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매력 episode 2.5 - S
(Little Red Riding Hood)
(브금 필수!!)
간도 크게 늑대의 영혼을 훔치러 간 빨간모자의 가녀린 팔목은 어느새 늑대의 손에 잡혀있었다.
일단 벗어나긴 벗어나야겠는데, 남들보다 영악하다며 칭찬받던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명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늑대의 힘에 짓눌린 이상 아무것도 손 쓸 도리가 없었다.
늑대에게 잡힌 손목을 이리저리 비틀던 빨간모자가 결국 한숨을 폭- 내쉬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외로운 늑대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빨간망토는 늑대의 다부진 손을 보며 또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까지 빨간모자를 데려온 늑대는 빨간모자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고, 화려한 옷들을 선물했으며, 행복을 전해줬다.
이미 멀리멀리 퍼진 난폭한 늑대의 소문과는 다르게 늑대는 참 순진했다.
빨간모자는 늑대와 지내면서, 어쩌면 늑대를 보듬어주는 것도 참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늑대는 착했고, 자신을 배려해줬으며, 또한 아주아주 여렸다.
늑대는 혹여나 빨간망토가 싫어하는 짓을 자신이 하지는 않을까 끙끙댔고, 빨간망토는 늑대의 그런 모습에 흥미를 느꼈다.
그 중에서도 빨간망토가 제일 흥미를 느꼈던 것은.
그런 늑대의 모습 속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몇시간 째 태형은 인형들 사이에 나를 앉혔다 일으키기를 반복했다.
태형의 집에는 정말 샐 수없이 많은 인형들이 전시돼있었다.
집의 반쯤이나 가득 채운 것같은 인형들의 옆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앉아있는 방 한켠에는 인형들이 즐비해있었고, 그 옆 벽 쪽에는 유리장 안에 전시 된 인형들이 있었다. 어딜 봐도 인형 뿐이었다.
커다란 인형들 사이에서 몇 벌의 옷을 갈아입으니 진짜 내가 인형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 나를 부르는 태형의 목소리에 지친 몸을 일으켜 그에게로 다가갔다.
"힘들어?"
걱정스레 물어보는 태형에 고개를 끄덕이자
야단스럽게 우왕좌왕하던 그가 조금 쉬라며 나를 의자 위에 앉혔다.
힘들다는 내 말에 어쩔줄 몰라하는 그의 눈이 내 작은 동선 하나하나를 쫒았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에 인상을 찡그렸다.
싸늘한 표정으로 잔인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아까와,
어떻게 하면 나를 행복하게 해줄까 고민하며 쩔쩔매는 지금.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시선을 내렸다.
방어기제 (Defense mechanism)
한번 쯤 들어본 적 있는 단어였다.
내 주변 사람이 겪을거라곤 생각치도 못했기에 그저 듣고 흘렸던 단어이기도 했고.
자신의 것을 범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
아까 태형이 나에게 굴었던 그 잔인한 행동은
내가 자신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불안감에 튀어나온 자기방어였다.
자신의 공간 안에 나를 넣어버리자 확연히 달라져버린 태도.
확실했다.
그는 자신의 소유 안에 들지 못한 것에 대해 지나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놀자, 나 심심해"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태형의 머리로 손을 올려 그의 헝크러진 머리칼을 정리했다.
갑작스런 손길에 내 손에 고정되어있던 동글동글한 눈이 나를 올려다봤다.
어울리지 않았다, 이 더러운 곳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린 속을 겨우겨우 감춰가며 만든 허술한 벽이 안타까웠다.
그 벽을 만들기 위해 죽을만큼 힘들게 달려왔을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답지 않게 높은 곳을 바라보는 내 모습과 참 닮았다.
"응? 이제 놀자.
나 심심-"
'띠띠딕-'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내 손을 잡고 찡찡대던 태형이 순식간에 멈춰섰다.
이상하리만치 굳은 표정에 놀라 태형의 어깨를 툭툭 쳐봐도,
그는 찡그린 인상으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불안 증세다.
현관문을 지나 이 곳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
태형이 벌떡 일어서 옷매무세를 정돈했다.
"김태형!!"
태형의 방으로 들어온 건 한 여자였다.
40대를 조금 넘긴 듯한 여자는 예쁘게 늙었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고품있게 넘긴 머리와 선하게 내려간 인상이 아름다웠다.
태형을 바라보던 내 눈이 빠르게 여자를 스캔했다.
비싸보이는 옷들을 차려입은 여자가 인형들이 전시되어있는 유리장을 향해 들고있던 가방을 집어던졌다.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인형들이 떨어져내렸고,
그와 함께 모두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태형의 눈이 망가진 인형들로 향했다.
"...너..너"
뛰어온건지 가쁜 숨을 고르던 여자가 태형을 향해 다가오더니
두 주먹으로 태형을 툭툭 내려쳤다.
세월을 담은 듯한 그녀의 주름들이 일그러졌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거야.."
"..."
"언제까지..!!"
"..."
"..이제 좀, 돌아올 때도 됐잖아"
"..."
"저딴 인형들이 뭐라고..."
"..."
"이젠 정신 차릴 때도 됐잖아!!!!"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가 그를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이를 꽉 깨물고 그녀를 내려다 보던 태형이
잡고 있던 내 손을 놓고 자신을 때리는 그녀의 팔목을 낚아챘다.
거칠게 쥐어진 손에 그녀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깟 인형이라니요"
"..."
"전 단 한 번도 가진 적 없는건데"
"..."
"..그깟 인형.
한 번도 주신 적 없잖아요, 저한테"
한껏 낮아진 태형의 목소리가 그녀를 찔렀다.
분노를 참듯 억눌려진 목소리에 그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 부들부들 떨리는 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손목을 붙든 손엔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어쩌면 태형은 겉과 다르게 그녀를 많이 아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 곳에서 그걸 아는건 오직 나뿐인듯 했고.
"어머니"
어머니?
태형의 말에 놀란 눈을 치켜뜨며 앞의 여자를 바라봤다.
축 쳐진 눈꼬리나 꾹 다문 입술이나, 다시보니 왜 몰랐나싶을 정도로 태형과 많이 닮았다.
그녀의 팔목을 붙잡은 태형의 손이 벌벌 떨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거침없이 자신의 의사를 밝히던 태형이 겁에 질려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무참히 깨진 채 바닥에 버려진 인형들을 바라보는 태형의 눈이 붉었다.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저 인형들처럼 태형도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것 같아보였다.
핏발 선 태형의 눈이 여자를 향했다.
분노? 아니, 슬픔. 슬픔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이젠 저도 죽이고싶으세요?"
"..."
"저도 형처럼 만들고 싶으신 거에요?"
"...김태형!!"
여자가 내 눈치를 보며 태형을 나무랐다.
여자와 대화를 하고있는 태형과 다르게,
그녀는 태형이 아닌 자신의 목표와 이야기하고있었다.
태형을 아끼는 듯 했지만 그 위에 자신이 있었다.
왜 태형이 자기 스스로를 깊은 어둠 속에 밀어 넣어야만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근데 어머니, 죄송해서 어쩌죠"
"..."
"전 어머니 바람대로 그렇게 쉽게 안 죽어드릴건데"
태형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같은 눈물 방울들이
끝내 흘러내리지 않고 태형의 눈에 머물러 있었다.
참는 데 익숙해진 아이는 슬퍼도 우는 방법을 몰랐다.
꽉 깨문 입술이 아플 법도한데 그는 아무렇지않게 그 고통을 견뎌내고있었다.
"..그만 나가주시죠"
"...태형아"
"어머니"
"..."
"어머니라고 불러드릴 때,"
"..."
"제발 나가주세요"
"..."
"더 이상은 저도 못참아요"
울먹이는 듯한 태형의 얼굴이 결국 땅을 향해 숙여졌다.
어느새 내려져 꽉 쥔 두 주먹이 피가 통하지 못해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런 태형을 바라보던 그녀는, 눈물을 터뜨릴거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그저 아주 슬픈 눈으로 태형의 가라앉은 어깨를 보더니, 그대로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인형에서 나온 조각들이 박힌 발에서 쉴새 없이 피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그 상처입은 발은, 태형과 그의 어머니를 대변하듯
그렇게 한발짝 한발짝 태형에게서 멀어져갔다.
"괜찮아?"
내 물음에 아무 말 없이 그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숨이 느껴지는 곳에서 눈물 꽃이 피어났다.
우는 게 익숙하지 않은 듯 고르지 않은 숨을 내쉬며 태형은 괴로워했다.
태형은 그저 피해자였다.
자신을 꽁꽁 숨기며 상대를 갉아먹는 잔인한 이들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시들어가는 안타까운 피해자.
아직 어린 아이같기만 한 태형은 이 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태형아"
"..아니"
소리 내 울지는 못하겠는지 숨죽여 울던 태형이 내 부름에 대답했다.
어깨에 파묻혀 뭉개진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아니야"
"..."
"..김태형 아니야, 나"
"..."
"김태형이 아니라"
"..."
"나는...진짜 나는.."
"..."
"..하나도 안괜찮아, 아파서 죽어버릴 것만 같아"
젖은 어깨가 점점 무거워져 오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가 아닌 눈물이 내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더 이상 느껴서는 안될 죄책감이 발끝에서부터 다시 기어올라오고 있었다.
"김태형"
내 부름에 얼굴을 마주하려는 네 머리를 더욱 세게 끌어 안았다.
네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거 네가 가져"
"...뭐?"
"김태형도"
"..."
"네가 지금껏 가지지 못했던 것들도"
"..."
"앞으로 가지고 싶을 것들도"
"..."
"다 네가가져"
"..."
"내가 그렇게 해줄게"
입에 발린 말들을 뱉어내며 위안이라도 얻듯
태형의 머리 위에 얼굴을 묻었다.
"넌 다 가져도 돼, 김태형"
내가 던진 그 말의 화살은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탄, 넌 다 가져도 돼.
그 말을 바보같이 돌려말하고 있었다.
*
빨간 망토는 늑대를 안쓰러워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주인공은 그냥 빨간망토가아닌 영악한 빨간망토였다.
영악한 빨간망토는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떠올렸고,
그 것들에 비하면 제 앞에 있는 늑대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볼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굴리던 빨간망토는 결국 늑대의 마음을 이용하기로 했다.
네가 갖고 싶은 걸 모두 줄테니, 너는 나에게 그저 네 모든 것을 줘.
내 발 밑에 조아리고 앉아 평생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그런 충성심을 내게 줘.
자신의 품에 안긴 늑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빨간망토는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렸다.
자신이 바라왔던 그 화려한 그림이 어느새 자신의 발 앞까지 다가와있는 것같았다.
늑대를 더욱 자신의 품에 끌어당기며 빨간망토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자신의 주인과 참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빨간망토는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렸다.
+
저 일찍 왔죠?ㅎ 결국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돌아왔답니다.
12시에 자려고했는데 저 미쳤나봐요ㅎㅎㅎ
다음 화는 또 다른 인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안녕!!ㅎㅎ
목단 / 곱창 / 뇌몬 / 웬디 / 김데일리 / 요를레히 / 슙디 / 알라 / 포도 / 똥맛카레 / 선블록 / 비비빅 / 뷔타민 / 두둠칫 / 웹 / 브랜디 / 소녀 / 민트 / 민군주님 / 숲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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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빠뜨린 암호닉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감사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