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으..싫어요..흣..싫어.."
"아미야. 가만히 있어야 착한 어린이지. 이리와."
"하지마!!흐읏...그만,하으,흡..그만!!!"
눈이 번쩍 띄였다. 베개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로 흠뻑 젖어있었고 너무도 생생한 기억에 마른 세수를 해보니 얼굴이 땀과 눈물로 뒤덮혀있었다. 꿈에서 그 남자가 잡은 손목을 살짝 매만져 보았다. 벌써 10년이나 넘었는데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매일 밤 나를 찾아왔다.
"또 꿈 꿨어?"
같은 침대를 쓰는 룸메이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내 이마에 손을 갖다대었다.
"나 이제 일 나가봐야돼. 밥 해놨으니까 꼭 챙겨먹고.알겠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다시 눈을 감았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미세하게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숙소에 남아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듯했다. 우리는, 다시 말해 이 사창가에서 일하는 모든 창녀들은 우리가 함께 사는 이 집을 항상 숙소라고 불렀다. 집이라고 하면 왠지.. 진짜 집에 가지못할것같았다. 영원히 여기서 살아야할것만 같아 우리는 항상 이 곳을 숙소라고 불렀다. 잠깐 머물렀다 가는 그런 곳.
눈을 감고 잠시 몸을 뒤척이니 문득 정국씨의 얼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가자고.나가서 같이 살자고 하던 정국씨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것 같았다.
"여기서 나간다.."
사실 정국씨가 그런 말을 꺼내기 전까진 이 곳에서 나가고싶다는 생각을 한적이 없었다. 내 발로 걸어들어온 곳이었고, 갈 곳없던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던 곳이었고, 아무것도 할줄모르던 내게 일자리를 준 곳이었다. 마담도 착했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도 착했고, 한가지 흠이라면 이 사창가를 총 관리하는 매니저였는데 눈에 띄기전에 요리조리 잘 피하면 뭐, 그럭저럭 괜찮았다.
-
또 다시 빨간 조명에 아래에 앉았다. 유리창너머로 지나가는 낯선 남자에게 유혹의 눈길을 보내며 다리를 살짝 벌렸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남자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운이 좋아 팁도 두둑히 주는 남자를 만났을때에는 허한 마음이 그래도 조금은 위로가 되는듯 했다.
똑똑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 지루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고있는데 누군가 유리창을 톡톡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정국씨인가 하고 얼른 고개를 드는 순간.
"안녕?"
해맑게 웃으며 유리창을 두드린 남자는.
"실장..님."
매니저 김태형이였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자 김태형은 따라오라는듯한 손짓을 하고 뒤돌아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서와. 내 사무실."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전에도 몇번 와본적이 있는 그의 사무실이였다. 사무실이라기엔 온갖 sm도구들이 난무하는 밀실같이 생긴 곳이였는데 그는 항상 그 곳을 사무실이라고 불렀다. 하는 일도 없으면서.
방문을 닫고 어색하게 서 있으니 김태형이 앉으라는듯 눈썹을 살짝 씰룩였다.
"왜 그러고 서 있어. 처음 아니잖아."
우물쭈물거리다 쇼파에 앉자 그가 곧바로 내 옆자리로 와 앉았다. 그리고선 아이처럼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올려 나를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어제 그 남자 또 왔더라."
어깨에 올려진 손을 점점 내려 내 허리를 쓸어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지렁이가 내 몸 위로 꿈틀대는 것 같았다.
"어제는 섹스하는것 같던데. 무슨 날이였나?"
꿈틀대던 지렁이가 내 다리사이로 기어와 꼭 닫혀있던 내 다리를 억지로 잡아벌렸다.
"표정이 왜 그래. 그 새끼랑은 재밌게 놀았잖아. 나랑도 재밌게 놀자."
정국씨와 내가 있던 방으로 와 조심스럽게 귀를 방문 가까이 가져다 대어 내 신음소리를 몰래 엿듣고 있었을 김태형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나도 너랑 놀고싶어."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둥그런 탁자주위를 한바퀴 빙 돌았다. 탁자 위에는 가만히 쳐다보고있기도 민망한 기구들이 일렬로 나열되어있었다. 탁자 한가운데에는 끝이 여러갈래로 나뉜 채찍이 하나 놓여있었다. 벌써부터 내 가슴과 엉덩이가 뜨거워지는 느낌이였다.
"그 새끼 생각도 안나도록 재밌게 놀아줄게."
"..."
"그러니까 넌 나랑만 놀아."
"..."
"일어나서 벽 짚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