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매력 Episode 2 - T
(Anaesthesia)
(브금 필수!)
구두 두쪽을 집어들고 다급하게 달렸다.
클럽에서 나온 옷차림, 번진 화장, 찢어진 스타킹.
클럽 직원들의 시선이 그대로 나에게 날아와 박혔다.
나중에 김남준이 알면 노발대발할 게 뻔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산발이 된 머리를 쓸어넘기며 들고있던 핸드폰으로 김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16통 째. 회의라도 들어간건지 받지않는 전화에 속이 타는 건 나 뿐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해서 온 몸을 묶었어,
그러면 혹시 마음도 내게 잡힐 수 있을까 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민윤기의 목소리에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술에 취한 목소리하며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까지.
정상이 아니었다, 아니 정상일 수 없었다.
'그동안 뭐했냐고 물어보는데 자꾸 울기만 해.
날 사랑하냐고 묻는데 소리를 질러, 짜증나게.'
낮게 깔린 목소리는 이미 사랑이 아니었다.
분노, 증오, 슬픔. 그 모든 악한 감정들이 섞인 민윤기는 점점 자신을 갉아먹고있었다.
깊고 깊은 나락으로. 자신의 동생만 죽이겠다는 게 아니었다.
자신과 동생이 함께 있을 때는 봄.
그렇다면 동생이 없는 지금 민윤기도 있을 수 없다.
민윤기는 자신 또한 죽었다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남준의 말을 떠올렸다, 망가졌기는 개뿔.
민윤기는 망가진 게 아니라 그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거다.
과거의 자신, 그러니까 그녀와 함께했던 자신을 버린거라고.
'그래서 조금 경고를 했더니 바로 입을 다물더라구.
대답은 없지만 그나마 이 편이 낫다 싶었어.
날 거절하지는 않으니까'
드디어 다다른 김남준의 방 문을 망설임없이 열었다.
시끄러운 소음에 잠시 고개를 들었다, 다시 서류 속에 시선을 파묻는 그를 봤다.
겨우 저런 서류 더미 때문에 내 전화를 안받았다 이거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듣고왔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재빠르게 김남준 앞에 다가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의 서류를 모두 찢어버렸다.
"너 미쳤어?!"
'우린 봄이잖아, 함께 사랑해야지'
화를 내며 책상을 내려치는 남준을 바라봤다.
몇 시간 전 생겼던 발목의 통증이 그제서야 느껴지는 듯 했다.
짜증스레 일그러지 남준의 입가를 보며 눈물이 차올랐다.
비명을 지르며 서류를 몽땅 찢어버리다 주저앉는 나를 바라 본 김남준이
한숨과 함께 안경을 벗고 일어나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왜, 탄아. 왜 그래"
퍽 다정스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넌 그저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 뿐이겠지만
바보같이 그 목소리에 벌벌 떨리던 몸이 진정됐다.
물기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너, 알고 있었어?"
"뭘?"
"민윤기가 범인이라는 거 너 알고있었냐고.
민윤기 보통 아니야, 걔 살인자야. 살인자라고."
"...그래?"
그게 뭐 대수냐며 담담히 나를 내려보는 김남준의 시선에
헛웃음을 쳤다.
"그래?너 지금 그래라고 했어?!
그게 그렇게 담담할 일이 아니잖아!!동생을 죽였다고!!"
"그게 왜. 뭐가 문젠데"
침착한 눈동자가 나를 옥죄어 오는 듯 했다.
언제나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가락을 피해 온 몸을 수그렸다.
무섭다, 무서웠다.
자신을 거부하는 나를 바라 본 남준이 한숨을 내쉬며 내 이름을 불러왔다.
탄아.
"너네 집 부도난 거, 왜 그렇다고 생각해?"
"...야"
"너네 아버지, 왜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생각해?"
"김남준!!!"
"너무 물러터져서야. 여긴 그렇게 쉬운 곳이 아니거든.
어둠만 드글드글하는 곳에서 혼자 빛을 추구한다라.
그럼 어떻게 되는 줄 알아?"
"..."
"죽어, 흔적도 없이"
김남준의 눈을 보고 민윤기가 떠올랐다.
닮았다, 둘이. 속에 꽁꽁 숨기고 걷으로는 한없이 다정한 척.
세상 사는 법을 이미 다 알아버린 듯한 너네 둘 모습이 정말 닮았다.
'세상엔 말 되는 일보다 말 안되는 일이 더 많아'
민윤기의 목소리가 내 귀에 박힌 듯 떠나질 않았다.
"탄아, 이젠 좀"
"..."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
"우리 삶이 어떤지"
모두 다 말이 안됐다.
사랑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민윤기나,
돈 때문에 그 사실을 까발리지 못하고 묻어두는 사회나.
언젠가부터 우린 모두 미쳐가고있었다.
"이상할 건 아무 것도 없어"
이 미친 사회에서 나는,
나는 더이상 버텨낼 자신이 없다.
어렸던 나는 아주 조용했다. 아니, 조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었고, 사람들을 만나본 적도 드물었으며, 무언가를 내 손에 넣어본 적도, 심지어 이름조차 없었다.
집 안 쪽 어두운 창고안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매일 벌벌 떨었다.
어머니의 그림자라도 볼세라 밖으론 절대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무서웠다.
어미니는 나를 싫어했고, 아버지도 나를 싫어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
사람들의 멸시 속에서 눈물로 하루하루를 견뎌가고 있는 아이는 나였다. 아주아주 어렸던 바로 나 자신.
부모님은 나를 싫어했다. 부모님이 가지고 싶었던 건 그저 자신의 경영을 이어 갈 남자아이 하나였다.
그러니까 형과 같이 태어난 나는 그들이 바란적도, 가지고 싶어한 적도 없는 불청객이었던 거다.
형의 지분을 뺏어먹을지도 모를 나를 그들은 싫어했다. 나를 가뒀고 사람들 앞에 내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어렸던 한 남자아이가 세상에서 사라졌고, 나 또한 나를 없애버렸다.
그렇게 사라져가던 나에게 빛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형이었다.
나와 달리 아주 똑똑하고, 나와 달리 아주 활기차며, 나와 달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던 우리 형.
어머니의 눈빛을 피해 배고픔까지 참아가며 방에 틀어박혀있던 나를 위해 음식을 가져다 주던 우리 형.
가진 것이 없던 나를 위해, 자신의 장난감을 모조리 가져와 나에게 나눠주던 우리 형.
모든 사람들의 미움 속에서 나에게 사랑을 나눠주던 오직 한 사람 우리 형.
나는 그런 형이 좋았고, 또 좋았다.
비록 몇 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 형이었지만, 매일 형형 거리며 그 뒤를 쪼르르 따랐고,
그 어두운 방에서도 매일 형이 올 때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견뎌가고 있었다.
형만 있다면 이 세상 무엇이든 다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내가 16살, 그러니까 형이 이제 곧 고등학교를 들어갈 시기에.
갑자기 형이 나를 찾아오지 않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한 번씩은 꼭 들리던 형이 모습이 보이지 않자, 형 또한 나를 버리게 된건가싶어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 처음으로 방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항상 부산스럽던 거실이 그 날따라 조용했다.
매일 쇼파 위에서 신문을 읽고 계시던 아버지가 없었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시던 어머니가 없었다.
"형, 형. 태형이 형"
조용한 거실에 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정막 속에 나 홀로 소리를 남기며 형의 방으로 다가갔다.
형의 방 문 앞에서 침을 꼴깍 삼켰다.
이까지 나와본건 정말 처음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고, 그 안에서 울고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추리고 주저앉았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살려주세요 어머니'
웅얼웅얼 거리는 내 목소리가 시계 시침 소리와 함께 쉴새 없이 튀어나왔다.
붉은 어머니의 눈이 나를 향했고, 비틀거리는 어머니가 나에게 다가왔다.
또 맞겠구나, 움추린 몸이 놀랍게도 어머니의 품 안으로 쏙 들어갔다.
"태형아, 태형아. 우리 태형이..."
형의 이름을 중얼거리던 어머니가 나를 품에 꽉 안고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다 잘못했어.
이렇게 돌아와줘서 고마워 태형아.
어머니의 목소리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처음 불린 이름이었는데, 정말 처음 불린 이름이었는데.
어머니의 입 속에선 내가 아닌 형의 이름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엄마가 미안해, 태형아"
어머니의 말에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형은 자살을 선택했다고 했다. 내 유일한 빛이였던 존재가 숨을 거뒀다.
어쩌면 마지막 형이 나를 찾아온 그 날.
내게 남긴 그 말이 형의 마지막 유언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태형아, 너는 아무 것도 포기하지마.
누가 너의 의견을 꺽으려고 한다면 더 기를 쓰고 달려들어.
그래야 네가 살 수있어, 그게 네가 살아가는 방법이야'
형은 끝까지 나를 위했고, 끝까지 나를 사랑했다.
"태형아"
어머니의 부름에 '네' 하고 낮게 대답했다.
다 낡아가던 옷을 벗고 형의 정장을 꺼내 입었다.
어두운 방에서 나와 형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고,
형의 이름을 듣고, 형의 일들을 하며 살았다.
그렇게 점점 나는 사라졌다.
나는 김태형이었다.
김태형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 곳은 대형 인형 매장이었다.
옆으로 쭉 전시된 인형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나이 22 이런 곳에 올 줄이야, 쪽팔리게.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괜히 얼굴을 가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분명 김태형이 여기 있다고 했는데.
어디 있는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그에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시각 2시32분. 벌써 여기 온지 2시간이 다 돼가고 있었다.
아파오는 종아리를 툭툭 두드리며 옆에 있던 의자에 몸을 앉혔다가
바로 일어나 앞의 인형으로 향했다.
검은 눈에 검은 머리, 노려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매.
괜히 소름이 돋아 팔을 비볐다. 재수없게도 나랑 똑같이 생겼다.
손을 올려 인형을 집었다.
그대로 들어올려 자세히 보려고 하는데,
한 남자의 손이 내 손 위에 겹쳐졌다.
"이거 내 거야"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웃음을 터뜨렸다.
잭팟. 김태형이었다.
"손 때라고"
시선을 인형에 고정한 채 으르렁 거리는 태형의 모습에
미련없이 인형을 원래대로 내려놨다.
다시 진열된 인형을 보며 그제야 표정을 풀던 태형이
굵은 손으로 인형의 머리칼을 몇 번 정돈해 주더니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
나를 보며 놀라던 태형의 표정에 미소가 걸렸다.
말려 올라간 입꼬리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자신의 팔을 들어올리더니 아까 그 인형에게 했던 것처럼
내 머리를 몇 번 쓰다듬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콧노래가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있었다.
"예쁘다, 너"
밝게 반짝이는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아까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인형을 집어든 태형이 망설임 없이 바닥에 내 던졌다.
팔쪽이 부러져 무참히 버려진 인형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었다.
인형에게 고정된 내 얼굴을 자신의 손을 들어 강압적으로
자신을 향해 돌린 태형이 내 손을 붙잡아 왔다.
"너도 내 거야"
그의 마음에 든 건 다행이지만, 불안했다.
방금 버려진 그 인형의 모습이 잔상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소유욕은 위험했다. 그 것도 언제나 버려질 수 있는 존재라면 더더욱.
그에게 잡힌 손을 내려다 보며 경직된 온 몸에 힘을 풀려 노력했다.
긴장한 모습을 보여서 좋을 건 없었다.
"이름이 뭐야?"
"...김탄"
내 말에 그가 '이름도 예쁘네' 라며 미소를 띄웠다.
내 손을 잡은 그의 엄지손가락은 계속해서 내 손등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럼 우리 집에 가자"
밑도 끝도 없이 내 손을 잡아채는 그에 가까스로 힘을 주며 버텨냈다.
그의 개인적 공간은 위험했다.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머릿 속에 적색 경보가 울렸다.
자신을 거부한다고 생각한건지 차갑게 내려앉은 그의 모습에
다급히 변명거리를 꺼내 놓았다.
"나, 난 그러니까. 너 다른 인형들 많잖아.
나보단 그 것들이 훨씬 좋을걸?
나는 말도 잘 안듣고, 어...그 거처럼 예쁘지도 않고..."
내가 들어도 당황스러운 변명을 묵묵히 듣고 있던 태형이
내 손을 놓더니 한순간에 옆에 있던 인형들을 다 쓸어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인형들이 큰 소음을 내며 무참히 부서졌다.
눈을 동그랗게 뜬 내 손을 다시 붙잡은 태형이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이제 없어, 인형"
입술을 꾹 깨물었다.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한번만 더 토 달면,
너도 저렇게 해줄게, 탄아"
해맑게 웃는 것과 다르게 잔인한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웃고있는 얼굴 속 내면의 얼굴이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건이고, 인형이었다.
자신의 소유 아래 없다면, 또 자신의 눈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없애버릴 수 없는 그런.
나를 잡아 끄는 김태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게임의 막이 올랐다.
+
안녕하세요 독자님들!ㅎㅎ 빨리와서 놀라셨죠.
일단 여기까지가 미리 써놓은 부분이고, 이제부터 진짜 머리를 굴려야겠네요.
다음 화는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것 같아요ㅠㅠ
제가 기숙사에 있어서 글을 쓰기엔 자잘한 규약들이 너무 많거든요ㅠㅠㅠ
아, 그리고 다음 글 얘기를 좀 해드리자면.
다음 화는 T-2로 태형이 이야기가 한 번 더 나갈 것 같아요.
일단 태형이는 제 편으로 만들고 시작하고 싶어서, 열심히 머리 굴리는 중!ㅎㅎ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독자님들!!안녕!!
목단 / 곱창 / 뇌몬 / 웬디 / 김데일리 / 요를레히 / 슙디 / 알라 / 포도 / 똥맛카레 / 선블록 / 비비빅 / 뷔타민 / 두둠칫 / 웹 / 브랜디 / 소녀 / 민트
암호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