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도경수] 잊어버린 혹은 잃어버린 01
w. 김순박
드르륵
내 손길만큼이나 거친 소리를 내며 과학실 문이 열렸다.
"누구세... 아, 여주 왔어?"
교무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칙칙하고도 음침한 과학실에 있는 그가 나를 반겼다.
급하게 노트북을 닫는 그의 손을 모른채 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 한 후, 문제집을 펼쳐보았다.
"선생님. 아무리 봐도 이 문제가 조금 어려워서..."
46번 문제를 짚으며 그의 얼굴을 훑었다. 맑고 큰 눈동자, 곧은 콧대, 붉고 두툼한 입술.
어느새 그는 내 연필을 들고서 사각사각 풀이를 적어가며 다정히 내게 설명했다.
"자, 이렇게하면 답은 4번 50이 되지?"
"아, 그러네요. 선생님 저 교실이 시끄러워서 그런데 여기서 공부 하다가도 될까요?"
그를 좀 더 관찰 할 구실이 필요했다.
"그럼. 공부하다 어려운 거 있으면 또 묻고"
아 물론 과학만. 하고 사람 좋게 웃어보인 그는, 내가 옆자리를 떠나 그에게서 조금 멀리 위치한 자리에 앉자 그제서야 다시 노트북을 열어 무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과학 선생님이자 담임 선생님인 그는, 한달 전 육아 휴직을 들어간 전 담임 선생님을 대신해 온 기간제 교사였다.
여고에 남자가, 그것도 절세미남에 26살의 미혼이니 그가 처음 이 학교에 발을 들인 날엔 그의 얘기로 떠들썩했었다.
그런 그는 내게 다른 의미로 관심의 대상이였다.
얼굴 못지 않게 바르고 곧은 성격으로 유명한 그에겐 분명 무언가 있다.
가면, 나처럼 가면을 쓰고 있을거라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생각하고 그것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도경수, 그를 관찰하고 있다.
#
"뭐야, 점심시간 내내 어디있다 온거야?"
박윤미는 다 좋은데 이렇게 앵겨붙을 때면 짜증이 났다.
"아 나 찾았어? 도서실에 책 반납하고 왔지. 미안."
자신을 데려가지 않았다고 궁시렁 거리는 윤미를 거짓말로 다독여주고 있자니 수업 시작 종이 쳤다.
"문학시간 진짜 노잼!!! 왜 하필 점심 먹자마자 문학인거야."
서로의 공부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자리를 칸칸이 뗴어놓았지만, 아예 작정하고 뒤를 돌아 떠들어대는 윤미를 보니 이것도 아무 소용이 없네요. 도경수 선생님.
"윤미 학생. 진짜 재미없는 게 뭔지 보여줄까요?"
"선....선생님"
복도쪽 분단에 앉아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저렇게 흉을 보니 안 걸리고 배기나...
문학 선생님은 마치고 교무실로 오라는 한마디를 남겨둔 채 수업을 시작하였다.
도경수. 아까 그가 노트북으로 보고 있던 건 무엇일까?
야동? 화장실이나 탈의실에서 찍은 몰래카메라? 혹은 토막난... 오케이 여기까지.
아니면 도박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가 처음 발령 받아온 순간부터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관찰하고 있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건 다 옛말이더라.
근데 그게 더 수상 했다. 그도 분명 사람인데 어떻게 늘 한결 같이 곧을 수 있단 말인가? 밥먹을 때도, 수업을 할 때도,
심지어 혼자 과학실에 틀어박혀있는 그 순간에도 그는 항상 흐트러짐이 없었다. 코를 파는 정도는, 다리를 떠는 것 정도는, 하다못해 하품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이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완벽하게 숨기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면, 내가 그를 주시한다는 걸 눈치채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좀 더 조심스럽게 행동할 필요ㄱ...
"가면, 노트북, 도박, 하품. 김여주 학생 수업엔 집중 안하고 이게 다 뭐죠?"
아 젠장. 망했다
무의식적으로 공책에 적고 있었나보다. 이럴 땐 간결하게 사과를 하는게 최선이었다.
"... 죄송합니다."
들고있던 공책을 돌돌 말아 내 머리를 텅하고 내려친 문학은 윤미와 함께 교무실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수업을 재개했다.
이로써 박윤미의 뒤를 이어 문학도 블랙리스트에 추가다.
#
" 무릎 아파!!! 쉬는 시간이 끝났는데 왜 안 보내주는 거야?"
또 시작이다. 궁시렁 궁시렁. 저렇게 손 내리고 있다가 문학한테 걸려봐야 정신차리지.
나는 쌓아놓은 이미지를 더 이상 실추 시킬 수 없기에 맞장구 쳐주기를 기대하는 윤미에게 미소만 보인 채 자세를 고쳐 양손을 더 높이 들었다.
"김여주. 넌 팔 안 아파?"
넌 입 안 아프니? 하고 되묻고 싶은 걸 꾹 참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넌 말을 잘 듣는 건지... 독한건지... 알다가도 모르겠ㄷ, 어! 경수쌤!!"
뭐? 도경수?
윤미의 시선을 따라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정말 완벽하다 못해 지독한 그가 서 있었다.
"너네 종 쳤는데 여기서 뭐하고 있어?"
복도에 무릎 꿇고 양 팔을 들고 있으면 딱 답 나오지 않나? 묻긴 뭘 묻나...
본업에 충실하고자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근데 분명 평소와 같은 목소리 톤인데 왠지 모르게 화난 모습이다.
"경수쌤! 저희 좀 살려줘요. 문학이, 아니 문학쌤이 안 보내줘요!"
윤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미간에 주름이졌다.
이상하다. 이건 '도경수 관찰노트'에 빨간 펜으로 써야할 만큼 기이한 현상이다.
항상 웃으면 웃었지 무표정이라곤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었는데, 그는 왜 화가난 것인가?
자기 반 학생이라고 챙기는 건가. 아니면 이것도 하나의 '가면'인가.
감정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릴 위하는 척하는, 그런 것일까?
"선생님이 잘 얘기 해줄테니까 어서 수업 들어가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는 미소를 지은 채 그 큰 손으로 우리를 다독이고는 교무실 안으로 사라졌다.
"대~박! 진짜 멋있지 않아? 아아... 7살 차이고 뭐고 저런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
개뿔. 박윤미 넌 좋은 남자한테 시집가긴 틀렸다. 그렇게 보는 눈이 없어서야...
감동하다 못해 사랑에 빠진 윤미를 보니 아무래도 후자였나보다. 이것 또한 치밀하게 짜여진 그의 가면.
도경수 대단하다. 대단해.
훗 날, 알게 됐지만 그 날 교무실에서 문학과 도경수의 작은 말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의 튼실한 가면 덕에 가해자는 문학인 것으로 끝맺었지만.
#
아까 그의 의외의 모습을 보고 나니 호기심은 더 해갔다.
배부르고 따뜻하니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 졸아대는 윤미를 방패 삼아 그를 훔쳐보았다.
저 사람은 무슨 이유로 '가면'을 쓰게 되었을까. 나처럼 후천적인 이유였을까? 아님 태어났을 때부터?
모든 일에는 계기가 있다.
물론 나의 이 증상도 마찬가지였다.
7년 전, 그러니까 11살 쯤 납치를 당한 적이 있다.
뭐가 그렇게 충격적이였는지 이미 난 머릿속에서 다 지워버리고 없지만, 그 사건 이후로 자그마치 2년여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근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사건은 내 가면의 원초적인 계기가 아니라 본능을 일깨워주는 촉진제가 아니였을까 하고.
그의 가면이 선척적인 것이라해도 분명 그를 깨우는 무언가가 있지 않았을까? 나는 그게 너무나도 궁금하다.
그렇게 한참동안 그를 녹일 기세로 쳐다봤다.
특이하게 야자감독을 각 반 담임이 하는 우리 학교의 규칙덕에, 하루에 기본 2~3시간은 그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달여동안 지켜본 결과, 건진 건 없었다. 곧은 자세로 책을 읽는 그 모습. 그냥 그게 다 였다.
오늘이 지나면 이틀동안 그를 못 본다. 오늘은 반드시 내 한달간의 노력의 결과물이 있어야한다.
내 굳은 다짐이 들린 것인지, 아니면 내 시선의 뜨거웠는지 그는 읽던 책을 덮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내 의지를 더 굳히는 행동이였다.
나를 뚫어질 듯 바라보더니 싱긋 웃으며 나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그를 닮은 박하향 또한 다가왔다.
왜? 안 풀리는 문제라도 있니?
다른 학생들의 집중을 흐트리기라도 할까 입만 벙긋벙긋 하는 도톰한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不入虎穴 不得虎子. 호랑이를 잡으려거든 호랑이굴로 가라했다.
좋아요. 선생님 장단에 놀아드릴게요.
나는 공책 모퉁이를 찢어 내 의지를 적어나갔다.
'선생님. 아무래도 이 문제는 집에 가서 함께 풀어봐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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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박입니다~
결말을 지어놓고 차곡차곡 완성 시켜나가고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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