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창시절의 나는 그다지 사교적이었다거나 활발했던 학생은 아니었다. 그저 반에 한 명씩은 꼭 존재하는 조용한 학생, 혹은 지나치게 공부를 열심히 했었던 학생 중 하나로 나와 같은 반을 했었던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1년을 보냈을 것이다. 나는 내가 교우 관계에 있어 원활하게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성격마저도 소심해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면 그에 대한 대답을 한참씩이나 생각하고 답해야만 했다. 나에게 있어 이것은 지극하게도 자연스러운 부분이었고,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대답을 하지 않거나, 혹은 답답할 정도로 답을 느리게 하는 아이였을 것이다. 학기 초반에 성격이 좋은 친구들도 특유의 넉살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그마저도 답답한 내 성격에 며칠 못가 다 떨어져 나가곤 했었다.
늘 그렇듯 별다른 변화 없이 고등학교 1학년도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쥐 죽은 듯 조용하게 지내고 있었을 때.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 잔뜩 예민해져 있었던 날 우리 반에는 전학생이 왔다. 선생님과 함께 들어온 전학생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다 고개를 내리고 지긋지긋한 수학 문제집을 풀어내고 있을 때. 선생님이 무어라 이야기하려던 것을 막고, 자신의 이야기는 자신이 하고 싶다며 당차게 이야기하는 아이는 부산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구구절절하게 말을 꺼내고 있었다.
술술 풀리던 문제가 어느 순간 막히고, 자연스레 찌푸려지는 인상에 한숨을 내쉬며 지우개로 신경질적으로 문제집 아래에 적어놓은 공식을 지우고 있을 때. 늘 비워져있던 옆자리의 의자가 큰소리를 내며 뒤로 당겨지더니, 옆자리에 털썩 앉아 책상에 엎드려 내 얼굴을 확인하는 전학생이 보였다. 마주친 시선에 찌푸린 인상을 펼 생각도 못하고 그 상태로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자. 너는 핼쭉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 안녕. "
공식을 지우기 위해 힘주어 바삐 움직이던 손이 엇나가 교실 바닥으로 지우개가 떨어졌다. 잔뜩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자세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지우개를 찾으려 주위를 둘러보는 나를 따라 전학생 역시 책상 밑으로 자세를 숙여서 지우개를 찾기 시작했다. 꽤나 멀리 떨어진 모양인지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는 지우개에 입술을 깨물며 계속해서 바닥을 짚으며 찾고 있을 때쯤, 대뜸 내 팔을 힘주어 붙잡은 전학생이 책상 위로 나를 끌어올려선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지우개를 보여주며 웃었다.
" 찾았다. "
" ……아, 고마워. "
네게 고맙다며 짤막한 대답을 하고는 잡힌 팔을 틀어 빼내며 자세를 고쳐 다시 책상에 놓여있는 문제집을 바라보며 옆에 놓인 샤프를 집었다. 왠지 모르게 잡혔던 팔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서 더욱 고개를 숙이며 문제집을 바라보자, 내 고맙다는 대답에 말없이 웃어 보인 전학생은 자세를 고쳐잡고선 아무 말없이 다시 문제집을 바라보는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느낌의 시선에 부담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더욱 움츠리며 애써 집중을 하려 문제집이 뚫어져라 바라보지만,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결국 고개를 틀어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바라보는 전학생을 따라 쳐다보니 전학생은 웃으며 대뜸 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 난 박지민이야, 너는…. "
" …………. "
" 성이름. 맞지? 아, 너 그 명찰 봤어.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는 제게 웃으며 전학생은 자신을 박지민이라고 소개했다.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할지. 대게 상대방에게 무심해 보이는 내게는 다들 먼저 이야기를 걸어오는 경우도 드물었거니와 이렇게 직접 자신의 소개를 하며 손을 내미는 상황 또한 내게는 참 드문 상황 중 하나였기에 당황해하며 박지민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보는 나를 한참을 바라보던 박지민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 성이름. 맞지? ' 어째서인지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서 듣는 내 이름이 한두 번이 아니면서도 박지민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자 나는 왠지 모를 이질감이 들어 인상을 찌푸리며 가만히 내밀어진 손만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옮겨 그 아이를 바라보자, 박지민은 손가락으로 와이셔츠 왼쪽에 있는 내 이름표를 가리키며 웃었다. 그러고는 앞으로 잘 지내보자며 내 손을 덥석 붙잡고 위아래로 흔들면서 내게 한참을 웃어주었다.
* * * * *
전학생이 왔다는 소식이 각 반에 퍼지자마자 매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 아이들,다른 반 아이들 할 것 없이 박지민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아이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부터 여자친구가 있냐는 둥, 왜 이곳에 오게 됐냐는 둥. 쉬는 시간마다 몰려오는 아이들의 많은 질문 공세에도 박지민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활짝 웃으며 대답을 모두 해주었다. 그런 박지민에게는 벌써부터 많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꾸역꾸역 풀어내는 문제집은 끝이 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점점 커지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자꾸만 흐트러지는 집중력은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몇 번 더 공식을 풀어내려 안간힘을 쓰다 결국에는 샤프를 내려놓고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힘주어 눌렀다. 여러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재밌게 웃고 떠드는 박지민을 흘깃 쳐다보다 곧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면 그에게 질문을 하거나 대답을 듣기 위해 내 책상에 손을 짚고서 질문을 하는 아이도 있었고, 아예 책상 끄트머리 쪽에 걸터앉아 박지민의 대답을 듣는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들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덜컹이는 책상에 샤프심은 툭툭 끊겨나갔고, 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질문은 문제집에 집중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다른 어느 날처럼 아무도 내 주위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편안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자마자, 나는 웃기게도 아이들이 아닌 박지민을 원망했다.
자리에 더 있으면 괜한 화살이 다른 사람에게로 튀어나갈 것 같아 결국에는 화장실로 자리를 이동했다. 이대로 정신 똑바로 못 차리고 있다간 정말 이번 시험도 제대로 죽 쑤겠다고 생각한 나는 세면대에 물을 가득 받아 얼굴에 마구잡이도 끼얹었다.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고개를 들어 올려 거울을 바라보면 차가운 물로 거센 손길로 세수를 했던 지라, 옷은 물론이고 얼굴 주변의 머리는 완전히 젖어 축 늘어져 붉게 달아오른 뺨을 하고 있는 내가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단정한 교복을 입고 말간 웃음을 짓던 박지민이 생각나 입술을 깨물고 받은 세면대의 물을 내렸다. 박지민이 싫었다. 말갛게 웃으며 잘 지내보자고 손을 내미는 것도 싫었고,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던 것도 싫었으며, 쉬는 시간 중간중간 친구들의 질문 공세 속에서도 흘깃흘깃 나를 쳐다보는 그 눈도 싫었다. 가장 싫은 건.
괜한 박지민 탓을 하고 있는 나인데.
* * * * *
화장실에서 한참을 가만히 서있다 수업 시작 종이 울리고 나서야 뒤늦게 느릿하게 교실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발은 젖지 않았는데. 축축하니 무거운 느낌이 들어 교실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은 더욱 느려졌다. 도착한 교실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문을 열자. 뒤 쪽에서 나는 소리에 칠판에 쓰고 있던 글과 말을 일시에 멈추는 선생님을 쳐다보던 아이들이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 뒤로 돌아보며 문 앞에 서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한 번에 꽂히는 많은 시선들이 부담스러워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고 고개를 푹 숙인 체 자리에 다가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박지민은 수업이시작하자마자 잠을 자는 듯, 책상에 문학책을 베고 옆으로 엎드려 있어 그 모습을 흘깃 쳐다보다 잘 됐다 싶은 마음에 숨을 길게 내뱉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아 아까 풀다 만 수학 문제집을 다시 펼치고선 끊겼던 문제를 찾으려 자세를 숙였다.
" 이름아 "
" ………………. "
" …감기 걸려. "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박지민의 목소리에 놀라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박지민은 아무 대답이 없는 나를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바라보다 아직도 물기가 남아있는 머리카락을 손을 뻗어 뒤로 넘겨주었다. ' 감기 걸려. ' 나를 아직도 쳐다보며 웃고 있는 박지민을 아무 말없이 바라보자 박지민은 점점 빨개지는 귀를 한 손으로 매만지더니 머리카락을 넘겨주던 손으로 내 눈을 가리고 큭큭 작게 소리 내 웃었다.
" …그렇게 보면. "
" ……………. "
" 부끄러워. "
진짜, 이상한 아이였다. 박지민은.
' 미안해, 애들 이제 안 와. '
W.화생방
- 제목의 숫자는 과거에 있었던 지민이와의 일은 100부터 거꾸로 표시되고, 과거로 돌아온 현재의 내가 만드는 지민이와의 일은 00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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