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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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아마 거의 일 년 반인가 전 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종인이 피 떡이 되어 집에 돌아오더니 겨우 몸이 낫게 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새 직장을 구했다며 이야기를 건넸다. 처음에는 본의 아니게 사나운 인상 탓에 늘 시비에 잘 휘말리고 했던 종인이기에 이제야 마음잡고 번듯한 직장이 생겼나보다 축하했던 백현은 늘 평일이고 주말이고 밤이 되면 득달같이 누군가의 호출을 받더니 밖으로 나가 돌기 시작하는 종인을 보며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김종인 너 도대체 어디에 취직했냐?"
처음에는 혹시나 애가 어디에 무슨 일이 있나싶어 걱정스러워 물어봤지만 종인은 무덤덤하게, 평소와 다를 바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냥. 이상한 데는 아니고 아는 형네 가게서 경호원."
언제나 그렇듯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종인에 백현은 그냥 클럽 같은 데에 취직했나보다. 그땐 종인의 말대로 취객과 싸우다 저렇게 되었나보다 의심하지 않았었다. 네가 애도 아니고 고등학교 때처럼 또 사고 쳐서 잘리지 말라고 잔소리만 할 뿐 이상 한 곳이었다면 분명 무언가가 변했을 텐데 늘 변함없는 종인의 모습에 안심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보통 종인은 저에게만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 보면 늘 조폭이라고 하는 인간들은 문신을 세기고 나이대도 아저씨들이 대부분에 입도 험하고 옆에는 늘 연장을 챙겨 다니고 술 냄새, 담배냄새, 여자냄새에 쩔어 살으니 조폭과는 오로지 TV로만 안면을 트고 백현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늘 집에 올 때면 찜질방이나 목욕탕이라도 다녀오는 건지 말끔하게 몸을 씻고 편안한 복장을 하고 들어오는 종인이 사실은 처음부터 저 몰래 조폭의 우두머리격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줄은-
단지, 그랬던 백현이 지금에 와서 제 동생 김종인이 조폭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건 눈앞에 자신과 종인이 처한 현실 때문이었다.
그 나이에 지가 무슨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다고 겨우 24밖에 먹지 않은 놈이 행동대장이니 조직에서 두 번째 라느니란 이야기는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뻥같이 들렸지만 저 말이 진짜구나 했던 건 갑자기 병원에 불려가 이게 뭔가 했더니 뜬금없이 칼을 맞아 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더 지나야 깨어난다는 종인의 병실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어깨들의 말과 종인의 병실에 왔다가 간 검사와 경찰 때문. 사람이 일어나질 않으니만큼 검사와 경찰은 몇 마디를 백현에게 물어보다가 수확이 없을 것이라는 걸 알았는지 곧 가버렸지만 무려 조직명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신 경찰 덕분에 백현은 종인이 어느 조직에 속해있는지, 조직에서 어느 정도의 서열을 차지하고 있는 지까지 확실히 알아버렸다. 검사가 가자마자 무어라 대답했냐며 다음번에 찾아오면 이렇게 저렇게 말하라고 친절하게 말해주는 인상이 더러운 떡대의 말을 듣고 아예 확인사살까지 받아버렸고. 덕분에 백현은 참담한 심정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다 늦어버렸구나. 제 인생에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란 새끼가 조폭이 되었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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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집에서 한창 꿈을 꾸며 잠을 자고 있을 때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 온지도 벌써 반나절이 넘었다. 뜬금없는 사고소식에 알고 보니 내 동생이 조폭이요 하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연달아 전해 듣게 된 백현은 수술 후 열두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는 종인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단 한숨도 자지 못해 시야는 시뻘게지고 머리는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멍하지만 누워있는 종인을 보니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제 오늘 벌써 이틀 째 하루 종일 연락을 두절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를 나가지 않아 분명히 핸드폰으로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은 와있을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조차 아르바이트가 잘리거나 말거나 지금은 머릿속은 온통 종인의 문제로 가득 차서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말 그대로 백현은 아무 일도 말도 할 수 없어 정말로 돌아버리기 일분 전이었다.
"…….미친놈의 새끼. 이럴 거면 차라리 말을 하지. 그냥 같이 나하고 일하지."
어쩐지 근 일 년 사이에 종인이 벌어온 돈의 액수가 점차 커져나간다 싶더니.
백현은 늘 종인이 생활비랍시고 돈을 가져오면 생각만 하고 의심할 줄 몰랐던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전의 문제는 전의 문제고 당장 백현이 직면한 것은 종인이 언제 깨어나느냐 와 깨어난 후의 문제였다.
다행히 의사에게는 나름대로 수술은 성공적이고 후유증도 많이 남지 않을 거라 대답을 받아내긴 했지만 스물네 살에 사시미 칼에 찔려서 수술까지 한 녀석이 앞으로는 이런 일을 안 당할까.
머리로는 TV에서 본 것처럼 위험한 직업이구나. 애가 살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생각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친 상황을 보니 도저히 앞으로 종인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볼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서투르게 종인한테 그만 두라하기엔 조폭이 단기 알바처도 아니고 가능할 리도 없고.
보호자용 침대에 누웠다 앉았다 종일 고민을 해도 나오지 않는 방안에 백현은 종인아. 김종인. 종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해? 라고.
그리고 이것은 오래전부터 자신과 종인 사이에서는 매우 흔한 구도였으니.
'그러고 보면 참 달라지지 않았지. '
예나지금이나 생각을 하는 건 백현이고 일을 벌이는 건 종인이라는 생각에 백현은 쓴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새삼스럽게 갑자기 이 상황에서 떠오르는 과거에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놈의 고아라는 출생신분덕택에 늘 고아원에서 학대를 받고 자라다 안 되겠다 싶어 도망칠 계획을 세웠던 13살의 변백현과 도망치다 걸려서 제 형을 죽이려 드는 원장을 우발적으로 때렸던 게 원장이 심장마비가 와 원장을 죽이게 된 12살의 김종인의 신세가 그대로라니.
엿 같은 현실이라 정말로 없는 놈은 뭘 해도 없는 놈인가 회의가 밀려들어 오지만 그래도 포기할 순 없어. 제 형제를 그렇다고 외면할 수는 없기에 백현은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종인은 달라지지 않았고 그때의 관계에서 어쩌면 백현과 종인은 서로만을 바라본 채 비정상적으로 자라 이 모양 이골이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너는 내 동생이니까. 부모도 형제도 없는 내게 네가 유일한, 마음으로 피를 나눈 형제니까.
일단은 일어나면 생각하자.
일어나서 대화를 나누고 종인을 설득하든 혹은 종인과 같은 길을 가든 무얼 하든 그 때 생각해야 하리라.
복잡한 머릿속을 추스르며 백현은 생각했다.
망할 놈의 자식. 일어나기만 하면 진짜 한 달 내내, 아니 일 년 내도록 잔소리를 할 테다. 다시는 속이지 못하게, 걱정시키지 못하게 만들 테니까.
"얼른 일어나라. 종인아."
너 없으면 나는 정말 못살지도 모르니까. 사실은 네가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건 내 쪽이니까.
일단은 종인이 일어나는 게 가장 급한 일. 그 후의 일은 모두 다음으로 미뤄도 될 것이었다.
설사 모든 것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간다 해도. 오래전의 지옥 같던 시간으로 회귀한다 해도.
그 이후 종인은 약 반나절이 지난 후였나. 반나절을 조금 넘긴 직후 바로 깨어났던 것 같다.
자정이 다 된 시각이었나. 제공되는 환자식을 먹어치운 후 잠들어 있는데 백현형.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엎드려 누워있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백현은 흠칫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너 일어났어?"
놀라서 말도 못하고 눈이 시뻘개진 채로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는데 피식. 약간은 파리해진 안색으로 종인은 중얼거렸다.
일어났어. 놀라게 해서 미안해, 형. 이라고.
'새삼 참 오래간만의 대화구나. '
백현은 씁쓸해 보이는 종인에 순간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을 뻔했지만 주먹을 쥐고 고개를 돌렸다.
…….그 전에 할 얘기가 있으니까.
한참을 침묵하다 겨우 화를 누르고 종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야."
이런 말은 식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던져야 하는 질문이니.
"설명은……. 좀 있다 할게. 그보다 왜 여기에 엎드려서 자. 보호자용 침대위에서 자지."
"야! 지금 그게 문제야?!"
눈을 뜨면 곧장은 화를 안내려고 했건만.
사실은 자신도 잠이 덜 깨서 얼떨떨한 상태지만 자기는 칼에 찔려 죽을 뻔한 주제에 일어나자마자 지금 할 말이 그것뿐인가.
설명을 좀 있다하긴 뭘 좀 있다 해 미친놈아. 대뜸 평소처럼 저부터 챙기는 종인에 백현은 허 하고 숨을 내뱉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울화가 치밀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도대체가 이놈의 자식은 내가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말을 안 하려고 했더니. 새끼야. 넌 내가 우습냐?"
"형."
"…….개새끼."
종인에게는 몇 번 보이지 않았던 쎄한 표정으로 툭 말을 내뱉자 종인의 표정이 굳는 게 보였지만 백현은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말로는 형형하면서 뒤로는 다 일 저지르고, 다치고, 죽을 뻔하고. 내가 네 형이 맞아? 네가 날 형으로 생각하긴 해?
"미안."
종인은 곧장 사과했지만 미안은 얼어 죽을. 백현은 종인을 비웃듯 저를 비웃으며 저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종인에 환자복을 틀어쥐려던 걸 참고 푹 고개를 숙였다.
빌어먹을. 이게 다 저가 능력이 없어 그런다며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져버린 건 백현 자신이니.
……넌 또 이번에도 그때처럼 나 때문에 그런 막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백현은 몇 번이고 종인이 미안. 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지만 한숨이 멈추지 않아 고개를 내저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은 더는 종인을 추궁할 수도, 비난 할 수도 없어 속으로만 울분을 삭혔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이 정리가 되는 것인지-
'김종인, 이 멍청한 녀석아. 조폭이 되었다고 했으면 차라리 인간이 획 돌아버렸거나 아니면 이제 알았냐며 화를 내버리던가. '
종인은 백현이 무어라 말할 여지조차 주지 못하게 하려는 지 백현이 말이 없자. “미안해. 내가 잘못했으니까 가지 마, 형.” 언제나 그랬듯 백현에게만 약한 모습과 약한 목소리로 백현을 잡았다. 열두 살, 저를 따라 고아원을 나가겠다 말했을 때의 모습처럼 여전히 백현의 앞에서만 순해선 사실은 양 거죽을 뒤집어쓴 사자새끼주제에 늘 자기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건 백현인데도 종인은 계속 사과했다.
" 형 잘못 아니야. 그냥 내가 선택한 거니까. 미안. 걱정했을 텐데 내가 잘못했으니까. 미안. 형."
이라 말하며.
"…….어떻게 할 거야."
설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눈을 뜨니 장소는 특실로 보이는 병원이고 제 침대위에 엎드려 자는 백현을 보니 상황은 이미 다 까발려질 데로 까발려진 것 같아 이제는 원망을 멈추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뜸 묻는 백현에 종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작게 또다시 미안. 미리 말을 던진 후 조심스레 백현에 말했다.
"나 일 그만 못 둬. 내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어. "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답이지만 어쩔 수 없나.
백현은 실망한 얼굴로 단호하게 대답하는 종인에 다시 되물었다.
"도망쳐도…….?"
"……. 해외로 도망쳐도 잡아올 거야."
"멀리 나가도?"
"……. 아마도 못 찾을 곳은 없을 테니까."
"이 조직이 그렇게 무서운 데냐."
"……. 그냥 조폭이 아니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미안, 형." 종인은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밝히겠다며 종인은 놀라 눈을 크게 뜬 백현의 머리통을 끌어안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그냥 평범한 조직 아니야."
씁쓸한 듯 미소를 지었다.
백현은 종인의 말을 듣자 처음엔 이해하지 못한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설명해줄게. 종인의 말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냥 평범한 조직이 아니면 뭔데. 조폭도 특별한 게 있냐? 날이 서 말을 던지자 응. 종인이 덤덤하게 말함에 슬쩍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아무래도 소시민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라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를 것 같았다. 도대체, 너는 나한테 무엇을 얼마나 숨기고 살았던 것인지.
"……. 내가 속한 거. 한국 조직 아니야."
"그럼 뭐. 야쿠자야? 마피아야?"
"아니. 삼합회."
"뭐?"
"삼합회. 중국에서 네 번째인가 하는 곳이야."
무덤덤한 말투지만 그렇게 말하는 결론은 결국 조폭도 그냥 조폭도 아니고 삼합회 소속이라 나는 그만둘 수 없다 이니.
미친 새끼.
백현은 종인이 말하자 툭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야쿠자나 마피아나 조폭이나 삼합회나 다 그 놈이 그 놈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인 건 알지만 삼합회라고 한다면 그 중에서도 제일 질이 나쁠 텐데.
"…….내가 한국지사 지부장이야. 지금 보스의 오른팔이고. 그래서 그만둘 수 없어."
스물네 살 주제에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그런 고속승진을 할 수 있는 걸까.
도대체 무슨 짓을 했고 어떤 짓을 했기에 이렇게 되었나.
백현은 빠르게 머리를 돌렸지만 하나님. 정말로 벌 받을 걸 알지만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으로 왈칵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아마도 종인이 자신 모르게 저질렀을 범죄 때문이 아니라, 종인이 저를 속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종인이 앞으로 더 위험하겠다 싶은 생각 때문.
"괜찮은 거야?"
할 수 있는 말이 이딴 것뿐이라니. 비참했지만 응. 웃는 종인의 모습에 백현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안 괜찮은데 내가 어떻게 해야 돼. 반쯤 멘탈이 붕괴되어 병실을 서성이자 "미안, 형."다시 들리는 목소리에 "입 다물어." 화날 때만 나오는 강압적인 말투로 종인에게 말했다.
다른 데도 아니고 삼합회면 종인의 말대로 멋대로 조직을 관두는 건 이제 불가능한 일이니 손가락 하나 잘리는 정도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종인의 조직은.
'차라리 어린 시절 도망쳤던 고아원이 낫지. 고아원은 조폭이라도 아니지. '
저가 있던 그 고아원과 관계자들은 저지른 짓이 있기에 막상 둘이 고아원에서 벗어났을 때 저를 좇아오지도, 막상 경찰에 종인이 붙잡혀갔을 때도 평소에 했던 짓 들 때문에 더 추가로 고소하거나 판결 후 항소를 하지도 할 수도 없었지만 조폭이라니. 삼합회라니. 스물네 살 주제에 삼합회 조직 간부라니.
".거기 보스는 중국 사람이야 한국 사람이야? 그 사람도 한국에 있는 거야..?"
"중국 사람이야. 젊어. 왔다 갔다 하긴 하지만 요즘엔 오면 꽤 오래와 있어. 한국에서 유학하다가 가서 한국말도 곧 잘하고."
"……. 어쩌다 들어가게 된 건데."
"고등학교 때."
내가 사고 쳤을 때.
"........"
"우발적인 거 아니었어. 그때. 테스트 받았어. 그 날."
"그럼 그 때 도와줬다던 국선 변호사……. 국선 변호사가 아니었던 거야?"
"어.. 그 때.. 그냥 싸우다 눈에 띠어서 그때부터 사실은 일 시작했어. 형이 싫어할 테니까. 안하려고 했는데."
".......돈 때문에?"
"대학. 가야하잖아."
대학?
"너.."
"미안."
결국엔 내 등록금 때문이었나.
하. 당시에는 납득가지 않았던 사실들이 듣고 보니 짜 맞춰지는 것 같아 백현은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자신의 착한 동생이 매번 아무 일도 안했는데 사고에 휘말리나. 애가 왜 늘 아무것도 안했는데 몸에 상처를 달고 다니나. 같은 학교도 아니고 자신은 공부한다고 공부해서 취직한답시고 늘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는데 그게 처음부터. 예전부터 시작되었던 일이었다니.
그냥 휴학하게 내버려 두지. 대학 같은 거 안가도 되니까 못가더라도 내버려 두지.
사실 네 인생보다 내 인생이 더 나은 것도 소중한 것도 아닌데 내버려 두지.
"……. 내가 돈 오백에 널 팔아 넘겼구나."
"형."
"……. 오백도 아니네. 학비 매번 낼 때마다 네가 보탰으니까..요즘엔 아예 네가 넣어주고.. 아무것도 모르고 널 팔았네. 내가."
"…….그런 거 아니야. 어차피 형한테 안 써도 다른 데 다 나가니까."
"시발새끼.."
시발 새끼. 망할새끼. 씹새끼.
속이니까 좋냐? 좋아? 사람 멍청이 만드니까 좋아?
분명히 아까 전 까지만해도 머릿속이 차게 식어간다고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떠올리니 어쩐지 알 것만 같은 과거의 일에 되는 대로 욕을 내뱉으며 뚝뚝. 백현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내가 너를 위해 희생했다면 나았을 텐데. 그랬을 텐데-
고작 열 살 이전에 대신 학대를 당했던 것의 대가로 종인은 열 둘. 그 어린 날 추웠던 겨울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에게 얽매여있는 것 같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바보같이 그런 것도 모르고 난-'
언제부터인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 같은 현실은 결국 나 때문이었나.
백현은 링거를 꽂은 채 저를 안아 달래려는 종인을 밀치고 왈칵 말을 쏟아내었다.
"누가 그러라고 그래. 누가 네 멋대로 네 인생 바쳐서 날 구하래. 누가 나 벌어 먹이래. 알았으면 안 그러는데. 알았으면 같이 조폭이 되든 같이 뭐가 되든 같이 책임지는데..!"
"미안."
"그 놈의 미안하다는 소리 좀 그만해!"
알고 있어?
세상에서 나를 제일 비참하게 만드는 건 예전에 개 패듯이 날 팼던 고아원의 원장도. 학교를 다닐 때 거지라고 놀렸던 같은 반 애들도 아니라 늘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너야. 늘 나에게 좋은 걸 다 주고 혼자 짊어지고 사는 너야. 그래놓고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 너야.
머릿속으론 이젠 안 된다. 무엇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되돌려 놓아야한다 오래전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조각 맞춰지며 이제야 겨우 그림이 보이기 시작해 백현은 그리 생각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해?
열두 살의 그날부터 종인은 이미 백현만을 보고 백현만을 중요시하고 아무것도 괘념치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게 본인은 행복이라 말하지만 결여된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데 괜찮아? 그걸로 만족해? 이게 정말 옳은 거야? 백현은 생각했다.
"괜찮으니까. 울지 마, 형. 나 안 힘들어. 괜찮으니까."
종인은 그렇게 말하지만 내가 안 돼. 내가, 안 괜찮으니까.
무서워도 어쩔 수 없다. 두려워도, 설사 어떤 결과를 초래해도 좋다. 종인은 아마도 알게 된다면 저가 그랬듯 저에게 배신감을 느끼겠지만 이건 안 돼. 더 이상은 안 되는 거니까. 어쩌면 종인이 그랬듯 종인에게만 무엇이든 해주고 집착하는 저도 비정상이라 생각하지만 백현은 제 일을 말하면서도 너무도 덤덤한 종인에 결심했다.
내가, 돌려놓을 테니까. 다 돌려놓을 테니까.
"너희 보스…….언제 와?"
"우리 보스? 글쎄."
뜬금없이 무슨 질문이야?
울음을 그치고 모르는 척, 그냥 넘어가는 척 며칠을 견디고 종인의 병실을 지키고 있는데 은근히 묻자 의아해 하는 종인에 백현은 쓴 웃음을 지으며 속내를 숨겼다. 짐짓 엄한 척 표정을 숨기고. 마음을 속이고.
"어떤 인간인지 봐야 그래도 .. 안심하니까."
"글쎄..어떤 사람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기왕이면 형하고 마주치게 하고 싶진 않은데.
이제는, 어쩐지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종인이 왜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지만 이미 늦었어. 네가 그렇듯 나 역시 너에게는 무엇이든 해주고 싶으니까.
"종인아. 우리 너 다 낫게 되면 맛있는 거 먹자."
"응.."
"……. 너 옷도 이제 나한테 안 숨겨도 되니까 비싼 거 입고 다니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그렇게 살자. 형이 능력이 없어서 못해줬던 거니까. 그러니까."
"형."
"…….미안. 그러니까 같이 그렇게 살자."
미안해. 종인아.
사실은 나도 너와 같이하고 싶은 게 많지만 형이 제대로 해준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응.그러자. 그렇게 하자. 형."
천천히 저를 향해 웃는 종인을 보며 백현은 생각했다.
나는 이제 다시 시궁창으로 빠져도 좋으니까 너는. 너만은 조금이나마 행복해지길. 다시 제 행복을 찾길.
바랐다.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해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절망적인 지옥이고 해도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사담 |
am 시리즈는 삭제했어요 사실 저같은경우에는 댓글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는터라 am시리즈도 댓글에 연연하지 않을줄 알았는데, am 시리즈에 애착이 생겨버린건지, 공개된 공간에서 글을 쓰다보니까 다른 작가님들과 댓글수가 차이가 많이나서 쑥쓰러워서 그 글을 내놓고있기가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삭제했어요 오해 없으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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