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동생이 오세훈 |
비가 엄청 오는 날이었어 갑자기 남자친구 백현이한테 만나자는 연락이 온 거야 원래 내가 아는 백현이는 비 오는 날 절대 안 만나거든 나도 백현이도 비 오는 날을 싫어해서 서로 되도록이면 만나지 않으려고 해. 근데 뜬금없게도 갑자기 만나자는 거야. 이때부터 기분이 좀 쎄하기 시작했지.
“아…비 진짜 많이 오네.”
막상 나가려고 하니까 비가 진짜 많이 오는 거야, 하늘에 구멍 뚫린 것처럼 나가기는 싫은데 백현이가 나오라고 하니까 나가야겠고.. 해서 결국은 나갔어. 비도 오는데 스엠 공원에서 만나자는 거야 좀 짜증 나긴 했는데 그래도 나오라니까 나갔어. 난 원래 남자친구 말을 잘 듣는 여자친구니까. 철퍽철퍽 거리면서 공원으로 향하고 있는데 왜인지 자꾸 기분이 안 좋은 거 있지? 괜히 뭔가 짜증 나고 가만히 서 있어도 괜히 미간 찌푸려지고 막 그러는 거야. 그래도 아아, 비가 와서 그런가 보다 하고선 공원으로 향했어.
“백현아!” “왔어?”
물이 나오지 않는 분수대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백현이를 보는데 뭔가 느낌이 안 좋은 거 있지? 그냥 왠지 모르게 느낌이 안 좋았어. 항상 날 보면서 웃던 백현이 눈은 비 맞은 개처럼 축 처져있고 올라가있던 입꼬리도 일자로 쫙 펴져있고. 그리고 결정적인 건 날 보는 눈빛이 전과는 조금 다른 거야.
“너 비오는 날 싫어하잖아” “응” “근데 왜?” “오늘 아니면 말 못할 거 같아.” “….”
여자의 촉이라는 게 이럴 때만 100% 발휘가 되나 봐 내 볼을 만지는 백현이 손이 예전 같지가 않은 거야 촉 하나로 벌써 눈에 눈물이 고였어. 고인 눈으로 백현이를 올려다보면 백현이는 날 보면서 미안하다고 나지막하게 말해. 백현이 말이 입에서 새 나오자마자 뭐가 미안하냐며 백현이 옷깃을 잡으면 백현이는 쓰다듬던 내 볼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옷깃을 잡고 있던 내 손을 잡아. 그리고선 절대 듣고 싶지 않던 말을 뱉어.
“헤어지자”
옷은 젖은 지 오래고 신발도 머리도 얼굴도 몸도 다 젖었어. 근데 그 자리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거야. 백현이는 미안하다며 아까 갔고, 난 그냥 그 자리에 추하게 주저앉았어. 차라리 비가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 순간에도 참 바보 같게.. 빗소리에 내 울음소리도 다 묻혀버렸어 우산은 이미 저쪽으로 날아간지 오래고 이유도 못 물어본 채 그냥 끝나버린 것 같은 기분에 너무 허무하고 슬픈 거야 괜히 나왔어하는 생각도 수십 번씩 들고.
“……”
미친 듯이 울고 있는데 갑자기 위에서 빗방울이 안 떨어지는 거야 놀라서 정면을 보니까 신발이 보이고, 위를 쳐다보니까 어떤 남자애가 우산을 씌어주고 있었어.
“여기서 뭐해요?” “……?” “아, 진짜 추하다.”
남자애가 내 눈을 맞추면서 쭈그려 앉더니 내 손을 잡았어. 그러고선 일어나요 빨리 이러면서 잡아당기는 거야 난 뭣도 모르고 그냥 일어났지. 그러고선 어디서 많이 본 잠바를 나한테 덮어주더니 빨리 가죠, 데려다 줄게. 이러면서 내 어깨를 감싸더라. 집으로 가면서 그 남자애를 흘깃 봤는데 눈매가 조금 사나웠어. 얼굴은 또 엄청 하얗고 뱀파이어같이 예쁘게 생겼다고 해야 하나..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날 보고 뭘 봐요. 이러면서 어깨동무하던 손을 머리로 올려서 정면을 보게 만들었어.
“씻고 자요.” “고마워” “알아요. 안녕히 계세요.” “근데 너…누구야?” “….”
그 남자애는 그냥 날 빤히 쳐다보더니 가버렸어. 이게 나와 세훈이의 첫만남이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