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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단편/조각 만화 고르기
이준혁 몬스타엑스 김남길 강동원 엑소 온앤오프 성찬
전체글ll조회 1226l 1



** 전편 '떠나지못해'를 읽어셔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종현은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억누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젖은 눈가를 손등으로 닦아내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분명 옆에 있어야 할 진기의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종현은 마구잡이로 침대 위를 훑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앓는 소리를 내며 깜깜한 방을 나섰다. 형아, 떨리는 목소리로 불러보지만 아무런 기척도 없다. 형아아, 좀 더 크게 소리쳐도 여전히 집 안은 조용하다. 종현은 급하게 진기의 작업실 문을 열었다. 텅 비어있다. 사람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항상 그곳에 있던 진기의 물건들이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던 양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없다. 진기가 없다. 진기가 떠났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종현이 눈물을 터뜨리며 온 집을 헤집기 시작했다. 형아, 어디갔어. 형아, 종현이는 여기 있는데 형아는 어디로 갔어… 화장실 안, 베란다 밖, 심지어 소파 아래나 신발장 안까지 살핀 종현은 금방이라도 까무러칠 것 같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진기가 제 곁을 떠나버렸다. 진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홀로 내버려두고, 진기가 떠나버렸다.





떠나지 못해 그 이후.
w.앵








종현은 밥을 떠 먹여주는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싫어, 저리 가! 양 팔을 휘저으며 반항하는 종현에, 갸냘픈 체구의 여자는 금방 두손을 들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자는 알듯말듯한 표정을 지으며 종현의 곁에 앉아 종현의 팔을 붙잡았다. 단단하게 잡혀 움직이지 않는 팔에 더욱 화가 난 종현이 다른 팔로 식탁 위에 있던 그릇을 집어 던졌다. 내용물이 사방으로 튀고 그릇 깨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미간을 찌푸린 남자가 종현의 팔을 놓고 떨어진 그릇의 파편을 치우기 시작했다. 어쩔 줄 모르고 멍청히 서있는 여자에게 나가보라고 툭 던진 남자, 민호는 그녀가 자리를 비키자 마자 제 성질에 못이겨 치우던 그릇 조각을 도로 바닥에 집어 던져버렸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실 작정입니까?"


자신이 어떤 짓을 하건 늘 다정하게 감싸주던 민호가 화를 내자 당황한 종현이 히끅대며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눈물까지 쏟아내기 시작한 종현을 바라보던 민호가 크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종현의 옆에 앉았다. 커다란 눈이 붉게 물들어 애처롭기 짝이 없다. 민호는 대충 휴지 몇장을 뽑아 종현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콧물까지 질질 흘리며 앙앙 울어대던 종현이 울음을 그치자, 민호는 차갑게 식은 밥을 떠 종현의 입가에 가져갔다. 머뭇대던 종현이 결국 입을 열어 밥을 받아먹는다. 계란말이도 하나 집어 먹여주고나니, 싫다고 난리를 쳤던 게 무색할만큼 맛있게도 꼭꼭 씹어 삼킨다. 


"이럴거면 한번에 먹었으면 좋았을텐데."
"맛이가 없어."
"맛이 없어, 라고 하는 겁니다."


아니야. 형아는 종현이가 맛이가 없어하면 맛이가 있는거 줄게, 이렇게 말했어. 종현의 말에 민호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대체 그 형아라는 사람은 애 교육을 어떻게 시킨건지. 맞춤법을 틀리는건 물론이고 조사 사용도 제대로 못하는 종현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젠 아예 제 손에서 숟가락을 빼앗아 혼자 열심히 밥을 먹기 시작한 종현을 내려다보던 민호는 복잡한 머리에 고개를 휘휘 저어버렸다. 처음 종현을 맡게 되면서 실시했던 지능검사의 결과에 의하면 종현은 딱 일곱살이었다. 미운 일곱살. 그래서 이렇게 미운가.


"안 먹는다면서요."
"형아 기다려야 되니까."


그래서, 그 형아는 언제 오는데요. 아무생각없이 툭 던진 말에 종현이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다시 울 것 같은 눈으로 고개를 푹 숙인다. 아차, 실수했다. 민호가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종현의 눈에 달린 수도꼭지가 다시 열려버렸다. 







…형아, 미안. 종현이 슈퍼맨놀이 하다가 이거 찢어져버렸어.


시무룩한 표정으로 와서는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한 말에 진기는 종현이 내민 옷자락을 쳐다보았다. 사슴 패턴이 수놓아진 빨간 스웨터. 크리스마스에 종현이 사줬던 옷. 사귀기 시작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때에 받은 선물이었다. 진기는 경악을 하고 얼른 종현의 손에서 스웨터를 빼앗아 들었다. 올이 나간 정도라면 어떻게 수습이라도 해보겠지만, 완전히 뜯겨나가 손을 써 볼 새도 없었다. 한순간에 걸레로 추락한 제 보물을 보며 진기는 제 감정이 휘몰아침을 느꼈다.


너, 이거 어떡할거야!


화를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고있었지만, 마음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뜯겨진 스웨터. 뜯겨진 우리의 시간. 진기는 불안한 표정으로 저를 살피는 종현을 보다 문득 속이 꽉 막혀왔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너는 돌아오질 않아. 종현아. 현아. 네 얼굴을 한 눈앞의 저 사람이 정말 네가 맞는건지도 나는 이제 확실할 수가 없어…


형아, 미안해. 진짜진짜 미안.
나가. 


제발, 네 얼굴 보고싶지 않으니까, 나가. 왈칵 울음을 터뜨린 진기에 놀라기도 잠시, 마구 밀쳐져 문 밖으로 내쫓긴 종현은 버릇처럼 딸꾹질을 하며 오도카니 그 앞에 섰다. 진기의 꽉 눌린 울음소리가 들려 귀를 틀어막는다. 울지 말지. 내 잘못이지만, 그래도 울지는 말지. 종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분명히 귀를 꽉 막았는데도 자꾸만 흐느낌 소리가 들려와서 마음이 아팠다. 진기는 꽉 닫힌 문을 걸어잠그고 스웨터를 끌어안았다. 아직도 쇼핑백을 건네며 웃던 종현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지금의 멍청한 웃음과는 다른, 정말 멋드러진 웃음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서서 구경을 할 만큼 멋졌던 종현이 그리웠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척척 데이트 코스를 짜내고,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필요했던 물건들을 선물해주던 너. 내가 준 모든 걸 절대로 몸에서 떼어놓지 못했던 너. 너는 어디로 사라진거야. 현아, 너는 대체 나를 내버려두고 어디로 사라진거야.

간신히 울음을 그치자 까마득한 정적이 진기를 괴롭힌다. 분명, 이토록 잠잠한 집 안에 혼자 있을때 네가 찾아오곤 했었는데. 쓰러지듯 침대 위에 누운 진기가 눈을 감는다. 문 앞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종현이 여전히 거기에 있음을 알았지만, 제 눈치를 보느라 들어오지 못하는 종현은 저가 알던 종현이 아니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네가 네가 아니야. 한번 콱 박힌 생각은 떠날 줄을 몰랐다.








꿈을 꿨다. 너는 이미 죽어 없는 세상에 나 홀로 남아 흑백으로 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너를 따라 사라져버릴까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한달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고, 오년이 지나서, 나는 내 일상을 되찾아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사랑을 하고 너 없는 세상을 꽤나 괜찮게 살아갔다. 과거를 자꾸만 되새기게 하는, 나를 죄책감에 빠지게 하는 너의 형상도 거기엔 없었고, 그래서 나는 더디지만 쉽게 너를 극복할 수 있었다. 

옆에 아무것도 모르고 잠든 네가 보인다. 종현아. 나는 너를 정말로 사랑했고, 아마도 평생 너를 지워낼 수 없겠지. 하지만 이렇게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너에게 묶여 보내는 시간은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어. 미안해. 미안해. 내가 이렇게나 약해서 미안해. 진기는 종현의 곁을 떠나 몰래 챙겨두었던 짐가방을 들었다. 미안해. 새근새근 평온한 숨소리가 귓가에 자꾸만 들려와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네가 살아만 주어도 고맙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랬었는데.

현실이라는 게 사실 너무 버거워서, 나는 더이상 견딜 수가 없어. 너를 거두고 받아야했던 시선과, 남들 몇배로 더 힘들게 일해야 했던 것, 그리고 따라붙는 동정까지. 나도 아직 어린데. 아직 내 인생 펴기에도 한참 모자란 나인데… 끝까지 돌아오지 않는 너에게 내 모든 걸 다 걸고 살아갈 자신이 없어. 사랑한다고 말해서 미안해. 나도 내가 이렇게 약할 줄 몰랐어. 너를 책임조차 지지 못해서 미안해. 결국 터져버린 눈물이 온 얼굴을 적신다. 열린 문 밖으로 발을 꺼내놓으니 거대한 현실이 파도처럼 나를 삼키는 듯 하다. 현아. 현아. 이 파도 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점점 가라앉을 너를 알면서도 홀로 도망치는 나를 절대 용서하지 마. 나를, 용서하지 마.








빵빵이 위험해?
응. 치이면 사람은 무지무지 쉽게 날아가버려. 조심해야 해.
우와, 날아가? 슈퍼맨처럼?


순진한 말에 진기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제대로 말할것을 그랬다. 정말정말 위험하다고. 내게서 너를 앗아가버린 존재라고.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차를 타지 못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말을 해 줄 것을 그랬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말해줬더라도 너는 같은 말로를 맞이했을까. 결국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너를 그렇게 쉽게 포기했을까. 








"진기 형은…"


민호는 제 얼굴을 보자마자 또 그 형을 찾는 종현의 태도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너네 형아 여기 없다, 하고 대충 대답했다. 종현은 그 말에 당황하는 듯 하더니 민호에게 다시금 물었다.


"진기 형 여기 없습니까?"


민호는 문득 종현이 원래 저렇게 말투가 똑부러졌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멍하니 무언가 달라진 종현의 얼굴을 응시하던 그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아무래도 자신이 착각한게 아니라면 종현의 지능과 기억이 돌아온 듯 했다. 민호는 침을 꼴깍 삼키고 얼른 종현의 곁으로 가 옆에 앉았다. 김종현씨 돌아오셧습니까? 민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 종현이 의문이 담긴 눈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예? 아아, 음, 어디부터 얘기를 해야할지… 사실 저도 잘 아는 건 아니라서요."


교통사고를 당하셨던 기억은 있으십니까? 민호의 물음 종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에 치였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보니 여기였어요. 하아, 민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민호는 천천히 머릿속으로 적절한 문장을 떠올려보다 곧 말을 시작했다. 교통사고 후 종현씨는 기억상실의 일종으로 7세 정도의 행동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으나 몇달간의 입원, 통원치료가 계속 되었던 기록이 있구요, 보호자는 이진기씨로 되어있고 항상 같이 병원에 가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2년 정도 두분이 함께 생활하셨던 것 같고, 어, 최근에 이진기씨가 보호원에 연락하시고 …잠적하셨어요. 종현씨 여기 맡기고. 민호의 말이 끝나고도 종현이 입을 열지 않아 장시간 정적이 계속 되었다. 민호는 잠깐 종현이 진기가 자신을 버리고 갔다는 것에 화가 난걸까 싶어 그 표정을 계속 살폈다.


"제가, 형을 정말 힘들게 했군요."


그 사람이 날 떠날 정도면, 정말 죽도록 괴롭혔나봐요. 종현의 눈이 젖어간다. 죽어도 날 놓지 않을 사람인데,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을까요. 종현은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마른 세수를 하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낸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종현을 계속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물을 쏟았다. 민호는 어정쩡하게 팔을 뻗어 종현의 등을 토닥였다.


"그래도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이진기씨가."
"예?"
"그, 뭐야, 일기장 같은 게 집에 있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만, 드릴까요?"


벌떡 일어난 민호가 종현의 끄덕임을 보자마자 걸음을 옮겼다. 구석에 세워 둔 책꽂이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까만 노트를 꺼내 종현에게 내민다. 종현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어 천천히 펼쳤다. 진기의 취향답게 깔끔한 디자인의 노트였다. 

비록 지금은 아파도 금방 너와 웃으며 이 일기를 읽을 날이 오기를.

표지를 넘기자마자 눈에 들어온 문구에 종현은 도로 일기장을 덮어야 했다. 민호씨, 잠깐 나가줄래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는 종현에 민호는 머뭇대다가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종현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진기의 일기장을 펼쳤다. 비록 지금은 아파도 금방 너와 웃으며 이 일기를 읽을 날이 오기를. 꽤 힘을 주어 썻는지 종이 글자 모양대로 꼭꼭 눌려있다. 종현은 그 눌린 자국을 손으로 쓸어보고 긴장으로 마른 입술을 축이며 다음 페이지를 열었다.

네가 집에 들어왔다. 허전하던 집이 드디어 찬 느낌이다. 네 방에 네가 있다는게 믿겨지지 않아서 혼자 웃었다. 네가 왜 웃냐고 물어보길래 간지러워서 웃었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핑계를 잘못 댄 것 같다. …오랜만에 너와 외출을 했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식성이 좀 웃겼다. 고기가 좋아 내가 좋아 물어보니까 내가 좋다고 했다. 역시 너는 너구나, 싶었다. …무의식적으로 너와 나눴던 대화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너의 표정에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금방 극복할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네가 너인건 변함이 없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믿는다. 

여기까지 하루, 이틀 간격으로 이어지고 그 다음 장의 날짜는 그 보다 한참이 지난 두달 후였다. 종현은 그 페이지를 읽으며 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네가 네 옷을 들고와서 누구 거냐고 묻고, 내가 너에게 했던 선물을 알아보지 못한다. 

단 한줄로 쓰여진 문장이었지만 종현은 마치 가슴을 난도질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맛봐야 했다. 그 상황에서 진기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이 글을 쓰며 얼마나 손에 힘을 주었으면 종이가 찢겨져 나갔을지, 그리고 종이가 울퉁불퉁하게 운 게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지, 종현은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생각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진기 형. 진짜 많이 힘들었구나. 나때문에 형이 죽을만큼 아팠구나. 종현은 마구 떨리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또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길에서 네 친구를 만났다. 네가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내가 대신 인사를 했다. 네 친구가 혀를 차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갔다. 불쾌했지만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나를 동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괜찮은데. 정말로. …바로 며칠 전에 괜찮다고 했는데 사실 안 괜찮은 것 같다. …현아, 네가 무섭다고 버려버린 그 프라모델, 나랑 너랑 같이 만든 건데. …네 이름을 부르는 게 조금 두려워 졌다. …네가 내 생일을 기억했다. 너무 기뻐서 뭐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네가 기억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기쁜 날이다. 꼭 전부 다 찾아서 지금의 시간을 추억하며 함께 웃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돌아온 줄 알았다. 돌아올 줄 알았다. …내가 정말 아끼던 스웨터를 네가 찢었다. 이것 역시 네가 내게 선물했던 건데. …네가 네가 아니다.

종현이가… 종현이가 아니다.

진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종현은 눈물을 흘리며 거기서 끝난 일기장을 덮어 품에 끌어안았다. 지금 내가 아픈 것 보다 형은 훨씬 더 아팠겠지? 나때문에? 종현은 진기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내가 돌아왔으니까, 이제는 아프지 말고 여기 쓰여진 것 처럼, 함께 웃으며 그 시간을 묻어두자. 그러자… 그렇게 생각하던 종현은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 까무룩 의식을 잃었다. 손에 들고있던 진기의 일기장이 추락해 볼품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종현씨, 김종현씨!"
"아아…"


제 뺨을 치는 매서운 손길에 종현은 눈을 떴다. 눈 앞에 민호의 얼굴이 보여 종현은 무의식 중에 손을 들어 앙영, 하고 인사했다. 민호는 그런 종현의 상태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김종현씨,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나이? 몇 살?"


종현이… 일곱살이야. 민호는 종현의 대답에 소리없는 탄식을 뱉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절망적이었다.








"아… 다시 그대로… 또…"


진기는 헐레벌떡 뛰어가던 다리를 도로 멈추었다. 민호의 전화가 가져다 준 여파는 상당해서, 비겁하게 슬쩍 발을 빼 놓고 그가 돌아왔다는 소리 하나에 당장에 종현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던 자신의 꼴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걸려 온 전화의 내용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한 기분을 떠안겨주었다.


-미안해요. 괜히 기대하게 해서…
"아니요. 저 생각해서 해주신 건데요."
-다음에라도 다시…
"아니요. 다음에 종현이가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진기는 민호가 또 다른 말을 꺼내기 전에 급히 통화를 끝냈다. 더이상 종현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가는 전부 다 버리고 다시 종현에게로 달려가던 발걸음을 또 움직이게 될 것 같아서. 자신을 위해 포기했으니 조금만 견뎌보자고, 진기는 제 자신에게 몇번이고 속삭였다. 최면을 걸 듯. 그는 새로 얻은 원룸으로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 마다 가시밭길을 걷듯 제 발을 찢겨놓는 종현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울었다. 아프다, 현아. 내가 정말 너를 극복해 낼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 정말인가요. 제가 다시 어린애처럼…"


하아, 종현의 깊은 한숨이 민호의 마음을 대변했다. 찐득하게 늘어진 정적을 그 누구도 깨지 않았다.

눈치없는 민호가 진기와의 통화내용을 고스란히 종현에게 전했던 그 이후로도 종현은 몇번이고 아이와 어른 사이를 헤맸다. 엉엉 울며 진기를 찾거나, 혹은 차분하게 앉아 진기의 일기장을 하염없이 읽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가 아이이건, 어른이건,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의 신경이 오직 진기만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어서, 지켜보던 민호는 참 안타까웠다. 서로 그렇게 아끼면서 죽어도 서로 만나지 않는다니. 감성적이었던 민호는 종현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민호씨."
"예?"


어김없이 안타까운 종현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을 때, 종현이 민호를 불렀다. 민호는 얼른 눈가를 비비고 종현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잠깐, 종현의 다물어진 입이 열리지 않다 곧 잔잔한 말을 꺼냈다.


"저, 외출 좀 할 수 있을까요."











종현아,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종현은 혼자 나오고 싶다는 저를 한사코 말리며 따라나온 민호를 따돌리고 재빨리 비교적 한적한 곳으로 달려갔다. 저 멀리서 자신을 찾는 민호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될 때 까지 그는 달렸다. 마침내 자신도 전혀 모르는 곳에 다다랐을 때, 그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아 횡단보도도 잘 없는. 그래서 차들이 꽤 높은 속력을 내고 달리는.


나는 하루하루 너무 바빠서 내가 제대로 살고는 있는 건지도 모르겠더라.


종현은 모르는 척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가, 긴장에 굳은 발을 살살 풀었다. 쌩하고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가 위협적으로 귓가를 때린다. 종현은 묵직한 어깨를 휙휙 돌리고 숨을 가다듬었다. 


우리 얼굴 못 본지도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가네.


저 멀리, 적당한 크기의 대형차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너 보고싶다고 계속 울고불고 난리만 쳤었는데, 조금씩 시간이 흐르다보니 그래도 참을만 하더라.


그는 제 자리에서 몇번 통통 뛰다가 순식간에 차도로 뛰어들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한 여자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콰앙, 차의 크기와 속도에 맞는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몇 미터를 날아가 바닥으로 추락한 종현은 온 몸이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의식에 헛웃음을 뱉었다. 아, 머리가 너무 아프다. 너무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에이, 그래도 여전히 보고싶어. 변함없이.


종현은 어두워지는 눈 앞을 멍하니 보다, 영원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진기의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려온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종현은 항상 태양같던 찬란한 진기의 얼굴을 떠올렸다. 나의 태양… 나의 세상…… 내가 없어야 좀 더 잘 돌아갈……


너는 뭐하고 지낼런지 모르겠다. 여전히 음악 듣고 영화 보는 거 좋아하니? 그렇겠지? 엄청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니 여전 할 거야. 


누군가가 뒤늦게 부른 구급차가 한참 후에 도착했다. 바스라진 종현의 몸을 뒤집어 심장께를 짚어본 대원들이 고개를 젓는다. 이미… 단 두 음절의 말로도 그의 끝을 알 수 있었다. 넓게 퍼진 그의 피가 세상 넓은 줄 모르고 자꾸만 멀리 퍼져나간다. 마치 누구에게 닿으려는 듯.










종현아,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나는 하루하루 너무 바빠서 내가 제대로 살고는 있는 건지도 모르겠더라. 우리 얼굴 못 본지도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가네. 처음엔 너 보고싶다고 계속 울고불고 난리만 쳤었는데, 조금씩 시간이 흐르다보니 그래도 참을만 하더라. 에이, 그래도 여전히 보고싶어. 변함없이. 너는 뭐하고 지낼런지 모르겠다. 여전히 음악 듣고 영화 보는 거 좋아하니? 그렇겠지? 엄청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니 여전 할 거야. 아 진짜 보고싶다. 너무 보고싶어서 막 꿈에 너 나오고 그래. 현아, 너도 나 보고싶겠지? 나만 이렇게 애타고 힘든 거 아니겠지? 아 맞다. 네가 좋아하는 바나나킥도 사왔어. 맛있게 먹고 언젠가는 우리 꼭 서로 얼굴 보고 얘기하자. 보고싶어. 보…고 싶어…

진기는 봉긋 속아오른 작은 언덕같은 그 곳을 천천히 벗어났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힘겹게 풀을 헤치고 움직인다. 아, 울지 않기로 했는데. 진기는 어느새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을 훔치며 숨을 죽였다. 


종현아.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내겐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 * *

행복한 결말을 바라셨던 분들께 사죄드립니다. (해피엔딩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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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허류ㅠㅠㅠㅠㅠㅠㅠㅠ 독방에서 조각글 올려주신 것도보고 다 챙겨봤는데.. 이렇게 완결(?)도 써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정말 소재가 너무 좋아요 ㅠㅠㅠㅠㅠ 엔딩이 정말 먹먹하네요.. 금손작가님 ㅠㅠ 감사합니다! 잘 보구 가요~ 다른 작품들도 신알신해놓구 보고있습니다 :)
10년 전
독자2
헐이럴수가ㅠㅠㅠㅠㅠ종현아ㅠㅠㅠㅠㅠㅠㅠㅠ작가님짱짱ㅠㅠㅠㅠ엉엉너무슬퍼요ㅠㅠㅠ
10년 전
독자3
아대박 ㅠㅠㅠㅠㅠ박가님 진짜 아 대박 ....ㅠㅠㅠㅠ
10년 전
독자4
아...아...콰지모도에요 새드엔딩일줄은...ㅠㅠㅠ보다가 진짜 눈물 맺혔어요 너무 안타깝네요 둘다ㅠㅠㅠㅠ
10년 전
독자5
ㅠㅠ 새벽에 읽고 웁니다ㅠㅠ 현유야ㅠㅠ넘가슴아파요 여운이남네요ㅠ
10년 전
독자6
진짜 너무 슬퍼요ㅠㅠㅠ가슴이 미어지네요ㅠㅠㅠㅠㅠ감사해요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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