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너징어가 계단을 도망치듯 올라가버린 이후로, 형제들은 찌질하게 주방에서 울었었지.
다들 좀 진정이 되고나서야 과일 깎아 먹자고 너징어를 불렀어
너징어는 마지못해 눈치 보면서 방문을 열고 스물슬물 모습을 드러내
방문 앞에는 누가 봐도 운게 티가 나도록 눈이 새빨개진 백현이가 애써 웃으며 서있지.
징어가 그런 백현이를 보고 주눅이 들어서 몸을 움츠리니까 백현이는 그게 안쓰러워서 징어 손을 잡아
징어가 싫다고 손을 뒤로 잡아빼는데도 백현이는 끝까지 너징어의 손을 꽉 쥐고 놓지 않아.
백현이가 너징어의 손을 꽉 잡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그 뒷모습에 어지간히 고집이 덕지덕지 붙어있는지라, 너징어도 순순히 백현이를 따라 내려가지.
백현이는 너징어의 손을 억지로 잡다시피 해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징어가 피하지 않는 그 사소한 행동에도 너무 너무 감사해져서 울듯 말듯 입술을 삐죽거려
경수가 사과 깎아서 접시에 내려놓는데도, 너징어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덩그러니 말없이 거실에 앉아 있을뿐.
찬열이가 사과 자기 입에 밀어넣고는, 다른 사과 한조각을 집어 징어 손에 쥐어줘
징어는 그런 찬열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지, "걱정마. 독사과 아니야" 하는 찬열이 말에 너징어는 주춤거리며 조심스레 손에 들린 사과조각을 입안으로 밀어넣었어.
징어 입속으로 사과가 들어가는 걸 본 찬열이가 귤까지 까서 징어한테 내밀었지만, 징어는 선뜻 찬열이에게서 귤을 받지 못하고 찬열이 눈치만 보고있지.
아까, 백현이랑 찬열이가 자기랑 작은할머니랑 통화 했던걸 들었을거란걸 너징어도 이미 알고있으니까.
찬열이와 징어 사이에 귤을 두고 오가는 눈치를 물끄러미 구경하던 종인이가 대뜸 찬열이 손에서 귤을 확 뺏어가.
너징어가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뒤로 몸을 살짝 물렀는데, 찬열이 손에서 귤을 가져간 종인이가 귤을 조각내더니 한조각을 징어 입에 들이밀어.
징어는 싫다고 도리질 치면서 종인이가 들고있는 귤조각을 손으로 받아가려는데,
종인이가 억지로 징어 손 내리게 하고선, "아- 해." 하면서 입을 벌리라고 하는거야.
근데 마주한 종인이 눈이, 귤 받아먹기 전까지는 절대 비켜주지 않을거란 뜻이 확고해보여서 결국 징어가 입을 벌리고 귤을 받아먹어
설령 징어의 의견과 상관없이 억지로 먹인거라고 한들, 그마저도 종인이는 만족스러웠는지 그제서야 애기 같은 미소를 짓지.
다른 형제들이 징어 눈치 보느라 바쁘고, 너징어도 눈치보는 오빠들을 다시 눈치 보느라 가시방석만 같던 과일시간도 어느덧 끝이 나.
너징어는 방으로 올라가서 작은 할머니가 챙겨주신 트렁크에서, 세면도구를 꺼내.
고사리 같은 작은손으로 세면도구가 든 파우치를 들고 내려오는 징어를 준면이가 바라보고 서있어.
그리고는 너징어가 파우치에서 자기 칫솔을 꺼내들지.
그걸 본 준면이는 자기도 모르게, 미리 손에 들고 있었던 징어 칫솔을 등뒤로 감추어 버려.
한달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자기 손에 들린 칫솔을 사용했던 징어였는데
이제는 칫솔마저도 따로따로인거야.
너징어는 한대 얻어맞은 듯한 얼굴을 하고 계단 밑에 서있던 준면이를 고개 갸웃거리며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그대로 준면이를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가 버려.
왜 저렇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듯한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걸까, 의아해하면서도 그냥 화장실로 들어가버렸지.
너징어가 양치하는걸 준면이는 화장실 문가에 기대서서 거울을 통해 징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봐.
내일이면, 내일이면 또 너징어를 보내줘야만 하니까, 이번에는 얼굴을 좀 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너징어는 그런 준면이가 불편했는지 힐끔힐끔 눈치를 보면서 세수를 하지.
조그만 애가 세면대에 서서 어푸어푸 세수를 하는 뒷모습을 보고 준면이가 웃음을 터트려.
근데 그 웃음이 즐겁다기 보단, 자조적이고 자괴감이 들어보이는 듯한 웃음.
당연히 그럴수 밖에, 왜냐하면 한달전까지만 해도 너징어의 세수를 오빠들이 시켜주곤 했으니까.
얼굴에 로션까지도 착착 알아서 바른 징어의 뒷모습을 보며 준면이의 마음은 매우 복잡해지지.
징어가 화장실을 나와서 아직도 그러고 서있는 준면이한테 꾸벅 인사를 하고는 계단을 다시 올라가
스쳐지나가는 징어를 차마 돌아보지도 못하고 준면이는 눈을 감지.
어찌나 힘든지, 준면이의 속눈썹이 파르르르 떨릴 지경이야.
계단을 올라가는 너징어를 보며, 거실에서 빨래를 개던 경수가 "막내, 벌써 자게?"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해.
하지만 그런 경수에게 너징어는 잠시 시선만 줄뿐, 대답도 없이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겨 계단을 올라가.
경수는 그런 너징어의 옆얼굴을 바라보면서, 진짜 오랜만에 보는건데 목소리도 잘 안들려주네 하고 섭섭한 마음에 중얼거려.
그래도 곧 이내 입꼬리를 당겨 웃으면서 "자다가 무서우면 오빠방으로 와도 돼. 알았지?" 하고 너징어에게 말해.
경수의 말에도 너징어는 다시 멈춰 잠시 경수에게 시선을 줄뿐, 완전히 2층으로 사라져 버렸어.
2층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 징어의 모습에 애써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종인이랑 세훈이가 TV를 꺼버리더니,
슬그머니 바닥으로 내려와 빨래를 개는 경수의 옆구리를 하나씩 파고 들어.
경수는, "얘들이 왜이래?" 하고 당황해하다가도, 자기 옆구리가 축축하고 따뜻하게 젖어들어가니까,
옆구리에 얼굴을 파묻은 종인이랑 세훈이 뒷통수를 쓰담쓰담해주지.
"오빠들이..오빠들이 울면 어떡해? 그치? 세훈이랑 종인이 울지마, 뚝해. 막내가 보면 놀린다?"
하는 경수의 목소리가 아슬아슬하게 부들부들 떨리고 있어.
종인이랑 세훈이한테는 울지말라고 하면서도 정작 제 얼굴이 울음을 참느라 일그러져 가는것 조차 경수는 알지 못해.
TV를 계속 보다가 이제 올라가서 자라는 형들 말에 세훈이랑 종인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향해.
졸린지 눈을 비비는 세훈이에게 잘자, 내일봐. 하고 인사를 해준 종인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문득 너징어 방쪽을 쳐다봐.
자기 방 문고리에 손을 올려놓은채로 곰곰히 고민을 하는듯 보이던 종인이가 이내 입술을 꾹 깨물고 너징어 방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막내야, 자?..."
종인이가 조심스레 너징어 방문을 열고 들어가며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물었어.
문이 반뼘쯤 열리면서 불꺼진 너징어 방으로 들어간 한줄기 불빛에 얼핏 침대 위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앉아있는 너징어가 보였지.
불빛이 닿으면서 경기를 일으키듯 바르작거리던 너징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채로 뒤를 돌아보는거야.
이유모를 불안함과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너징어의 얼굴이 보이자, 종인이는 그대로 방문을 열어둔채로 뛰어 들어갔어.
너징어가 침대위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앉아서 덜덜 떠는데, 종인이는 영문을 모르니까 너징어의 어깨를 꾹 잡아 누르면서
"왜그래? 왜 그렇게 떨고그래..."
하면서 너징어에게 물었지.
하지만, 너징어는 아직도 종인이를 거부하고 싶은건지, 애써 종인이를 밀어내며 찍소리도 안해.
종인이는 그런 고집스런 너징어의 모습에 조금씩 화가 나기라도 하는걸까.
오들오들 떠는 너징어를 억지로 침대에 누르듯 눕혔어. 너징어가 싫다고 바둥거렸지만 종인이는
"빨리 자. 오빠가 있어줄게"
하며 억지로 너징어를 눕힌채로 등을 토닥토닥거리면서 너징어 옆에 비스듬히 누워.
너징어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칭얼거리면서 종인이를 밀어내보지만, 종인이는 오기 반 걱정 반으로 밀려나지 않고 끝까지 버텨
아예 너징어를 꽉 끌어안고 옆으로 누워버리지.
"알았다니까? 너가 싫어하는거 나도 다 안단말이야."
딱 너 잠들기 전까지만 옆에 있을게. 그러니까 이번 한번만, 딱 한번만 그냥 얌전히 자면 안돼?
너 자면, 나...그냥 갈게. 그러니까 딱 너 잠들기 전까지만 그거면 된단 말이야.
너징어도 처음에는 싫다고 바르작거리다가, 거의 애원하다시피 하는 종인이의 축축한 목소리에 힘이 쫙 빠져버려.
누군가에게 기도라도 드리는듯, 딱 잠들기 전까지만 이라고 되뇌는 종인이 목소리에
오늘 처음으로 미워보이기만 했던, 낯설고 무서워보이기만 했던 오빠들이 좀 불쌍해지는것 같았어.
분명히 종인이가 들어오기 전만 해도, 낯설고 무서워서 잠이 안와 오들오들 떨고 있어야 했는데
종인이가 들어와서 같이 누워주기만 했을뿐인데, 거짓말처럼 하나도 겁이 안나.
그제서야 좀 종인이 체취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고, 종인이가 등 토닥토닥거려주는 손길이 정겨운거 같기도 하고.
너징어는 속으로 꼭 오빠들에게 묻고 싶었던 말 하나가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데도
종인이가 토닥거려주는 손길에 천천히 침대로 몸이 가라앉는것처럼 무거워지고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 떠지기 시작해.
그러다가 결국 입안에서 웅얼거리만 하는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지.
오빠, 왜 나 버렸어?
-
다음날, 잠자리가 사나워서 잠을 설쳐서 그런건지 너징어는 일찍 일어나지 못했어.
저절로 떠지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분명히 어제 너가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옆을 지키고 누워있었던 종인이는 없었지.
밝은 햇살에 너의 방을 둘러보며 새삼 너징어는 "아, 내방이 이렇게 생겼구나" 싶어.
침대에서 내려와서 너징어의 방 한쪽 벽에 놓인 책꽂이를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어.
손가락으로 훑는데도 먼지 하나 없는게, 그전에 애들이 열불나게 청소한 보람이 있나봐.
아무튼, 예전에 읽었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쭈욱 훑어나가는데, 벌컥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너징어가 소스라치듯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어.
너징어가 놀랄거라고는 미처 생각치 못한건 마찬가지였는지, 문고리를 잡은채로 너징어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백현이
너징어가 백현이 얼굴에 몸에 바짝 들어간 긴장을 풀며, 후- 하고 숨을 내뱉는 소리에 백현이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미안, 막내 아직 자고 있는줄 알았지. 배 안고파? 지금 아침 시간 지나긴 했는데, 경수가 간식 만들고 있거든"
아래로 내려갈래?
하며 손가락으로 아래층을 가르키는 백현이 때문에 너징어가 고개를 끄덕끄덕거렸어.
너징어는 여전히 책꽂이 앞에 멀뚱멀뚱 서있고, 백현이 역시 문가에 멀뚱멀뚱 서있어.
너징어의 눈치만 보던 백현이가, 어색하게 애써 웃으면서
"ㅇ,안 내려갈래?"
해.
그제서야, 백현이가 너랑 내려가려 했다는 걸 알고 너징어가 후다닥 문가로 달려나와
너징어가 다가오자 백현이가 먼저 몸을 돌려서 방을 나가.
어제는 억지로라도나마 손을 잡고 내려갔는데 백현이가 먼저 등을 돌리니까,
너징어는 마음이 착잡하기도 하고, 뭔가 섭섭하고 서운한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먼저 등을 보이고 내려가는 백현이의 등을 졸졸 쫓아 내려가.
주방에서부터 디게 맛있고 좋아하는 냄새가 솔솔 풍겨
그래서 너징어는 너도 모르게 백현이를 제치고 후다닥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어.
쿵 하는 너징어의 발소리에 가스렌지 앞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경수가 놀라 뒤를 돌아보고,
막 식탁에 앉아서 발을 동동 흔들던 세훈이와 종인이도 옆을 돌아봤어.
근데, 아마 집에 너징어가 온뒤로 처음 보는게 아닐까 싶어.
너징어가 자기 또래처럼 해맑게 웃으면서 살짝 가빠진 숨을 몰아쉬며 주방으로 달려 들어온거야.
경수는 그런 너징어가 아이처럼 헤헤 웃으면서 서있는걸 홀린듯 멍하니 바라보다가, 핫케이크가 살짝 타는 냄새에 퍼뜩 정신을 되찾지.
종인이랑 세훈이도 너징어가 그렇게 웃는 모습은 상상도 못한건지 벙찐 얼굴을 하다가도, 웃음을 서서히 그치며 눈치를 보는 징어에게
"이리와! 여기에 앉아!"
하면서 자기들 옆자리를 팡팡 두드려.
징어는 웃음을 그쳤다가도 작게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식탁 의자에 앉아.
오랜만에 경수가 만들어주는 핫케이크 냄새에 기분이 좋아진 너징어였지.
아침이나 간식에 자주 자주 해주었는데, 작은할머니네에서는 도통 핫케이크 구경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경수는 너징어의 웃는 얼굴에 내내 좌불안석마냥 불안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그라지는게 느껴져
그래서, 웃으면서 막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핫케이크를 접시에 덜어 너징어 자리에 내려놔
징어가 핫케이크 한번 경수 얼굴을 한번 바라보면서 또 웃으니까, 경수는 따라 웃다가도 눈물이 날것만 같아서 먼저 등을 돌려 다시 가스렌지 앞으로 가서 섰어.
왜 칠칠치 못하게 눈물이나 질질 짜냐며 투덜투덜거리고는 손등으로 마구 제 눈가를 비볐지만, 그래도 비죽비죽 눈가를 눈물이 비집고 나와.
이제, 조금 있으면 너징어는 작은 할머니네로 돌아가야 할테니까
백현이는 딱 봐도 기분이 좋아져 보이는 너징어의 정수리에 웃으면서 메이플 시럽 병을 들어올려.
따끈따끈한 핫케이크를 마치 감동의 물결을 온몸으로 받은 듯한 너징어의 얼굴에 백현이는 너징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핫케이크 위에 메이플 시럽을 뿌려주지
그럼 너징어는,
"감사합니다-.."
하고 작은 목소리로 웅얼웅얼
너징어의 존댓말에 백현이가 쓰게 웃다가도 하는 수 없이 그냥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고 말았어.
너징어가 포크로 야무지게 핫케이크를 얌얌 먹고 있으니까, 세훈이랑 종인이가 그걸 바라보다가 너징어와 눈이 마주쳤지
너징어는 경수가 해준 핫케이크 특유의 향과 폭신폭신한 맛, 그리고 메이플 시럽의 달콤함에 기분이 좋아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었어.
그미소에 세훈이랑 종인이는 어쩐지 맘이 놓인 얼굴로 다시 핫케이크를 야금야금 베어물기 시작했지.
작은 할머니가 방금 톨게이트를 빠져나왔다고 문자가 왔어.
그문자에 준면이의 마음은 다시 착잡해졌지.
준면이가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너징어의 짐을 챙기기 시작하니까 다른 형제들도 감이 왔나봐.
다시 헤어져야하는 시간이란걸.
아까 핫케이크를 해먹는 동안, 찬열이랑 준면이는 나가서 장을 봐왔거든.
분명히 너징어가 부족함 없이 잘 지낸다는걸 알면서도, 미안하니까. 같이 있지 못하니까
하염없이 자꾸만 무언가를 퍼주고 싶은 맘에,
정작 같이 살때는 잘 사주지도 않았던 큰 인형이랑 과자들을 주렁주렁 사서 돌아왔어.
징어 품에 인형을 안겨주고 난 준면이가, "이제 징어 가야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너징어는 인형을 꼭 끌어안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거려.
준면이가, 첫날에는 드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너징어의 트렁크를 들고 신발을 신지.
경수는 준면이랑 찬열이가 사온 과자가 든 봉투를 들고 나가고,
찬열이가 억지로 너징어를 끌어안다시피 안아들고 밖으로 나가.
동네에 진입중이라는 작은 할머니의 차를 기다리고 있어.
분명히 징어가 올때는 빨리 차가 나타났음 했는데, 이젠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차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맘이 들지.
찬열이가 안아든 너징어도 인형만 끌어안고 있을뿐 별다른 말이 없어.
그건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
세훈이랑 종인이는 벌써부터 눈물이 날거 같은걸 꾹 참으며 백현이 옆구리에 매달려 있었지.
아, 저기 작은 할머니 차가 보인다.
징어 얼굴 안까먹게 오래오래 징어와 마주보고, 징어의 작은 손을 만지작거리던 준면이가 작은 할머니의 차를 보고 너징어의 손을 꽉 잡아.
너징어는 찬열이 품에 내려서, 작은 할머니 차에서 내린 기사 아저씨에게 먼저 인사를 하곤 차문을 열고 내리는 작은 할머니 품에 안겨.
준면이가 트렁크를 기사 아저씨께 전해주고, 경수도 들고 있던 과자 봉지를 건네주지
짐이 자동차 짐칸에 실리고, 기사아저씨는 다시 차에 오르셨어.
이제 정말 헤어져야할 시간.
이번에는 또 얼마나, 헤어져 있어야 하는걸까.
작은할머니가 먼저 차에 오르시고, 그 뒤를 너징어가 올라.
그리고 뒷좌석 창문을 내려.
오빠들은 그런 너징어를 바라보기만 할뿐.
차마 입을 뗄 수 가 없는거지.
이상황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하지만, 너징어는 여전히 오빠들이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리는듯 올려다 보고 있고.
결국 백현이가 한걸음 나오더니 열린 창문 사이로 너징어의 손을 꼭 잡아 쥐어.
"막내야.. 또 봐. 알았지? 가서 잘 지내고, 잘 먹고 잘 놀아야해."
백현이 말에 너징어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끄덕,
울고싶어도 이미 백현이 얼굴이 울음 참느라 일그러진 얼굴이여서 울수도 없어.
백현이가 놓아지지 않는 손을 겨우 겨우 바들바들 떨어가면서 놓아.
너징어는 금세 떠나가는 백현이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지.
그때 경수가 급하게 집에 들어갔다가 뛰어나오더니, 창문 사이로 무언가를 건네.
손 한뼘은 넘을것같은 편지 뭉치.
얼떨떨해하면서도 너징어가 그 뭉치를 받아드니까, 경수가
"오빠가, 막내 생각 날때마다, 쓴 편지야. 오빠 보고 싶으면, 그러면 그때 꼭 읽..어봐.."
경수가 처음에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는데, 뒤로 갈수록 속에서부터 터지는 울음에 말을 버겁게 더듬거리면서 뱉었어
너징어는 경수가 준 편지 꼭 부둥켜 안고나서, 애잔하게 두볼을 타고 흐르는 경수 눈물을 작은 손으로 훔쳐줬어
경수는 그런 징어 손길에 웃으면서 제손으로 쓱쓱 눈가를 비비면서 몸을 뒤로 물렸어
이제 떠나야하는 징어한테 자기 눈물을 닦게까지 하는건 정말 아닌거 같아서.
세훈이랑 종인이도 동생한테 잘가라고 인사해야지.
백현이가 자기 옆구리에 매달린 종인이랑 세훈이의 등을 살짝 떠밀며 말했어.
그러니까 종인이랑 세훈이가 마지못해 꾸물거리면서, 안녕- 하고 손을 살살 흔들었어.
너징어는 그런 종인이랑 세훈이를 향해, 작게 "응. 안녕" 하고 인사를 했지.
그걸 보니까 세훈이랑 종인이는 또 눈물이 날것만 같았나봐
백현이 품에 홱 얼굴을 또 묻어버렸어.
찬열이가 창문 사이로, 징어손을 잡으면서
"어떡해, 벌써 우리 아가 보고 싶을거 같다. 정말 보내주기 싫은데" 하면서 중얼중얼
근데 찬열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너징어는 듣지 못하고 무슨 말을 했냐는듯 찬열이를 올려다 봤어
그러니까 찬열이는 또 아니라고 고개를 젓더니,
"아가. 아프지 말고 몸 건강히 또 다음에 보자"
하지.
너징어는 찬열이 말에, 울듯한 얼굴로 고개 끄덕끄덕거리면서.
오빠도...하고 웅얼거렸지만 찬열이가 듣지 못하고 손을 빼면서 한걸음 뒤로 물러났어.
너징어는 눈물이 터질것만 같아서 입술을 앙 깨물었지.
작은할머니가, "오빠들이랑 인사 다했으면 이만 가자" 하시는거야.
너징어는 알았다고 고개 끄덕거리면서 준면이를 쳐다봤어.
아직 준면이 오빠한테는 아무말도 듣지 못했는데,
준면이가 그런 너징어의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막 출발하려는 차에 창문으로 덥석 손을 집어 넣었어.
바짝 너징어의 등을 끌어안아 창문을 사이에 두고 껴안듯 안았지.
그리곤, 이내 천천히 준면이가 뒤로 물러났고, 작은 할머니가 출발하자는 말에 기사 아저씨는 차를 몰고 집 앞을 벗어나기 시작했지.
너징어는 끅끅거리다가 끝내 엉엉 울음을 터트렸어.
준면이가 하는 말에, 더이상 울음을 참을 수 없었지.
창문을 사이에 두고 껴안듯 안은 준면이가, 물기 어린 목소리로
"오빠가, 오빠가 막내 보내서 미안해. 이렇게 막내 가게 해서 오빠가 정말 미안해."
그래도, 오빠는 우리 막내 정말, 정말....정말 많이 사랑해.
오빠가, 오빠가 막내 정말 많이 사랑해.
그러니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리고, 이렇게 징어 혼자 보내는 못난 오빠 용서하지 말고 살아야해. 알았지?
아직 어린 너징어에게 준면이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한건지는 다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분명한건 물기어린 준면이의 목소리가 아주 슬펐다는 것과 어제 오늘 오빠들한테 어색하게 대할 수 밖에 없었던 너징어 자신이 미워졌다는 것.
너징어가 탄 차가 멀어지자 마자, 준면이는 곧바로 등을 돌려서 성큼성큼 집안으로 들어가.
다른 형제들은 너징어가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있다가, 성큼성큼 걸어가는 준면이 뒤를 곧바로 따라 들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준면이의 뒤를 부랴부랴 쫓아갔는데, 쾅 하고 코앞에서 준면이 방문이 닫혀버리지.
종인이랑 세훈이가 준면이 방을 쿵쿵 두드리면서, 형아아- 하고 앙앙 울어대.
왜 우냐고? 글쎄, 슬퍼서인가 아님 화가 난듯한 준면이 행동 때문에 그런걸까.
찬열이가 앙앙 울어대는 종인이랑 세훈이를 안아들면서, "형아가 피곤해서 그래. 우리는 방에 올라가 있을까?" 하면서 계단으로 향해.
종인이랑 세훈이는 찬열이 어깨에 얼굴을 묻고는 서럽게 엉엉 울어대니까
찬열이 마음도 쫌 그렇다. 그치?
경수가, 준면이 방문을 똑똑 두드리면서 "형, 괜찮아?" 하고 물으며 서있는데
백현이가 조용히 경수 팔을 잡아 거실로 끌고 나가.
의아한 얼굴로 자기를 쳐다보는 경수에게 백현이는 들릴듯 말듯 작은 한숨을 폭 내쉬면서
"형이, 괜찮을리가 있겠냐? 형이 막내 똥기저귀 갈아주면서 키웠는데"
우리 맘도 이렇게 찢어지는데, 준면이 형 마음은 어떻겠어.
이미 새카맣게 타들어가 흔적도 없을걸
백현이가 한탄을 하듯 중얼중얼거리는 말에, 경수도 이내 수긍을 하면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듯 자리에 앉았어.
숨소리마저 조용히 내쉬면서 눈을 감으니,
얼핏 준면이 울음소리가 들리는것만 같은 기분도 드는것 같다.
그래, 우리가 무슨 잘못이겠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대군부인) 이것마저 대군쀼 코어임ㅋ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