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S OF MEMORY
"…누구세요?"
"……."
도대체 몇번 째일까,
네가 나를 까맣게 잊어버린게.
*****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요즘따라 자주 약속을 잊고, 간단한 물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찬열아, 나 더워. 그…, 그거, 그거 해줘.'
'그거?'
'응, 그거 있잖아. 이름이 뭐였지? 더울 때 팔 움직여서 하는거.'
'…부채?'
'아, 맞아. 부채질 좀 해줘!'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백현이와 나는 서로를 보고 한참이나 웃어제꼈다. 별걸 다 잊어, 변백현. 치매냐? 그렇게 말하면 백현이는 나를 밉지않게 노려보곤 했다. 그 땐 그마저 좋기만 하고 행복한 추억이었지만 이제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중 같이 백현이 부모님의 기일이 되어 같이 납골당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차를 가지고 백현이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약속시간이 한참이 지나도 백현이는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보았지만 몇번을 해도 받지를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백현이의 집까지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지만 시간이 지나도 백현이는 나오지 않았다. 기일 전 날에는 항상 잠도 못자고 새벽같이 납골당에 가는 백현이라 일부러 일찍 나왔건만 혹시 내가 오기 전 이미 혼자서 간 것일까, 해서 급히 엘레베이터 버튼을 눌렀지만 곧 뒤에서 들리는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누가 이 시간부터 찾아오나 욕하면서 나왔는데 너였어?'
'…백현아, 너 왜…….'
'응?'
반쯤 열린 문 안쪽에는 백현이가 서있었다. 이제 막 일어난 듯 졸려보이는 눈을 비비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백현이에 내가 잘못 알았던 것일거라 여겨 손에 쥔 핸드폰으로 날짜를 보았지만 오늘이 확실했다.
'백현아,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
'오늘? 오늘이 무슨 날이야?'
'…오늘 8월 22일이야.'
'그게 왜?'
눈을 비비던 손을 내려 여전히 졸린 눈으로 나를 보는 백현이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등 뒤에서 엘레베이터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있었다. 조용히 얘기하자, 들어가도 돼?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고 응, 하고 백현이가 대답했다. 집에 들어가 앉으라며 바닥에 있는 옷가지들을 급하게 치우는 백현이를 보고 서있었다. 백현아, 작게 백현이를 불렀다. 응? 하고 대답하는 백현이는 여전히 급하게 거실을 치우고 있었다.
'오늘 너희 부모님 기일…, 이잖아.'
'…….'
'…까먹고, 있었어?'
급하게 움직이던 백현이가 굳은 것 마냥 치우던 것을 멈추고 허리를 피고 일어났다. 멍하니 허공을 보고있던 백현이가 내 얼굴을 한번 보더니 말릴 새도 없이 자고 일어난 그 상태에 신발도 신지않고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이미 1층으로 가있는 엘레베이터 버튼을 미친듯이 몇번이고 누르더니 뒤돌아 계단으로 가려는 백현이를 뒤늦게 쫓아나와 붙잡았다. 급해보이는 얼굴을 하고있는 백현이의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여있었고 내 얼굴을 보자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백현이를 안아 등을 쓸어주며 작게 말했다. 괜찮아, 백현아. 괜찮아.
'나, 흐으, 미쳤나봐. 어떻게…, 찬열아, 어떻게 이러지…?'
'괜찮아, 백현아. 죄책감 갖지마. 괜찮아.'
'미쳤어. 흐, 찬열아….'
그렇게 나에게 안겨 한참을 울던 백현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 준비를 한 후 납골당을 데려가자 백현이는 부모님의 사진 앞에 주저앉아 어린애같이 소리내어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백현이가 부은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더이상 잊어버리기 싫다며 해결책을 얻어야겠다고 했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백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기에 병원으로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병원에 가자 여러가지 검사를 했고, 검사를 마친 후 의사의 앞에 앉은 우리는 의사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갑자기 건망증이 심해졌다고 하셨죠?'
'네, 왜 그런거에요?'
'…검사 결과로 보아서는 건망증이 아니라,'
'…….'
'알츠하이머 입니다.'
'…네?'
'알츠하이머 초기증세로 보이네요.'
'그건, 치매 아닌가요?'
'마찬가지죠.'
'…아직 스물 한살밖에 안됐는데 무슨 치매가,'
'치매의 원인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고령이지만, 꼭 그것만 있는건 아니에요.'
치매의 원인은 약 70여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는 유전적인 것도 있고, 교통사고 같은 외상으로 인한 것과 뇌졸증, 고혈압, 당뇨병이나 우울증도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때부터 영원히 행복할 줄만 알았던 우리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
처음에는 건망증과 같이 사소한 것을 잊던 백현이가 서서히 많은 것들을 잊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그런 얘기를 들은 후 거의 모든것을 메모하고, 반복해서 기억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던 백현이의 옆에서 한시라도 떨어지지 않기위해 다니던 직장에도 휴가를 냈고, 백현이의 집에서 생활했다. 나는 그 시간마저 백현이와 함께여서 너무 행복했고, 그래서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백현이는 매일 보는 나를 제외한 많은 것들을 날이 갈수록 잊어갔고, 그럴수록 나는 백현이가 나를 잊어버릴까 걱정하게 되었다. 다행히 백현이는 매일같이 보는 나를 쉽게 잊지 않았고, 이기적이게도 나를 잊지 않은 사실에 안심하던 나는 곧 나를 원망하는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난 니가 너무 싫어.'
'…응?'
'너, 몇 달 전에 여자만나고 다닌거 내가 다 봤어.'
'뭐?'
'내가 다 봤다고!'
알 수 없는 말을 한 백현이가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나에게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가만히 던지는 물건들을 맞고만 있다가 백현이가 울고있다는 것을 깨닫고 밀쳐내는 손을 꼭 잡고 백현이를 품에 안았다.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는 백현이를 더 세게 껴안았다. 한참이나 작은 손으로 나를 때리던 백현이는 울다 지친듯 잠이 들었다. 아직도 젖은 눈을 한 백현이를 침대에 눕히고 방을 나와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안녕하세요. 변백현환자 보호자에요.'
-아, 네. 무슨 문제 있나요?
'그게…, 백현이가 자꾸 이상한 얘기를 해서요.'
-이상한 얘기요?
'네, 없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막 화내고 울고, 그러네요.'
-…아, 아마 작화증일 거에요.
'작화증, 이요?'
-네. 없었던 일을 있었던 것처럼, 경험했던 것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믿는 거에요. 기억을 잊다보니 그 잊은 기억을 채우기 위해 그런 증세가 나타날 수 있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 건가요?'
-딱히 어떻게 하라고 말씀 드릴 수는 없구요, 그냥 환자분이 안정을 취하실 수 있게 도와주시는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대충 인사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조용히 방 문을 열어 눕혀준 그대로 잠든 백현이의 얼굴을 보았다. 언젠가부터 그랬듯이 백현이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울었다. 백현아, 우리 백현이 얼마나 힘이들까. 얼마나 많은 기억을 잃었기에 그래. 기억을 만들어낼거면 좋은 기억을 만들어내지, 왜 그런 나쁜 기억을 만들어냈어.
그리고 나는 그 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백현이가 나에 대한 안좋은 기억을 만들어내고, 그로인해 백현이가 힘들어하고 더 아파한다면,
차라리 나를 기억에서 지워주었으면 좋겠다고.
그 뒤로도 그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있지도 않았던 일들에 사과하고, 변명했다. 그럼 백현이는 이렇게 울다 지쳐 잠드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렇게 힘들던 날이 계속될 무렵 어느날 갑자기 백현이가 모든 기억이 돌아왔었다. 그 날의 백현이는 자신이 기억을 잃었던 것과 그동안의 일들을 다 알고있는 듯 했다. 아침밥을 다 준비하고 백현이를 깨우려 방에 들어가자 백현이는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무릎에 얼굴을 묻고 앉아있었다. 등을 들썩이는 것을 보고 백현이가 울고 있는것을 알아채 금방 다가가 백현이의 얼굴을 들게 했다.
'백현아, 왜그래. 내가 또 뭐 잘못했어? 미안해, 내가 다 미안,'
'니가 뭐가 미안한데?'
'…….'
'뭘 잘못했다고 있지도 않은 일 때문에 나한테 사과하는건데?!'
'백현아,'
'나 진짜 죽고싶어, 찬열아.'
'그런 말 하지마.'
'기억이 사라지는 것도 너무 슬픈데,'
'…….'
'그래서 내가 널 아프게 하는게 더 슬퍼….'
다시 무릎에 얼굴을 묻는 백현이를 보다가 백현이가 울면 언제나 그랬듯이 백현이를 안아주었다. 그제서야 터지듯이 소리내어 우는 백현이가 얼마나 힘든지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머릿속에 텅 비어있는 것 같았어.'
'…….'
'너랑 함께였던 기억들이 사라져 가는게 너무 슬프고 괴로워.'
'괜찮아, 앞으로도 함께일거야.'
'…이렇게 기억이 차츰 없어지는 것처럼, 난 서서히…, 죽어가겠지.'
'백현아.'
'찬열아, 만약에, 정말 만약에라도, 내가 죽으면 꼭 건강한 사람 만나.'
'변백현, 그런 말 좀 하지마!'
'근데 그 전엔 안돼. 나 죽기 전에는 내 옆에 있어줘.'
'…….'
'나 정말 나쁜건 아는데, 그래도 내 옆에 있어줘.'
'…….'
'미안해. 이런 나라서…, 너무 미안해.'
목이 메어 아무런 대답도 못했지만 마음 속으로 네가 기억 속에서 나를 지우더라도 언제까지나 네 옆에 있겠다고 몇번이고 말하며 전보다 더 마른 몸을 껴안고 한참이나 울었다.
*****
"…누구세요?"
"……."
도대체 몇번 째일까,
네가 나를 까맣게 잊어버린게.
앞으로 내가 더 힘들것을 예고해 백현이의 기억이 돌아왔던 것인지 백현이는 그 때 이후로 더 빠르게 기억을 잃고, 그리고 나에 대한 존재마저 잊었다. 어느정도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생각보다 침착하게 백현이에게 말했다.
'백현아, 나 찬열이야. 박찬열.'
'…….'
'너랑 사랑하던 사이였어.'
그렇게 말하면 백현이는 경계하던 눈빛은 없애고 수긍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렇게라도 나를 기억하는 백현이를 보며 행복해 하다보면, 백현이는 또 보란듯이 나를 잊었다. 그러면 나는 또다시 나를 설명했고,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백현이에게 나를 알렸다.
"백현아, 난 박찬열이야."
"…박, 찬열?"
"응, 너랑 사랑하는 사이야."
나는 평소와 다를바 없이 백현이에게 말했지만, 백현이는 평소같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을 듣고는 백현이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리고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상처받을 것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게이라고?"
"…백현아,"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너 누구냐니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잊어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잊지 않고있던 전과는 다르게 백현이의 머릿속에서 내가 완전히 지워졌다. 더이상 백현이에게 나를 알릴 방법이 없었다. 전에 나로인해 아파하던 백현이를 보며 나를 온전히 잊어주길 바라기도 했지만, 이렇게나 괴로울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치 못한 거대한 괴로움에 나를 제어하지 못하고 백현이에게 다가가 백현이의 어깨를 잡았다.
"나 박찬열이라고, 니가 사랑하는 박찬열!"
"……."
"또 내가 기억안나? 몇 번을 말해줘야 잊지 않을건데?!"
"……."
"나 너무 힘들어. 이제 지쳐.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해,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냐고!"
"흐으…,"
미친 것처럼 백현이의 어깨를 잡고 흔들자 놀란듯 백현이가 손부터 시작해서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내 눈에 고인 눈물 때문에 보지 못했던 백현이의 얼굴이 눈물이 떨어짐과 동시에 또렷하게 보였다. 이미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백현이는 두려운 얼굴을 하고 나를 보고있었다. 나는 내 얼굴에 잔뜩 묻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백현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미안해, 내가 미쳤나봐."
"……."
"미안해, 백현아. 미안해…, 나보다 더 힘들었을텐데, 흐으……."
기억이 돌아왔을 때, 울음섞인 목소리로 자신의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던 백현이가 떠올랐다. 전보다 더 크게 울음이 터져나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백현이의 손을 잡고 덜덜 떠는 백현이의 배 쯔음에 얼굴을 묻고 소리내어 울었다. 지금 내 앞에서 떨고있는 몸은 분명히 백현이가 맞는데, 우는 나를 달래주지 않았다.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를 잊은 백현이는 자신의 앞에서 미치광이처럼 굴던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았고,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면 내 눈치를 보며 침대 구석쪽에 앉아 그 때처럼 몸을 떨었다. 나 또한 그런 백현이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하고 그저 백현이가 잠이 든 후에나 조용히 방 안에 들어가 백현이의 얼굴을 몰래 보기만 할 뿐이었다. 몇 시간 정도 잠든 백현이의 옆에 앉아있다가 다시 방을 나왔다. 소파에 앉아 집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서 백현이와 함께했던 모습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살짝 고인 눈물을 닦아내고 책꽂이 앞으로 가 백현이가 완치되면 같이 보기위해 쓰던 일기장을 꺼내어 펴보았다. 일기는 백현이가 나를 온전히 잊어버린 날까지만 쓰여있었다. 테이블 앞으로 걸어가 앉으며 예전의 썼던 일기들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그 때는 그마저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한 기억이었다. 조금 읽다가 맨 마지막에 썼던 일기의 다음페이지를 펼치고 테이블 위에 있는 펜을 집어들었다.
백현아, 많이 힘들지.
다 거뜬히 견뎌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봐.
나는 다 기억하는데, 니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꼭 내가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아. 내가 기억하는게 다 잘못된 것 같다.
정말 힘들다. 너무 힘들어.
꼭꼭 채워썼던 전과는 달리 절반도 채우지 않은 노트를 그냥 덮어버렸다. 아침에 밥 차리려면 일찍 자야하는데. 이미 숫자 4를 가르키는 시계를 보다가 소파에 누워 잠이들었다.
*****
평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어제였는데, 오늘은 너무 달랐다. 매일 집에서 나오지 않고 백현이는 방에서만, 나는 거실에서만 있었던 날들과 정말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내가 잠든 사이에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지금 병원이고, 백현이는 내 옆에 있음과 동시에 내 옆에 없었다.
"백현아…."
백현이의 손을 잡고 눈물을 꼭 참던 나는 백현이의 이름을 부르다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내가 니 옆에 있는게 그렇게 싫었어?
…그렇게 무서웠어?
"경찰한테 연락 받았어요."
"……."
"블랙박스 영상 보니까, …백현씨가 뛰어든게 맞대요."
내가 잠든 사이에 백현이가 밖으로 나가 도로에 뛰어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곳곳에 피가 잔뜩 묻은 백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눈을 감고있었고…, 숨도 쉬지 않았다.
백현이의 얼굴을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 한참을 백현이의 손을 잡고 울었다.
장례식을 치렀지만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장례식장에 나 혼자 덩그러니 앉아 백현이의 사진만 보고 있었다. 발인을 할 때까지 나는 계속 백현이의 곁에 있었다. 모든 절차가 끝난 후에도 나는 내 집이 아닌 백현이의 집에 갔다. 요 몇일간 아무 말도 못해줬는데. 아니,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줬어야 했는데.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백현이를 잡고 사랑한다는 말을 질리게 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눈물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또다시 쏟아져 나왔다. 아직도 저 방문을 열면 백현이가 약간은 불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을 것 같았지만 마음 한 켠에 백현이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는지 방 문을 열어보지 못하고 하릴없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내 옆에 있어줘.'
백현아, 네 옆에 있었어. 떠날 생각도 없었고, 나는 정말 언제나 네 옆에 있었어. 근데 너는 왜, 왜 이렇게 나를 떠나갔어. 너무 울어 퉁퉁 부은 눈을 손으로 문대어 눈물을 닦아냈다. 테이블 위에 여전히 자리잡은 일기장을 집어들었다. 저번에 한 장을 넘겨 왼쪽 페이지에 썼던 것이 생각나 그 오른쪽 페이지에 쓰기 위해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나는 내가 쓴 것이 아닌 글을 발견했고, 그 후로 일기장을 백현이라도 되는 양 껴안고 한참이나 울었다.
찬열아, 또 내가 너를 아프게 했어.
이런 선택을 하게 되서 너한테 너무 미안해.근데 나는, 너를 아프게 하다가 아무 기억 없이 죽는 것 보다 차라리 이렇게 기억이 돌아왔을 때 너랑 행복했던 기억들 껴안고 죽고싶어. 미안해, 찬열아. 나 때문에 너무 힘들었지? 다음에 태어나면, 정말, 꼭 건강하게 태어날테니까…, 다음 생에도 날 사랑해줘. 다음번엔 니가 나 힘들게해도 나도 다 참고 견딜게. 솔직히 지금 좀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잠든 니 얼굴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서 좋다. 내가 기억이 돌아왔을 때 혼자일까봐 너무 무서웠는데, 너 봐서 행복해. 나도 지금 행복하니까 너도 꼭 행복해. 나 잊어도 되니까, 꼭 행복해야해.
사랑해, 찬열아. 어떻게 표현해야 내 마음이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사랑해.
나도 사랑해, 백현아.
조금만 기다려, 곧 만나러 갈게.
^^;
찬열이가 따라 죽었을까요 살았을까요..
상상은 여러분께 맡김니당
브금에 사용된 노래 듣다가 갑자기 수애 나온 드라마..그거 생각나서 ㅎ
치매에 걸려서 기억을 잃는 백현이를 쓰고싶었는데..이건 뭐;
사람이 죽는다는건 너무 슬픈일인것 같아요 그게 누가 되었든지 간에..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나갔을 때의 슬픔의 크기가 얼만큼이었는지 정말 표현할 수가 없지만
저는 이거 쓰면서 계속 울면서 썼네요..ㅠㅠ 근데 제가 전달하고 싶은게 잘 전달 되었을런지 모르겠어요..
저는 글 쓸때 오래 붙들고 있으면 점점 더 내용이 이상해지는 정말 정말 평소보다 글이 너무 안써져서 몇일간 이것만 붙들고 있었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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