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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다각] 열린 문틈 사이로 2 | 인스티즈


열린 문틈 사이로 

w. 량군 (for. 브로)

2.

 




 버티고 있는 모습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그렇다한들 벌겋게 물든 귓가와 벌벌 떨리기 시작한 손은 숨겨지지 않았지만, 태연자약한 목소리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뒤에서 기세를 내뿜는 크리스로 인해 꽤나 괴로울 터인데 그 배짱만큼은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과분한 능력을 감당하지 못할 그릇이라면 차후 화가 되지 않도록 깨뜨릴 요량이었거늘, 미천하기 짝이 없는 신분에 비해 쓸만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륙을 호령하는 황제, 카이 3세는 호피가 씌워진 장의자에 누워 바닥에 웅크린 시우민의 붉은 머리칼에 시선을 두었다. 제국이 시작되고 사자왕(獅子王, 카이 1)이래 이렇게 많은 능력자가 존재했었는지. 떠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알면 꽤나 소란스럽겠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로써 공적으로 확인된 파편이 셋. 그중 둘이 제 손아귀에 있다는 사실도 제법 흥미로웠다.

 

 

 “따분하던 차에 잘 되었지 않은가.”

 

 

 카이는 뒤에 선 크리스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시립해있던 크리스가 기세를 거두며 장의자 옆에 작은 탁자에서 포도주를 따라 호화로운 은잔에 담아 정중히 건넸다.

 

 “내 너를 어디에 쓰기를 원하느냐.”

 “……. ?!?!?”

 

 

 의외의 말에 시우민은 저도 모르게 예법이고 뭐고 고개를 치켜들고 비명이나 다름없는 답을 했다. 빼도 박도 못하고 토벌군에 끌려간다거나, 탑에 갇혀 파편에 대해 연구 당한다거나 혹은 제법 귀여운 제 얼굴에 반한 황제가 알고 보니 남색이었다거나. 제 멋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혹여 살수라 의심받을까 능력을 한끝도 끌어올리지 않고 크리스의 기세를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황제는 예상외의 질문을 던졌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잔을 기울이는 황제의 모습에서 혼잣말은 아니었을까 순간 고민했지만 위압감은 사라졌음에도 저를 멀거니 바라보는 크리스를 보고 분명 자신에게 건넨 물음이라는 것에 확신했다. 그래도 황제는 기분이 좋은지 잔을 흔들며 웃는 낯으로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웃는, 웃고 있어?!

 첸이 알면 졸도할 수 있을 정도로 시우민의 생각은 사방으로 튀었다. 황제의 미소가 교태롭기 짝이 없는 것은 사실이나 시우민은 순간 그 얼굴에 정신이 팔려 제가 저지르고 있는 행동들을 망각했다. 크리스가 눈살을 찌푸리고 입을 열려던 차에 황제는 다시 한 번 시우민에게 물었다.

 

 

 “설마 제 스스로 굴려달란 소린 하지 않을 터, 어찌하고 싶으냐.”

 “송구하오나 영원한 11신의 축복이 있을지니, 위대하신 황제 폐하. 이 천 것이 정녕 원하는 쓰임새를 청하여도 될는지요.”

 “이제야 생긴 값을 하는 군. 제법 당돌하지 않은가.”

 “……송구하옵니다.”

 “말해 보거라. 내 제법 흥이 돋우니.”

 

 

 빠르게 회전만 했지 너무 빨라 제대로 사고가 이어지지 못하는 머릿속을 가로질러 자신의 감이 말했다.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황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나 그것 하나만큼은 자신할 수 있었다. 조심스레 황제의 눈치를 살피던 시우민은 이윽고 결심한 듯 입을 뗐다.

 

 

 “주신(主神) 바엘의 음성이 보필할지니, 다시없을 제국의 홍복이신 황제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당신의 제국에 속하는 축복을 받은 이 미천한 것이 감히 청하옵.”

 

 

 그러나 본론을 말하기도 전에 시우민은 입을 닫았다. 아니, 닫을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은 분명 황제 뒤편의 벽면을 장식했던 호화로운 방패였다. 시우민의 사고에 방패라는 것이 인식되기도 전에 크리스는 빠르게-기실, 시우민의 육안으로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내실(內室)을 가로질렀다. 시우민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황제는 태연스레 빈손을 들어 방패를 거둬냈다. 고개를 돌리자 시우민의 눈에 보인 광경은 크리스로 인해 포박당한 사내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장면이었다. 크리스는 사내의 위에 탄 채로 시퍼렇게 날 선 검을 뽑아 시우민이 미처 비명을 내지르기도 전에 그의 목을 향해 세차게 꽂았다.

 “와우.”

 크리스나 황제, 또한 시우민의 것도 아닌 목소리가 살벌한 공기를 울렸다.

 

 “이거 환대가 너무 지극해서 오금이 저리는걸. 거기, 형씨. 자기도 내 꼴 나기 싫으면 그 기운 좀 거두는 게 어때. 얼어 뒤지겠어.”

 

 크리스의 검은 사내의 목덜미를 스쳐 피처럼 붉은 카펫 위를 꿰뚫었다. 목을 타고 흐르는 엷은 핏물은 카펫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제야 상황이 눈에 들어온 시우민은 몹시 당황했다. 이제 다시는 카자르에서 배짱으로 둘째가면 서럽다고 떠들지 않으리라. 능력자만으로도 모잘라 황제와 밀실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는데, 해괴한 일까지 겹친데다 사람이 눈앞에서 죽는다고 인식하자 저도 모르게 자기방어 상태가 되었었는지 제 주변에 미세한 얼음입자가 빛나고 있었다. 황제를 시해하러 온 암살자라는 누명이 씌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시우민은 서둘러 기운을 억눌렀다. 그러자 시우민의 주변에서 빛나던 작은 입자들이 녹아 물로 변해 붉은 카펫을 적셨다.

 시우민은 저런 상황에서도 능글맞게 눈웃음을 치며 저를 보는 사내를 노려보다 퍼뜩 제 등 뒤에 있는 존재를 깨닫고 황급히 뒤돌아 엎드렸다. 아무리 느닷없는 상황이라지만 허락도 없이 황제에게 등을 돌리다니. 게다가 누구든지 맘만 먹으면 자신은 빼도 박도 못 하고 역도로 몰려 죽을 상황이었다.

 

 

 “용케도 예까지 왔군 그래, 왕자.”

 “하이고 폐하. 제가 궁금한 걸 원체 못 참아서 말입니다. 크리스 경이나 찬열말고도 능력을 갖고 있는 자가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천민이라니! 제국은 정말 차원이 다르네요. 기왕지사 얼굴을 볼 것이라면 그 파편이 무엇인지 아는 것 또한 당연한 순리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크리스 경. 아프니까 좀 살살하도록 해요. 아얏, !!”

 “왕자에겐 자제력과 눈치라는 것이 필요하겠군.”

 “아흐으. ? 그전에 위대하신 카잔의 폐하. 경께서 폐하의 눈치를 보는 듯 하니 이만하면 풀어주라 명하시면 아니 되겠사옵니까?”

 

 …왕자(王子)? 시우민은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태연한 저를 제외한 세 사람을 보며 이질감이 느껴지는 단어를 주워섬겼다. 카잔제국은 카이 3, 즉 현() 황제는 전() 황제의 적자였으며 유일한 황자(皇子)였다. 카잔황실의 손이 귀한 것은 사실이나 전() 황제가 요절한 황후를 제외한 후궁에는 들리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따라서 카이 3세에게는 형제가 없었으며, 현재 그는 미혼으로 그것은 제국의 가장 중대사로 꼽히나 대륙전쟁이 눈앞인 시점에서 황후를 간택할 웃어른이나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황제에 의해 미뤄지고 있었다.- 자식이 없었으며, 또한 손이 귀한 이 황실의 직계라면 어미의 출신과 관계없이 황자(皇子)라 불릴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꼽을 수 있는 가정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카이 3세가 황위에 오르기 직전에 일어난 황제(皇弟)의 난으로 카이 3세의 숙부가 되는 수호왕(修護王)과 그 일가는 모두 처형당하고 말았다. 따라서 황제(皇弟)의 아들이 되는 왕자(王子)는 현재 카잔제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현재 자신의 눈앞에 있는 왕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시우민이 가열차게 짱구를 돌리고 있는 동안, 바로 그 왕자를 포박하고 있던 크리스는 황제의 눈길에 그 손길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기세는 여전히 험악하여 시우민이 저도 모르게 다시 기운을 끌어올리게 할 만한 것이었다.

 

 

 “왕자님. 이곳까지 어떻게 오시게 된 것인지 차후 소상히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에이, 귀찮게. 우리사이에 그냥 루한이라고 부르라니까?”

 “왕자님.”

 “그렇게 각 잡는 게 경의 매력이긴 해.”

 “…….”

 “? 뭘 또 앵돌긴 그러나. 귀엽게.”

 

 

 황제도 황제지만, 황제 만날 일보다 더 말도 안 되는 건 뤼진느의 루한을 보는 일이야. 윗대가리들도 생각이 있으면 널 국외(國外)의 왕자에게 보여주는 일은 안하겠지만. 그 왕자 이래저래 귀찮다고 소문나있으니까 조심하라고.

 첸이 황제에 대해 경고하다 맥이 다 빠진 얼굴로 덧붙이던 말이 생각났다. 염병할, 만나기 어렵기는 뭐가 어려워. 시우민은 속으로 첸을 향해 성을 냈다. 창공의 크리스, 황제 카이를 만나 놀란 가슴이 뤼진느의 2왕자를 만난다고 해서 더 날뛰진 않았기에 이를 감사하다고해야 할지. 시우민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나저나 정말 기상천외한 인물이긴 했다. 어떻게 저런 식으로 나타나 저렇게 굴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같은 능력자를 보니 만족스럽나.”

 

 김이 빠진 듯 녹진한 얼굴로 말을 건네는 황제의 말에 시우민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능력자라니! 염국(炎國)과 창공의 크리스이외의 능력자가 또 있었다는 건가. 시우민은 새롭게 눈앞의 왕자를 바라보았다. 곱슬거리는 백금발은 뤼진느왕실의 특징이었는데 왜 그것을 잊고 있었을까. 아니 그게 아니라, 이번에도 왕실이라면 사실 뤼진느에도 파편의 계승자가 있었다는 소린가. 경악이 맺힌 눈동자로 바라보는 시우민을 바라보는 루한의 얼굴은 묘한 미소를 띠었다.

 

 “. 얼음이라니. 퍽이나 반갑지 않습니까.”

 

 

 루한의 대답이 우스웠던 것인지 무엇인지 황제는 재밌다는 얼굴로 루한을 바라보았다. 그 짙은 눈길에도 루한의 시선은 태연스레 시우민에게서 꿈적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붉은 머리를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끈질긴 시선을 받는 시우민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할 무렵, 침묵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재밌군.”

 “어라, 벌써 가시게요?”

 

 예의 웃음을 띤 황제는 즐겁다는 듯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제의 말이 그의 입 밖으로 뱉어짐과 동시에 루한은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황제를 보며 말을 건넸다. 황제는 더욱 짙은 미소를 그리며 방금 전 자신이 거둬둔 장식용 방패를 손에 들고 손수 다시 벽에 걸어놓은 뒤, 안쪽의 장식장 뒤로 걸어갔다. 그런 황제를 향해 목례를 한 크리스는 황제의 옷자락마저 사라졌을 때 남은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왕자님께선 잠시 제 집무실로 와주셔야겠습니다. 너는.”

 “, 정말이지. 우리 크리스는 나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해. 그런데 설마 얘랑 나랑 같이 가는 거야? 나 오늘 얘랑 같은 방 써도 돼?”

 “……너는 돌아가라.”

 “. ? 돌아가도 됩니까?!”

 “그래.”

 

 

 왕자를 바라보는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질렸다는 듯 잠시 눈을 감았던 크리스는 시우민을 향해 꿈에도 그리던 말을 건넸다. 시우민은 혹여 제 발언으로 황궁에 머무르라는 말이 나올까 두려웠다. 그러나 크리스의 말은 제 바람처럼 첸과 모두가 있는 황궁 밖으로 나가라는 것인지 확인하는 시우민의 물음에 긍정해주었다.

 황제가 사라진 것을 분간도 못하던 시우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크리스가 복도로 향하는 문을 열어 먼저 나가라는 듯 고개짓을 했고 시우민은 눈치를 보면서도 그의 마음이 바뀔까 황급히 문 밖으로 나갔다. 루한마저 내실(內室)을 나서자 문을 닫고 확인한 크리스는 왕자와 함께 복도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기둥들 중 한 곳에 서 그가 열지 않았다면 몰랐을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시우민에게 마지막 말을 건넨 채.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제국은 너를 알고 있다.”

 

 

 어휴, 무서워라. 호들갑스러운 루한의 희미한 음성이 따라 붙었으나, 시우민은 크리스의 경고에 자리에 못 박힌 듯 섰다. 각오는 했던 바이나 막상 너의 모든 것을 감시하겠노라 하는 말을 들으니 불쾌감과 함께 고개를 든 불안감이 시우민의 등 뒤를 타고 올랐다. 그와 동시에 첸이 가장 많이, 강한 어조로 떠들었던 말이 시우민의 귓가를 때렸다. 수많은 걱정과 경고 속에서 시우민을 진절머리 치게 할 정도로 내내 말했던 효과가 발휘되는 것 같았다. 돌아오라는, 되도록 무사히 돌아오라는 첸의 말을 되뇌며 시우민은 애써 벌써 머리 위를 타고 앉은 불안감을 털어내려 노력하며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이내 시우민은 몹시 좌절했다.

 

 

 “여기서 어떻게 집에 가라고오!!!”

 

 

 복도를 벗어나 펼쳐진 미로와도 같은 길에 안내인이 없는 시우민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루한이 내실(內室)로 들어서기 위해 때려눕혔던 안내인의 존재를 까맣게 모른 채 크리스를 향한 원망도 잊지 않았다.   

 



 -------------------------------------

 

암호닉

물고기 님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은 힘이됩니다 !

사진에 문제가 있을시 둥글게 알려주세요.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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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우 짱짱걸이시다.. 진짜 재밌슴다!!!! 저의 작은 바람으로...텀이 조금ㅁ 짧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찌만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ㅋㅋㅋㅋㅋㅋ짱짱!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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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물고기에요! :-) 능글맞은 루한이라니! 너무 신선합니다 ㅠ.ㅠ 다음 편에도 인물들이 차차 나오겠죵!!! 기대할게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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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항재밌어여ㅠ_ㅠ다음편도빨리나왔으면좋겠어여......젭알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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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진짜 너무 재밌어요 분위기가 좀 무거울 수도 있을텐데 중간중간 재밌는 부분들이 있네요 루한은 제가 생각했던 분위기랑은 조금 다르지만 이것도 어울리고 좋아요ㅋㅋㅋ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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