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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기범] 갈 곳 잃은 자의 독백

        w.오필리어

 

 

 

 

 

내 지척까지 밀려든 파도가 스르르, 다시 흘러나갔다. 새파란 바람은 지독하게 차가웠다. 나는 이 바람에 그를 넘겨주고 파도의 물결 하나하나에 그를 새기고 내 기억 속에 내 심장 속에 그를 묻을 것이다.

 

나는, 그리고 그는. ………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아주 잠시동안, 헤어져 있게 된다.

 

나 때문에 죽음을 맞은 그 때문에, 나는 아직 그에게로 갈 수가 없다.

 

 

 

*

 

 

 

화려한 네온사인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던 작년 겨울─. 벌써 1년 전인 그날에 나는 그를 만났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추위에 떨던 나를 바라보는 눈 따위는 없었다. 간혹 있다고 해도, 그 눈들은 하나같이 ‘더럽다’ 라는 느낌을 가득 담고 있어서,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비참했다. 그날 그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 겨울이 가기 전에 내가 먼저 세상에서 지워졌을 것이다.

 

 

「왜 그러고 있어,너? 춥지 않아?」

 

 

거의 하루를 의미없이 배회하며 여러가지 시선을 받았지만 그런 시선은 정말로 처음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아니─ ‘걱정’이라는 감정이 담긴 그……. 그때의 그는 나에게는 천사였다. 후에 그가 그 상황을 회상하며 「글쎄, 그때 천사 하나가 추위에 떨고 있지 뭐야.」 라고 말했지만 그 반대였다. 나는 그 따스함에, 구원받은 것이다. 그 되도않게 사랑스러운 김기범에게.

 

그는 어둠 속에서 내게 웃어준 유일한 빛이었다.

 

 

「우리 집에 갈래? 나, 혼자 살거든. 너는 재워줄 수 있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와 그런 예쁜 웃음을 지으며 같이 가자고 하는 그는 무척 순진한 사람 같아 보였었다. 만일 내가 나쁜 마음을 먹고 있었더라도 어떻게 될 만큼 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그랬었다 해도. 나는 그때 이미 그의 미소에, 그의 따뜻한 시선에 홀려 있었다. 그래서 그가 「빨리. 너 감기 걸려.」 라며 독촉했을 때는 돌이킬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를 만나지만 않았어도, 아니 그를 따라가지만 않았어도 그가 이렇게 될 일은 아마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랬을 거다. 그러나 그 사실을 지금 내가 안다고 해도, 다시 그 상황으로 되돌아간다면 나는 분명히 그의 손을 잡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만큼 나는 그에게 홀려 있었으니까.

 

 

 

.

.

.

.

 

 

 

한겨울 바다의 차가운 바람에 내 모든 감각이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함께 한 두 번의 겨울은 똑같이 너무나도 춥다. 그건 아마 내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네가 보고 싶어. 차가워진 심장이 너를 부르고 내 눈은 여전히 내 곁에 있을 것 같은 너를 찾아.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내 목은 소리내어 너를 부르지 않는다. ……불러도 소용없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아니까. 그래서 더더욱 네가 그립다.

 

아직 너와의 마지막을 맞고 싶지 않아서, 나는 내 손가락에 닿는, 세상에 존재하는 너의 마지막 흔적을 바람에게 넘겨주기를 망설였다. 이것마저 주고 나면 나에게는 무엇이 남는가.

 

슬픔에 빛바랜 나의 심장은 너를 기억하기에는 너무 추한데……….

 

 

 

 

 

 

 

「우현아. 나 목걸이 사줘.」

「또 헛소리 한다. 내가 돈이 어딨냐.」

「에이, 치사해. 나 이런거 엄청 좋아하는데.」

「다음에 사 줄게.」

「진짜지? 믿는다.」

 

 

그때 네가 가리켰던 별 모양 목걸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사 줄걸 그랬다. 그랬더라면 그것 하나쯤은 지금 내게 남아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왜 그때, 그 순간만을 생각했을까. 너나 나, 둘중에 하나라도 사라지고 말 때─. 서로를 기억해줄 만한 하나의 조각이나마 남겨 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았을까. 나는 너무도 어리석었다.

 

네가 내게 필요한 만큼, 나는 너를 생각했어야 했다.

 

 

 

 

「김기범 어디 가?」

「응. 요 앞 슈퍼에.」

 

 

 

 

투욱, 하며 차가워진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이 뜨거웠다. 나에게 닿던 너는 항상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따뜻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가 함께한 1년이라는 시간은 나까지 따뜻하게 만들기에는 너무 짧았던가보다.

 

보고 싶다, 김기범. 나의 너.

 

춥다며 날 위해서 맛있는 오뎅을 만들어 주겠다던 너를. 그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나한테만은 예쁜 새신부처럼 굴어 주는게 너무 행복해서……. 그때 너를 막지 않았다. 가지 말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우리는 조금 더 오랫동안 함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최소한 그때, 내가 좀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았을 것을. 나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뿐이다. ……사실은, 내가 그를 대신했어야 했고 지금 살아서 이 공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그여야 했다.

 

 

「우현아, 잠깐만 기다려 봐.」

「아 느려. 빨리 와. 나 간다.」

「기다리라니까?! 야!!」

 

 

너를 놀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짐을 들어줄 생각도 안 하고 먼저 차도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는 평소의 나처럼 무단횡단을 하려 했지. 그러면 너는 어느새 길 반대편에 도착한 나를 보고 또 무단횡단 했다며, 사고 나면 어쩔거냐고 소리쳐 댔을 거다. ……그래야 했다. 아니, 아니다. 사고 날지도 모른다고 항상 이야기하던 그 목소리를 믿어야 했다. 내가 안일해져 있어서, 그리고 내가 그의 곁에 있어서.

 

그래서 내 불행한 운명을 그에게로 뒤짚어 씌워버린 거다. 사랑하는…… 너를.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사람, 내 하나뿐인 마지막 빛인…… 김기범을.

 

 

「간다 진짜? 3, 2, 1- 먼저 간……」

「─! 남우현……! 」

 

 

그가 그렇게 다급한 표정으로 뛰는 건 처음 봤었다. 언제나 느긋하게 걸어서, 내가 늘 그 발장단에 맞춰 줘야 했었는데.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그렇게 뛰었어. 네가 그러지만 않았어도……. 내 운명 네가 대신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쓸데없는 데서만 착하디 착한 김기범. 너는 마지막까지도 그렇게 착했다. 그래서 나는…….

다급한 그를 보고, 의아하게 여긴 그 순간에.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더라. 그때 들었던 건, 뛰어오는 너의 발소리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몸이 내 몸에 닿았다고 느낀 순간─.

 

빠앙─

 

귀를 찢는듯한 커다란 경적소리. 그리고 퍼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붕 뜬것같던 느낌. 아아…….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가 확실하게 느꼈던 건, 그 순간에도 나를 끌어안고 있던 너의 손길이었다.

 

 

 

 

.

.

.

.

.

 

 

 

 

우리는 겨울에 만나 겨울에 헤어지는가. 그러나 기억해, 우리 함께 있는 동안은 행복했잖아.

 

 

그의 마지막 잔재를 결국 손에서 놓지 못한채 나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어떡해야 해. 내가 어떻게 너를 놔. 그건 정말로 못해. 이제는 한줌의 가루가 되어버렸다지만, 내게 남아있는 마지막 너인데.

언제나 너는 마음이 함께 있으면 물건 따위는 아무 상관없는 거라고 말했었지만, 아니야, 기범아. 나에게는 너의 미소도 너의 사랑도 남아있지만. ……빌어먹게도 전부 남아있지만, 네가 없어. 네가 없으면 그 무엇도 있어봤자 소용없는 거야. 그걸 네가, 알아야만 했어.

 

미소짓던 그 얼굴이 너무나 그립다. 집으로 돌아가면 네가 웃으며 문을 열고 '이제 와?' 하고 말해줄 것 같은데. 어디로 가 버렸어, 내 사람아. 김기범, 기범아. 날 두고 왜……먼저 가버려.

 

 

어느새 도착한 고속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잡았다. 우리는 언제나 택시보다는 버스였다. 혼자 살던 너인데, 내가 네 삶에 들어오는 바람에 너는 언제나 돈을 아껴야 했으니까. 그런 네가 고마워서, 그리고 미안해서 네가 학교에 있는 동안에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내가 번 돈은 우리들의 식비를 충당하기에 급급했다. 그래도 함께 버스를 타고, 흔들리는 버스 위에서 서로를 지탱해주는 게 무척 즐거웠었는데.

 

지금은 그런 네가 없구나, 내 곁에.

 

 

 

 

 

집에 돌아와서 너의 잔재가 담긴 작은 항아리를 가만히 현관 앞의 네 사진 곁에 두었다. 너의 잔재이기는 하지만 너는 아니다. 그건 나도 잘 알기에. 하지만 너와 함께 두고 싶을 뿐이야.

……그러고 보면, 이곳도 나의 집은 아닌데. 이곳은 너의 집. 그러나 우리의 집……. 보고 싶은 그의 미소를 떠올리며 일주일 전 그가 만들어준 반찬을 꺼내 밥상을 차렸다. 조금이나마 네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기쁘다. 기범아, 네가 만들어주던 밥이 항상 맛있다는 거, 자주 이야기해 줄 걸. 이제와서 후회가 돼.

 

 

 

 

「밥 어때? 맛있어?」

「맛있어. 김기범 얼굴에 안 맞게 겁나 맛있다.」

「칭찬 좀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남우현 바보.」

 

 

그때도 귀여운 네 모습에 차마 입이 안 떨어져 제대로 된 칭찬은 해 주질 못하고 손을 뻗어 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었지. 사랑받지 못하고 태어난 나는 애정표현에 지나치게 서툴렀다. 그래서 그에게도 애정표현이라는 것을 거의 해주질 못했었고─. 그는, 어쩌면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내 그런 모습에.

 

하지만 너는 왜 그때 웃었어, 이런 나 때문에 목숨 버려놓고 왜 웃었느냐고…….

 

 

 

 

 

 

 

 

기범이가 나를 끌어안고 다가오던 트럭을 막아줘서 다행히도, 아니 불행히도 나는 살았다. 바닥을 몇 바퀴나 굴러서 온갖 타박상에 왼쪽 팔이 부러졌지만, 그것은 너에 비하면 상처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 사고 때, 둘이 함께 약속이나 한 듯이 정신을 잃었고, 곧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는 살았다. 그러나 김기범은, 나의 김기범은…….

 

깨어났을 때, 옆에 서 있던 것은 무척 복잡한 표정을 한 그의 형이었다. 종현이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기범이가 많이 다쳐서 저러나보다, 했다. 설마 김기범이 내 곁을 떠난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고, 해 보지도 않았으니까. 나는 그를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이야, 김기범은…?」

「……너 닥치고 있어. 말 해줄거니까 소리 치지도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단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게 아니었다. 녀석은 똑같이 사고를 당한 나를 향해서 화를 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안 낼 수도 없는- 그런 상태인 것 같았다. 나는 그냥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김기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여전히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범이……중환자실에 있어.」

「뭐? 기범이 많이 다쳤어?」

「아씨, 몰라. 나도 모른다고! 네가 가서 봐. 직접 네가 봐.」

 

 

내가 방금 정신을 차렸다는 사실도 완전히 잊은 채,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내 몸에 꽃혀있는 링거이 너무 거추장스러웠고, 나는 김기범을 보러 가야만 했다. 다행히도 그가 와서 링거대를 잡도록 도와줬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고맙다고 인사할 겨를조차 없었다. 나는 비틀거리면서도 계속해서 걸었다. 나를 기범이가 있는 중환자실까지 데려다 주려는지 앞서가는 종현이 간간히 나를 확인할 뿐, 그 이외에 특별한 건 없었다.

 

 

 

「………김기범……?」

 

 

꿋꿋하고 밝던 너인데. 옆에는 모자란 혈당을 보충하려는지 기범의 하얗고 가는 팔목에는 온통 주사가 꽂혀 있었다. 아플 텐데, 아플 텐데……. 겨우 그의 곁으로 가니, 불규칙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네가 보였다. 아니, 몰아쉰다고 하기에도 너무한……아주 가느다란 숨이었다. 옆에서 종현이 작은 목소리로 「지금은 피가 너무 적다고…… 산소마스크 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고 하긴 했는데, 내가 산소마스크 씌우게 하긴 해놨어.」 란다. 산소마스크가 소용 없다는 말은 맞는 것 같았다.

 

 

「……….」

 

 

입을 꾹 다물고 그저 녀석을 바라봤다. 지나칠 만큼 창백한 얼굴이 보기 싫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스럽고 예뻐서, 안 보는것도 싫은 너……를. 그때 어떻게 해야 옳았던 걸까?

 

 

 

 

 

 

그때를 회상하니 다시금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기범이는 나 우는거 싫어하는데. 거기다 기범이가 그렇게 말했었는데. 밥상 앞에서는 울지 말라고. 밥 먹는데 우는 거 아니라고.

그러니까 자기가 혹시라도 밥 먹으면서 울면 혼내 주라고…….

그래서 가만히 눈물을 참았다. 네가 싫어하던 일은 하고싶지 않으니까.

 

 

 

 

 

 

한밤중까지 나와 종현이는 기범이의 곁에 있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새벽 3시─. 죽은 듯이 가냘프게 숨만 내쉬고 있던 기범의 손가락 끝이 살짝 움직이는 모습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기범아. 기범아?」

 

 

천천히 눈을 뜬 기범이가 문득 한번 웃어보였다. 종현은 다급하게 옆에 있던 벨을 눌러 의사선생님을 호출했지만 나는 그를 보는데에 정신이 팔려 그런 것을 할 틈조차 없었다. 겨우 깨어난 그에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다지 다치지 않은 오른쪽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는 그게 좋은 듯, 예쁘게 웃었다.

 

의사선생님은 점점 약해지는 기범이의 숨과 맥박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가 손으로 마스크를 빼달라는 듯한 제스처를 겨우 해보이자,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조심스레 산소 마스크를 치웠다.

 

 

「우현……아…….」

「김기범. 김기범 괜찮아?」

「……다…행이다……많이 안…다쳐……서…….」

 

 

띄엄띄엄 끊어지는 그 목소리는 미치도록 슬펐다.

 

 

「기범아, 제발. 제발……제발, 기범아.」

「우, 현아…….」

「기범아…….」

「……우현아…….」

 

 

옆에 있던 김종현도,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도 끼어들지 못하게, 애달프고 나직하게 나를 부른 기범이는 아프지 않은 것처럼 웃었다. 여전히 그는 너무 아름다웠고, 깨끗했다. 사랑스러운 나의 김기범. ……나의, 기범이…….

 

 

「……좋……아해. ……사랑해.」

「기범아……?」

「작……년 겨울…에. 봤을…때, 부터.」

 

 

그와 만나고 첫번째 눈물을 흘린 게 아마도 그때였을 거다. 나도 말라버린 줄 알았던 내 눈물이 그렇게 흘려내리고 있었다. 기범이는 내 눈물에 「왜 울어……나 고백한…건데.……울지마…울지 마, 우현아.」 라며 똑같이 슬픈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도. 나도 사랑해. 똑같이 사랑한다고, 김기범. 그러니까……그러니까.」

 

 

네가 날 사랑한다는 것쯤, 내가 널 사랑한다는 것쯤 아주 옛날에 깨달았어. 그런걸 말로 해줘야 아는건……아니잖아, 기범아. 우리는 마지막에야 서로 느끼고만 있던 사실을 말로써 주고받았다. 기범이는 내 대답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는지 천천히 창백한 입술을 올려 미소지었다.

 

삐이─

 

그 미소를 끝으로, 그의 맥박이, 그의 숨결이…….

……그의 심장이, 멈췄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 내 모습조차 보이지 않을만큼 흐릿하게 앞을 비추는 언제나 물에 젖은 눈동자. 그러나 너를 볼 수 없는 눈 따위, 너를 보를 수 없는 목 따위 필요하지 않다.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너뿐이었다. 어리석게도 헤어진 후에야 알아버린 지독한 그리움에 나는 견뎌내지 못했다. 우리가 의도한 이별,이, 아니잖아. 아니야. 우리는 이별을 생각한 적도 없었지. ─심장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남우현.」

 

며칠 새 익숙해진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종현이 보였다.

 

「뭐 하냐? 이제 일어나라, 좀.」

 

일어나라…니. 겨우 입꼬리를 올려 조금 웃어주자 그래, 보나마나 울고 싶은 표정으로 입만 올렸을 것이다. 기범이와는 반대로 행동은 서툰 녀석이라 금방 울컥하는 표정을 지으며 휙 손을 들어올린다. 때릴 때 기집애처럼 손 올리는 버릇은 김기범하고 똑같았다. 그러더니 아씨, 됐다, 하며 손을 내리더니 따박따박 쏘아붙인다.

 

「기범이 장례식 끝났어. , 네놈 가 안 와서 기범이 외로웠을건 생각 안 하냐?」

 

그리고 이어 내 침대위에 놓여지는 작은 상자. …약간 무게감 있는, 상자…….

 

「비록 이게 기범이는 아니지만. ……네 거야. 기범이도 그걸 바랄 테니까.」

 

 

 

 

.

 

.

 

.

 

.

 

 

 

글을 써내려가던 손을 멈췄다. 처음도 끝도 아닌, 이, 결말. 싫다. 도저히 그냥은 떠나보낼 수 없어서,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너를 그냥 없던 존재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쓰기 시작한 글이 오히려 너를 더럽히고 있는 것 같다. '우현아.' - 환청. 이 목소리. 너. 너. 너. 김기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너…. ─ 조금도 흩어지지 않고 짙게 배여있는 그의 향기에, 그 맑음에, 그리고 그 빛나던 마지막 눈물 어린 미소에 나는 또다시 나락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딩동-

 

추억 한 가닥 한 가닥을 되새기는 버릇이 생긴 이후, 처음 들리는 초인종 소리. 문을 열려다 말았다. 혹시나 너의 소식을 모르고 온 친구라면, 너의 친척이라면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그 사람은 지금 여기 안 살아요? 그러느니, 없는 척 하는 편이 낫다. 식탁 의자에 걸터앉아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현관문 앞에 서 있을 누군가가 가버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문 밖에서 무언가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

 

찰칵.

 

잠겨 있던 문을 또 다른 어떤 열쇠가 열고 들어왔다. …이 집의 열쇠는 세 개. 하나는 내 것. 하나는 김기범 것. 나머지 하나는…….

 

"야, 남우현!"

 

종현이었다. 언제든지 오고 싶으면 와도 된다고, 김기범은 됐다고 말하는 종현의 손에도 열쇠를 쥐여줬었다. 쓸모 있는 구석이 있구나, 김종현 열쇠. 그래, 어쩐지 내가 없고 그가 없는 시간이 길었는데도 집이 깨끗하다 했다. 반찬도 다 정리되어 있고. …다, 저 녀석이 했던 일일까. 그래도 김기범네 형이라, 그 녀석을 닮아서 꼼꼼하게 집안일도 할 줄 아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부름에 대답할 시간을 놓쳤다.

 

"목이 막히더니 이젠 귀까지 썩었냐?"

 

저놈의 입. 목소리만 나왔고 기범이만 있었더라면, 하여튼 시끄러워 죽겠다고 말했을 거다. 그러면 기범이는 '남우현 죽을래? 우리 쫑한테 헛소리 하게?' 하며 심통을 부리겠지. 넌 저녁밥 안 줘. 우리 쫑만 줄 거야. 난 늘 그런 모습에 초딩같기는 하고 놀려댔지만…. 사실 알고 있었어. 그게 너만의 표현이라는 것 정도는.

 

"썩었구만. 흥. 그래도 이제 네가 왔으니까 나는 안 와도 되겠네."

 

철이 좀 들었나, 김종현도. 그제야 녀석을 돌아보자 뭐야, 아직 귀 살아있어? 한다. 그럼 진짜 썩었겠냐. 어이가 없어져 입으로 바보 아냐? 했더니 단박에 알아듣고 또 눈에 칼심을 매단다. 이럴 때 보면 김기범 형 맞기는 맞다. 모른 척 다시 '왜 왔어?' 라고 물으니 잠시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가 거실을 가로질러 가 기범이의 서랍 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낸다. 아, 저건….

 

"…이거 가지러. 이거 기범이 거 아니잖아."

 

반지케이스.

 

"그럼 난 이만 갈게. 어디 나갈 때는 연락하고. 핸드폰 있지? 기범이 거. 비번도 어차피 알 테니까 문자해."

 
 

……다시, 나락.

 

 

 

 

 

*

 

 

 

 

나 말이야… 사실은 행복했었어. 네가 없는 이 시간 말이야. 너 없는 이 시간, 너 없는 이 현실이 조금은 행복했어. 왜냐하면…… 언젠가, 아니, 곧 만날 거라는 확신이 나한테는 있었으니까. 천사의 하얀 날개를 달고 나를 데리러 내려오는 너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몇 번을 상상했는지 몰라. 너는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천사장처럼 무서운 표정을 짓지도 않을 거고, 청순한 여배우들이 하는 착한 여자 천사처럼 곱지도 않겠지. 너는 여자처럼 고운 애는 아니었어. 너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은 성별 따위와 연관지을 수 없는 거니까.

 

미완성인 너에 대한 원고를 종현이에게 넘겨주기 위해서 핸드폰을 들었다. 짧게나마 너와 나의 시간을 글로 적은…… 추억. 기범이가 알고 싶어했던 우리의 이야기, 너의 삶. 비록 나의 슬픔이 지독히 배어들어간 글이라 좀 청승맞을지도 모르지만.

 

[네가 가져가야 할 게 생겼다.]

 

문자를 전송했다. 그리고 원고를 봉투 안에 집어넣고 찢어버리지 않고는 뜯을 수 없게 꼼꼼히 봉했다. 이러지 않으면 내가 언제 다시 이걸 없애려 들지 모를 일이다. 봉투 위에는 내가 종현이에게 하는 마지막 부탁이 있었다.

 

띠링- 문자 답장 소리.

 

[뭔데?]

 

─ 종현이의 답장.

 

[나랑 기범이이 얘기. 난 오늘 잠시 나갔다 올 데가 있으니까 가져가. 식탁 위에 있다.]

 

다시 한번 종현이에게 짊어지게 하는 내가 싫지만, 어쩔 수 없다. 기범이라면 끝내 자기가 짊어졌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코트를 입고 기범이의 마지막 흔적이 담긴 항아리를 품에 꼭 안았다. 사랑해, 김기범. 이제는 네가 날 데리러 올 때까 됐는지도 모르겠어.

미리 준비한 작은 종잇조각과 지갑까지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평소보다 약간 어둑한 하늘이 보기 좋았다. 오랜만에 느릿 입에 웃음을 감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었다. 김기범이 나를 정말로 보러 올 것만 같은 기분…이라서. 코트 속으로 밀려드는 차가운 바람마저 상쾌할 정도로, 나는 기분이 좋았다.

 

 

"……."

 

10분 뒤에 버스가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보고 가만히 도로를 향해 섰다. 이곳에는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두 회사원과 조잘거리며 웃는 여학생들과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내가 있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또 다르게 분류를 해야 할까. 차도에 지나가는 차 수를 세고, 기범이가 좋아하던 분홍색을 한 차가 몇 개나 있는지 살펴보고, 차도 맞은편 옷가게에 기범이에게 잘 어울릴 옷이 뭐 있을까를 생각하고.

─ 10분은 짧지만 너무 긴 시간이었다.

 

 

 

눈앞에 흐릿하게, 비춘 하나의 인영. 환상인 듯, 그러나 현실인 듯 8차선 도로 한가운데에 소년이 서 있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김기범, 너야. 파르르, 네 육신의 마지막을 잡은 손끝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네가 날, 데리러 왔구나.

 

홀린 듯이 그쪽을 향해 걸었다. 네가 날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너를 따라가지 않으면 뭐 해. 나는 어차피 너와 함께 가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우현아.’

기범아, 김기범.

 ‘그냥 거기 있으면 안 돼?’

안 될 것 같아. 그래서 미안해.

 ‘남우현…….’

 

 

이, 이봐요! 옆에 서 있던 회사원이 소리치는 게 들렸지만 나는 그대로 기범이를 향해 뛰었다. 그가 있는데, 그가 저기 있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어. 나의 김기범이 이렇게…내 앞에 있는데.

 

 

 

 

빠앙─

 

 

 

익숙한 소리, 그러나 낯선 타격. ……손에 들고 있던 항아리가 마치 기범이라도 되는 듯이 꼭 감싸안았다. 눈앞에서 기범이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너 아프잖아, 멍청아.’

너도 똑같이 아팠잖아.

 ‘지금이라도 괜찮아. 응? 너 안 와도 돼, 그러니까…….’

나는, 너랑 같이 갈 거야. 이제부터.

 

못 이기겠다, 정말. 기범이가 손을 내밀었다.

주변에서 여기, 여기 사람이 치었어요! 차도로 뛰어들었어! 이봐요, 정신 차려요! 하는 따위의 소리는 더이상 내 귀에 머물지 못했다.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으며 마지막으로 한번 미소지어 보였다. 기범이가 좋아하던, 나의 마지막 미소를.

 

 

 

 

나는 김기범을 이렇게 사랑했다.

웃음.

심장 떨리는 아름다움밖에 없는 그와의 기억.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했다.

 

 

 

 

*

 

 

 

 

"…아우 . 남우현 이 새낀 죽어도 꼭 이 이야."

 

종현의 귀찮다는 듯한 말투에는 견딜 수 없는 슬픔이 묻어났다. . 기범이 간 지 얼마나 됐다고 다고 너까지 가 뒤지냐. 기범이나 너나, 죽어서 만나 행복하겠지만 남은 나는 어떡하라고. 그래도 이제 두 사람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져서, 종현은 기범을 닮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행복하지?"

 

 

 

 

 

 

 

진짜 예전에 썼던 건데 오늘 수정해서 우현기범으로 올리게 될 줄이야

우현기범이 될 줄이야..

저는 퓨전 빠니까 퓨전 쓸 거예요 다음에도 퓨전 쓰고 그 다음에도 퓨전 쓸 거예요

아무튼

경상도는 이제야 쌀쌀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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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ㅠㅠㅠ 새드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독자2
내눈물어찔꺼영 ㅠㅜㅜ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 책임지세영퓨ㅠㅠㅠㅠㅠㅍㅍ
12년 전
독자3
ㅜㅜㅜㅜㅜㅜㅜㅜ폭풍울음ㅜㅜㅜ
12년 전
독자4
ㅠㅠㅠㅠ 너무 슬퍼요 ㅠ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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