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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 전체글ll조회 458l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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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엄마는 날씨가 이런데 무슨 이사를 한다고..."









엄청 엄청 엄청 더운 여름 날이었다. 습하고, 찐득거리고, 불쾌지수가 하늘을 치솟는 그런 날. 그리고 우리집은 그런 날에 이사를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내 생각에 오늘은 가장 이사하기 적절하지 못한 날임에 틀림없다.







엄마와 아빠는 며칠 전 드디어 이혼을 하셨다. 지긋지긋한 싸움의 끝이었다. 엄마도 나도 아빠와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가족의 끈을 놓고싶지 않다고 원한 사람은 아빠 하나 뿐이었다.







엄마는 하루라도 빨리 그 집에서 나오고 싶어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아빠를 정말로 미워하는 것 같았다.
단지 '그냥' 싫은 게 아니라 이유 있는 '원망' 같아 보였다는 말이다.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그정도 눈치 쯤은 가지고 있다. 나야 항상 아빠를 좋아했던 적은 없었으니 혹시 엄마가 아빠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다.







나는 어려서부터 엄마를 유독 좋아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딱히 아빠가 나를 미워하거나 손찌검을 한다거나 그런 일도 없었고, 엄마가 나에 대한 사랑이 다른 엄마들보다 유별나지도 않았다. 그냥 엄마가 좋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엄마가 원하는 일은 대부분 꼭 해내곤 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최고 기온이 35도를 웃도는 오늘 같은 짜증나는 날씨는 이사하기에 적합한 날이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엄마를 말릴 수 없었다. 엄마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짐을 옮기고 있으면서, 정작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아빠랑 같이 살았던 게 어지간히도 싫었던 모양이다.







엄마야 그렇다쳐도 나는 이삿짐을 옮기다 더위를 먹어 쓰러질지도 모른다. 지금 이렇게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하는데, 여기서 그 무거운 짐들을 지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건 질색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회피책을 알고 있다.






바로, 도망치는 것이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도망칠 때의 법칙이다. 원래 도망은 눈앞의 상황만을 모면할 때 쓰는 방법이다. 문제가 될만한 일은 도망을 치면서 찾으면 된다. 물론, 문제가 될만한 일이 없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도망을 칠 때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씨, 여기 우리 동네 아니잖아!!"







아니, 이제 우리 동네는 맞지만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길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 진짜 쓰러질 지도 모른다니까? 돌아가는 길은 오면서 봐뒀으니 상관 없다. 혼자 만화방이라도 가려 했는데, 만화방은 도저히 어디 있는지 찾질 못하겠다.







주변에 아무 가게나 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이 동네는 무슨 길가에 편의점 하나가 없어... 하던 찰나 내 눈에 띈 것은 허름한 가구점 간판이었다.







"일곱 번째 가구점....?"







가구점인가? 가구를 살 것도 아니면서 나는 가구점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누군가가 내 귀에 대고 당장 문을 열고 가구점으로 들어가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이상해.



뭔가 이상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느낌이 나를 끌어 당겼다.







누군가 나를, 그 곳으로 부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일곱 번째 가구점에
(부제; 일곱 번째 손님)





































딸랑-


조용한 가게에 울리는 종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가게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손님도 하나 없고, 주인도.... 없는 것 같았다. 가게 문은 열려 있으면서, 주인은 어딜 간거지?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가게였다.
역시 나가야겠다. 너무 꺼림칙해. 발길을 돌려 다시 문을 열려던 참이었다.









"거기, 누구야?"

"엄마야악!!!!"

"..넌 뭐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아



갑자기 들려오는 묵직한 목소리에 놀라 가구를 붙잡고 넘어질 뻔 했다. 무슨 이 가게는 물건 정리도 안 해놔, 지키는 사람도 없어. 장사 할 마음이 있기는 한건가? 그리고 가장 어이 없는 건 주인 같아 보이는 저 남자의 태도였다.





아니 난 손님인데!! 그 쪽은 나한테 물건 팔아야 하는 입장이고오!!!!





가구점에 손님이 없는 이유도 다 이해가 간다. 아무도 저 더러운 성격을 상대하며 가구를 사고 싶진 않았겠지. 그건 그렇고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아직까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건 딱히 없지만 계속 있다가는 한 대 두들겨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본능은 내게 알려주고 있다. 도망치라고.




하아... 도망친 벌을 도망으로 받는건가.







"야, 저기, 잠깐,"

"아...하하....."




안녕히 계세요!!!!







딸랑-



냅다 튀었다. 살면서 이렇게 빨리 뛰어 본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사람이 위기 상황에 처하면 극한의 힘이 나온다더니,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달리기 최하위권을 쭉 유지해오던 내가 지금은 마치 우사인 볼트가 된 것 같았다.







"...서!!"

응?

"거기 서란 말 안 들려?"







그래 시발, 나같은게 우사인볼트라니. 순간적으로 내 달리기 실력을 너무 믿었다. 극한의 상황이고 뭐고 안 될 놈은 안 되는 거다. 그 예로 내가 있다. 갑자기 팔다리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바로 뒤에까지 따라 붙은 게 틀림 없다. 아 왜 따라오고 지랄이야 지랄은...!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내 바로 뒤에 누군가가 바짝 붙어 있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한 번 쯤 돌아보고 싶은 심리.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나는 그 남자에게 잡혔다. 염병. 가까이서 보니 키가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도망치는 방법이 만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음부턴 도망도 생각하고 치기로 했다.







"허억, 헉..."




ㅎㅎ

망했다ㅎㅎㅎ 딱히 잘못한 건 없지만 사과해야 할 것만 같았다. 딱히 이런 걸 참는 성격은 아니지만 위험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구분할 수 있어야한다.







"저ㄱ,"

"성이름"

"...네?"

"아아, 맞나보네. 이거 받아."






어서 오세요, 일곱 번째 가구점에
일곱 번째 손님만을 위한, 당신의 공간
주인, 박 찬 열




뜬금없이 웬 명함이래...







"오랜만이야, 일곱 번째 손님.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아, 저.... 무슨 소리에요? 저는 오늘 여기 처음,"

"아니."




난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너와의 일곱 번째 만남을.



















***



















"아아아아!!!"



베개에 얼굴을 박고 소리쳤다. 대체 그 남자 뭐야? 자기 할 말만 하고. 자꾸 일곱 번째 어쩌구 저쩌구. 누구랑 착각한건지 몰라도 난 아니란말야. 이 동네도 처음 와보는데, 그런 기분 나쁜 가구점을 여섯번 씩이나 갔을 리가 없잖아.







엄마는 내가 도망갔던 것에 대해 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너무 바빠서 내가 없었던 사실도 몰랐거나, 내가 없어도 충분히 정리할 수 있었거나. 아무튼 집에 도착했을 땐 벌써 마무리 청소까지 말끔히 되어 있는 상태였다. 덕분에 혼자 마음 편히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빼앗듯이 명함을 받아 주머니에 구겨넣은 채 달아났다. 그 남자, 아니 박찬열은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다음주 수요일, 일곱 번째 가구점을 찾아와. 잊지 마. 다음주 수요일이야."







나를 쫓아오진 않았지만 박찬열의 그 마지막 한 마디가 내 심기를 건드렸다. 허, 참. 내가 갈 줄 알고? 내가 지 시다바린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게?? 어이가 없어서 입으로 방귀를 뿡뿡 뀌어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뿡뿡뿡뿡!!!!!




"....아오, 짜증나!! 어짜피 도망칠 거 한 대 치고 튈 걸."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대에 바로 누워 심호흡을 했다. 음, 좋아. 서서히 진정되는 기분. 오래 전부터의 내 버릇이었다. 흥분 상태에서는 항상 누워서 심호흡. 물론 밖에서는 자제했지만.


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명함을 꺼내 펼쳤다.




어서 오세요, 일곱 번째 가구점에
일곱 번째 손님을만을 위한, 당신의 공간


"주인, 박 찬 열."




이름 예쁘네. 봐줄만한 건 이름 밖에 없다고 단정 짓고 싶었지만....


"뭐, 잘생기긴 했어. 성격을 커버칠 만큼은 아닌게 문제고."







잘생기면 뭐해. 인성이 글러 먹었는데. 그런데 그건 둘째 치고 수상한 점이 너무 많다. 분명 박찬열이라는 남자,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게 내 이름이오- 하고 등딱지에 이름표를 붙여 놓은 것도 아니고 박찬열 앞에서 내 이름을 말 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나와의 일곱 번째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은 또.... 아아, 복잡하다 복잡해. 내가 지랑 아는 사이라도 된다는 거야 뭐야? 하지만 나는 박찬열과의 기억이 전혀 없다. 그것도 여섯번 씩이나 만났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더이상은 무리야. 내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한도치를 넘어섰다. 이렇게 된 이상 다음주 수요일에 그 가구점을 다시 한 번 찾아가는 수 밖에 없다. 박찬열은 모두 알고 있다. 어쩌면 다음주 수요일에 내가 자신을 찾아 갈 것이라 확신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건 좀 짜증나는데.







좋아,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고.







손에 쥐고 있던 명함을 다시 곧게 펴 지갑 가장자리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왜 그랬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 역시 글쎄, 라는 답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냥,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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