려주신 츤데레라니까, 종인을 제외한 모두가 종인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그 이후로 종인과 경수는 더 친해졌다. 기말고사때 제출해야 하는 2인1조 수행평가도 같이 할 정도로 친해져서 모두가 신기해 할 정도였다. 김종인은 자신보다 키가 작은 도경수의 어깨를 팔 받침대로 쓰듯이 어깨동무하고 다녔으며 이내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이렇고 저런 사이라는 이상한 소문마져 돌았다.
도경수와 친해지면서 김종인이 느낀것은, 도경수가 마냥 성격이 좋은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자주 흠칫 놀랐고, 은근히 예민했으며, 여전히 우유를 병적으로 싫어했고, 살이 째어지거나 피가 나오는 고어물 영화를 아예 보지 못했다. 어느날, 점심을 먹고 돌아온 종인은 아이들이 티비에 틀어놓은 배틀로얄 영화를 보고서 창백하게 굳은 도경수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제껏 자신이 알아왔던 도경수는 에이, 저거 다 연출이여라고 아저씨처럼 말할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종인의 눈앞에 있던 도경수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이어폰을 꼽고 문제지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른침을 삼키고 불안에 떠는 모습을 내비친다. 마치 도축장에 끌려가기 직전의 소를 보는 것만 같았다. 종인은 매점가자는 핑계로 경수를 반에서 빼내었다. 그냥, 그런 도경수가 안쓰러웠을 뿐이였다.
"야, 컴퓨터 좀 쓸게."
그러던 어느날 저녁, 종인은 자신의 노트북이 맛이 가버려서 여동생 다해의 컴퓨터를 쓰려고 다해의 컴퓨터를 켰다. 놀란 다해가 세수를 하다말고 화장실에서 뛰어왔지만 이미 종인은 컴퓨터를 키고, 바탕화면에 깔려있는 [찬백 수위물]이라고 적혀있는 텍스트를 보며 클릭한 뒤였다.
그리고 종인은 이 텍스트를 킨것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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