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0AM은 윤기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네가 필요한 시각 02:00 AM
w. 시린
Y
한없이 이 길을 걸어야 한다. 망각의 길. 웨어울프들이 인간으로 환생하며 걷는 길이다. 이 길을 걸으며 기억을 지우는 것이다. 눈 앞의 달을 보며 걸음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가슴 한 켠이 저려왔다. 지민아, 너를 지워야만 한다. 네 곁으로 가기 위해서는, 너를 지워야만 한다. 이기적이지만, 나를 다시 좋아해줘, 어떤 나라도. 굉장히 이기적인 말이었다. 모두, 스스로 자초한 일인 것을 나는 스스로 알고 있었다.
나는 걸었다. 눈 앞의 길을 따라 걸었다. 박지민 보고싶다. 지민아, 지금 가고 있어. 꽤 오래 걸은 것 같다. 나는 왜 늑대였을까. 저 달은 왜 밝을까. 박지민은 뭐하고 있을까. 다시 너를 안고 싶다. 싸움에 나가지 말았어야 하나, 머리가 아프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끄러운 이명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박지민, 박지민, 박지민, 보고싶어. 너와 내가 나누었던 대화들이 겹쳐서 귀로 쏟아졌다. 아프다, 아프다, 지민아, 나 너무 아파. 아, 아프다. 머리가 멍해진다.
박지민, 박지민, 내가 계속 입으로 이 말을 되뇌인다. 다음은 비읍으로 시작하는 것 같은데 무슨 말을 읊조리는지 모르겠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여기가 어디지? 숲 속인 것 같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 다리가 너무 아프다. 숨이 가빠온다. 얼마나 걸었길래, 이럴까. 왜, 내가 여기 있는거지? 다시 한 번 머리가 아팠다. 눈 앞의 달이 그릇 깨지듯 부서지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대화의 흐름이 내 귀를 찔러왔다. 간간히 내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기억나지 않는 대화다. 누굴까, 누굴까. 누구길래, 나와 대화를 하는데 저렇게 행복하게 이야기 하는걸까. 이제는 온 몸이 아파왔다. 이 숲, 이 숲이 문제인 것 같다. 뛰어야겠다.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아픈 몸이 부서질 것 처럼 느껴졌지만, 두 발은 미친 듯 달렸다. 거친 숨을 내뱉었지만, 계속해서 달려야만 했다.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귓가의 이상한 소리들이 멈출 때까지만이라도, 달려야만 했다. 그냥, 이 숲을 나가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눈앞에 달이 보였다. 내가 달에 뛰어들었는지, 달이 나를 덮쳤는지는 모르지만, 밝은 빛에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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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빛이 눈을 찔렀다. 일어나 보니, 웬 학교 안이었다. 일어나서 터벅터벅, 한 바퀴를 돌았다. 이상하게,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전에 본 적 있고 느낀 적 있는 분위기였다. 교정 한 바퀴를 돌고 길가를 나섰다. 잔디밭도 익숙하고, 학교 건물도 어디선가 많이 본 기분이었다. 밖으로 나서서 조금 걷자, 시내가 나왔다. 쌩쌩 달리는 차들과 함께, 추워서 온 몸을 싸매고 걸어가는 사람들에게서 기시감이 들었다. 길을 쭉, 걸어 내려가자, 왠 카페들이 보였다. 천천히 구경하면서 걸어가던 중, 뒤에서 딸랑, 하고 가게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점심 때라 카페는 잘 땡기지 않을 시간일 건데, 같은 생각을 하며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입은 옷은 겨울엔 조금 앏다싶은 쥐색 후드집업이었다. 별 생각 없이 모자를 머리 위로 올려썼다. 한결 나은 듯했다.
갑자기 멍멍! 하고 왠 개소리가 들렸다. 뒤에 흰색 강아지가 쫄래쫄래, 쫓아오고 있었다. 뭐야, 하고는 그냥 발걸음을 옮겼다. 이 강아지가 가지는 않고 계속해서 쫓아오는 것 같아 저리 가라 하려고 뒤를 돌았는데, 어느새 세 마리가 되어 있었다. 아 미친, 뭐야 이 놈들은. 픽,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 좋으면 따라오렴. 근데 나도 나 어디가는지 몰라.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간간히 들리던 강아지 헥헥대는 소리가 이상하게 커지는 것 같았다.
"와, 씨-발"
나 좋으면 따라오라는 말 취소. 내 뒤로 무슨 개새끼 군단이 우르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핸드폰을 들고 나를 촬영한 지 오래인 듯했다. 인터넷이나 SNS에 실시간_개치기_소년.avi 라는 제목으로 내가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세간의 집중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개새끼들은 왜 자꾸 나를 쫓아오는 걸까. 뒤를 돌아 발을 허공에 휘저어도, 나를 놀리듯 다같이 호오오- 하고 마는 것이었다.
"야 이 개새끼들아 좀 오지 마!!!!!"
"멍ㅁ어멍엄ㅇ멍ㅁ멍머ㅓ멍멍!!!!!!!"
"씨발!!!!!!!"
"왈왈ㄹㄹ왈왈ㄹ알ㅇ롸왈!!!!"
왜, 왜 쫓아오는 거야, 오지게 달려야겠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나는 뛰었다. 내가 무슨 런닝맨도 아니고, 기분 좆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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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개들을 따돌리고 마치 나는 물미역처럼 인도에 드러누웠다. 힘들었다. 여기서 자도 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까 나 집은 어디지, 나 병신인가, 집을 모르겠다. 지금 누워 있는 곳이 뭔가 익숙하긴 하다. 아까부터 익숙한 것들의 연속이다. 익숙한 학교, 익숙한 카페, 익숙한 보도블록과 익숙한 사람들.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고 발이 끌리는 대로 걸었다. 또 의문이 생겼다. 나는 왜 무채색 계열의 옷만 입고 있을까, 나는 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까. 기억이 나는 것이라고는,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어떤 방의 모습 뿐이었다. 침대랑, 컴퓨터 책상이랑, 초록 칫솔, 주황 칫솔. 더 기억해내려고 하면,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정신 차려 보니, 왠 건물 앞이었다. 흰색 건물이 그 아이와 참 잘 어울렸었는데. 그 아이? 그 아이가 누굴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내 의식의 흐름을 읽은 것 뿐. 지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맨 윗층인 3층에 멈추어 섰다. 세 집이 나란히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맨 오른쪽 집으로 향했다. 도어락, 비밀번호. 이걸 내가 알 리가 없잖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 때, 머리가 아파왔다. 다시 이명이 시작된 듯 했다. 이명에서 벗어나려 미친 듯 달렸는데, 또 시작이었다.
'...비...번호...하지?'
'..아!...미워!..평하잖아...그럼...로...거...어때...응?'
'그냥...쳐..됐지?...지....마'
'그럼...1322...지마..형아'
치지직, 거리는 소리와 끊겨 들리는 말이 전파가 맞지 않아 수신이 어려운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그 소리를 듣던 중 온 힘을 집중해서 1322, 라는 번호를 얼핏 들은 것 같아 혹시나 하고 도어락 비번에 입력하자, 띠링- 하고 문이 열렸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게 말이 돼? 나 뭐 사이코메트리인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억이 아무것도 안 나니까 이제는 미쳐가는구만.
계속되는 이명과 혼란스러운 정신에 문틈 사이로 발을 끼워넣고, 문 모서리에 머리를 기댔다. 어지러워서 또 정신줄을 놓을 뻔 했지만, 뒤에서 누군가가 나의 등을 톡톡톡, 치는 느낌에 뭐야, 하고 눈을 떴다. 이상하게도, 그 손이 닿는 톡, 톡, 톡의 그 잠시동안, 아픔이 가시는 듯했다.
"누구시죠?"
"어우, 토 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여, 졸리세여? 하하"
"아닙니다만,"
"아..하하...죄송합니다"
"그래서, 누구세요?"
아 맞다, 하고 내 앞의 이 남자가 바보같은 표정을 지었다. 통 넓은 검정색 바지에 쌀포대같은 흰 티를 입어서 그런가, 더 어벙해 보였다. 저, 요기! 하면서 중앙의 집을 가리키며 눈을 땡그랗게 뜨는데, 뭐 하는 사람일까, 싶었다.
"어제 옆집에 이사왔거든여"
아까부터 여- 여-, 하는데 되게 거슬리네.
"잘 부탁드려여! 김태형입니다!"
"아, 네. 민윤기요"
"오, 윤기씨구나-"
굳이 자기소개를 저렇게 해맑게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눈을 휘어져라 접는 김태형이란 사람은 조금 많이 모자라 보였다. 방청객 알바 하는 사람인가, 이상한 사람이다.
"그럼 이만,"
"네, 들어가요- 형."
문이 닫히는 데 얼핏 들린 그의 억양이 조금 달라진듯 했지만, 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마지막에 붙인 형, 이라는 말이 조금 걸린다. 내가 노안이라는 뜻일까,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닌 거 같다. 그냥, 더 생각하면 머리만 더 아플 거 같아 방에 들어가 씻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 눈앞에 보이는 이 방, 예상했지만 나에게 흐릿하게 남아있는 그 방의 모습과 일치했다. 욕실에는 역시 초록색 칫솔과 주황색 칫솔. 주황색 칫솔은 아침에 썼는지 조금 물에 젖어 있었다. 초록색 칫솔을 들어 그 위에 파란색 치약을 짰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은빛 머리칼과 흰 피부, 나는 누굴까. 나는 민윤기다. 민윤기이고, 민윤기인 것만 기억난다. 다른 모든 것들은 흐릿한 잔상이라던가, 이상한 소음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뜨거운 물에 몸과 머리를 씻기고 거품질을 하는데 그 향조차 익숙했다. 이젠 하도 익숙한 게 많아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둘 다 과일향이라 그런지 온 몸이 달큰해지는 기분이었다. 다 익숙하다. 이 욕실도 익숙하고, 이 모든 게. 나만 다른 곳으로 이탈했다 돌아온 기분. 나 돌아왔어, 하고 말해줘야 할 것 같은데, 또 내가 아무 기억이 없어서 그건 또 아닌 듯한 기분이었다.
흰색 가운을 입고 머리를 터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욕실의 젖은 주황색 칫솔의 주인공일까. 문이 닫히고,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하고 문을 열자,
"뭐야, 너"
내 눈앞에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는 나를 울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한 소년이 있었다. 앳된 그 얼굴에 눈물이 서려 있었다.
"너 누구야"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고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계속해서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이유 모를 가슴 저림이 느껴졌다.
"아니, 갑자기 왜 울어, 울지 말아봐"
울지 말라고 하니 더 서럽게 우는 이 소년을 어떻게, 다뤄야만 할까. 이것저것 혼란스러운 마음에 그 애 앞에 앉아 눈을 맞추었다. 갑자기 내 몸을 안아오는 소년에게서 바깥의 냉기가 느껴졌다. 야, 야, 하면서 떼어내려 할수록, 그는 더 서럽게 울 뿐이었다.
"..민윤..기..."
"너 나를 알아?"
"..."
"아니, 울지 말라니까"
울지 말라는데도 실신할 정도로 울던 이 소년은, 내 품안에서 울다 지쳐 잠들었다. 기껏 샤워했는데, 다시 씻어야 할 것 같다. 소년을 안아 올려 침대에 눕혔다. 목도리와 코트를 벗겨 옷걸이에 걸고, 그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나는 이불 위에서 생각했다. 생각만 하는 밤이었다. 창문을 내다보았다. 내 눈앞에서 깨지던 달의 모습이 선명했다. 오늘은,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나는 샤워가운을 입고서, 소년 옆에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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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린입니다!
오늘 2시는 분량이 조금 짧네요.. 3시 분량이랑 시점 변화로 인한 스토리 연결 등등 따지고 보니
원래 2시로 합쳐져야 했을 1시 30분을 낮에 먼저 올리고! 2시를 밤에 업로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짧은 2시를.. 용서해 주시와요....3시는 폭풍 분량으로 올게요.. 믿어주세요..
부족한 필력인데도 저의 글을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9월부터는 연재가 조금 천천히 굴러갈 것 같아 8월달에 많이 올리는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꾸벅)
비회원 독자님들 남겨주신 이메일로 1:00AM 메일링 했으니 확인 부탁드릴게요!
안내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이번 편이 윤기의 시점으로 굴러간 만큼, 처음에 앗, 이게 뭐지?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실 거에요.
이제부터 딱히 시점 언급이 없다면 작가 시점, Y는 윤기 시점, J는 지민이 시점, V는 태형이 시점, K는 정국이 시점이 될 예정입니다!
암호닉 정리 ♡
깝곰 침침태태 메리 미칟 납치탄 건방지게↗ 밀짚모자 태태뿡뿡 따슙 퀄리티 메리츠 침침 윤타 후드 슈기 나니꺼 푸우우 윤기융털 영감 웬디 연이
신청해주셔서 제가 너무 감사해요 ㅠㅠ 독자님들 모두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하트하트!
누락된 분 계시다면 알려주세요! 암호닉은 공지에 댓글로 남겨주시는 게 가장 편합니다!
여러분의 댓글은 저에게 크나큰 힘이 되어요..ㅠㅠ 감사합니다 모두! 그럼 이상 시린이었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