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과 같은 반이 되다니 씩씩 거리며 들어 온 교실에는 김준면 선생님이 우리를 웃으며 반기고 있었다.
몇몇 여자아이들은 벌써 선생님 곁에 달라붙어서 나이가 몇이냐, 여자친구는 있냐 들들 볶아대고 있었고
비어있는 책상에 걸터앉아 새로받은 교과서를 넘기는데 큰 소리와 함께 열리는 뒷 문.
"늦어서 죄송해요."
두 볼이 빨갛게 차올라 환하게 웃는 남자는 오늘 등교길에 본 자전거남이였다.
변백현.
명찰이 반짝 빛났다.
하얀 자태에 입이 저절로 헤벌쭉 벌어지는데 나를 본 김종인이 한심하듯 혀를 찬다.
그런 김종인에게 fuck you를 날리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데 변백현과 눈이 마주쳤다. 오 마 갓!
겉이 번지르르한 서울 남자를 꼬셔 차도녀가 되보겠다던 내 계획은 1단계도 시행하지 못한 채 끝나버릴건가보다.
이게 다 김종인 때문이라며 머리를 쥐뜯고 있는데 탁탁 교탁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자, 다들 자리에 앉아줘. 4반 담임을 맡게 된 김준면이라고 한다. 난 이제 고등학생이 된 너희에게 자율성을 많이 부여하려고 해. 물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깨닫길 바라고. 우선 자리배정부터 말할게. 자리는 키 순서로도 배정할 수 있고, 제비뽑기로 가능하지만 이번에는 선택제로 할게. 물론 나중에 선택제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생기면 다른 방법으로 자리를 배정하겠지만 이번에는 학번 순서대로 나와서 지목하는 걸로 할게. 지목당한 사람은 싫어도 우선 짝 해보고 정말 영 아니겠다 싶으면 따로 나한테 찾아 와."
"동성으로만 선택해야 돼요?"
딱 봐도 까불이 같이 생긴 남자애의 질문에 선생님은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고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물론 거기에 나도 포함이고.
임시로 내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김종인도 쾌재를 부르듯 파이팅 자세로 주먹을 꽉 쥐었다.
엄청 예쁜 여자하고 노래를 부르더니, 눈에 차는 애라도 있었나보지 참 나.
괜스레 짜증이 나 책상을 발로 툭툭 치는데 신경 거슬린다며 김종인이 또 내 볼을 꼬집는다.
진짜 고자될래?
"그럼 1번인 김철수부터 나와서 짝 호명해볼래?"
처음으로 나온 김철수는 부끄러운듯 제일 앞자리의 여자애를 불러냈고 여자애도 싫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연애 프로젝트를 계획하셨나.
벚꽃이라도 흩날리는 것 같은 반 분위기에 몸을 배배 꼬는데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서로 이성친구를 찍느라 여념이 없다.
슬슬 짝 지어지는 아이들을 보며 긴장되는 듯 손을 책상에 토독토독 두드리는 김종인의 모습이 바보같다.
중학생 때는 자기는 여자친구 같은 거 관심없댔으면서, 자기도 꼴에 남자라 이거다.
남자, 남자? 남자라고 생각하고 김종인을 보니 예전에 까까머리 김종인이 아니다.
머리고 많이 길었고 키도 어느새 나보다 머리 몇개는 차이나고 어깨도 딱 벌어지고 발도 275mm랬다.
재수없다, 언제 혼자서 그만치서 앞서서 가는건지.
"19번 오세훈."
아까 까불이였다. 교탁 앞으로 나가면서도 호응을 유도하는 제스쳐를 취하는 것이 보통내기가 아님에는 분명했다.
얼굴이나 허우대는 멀쩡해서 그런지 기대하는 여자애들의 눈빛이 한 둘이 아니였다.
내 스타일이 아니라 그렇지 나름 괜찮네, 팔짱을 끼고 뒤로 기대는데 뒷 책상과 부딪히고 말았다.
액땜을 하는건지 첫 날부터 사고연발에 미간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는데 변백현이다.
귀 끝까지 화끈한 느낌에 귀를 가리며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는데 눈이 없어질만큼 환하게 웃는 변백현은 그 순간, 정말 천사같았다.
후다닥 앞으로 돌아보는데 귀가 너무 뜨겁다.
"동성친구든, 이성친구든 불러도 상관없다고 하셨죠? 그럼 저는………… 너."
오세훈의 손가락 끝에 걸린 사람은 긴 머리에 새초롬하게 생긴 여자애도 아니고, 하얀 피부에 단발머리 여자애도 아니였다.
"미칫나, 싫다!"
입이 거칠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시골뜨기, 내 불알친구 김종인이였다.
* 이번편은 짧네요! 첫 편에서 댓글 달아주신 분들 너무너무 잘봤어요~
댓글 하나 달고 가는게 꽤 손가는 일인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더욱 감사하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재밌게 봐주신다니 열심히 쓰겠습니다!
세훈이가 종인이에게 가지는 감정은 그냥 우정이라는 설정입니다. 흐핳흐ㅏ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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