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우현 이 개새끼가 또.
또다, 또. 여자를 그렇게 많이 사귄 건 아니지만 매번 만남을 가질 때마다 유독 나와 사귀는 여자들은 얼마 가지 않아 내가 무슨 축구공도 아니고 뻥뻥 차대기를 바빴다. 이번에는 좀 오래가나 싶었다고 생각할 찰나에 헤어지자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익숙한 문장에 이제는 화도 아닌 그래, 역시나.라는 체념만 할 뿐이었다. 여자들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사실 만남을 가지는 것도 상대방이 고백을 해오기 때문에 거절하지 않고 만나는 거라 미련 따윈 없었지만 그래도 만나는 여자들이 이상하게 족족 짧으면 1주일 길면 2주 안에 돌아서 남우현이 좋다는 이유로 이별을 고했던 여자들이었다. 그렇다고 남우현이 단 한번도 고백을 받아들인 적은 없었다. 그래도 기분이 언짢은 건 사실이었다.
능글맞고 항상 주변 사람들과 금방 잘 어울리는 녀석만에 뛰어난 사교성 덕에 녀석 주위에는 항상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이런 녀석에게 여자들이 줄줄이 따라다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여자들이 남우현에게 간다는 말은 사귄다는 말은 아니었다. 나를 뻥 차 버린 여자들은 하나같이 짜고 치는 듯 똑같이 대답하였다. '우현 오빠' 또는 '우현이'가 좋다라는 말을 남기며 가버리는 여자들에게 나도 똑같은 말을 매번 되풀이했다.
또 남우현?
미안하다며 뒤돌아서 가는 모습들에 한숨을 쉬며 다짐을 했다. 어차피 마음에도 없는 사람들 받아주면서 불쌍하게 차이 지나 말자며, 더 이상 불쌍해지지 말자며. 그래 남우현에게 가고 싶으면 가라, 가.
턱을 괸 채 좀 전에 축구공이 되어버린 장면을 한참을 생각하며 멍하니 교수님의 강의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고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울리는 약한 휴대폰 진동소리에 깜짝 정신을 차리며 입에 물고 있던 볼펜을 툭 떨어트렸다. 미처 줍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울리는 휴대폰을 재빨리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었다.
받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그닥 반갑지 않았다. 때문에 열심히 부르르 몸을 떨며 진동하는 전화를 가차 없이 수신 거절을 했다. 잠시 잠잠해진 폰은 또다시 한번 몸을 떨며 진동하였지만 슥 밀어 수신 거절을 다시 눌렀다.
-왜 거절해?
-지금 강의 들어?
-오늘 뭐 해?
전화가 안되니 문자로 연속으로 보내오는 녀석에 괜히 입을 삐죽거렸다. 온통 물음 투성이 물음에 나는 지체 없이 자판을 두들겼다.
-너 안 볼 거야.
이렇게 속 좁은 인간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조금 전 일을 생각하면 지금은 녀석의 얼굴이 좋아 보일 리는 당연히 없었다. 사실 속 마음은 베베 꼬였지만 티 내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도 상하기도 하고. 특히 남우현 앞이라면 더더욱 자존심이 상해 이런 날이면 녀석의 전화나 문자를 일방적으로 끊거나 씹어버렸다. 딱 그런 날만.
문자를 보내자 데릭- 거리며 휴대폰 배터리 사용량이 적어 충전시키라는 알림이 뜨자 배터리 여분을 챙기지도 않았고 저녁에 성열과의 약속 때문에 휴대폰을 사용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소모를 자제하기 위해 지체 없이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르며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는 방금 전 보낸 남우현에게 보낸 답장과 휴대폰을 끄고 난 뒤에도 녀석에게 온 몇 개의 부재중과 문자들을 시간이 꽤 지났을 때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도 차였다는 말에 성열이는 쯧쯧 혀를 세차게 차며 고개를 절로 저었다.
"안 물어봐도 뻔하다. 뻔해."
"시끄러워."
"허구한 날 맨날 차이니깐 그러지!"
"엿."
이거나 먹어라. 안주를 질겅질겅 씹으며 가운뎃손가락을 추켜올리니 후루룩 국물 먹는 듯이 맥주를 마시며 똑같이 기다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아, 진짜 유치하다, 유치해.
아무렇지 않게 손가락을 들었지만 지금 내 머릿속은 남우현 때문에 잡다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불과 2시간 전 일들로 말이다.
'혹시 네가 김성규야?'
성열이를 만나기 위해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었다. 음악 소리 때문에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하니 옷자락을 잡는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서 우뚝 멈춰 서 이어폰을 빼 옷자락을 잡은 손가락을 한번 쓱 바라보고 목소리 주인공의 얼굴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네?'
'네가 김성규냐고요.'
'아, 네. 근데 누구신데…….'
반말을 하세요?라고 물으려고 했지만 곧이어 하하하 웃어버리는 상대방에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하하하.'
'저기요.'
'네가 그 김성규라고? 잘 차이게 생겼네.'
'뭐라고요?'
잘, 잘 차여? 기분이 확 나빠 기분 나쁘게 웃어젖히는 남자때문에 얼굴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한참을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하하 웃어 보이던 상대방은 다시 한번 씩 웃어 보이더니 하는 소리가,
'남우현 알죠?'
'모르겠는데요.'
'아는 거 다 아니깐 남우현 번호 좀 알려줘요.'
'글쎄, 저는 그런 사람 모른다니깐요?'
남자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조금 뻔뻔한 얼굴을 하며 눈웃음 지어 보였다. 이 남자 자세히 보니 생긴 거는 멀쩡히 잘 생겼으면서 하는 짓이 진짜 게이 같게 왜 이러는지 짜증이 났다. 이제 녀석 때문에 여자들에게 차이는 것에 이어 남우현을 좋아하는 남자, 그러니깐 내 눈앞에 있는 게이에게 번호를 가져다가 받혀야 할 번호 셔틀까지 돼버릴 기세라니. 막무가내로 자신의 휴대폰을 내미는 억지스러운 남자의 행동에 짜증스러운 한숨이 목까지 올라왔다.
'남우현 좋아하면 직접 가서 번호 따세요.'
내밀던 휴대폰을 무시하며 그대로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가던 길을 걸었다. 혹시나 남자가 끈질기게 따라올까 봐 뒤를 힐끔 바라보니 남자는 따라오기는커녕 웃으며 나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잘 가라는 말인가? 진짜 뭐야, 저 남자.
그리고는 남자는 입으로 무언가를 뻐끔거리며 말하였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이미 저 남자로 인해 기분이 나빠 금세 고개를 돌려 가던 길을 갔다.
"야 또 뭐 고민 있어?"
"야, 이성열."
"오냐."
"내가 남우현 보다 못 하는 게 뭐야?"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어."
성열이는 맥주를 크게 들이마신 후 땅콩을 입에 쏙 집어넣으며 양손을 양쪽으로 넓게 펼쳐보이며 말하였다.
"남우현이 이-만큼이면 넌 이만큼이라고 하면 이해못하겠지?"
"엿."
양쪽으로 크게 벌리던 양손을 그대로 작게 만들어 동그란 구멍을 만든 성열이는 내 얼굴 쪽으로 쭉 내밀어보였다. 그러니깐 남우현은 가진것도 많고 얼굴이라던지 인간관계라던지 잘난 것도 많은데 난 그에 비해서 못생기고 보잘 거 없다. 이런 해석으로 밖에 되지 않았다. 이성열은 네가 생각하는게 맞아! 라며 짝짝짝 박수를 치며 웃어재꼈다.
"너 남우현이랑 초등학교때부터 친구잖아."
"그게 뭐."
"그럼 옆에서 지켜본 김성규 네가 더 잘 알겠네. 남우현이 얼만큼 잘났는지."
안다, 알아. 암, 그럼 알고 말고 씨발.
"여자들도 눈이 있을거 아니야. 무뚝뚝한 너보다는 네 옆에 항상 붙어 있는 성격좋은 남우현이 더 눈에 들어왔나보지 뭐. 솔직히 여자들 입장에서는 남우현이 생긴게 귀여우면서 남자답게 생겼다고 하잖아."
"내가 뭐가 무뚝뚝해."
"넌 너를 너무 몰라."
"알아."
"알기는 개뿔. 생각해보면 성격도 정 반대인 놈들이 여태까지 잘도 친구사이 하는거 보니깐 신기하기도 하고."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는 성열에 주먹을 쥐며 확 때리는 시늉을 하니 진짜 쫄았는지 방어 제스처를 하며 히익! 거리는 성열이의 얼빠진 모습에 픽 웃어보였다. 지도 방금 전 모습은 쪽팔렸는지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어느새 우리의 대화는 남우현을 주제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무튼 너네 둘이 보면 신기하다 이 말씀이다."
"왜 이야기가 갑자기 이렇게 흘러가냐?"
"몰라. 아무튼 말이다. 넌 무뚝뚝하만 고치면 될 거같은데.
성열이의 말대로 확실히 남우현에 비해 난 애정표현도 잘 하지 못하였다. 워낙 성격이 소심한 구석이 의외로 많아 좋아도 좋다는 말 대신 빙빙 돌리거나 오히려 툴툴대며 좋은데 싫은 척을 하였다. 고치고 싶지만 태어난 성격이 이러니, 22년째 살고 있는데 고치기는커녕 어째 나이를 하나 둘, 먹어가며 표현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쑥스러워졌다. 남우현은 그에 비해 나와는 아주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교성 좋고 애교많은 녀석에게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녀석은 항상 주위에 사람이 많은데 난 아니었다. 있는 친구라곤 남우현과 앞에서 흐흐 웃으며 맥주를 마시는 이성열이 전부였으니까 말이다.
술 주제로 더 이상 남우현을 주제로 하고싶지 않았다. 머리를 한번 절레 저으며 털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이제 일어나야 할 것 같아 오후에 가방에 넣고 전원을 꺼버린 휴대폰이 생각나 가방을 뒤적여 전원을 켰다.
부재중 8건과 쏟아져 오는 문자에 휴대폰이 부르르 떨며 한참동안 진동을 하였다.
-안본다니? 무슨 소리야. p.m12. 32
-왜 전화 안받아? 전원 왜 꺼져있어?p.m 12. 33
-야 김성규 p.m 2. 15
-아직도 폰 안켰어? 야야야 p.m 4. 11
-야 이 시간까지 폰도 꺼놓고 지금 뭐하는거야? 야 p.m 7. 54
-뒤질래? 당장 폰 안켜? p.m 9. 30
-씨발 불안하게. 너 진짜 뒤진다 p.m 10. 12
문자를 쭉 훑어보니 남우현에게서 온 문자들로 가득 하였다. 키패드를 눌러 어떻게 답장할까 잠시 생가할 찰나에 지잉- 울리는 휴대폰에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당연하듯이 남우현에게 온 전화를 잠시 고민할 필요도 없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전화가 끊겼다. 분명 화났을텐데. 녀석이 싫어하는 행동중에 가장 진절머리 내며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연락두절되며 잠수를 타는 것이였다.
먼저 걸까? 다시 한번 터치했을때 몸을 진동시키며 울리는 휴대폰 진동에 이번에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귓가에 가져다 대었다.
「 김성규 너 진짜 죽는다.」
받자마자 들은 첫 남우현의 말이었다. 정말 화가난 듯이 낮게 으르렁 거리는 녀석에 목소리에 좀 미안해 뭐라고 말을 꺼내야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잠수타는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아,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어디야.」
"여기 우리집 앞에 있는 포장마찬데. 나 성열이랑 같이 있어."
「너 움직이지 말고 거기에 가만히 있어.」
제 할말만 하고 끊겨버린 전화에 멍하니 끊긴 휴대폰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목소리에 화가 담겨있었다. 잠수타는거 싫어하는 건 알지만 이렇게 으르렁이면서 화낼 일인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김빠진 남은 맥주를 입에 털어넣었다. 아, 맛없어.
"남우현 화났어."
"왜?"
"내가 잠수 타서."
"오."
"잠수타는거 진짜 싫어하는데 아예 씹어버렸거든."
"오늘 일 때문에?"
"어. 뭐, 그렇지."
그래도 오늘은 좀 기분이 많이 나빠서 그런거니깐 이해심 많은 남우현 네가 이해 좀 해 줬으면 좋겠다. 너도 내 입장이 되어 보라고 멍멍이 닮은 개 자식아.
그냥 현성이 행쇼했으면 좋겠다
쓰고 바로 올린거라서 오타는 확인 못했어용
나중에 확인해야쥐..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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