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기분 좋은 예감
저는 가난해도 행복하게만 살고싶어요. 정말 모자라는 거 하나 없이 순수하게만 자라온 아이들이나 내뱉을 수 있는 같잖은 말이었다. 가난과 행복이 얼마나 먼 단어인지도 모르고. 가난하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고,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진다. 인간이란 자고로 자신의 욕구가 채워질때서야 만족을 느끼는 동물이 아니던가. 가난하게 살아올수록 그 만족감에 목매는건 당연한 섭리가 됬고, 나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엄마의 외도를 그렇게나 끔찍하게 여기던 나도 새아빠의 앞에 붙은 '돈 많은' 이라는 수식어에 홀랑 넘어가버렸으니 말이다.
"쌍둥이 남매가 있는데 너랑 같은 학교더라? 태형이랑 태은이라고, 알아?"
바쁘게 내 몇 없는 짐을 캐리어에 집어넣으며 말하는 엄마를 말없이 지켜봤다. 김태형, 김태은. 학교에서 꽤 유명한 오누이였다. 워낙 잘 붙어다니기도 했고, 일단 얼굴이 먹어주니깐. 김태형은 소위 논다고 표현하는 학교에서 가장 한심한 무리의 중심에 있었지만 단지 얼굴때문일 뿐 나름 전교 1등 놓친 적이 없는 모범생이라 인기가 좋았고, 김태은은 예쁜 외모와 더불어 밝은 성격에 남녀구분 없이 주위에 늘 사람이 많았다. 아마 피아노를 친다고 했었나.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비소를 흘렸다. 그 부잣집에 들어가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그럼 나도 피아노 다시 배울 수 있으려나 그런 괜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서는.
"태형이는 말은 별로 없어도 애가 워낙 착해서 괜찮을거야. 태은이는 천성이 밝은 애고. 학교에서도 이제 친하게 지내고 그래, 알겠지?"
"응."
"짐은 엄마가 바로 새 집으로 보내놓을거니까 학교 마치면 태형이랑 태은이 만나서 같이 차타고 오고."
"그럴게. …엄마."
"응?"
"…아니야 고맙다고. 행복하자 이제."
행복. 입에 담고 있으면서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낯간지러운 단어라지만 나는 단지 쓸 방법을 모르는 단어. 나름 기분 좋은 걸음으로 학교에 갔다. 그 알 수 없는 개운함과 들뜬 감정은 딱 점심 시간 때까지 였다. 박지민과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운동장 벤치에 앉아 발장난을 치고 있었고, 머리 위로 두 개의 그림자가 나와 지민을 덮어서야 내 앞에 누군가 서있음을 알고 고개를 들었다. 서로를 쏙 빼닮은 두 사람은 누가봐도 남매였다. 그것도 아주 유전자 분배가 적절한 잘난 일란성 쌍둥이. 첫 만남이니 잘보여서 붙어먹고 싶다는 지긋지긋한 거지근성과 함께 꿇리는 입장에서만 나타난다는 열등감이 동시에 치고 올라왔다.
"태형아 얘 맞지, #김여주."
태헝의 팔에 매달리며 내 명찰을 가리키는 태은을 보며 아 내 생각처럼 쉬운 날들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목표물이 너무 명확한 비웃음 가득 담긴 눈빛이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김태형의 눈동자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는 것 정도일까. 호감도 아니지만 비웃음은 아니었으니 차라리 나았다.
"잘 지내봐."
잘지내자도 아니고 마치 잘지낼수 있으면 어디 한 번 잘지내보라는 식의 말과 함께 건네진 커다란 태형의 손에 나름의 불쾌감을 표하고자 인상을 쓰니 금방 민망해진 손을 도로 내린다. 아는 사이야? 그렇게 물어오는 지민에 입술을 살짝 깨물고 지민의 팔을 끌고 남매를 지나쳐갔다. 너랑 우리가 남매라고? 두 사람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태은은 매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에 와 태형의 친구들과 떠들어댔다. 왜 저의 친구들을 놔두고 굳이 여기서 노는지 알 수 없었으나 대부분이 태형을 좋아했다. 태형의 남매이기도 했고, 말주변이 좋아서. 태은의 수다를 피해 귀에 이어폰을 꽂아넣고 엎드려 눈을 감아도 아까부터 내게 고정된 태형의 시선을 피하기란 어려웠다. 애써 무시하기엔 태형의 짝을 사이에 두고 앉은 나와 태형의 거리는 지나치게 가까웠다.
"어디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가방을 들고 일어서자 내게로 툭 던져진 말에 내가 당황한 것은 물론이요 태은과 그 친구들의 시선도 태형과 내게로 쏠렸다. 그럴만도 한 것이 나와 김태형은 애초에 같은 반임에도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본 적이 없었다. 나를 향해 매섭게 날아올 줄 알았던 태은의 눈초리는 의외로 태형에게 꽂혀있었다.
"집… 갈건데?"
"데려다줄게 그럼."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일어나 내게 다가오는 태형을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태형이 내 어깨를 잡아끌고, 태은이 김태형의 이름을 낮게 부를 때까지도 멍하니. 내가 알기로는 아직 정규수업이 두 교시나 남았고 태형은 절대 수업을 빠먹는 학생은 아니었으며 심지어 야간 자율 학습까지 따로 신청해 하고 있었다. 그런 애가 칠교시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나를 데려다준다는 말 같지않은 핑계로 가방을 메고 교문을 나서고 있으니 흥부가 기가 막히는 노릇이었다.
"뭐하는데 너."
"뭐가."
"너랑 내가 이런 사이는 아니고, 이제 가족이라니까 고작 몇 달 일찍 태어난 오빠 노릇이라도 해ㅂ…"
"집 모르잖아. 네가 가긴 어딜 가는데."
내 말은 다 잘라먹고는 조금 앞서 걸으며 그리고 나 12월 30일생인데, 동생은 31일생 인가봐? 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왜 당연스럽게 김태형 생일이 더 빠를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렇다고 내 생일이 늦은 것도 아니고 4월생인데 말이다. 버스에 올라타는 태형의 언뜻 보인 옆모습이 웃음을 머금고 있음에 바짝 약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왜인지 모르게 얄미움이 밉지는 않았다. 일부러 김태형의 옆자리를 두고 맨 뒤로 가서 앉으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또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도대체 속을 알 수 없었다. 나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지, 적어도 불호는 아닐 것 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들었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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