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아!"
"…어."
"이거 어떠나?"
"괜찮다."
티를 꺼내어 자신의 몸에 대보던 백현이 찬열 몰래 쓴웃음을 짓더니 다시 티를 걸어두었다. 그리고 옆에 멀뚱히 서있던 찬열에게 다가가 그냥 나가자, 하고 조용히 말했다. 백현이 꺼내보았던 티를 힐끔 본 찬열이 와, 안사노? 하고 물었다.
"별로 맘에 안든다, 가자."
"…알았다."
박찬열은 항상 이랬다. 제 나름대로 무뚝뚝한 성격에 성의있게 대답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박찬열의 성격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아니,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찬열을 좋아하게된 2년 전부터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무뚝뚝한 성격탓에 여자들을 거들떠도 안본다는 사실에 바보같이 더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몇개월동안 나는 박찬열을 짝사랑했고, 얼떨결에 고백까지 하게 되었다. 찬열아, 내 니 많이 좋아한다. 내랑 사기도! 황당한 내 고백에도 아무런 표정변화가 없던 박찬열은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매사에 무뚝뚝한 박찬열을 위해 박찬열의 몫만큼 더 표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찬열아, 저거 니한테 진짜 잘 어울리겠다."
"맞나."
"응, 함 입어봐라."
"됐다, 귀찮다."
그렇게 별 의미없는 대화를 나누며 돌아다니던 우리는 저녁이 되서야 헤어졌다. 찬열이가 나를 보며 들어가라고 눈짓했고, 아파트 입구에 선 나는 뒤를 돌아 찬열이를 보았다. 언제나 이름을 부르며 찬열아, 사랑한다, 좋아한다, 너와 힘께여서 너무 행복하다,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나는 내가 처음 박찬열을 좋아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박찬열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박찬열은 2년을 넘게 사귀는 동안 단 한번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잘 가."
"어."
"사랑한다!"
"…알았다. 간다."
박찬열의 몫만큼 더 그를 사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그것은 처음 뿐이었다. 2년이 지나니 나는 나 혼자만 하는듯한 사랑에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아직 찬열이도 나를 많이 좋아할거다, 하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때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박찬열은 갑작스런 내 고백에 아무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인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박찬열은 애초에 나를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찬열아."
-어.
"오늘 뭐하나?"
-오늘…, 암껏도 안한다.
"그럼 오늘 좀 만나까?"
-왜?
"…왜냐니, 우리가 만나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나?"
-그건 아니지.
"어디서 만나까?"
-…오늘 꼭 만나야겠나?
백현은 핸드폰을 손에 쥔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제가 연락하기 전에는 웬만해서는 먼저 연락하지않기 때문에 매번 그랬듯이 이번에도 약간 자존심이 상하지만서도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찬열은 오늘 꼭 만나야겠냐고 물어온다. 백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왜, 오늘 암껏도 안한다며."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다.
"……."
-만나자하면 만나고.
"됐다, 쉬어라."
이미 옷을 다 입고 모든 준비를 다 마친 후 신발을 신고있던 백현이 신경질적으로 벗으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나 만나는게 피곤하냐고 묻고싶었지만 제가 아는 찬열이라면 그렇다고 하고도 남기에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이렇게 되어버린 자신이 안쓰러워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아냈다. 백현과 같이 자취방에 사는 룸메이트인 경수가 백현이 다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니 찬열이 만나러 안나가나?"
"어, 취소됐다."
"그럼 와서 밥이나 먹어라. 니 밥도 퍼줄게."
경수가 공기를 들고 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을 꾹꾹 눌러 가득 담아 자신의 밥이 놓여진 맞은편에 올려두었다. 의자에 앉은 백현이 반찬을 둘러보며 경수에게 말했다.
"경수야, 햄 없나, 햄?"
"햄 구워주까?"
"어."
"알았다."
경수가 스팸햄을 얇게 잘라 굽기 시작했다. 백현이 젓가락으로 밥풀 몇개를 떼어내 입에 넣고 젓가락을 물고있었다. 피곤하다며 만나기 싫어하는 기운이 역력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박찬열 이 나쁜놈."
"왜, 또 찬열이랑 싸웠나?"
"싸운거 아니다."
"그럼?"
"새끼가, 피곤하다고 만나지 말잔다."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던 경수가 고개를 돌려 서운함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을 한 백현을 보았다. 작게 웃은 경수가 다시 앞을 보며 백현에게 말했다.
"보고싶어서 만나자고 한거 아니가?"
"…보고싶다, 당연히."
"그럼 니가 집으로 간다하지 그랬나."
"내가 찬열이 집가서 뭘하나."
"얼굴 봐야지."
…그럴걸 그랬나, 작게 말한 백현에게 경수가 접시에 햄을 담아 가져왔다. 오자마자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려는 백현을 경수가 저지하며 뜨겁다, 식혀서 먹어라! 하자 햄을 식히던 백현에게 경수가 말을 이었다.
"밥먹고 갔다와라."
"별로 안좋아할텐데."
"그럴리가 있나, 사귀는 사인데."
박찬열은 그럴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걸 알면서도 찬열이 보고싶은 백현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경수도 밥을 먹기 시작했고, 백현은 경수가 눈치채지 못하게 서둘러 먹었다.
*****
"니 이럴라고 만나지 말자고 했나?"
"그런거 아니다."
"그럼 뭔데!"
"…그런게 있다."
"나는 피곤해서 못만나고, 여자는 만날 수 있나?!"
"그런거 아니라고 했잖아!"
"지금 니 왜 소리 지르는데?!"
서둘러 밥을 먹고 나온 백현은 그냥 연락없이 찬열의 집에 찾아왔다. 익숙하게 도어락으로 손을 뻗었지만 문은 안쪽에서 먼저 열렸다. 찬열의 얼굴이 보일거라 생각했던 백현은 순식간에 표정을 굳혔다. 문을 열고 나온것은 찬열이 아니라 처음보는 여자였다. 밖에 서있는 백현을 보고 여자가 놀라는 소리를 내자, 백현이 그리 보고싶어했던 찬열이 현관문 쪽으로 왔다. 여자는 찬열에게 인사를 하고 백현을 한번 쳐다보더니 백현을 지나쳐갔고, 그때부터 백현과 찬열의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니한테 내는 뭐가?"
"……."
"내랑 대체 왜 사귀는데."
"……."
"내 좋아하기는 하나?"
이렇게 말하면 당연히 좋아한다는 말을 해줄거라 생각했던 백현이 곧 후회하고 만다. 언제나 이런 기대는 저에게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줄 뿐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찬열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백현이 혼잣말처럼 작게 말했다. 역시, 니랑 내는 아닌가보다.
"찬열아."
"…어."
"우리 그만 헤어지자."
"……."
"이제 지친다, 내도."
"……."
"간다."
백현이 그대로 뒤돌았고, 찬열은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말도 없었다. 아무런 말없이, 백현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찬열에게서 등을 돌린 백현은 그대로 밖으로 나와 집으로 향했다. 분명 자신은 찬열에게 헤어지자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찬열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분명 헤어진게 맞을텐데도 전혀 슬프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헤어질걸, 하는 나쁜 생각도 했다. 자신도 괜찮으니 찬열 또한 멀쩡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자 금방 집에 도착한 백현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왜 암말도 안했나, 이 빙시야!"
"경수야, 뭐하나?"
백현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하고있던 전화를 끊은 경수가 백현을 보았다. 경수가 큰 눈을 굴리며 어색하게 왜 벌써왔냐고 묻자 아무것도 눈치 못챈듯 백현이 대답했다.
"박찬열 집에 가니까 왠 여자가 있더라."
"…누구냐고 물어봤나?"
"뭐하러 묻나, 딱 보면 알지."
"…그래서 뭐라고 했나."
"헤어졌다."
"뭐?!"
"헤어지자고…,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왔는데,"
"……."
"왜, 갑자기 눈물이 나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집까지 걸어왔는데,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느끼기까지 했는데. 말도 잇지 못하고 우는 백현을 보던 경수가 백현을 안아주며 토닥였다.
"니가 헤어진 걸 인제서야 실감한거다."
"흐으…, 으,"
"괜찮다. 괜찮아, 백현아."
"경수야, 나 진짜 아무렇지 않았는데…,"
"괜찮아, 울지마라."
내는 아직도 박찬열이 너무 좋다…….
울다 지친듯 중얼거리며 잠든 백현을 방에 잘 눕히고 나온 경수가 찬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찬열아."
-어.
"니 목소리는 왜그러나? 니도 울었나?"
-…백현이는.
"지금 울다가 잠들었다."
-잘, 달래줬나.
"내가 몇날 몇일을 달래도 백현이한테는 아무 소용도 없다."
-…….
"백현이한테 필요한건 니라는걸 아직도 모르겠나."
-…….
"니도 많이 힘들거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옆에서 둘 다 지켜본 내는 백현이 편이다."
-…….
"들어가라."
순전히 제 할말만 하고 전화를 끊은 경수에 찬열이 부은 눈을 한 손으로 덮었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어 백현과 주고받았던 메세지를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백현이 보낸 긴 문자에는 온갖 이모티콘과 애교가 섞여있었고, 제가 보낸 답장에는 아무것도 없이 어, 아니, 이런 문자들 뿐이었다. 백현에게 미안한 마음이 넘쳐 경수에게 전화가 오기 전처럼 울던 찬열이 백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소리 후에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오니…,
전화를 받지 않는 백현이 마치 자신에게 아예 등을 돌린것만 같아 더 가슴이 미어지는 찬열이었다.
*****
"백현아, 나 왔다."
"……."
"밥 먹었, 니 지금 뭐하나?!"
찬열과 헤어지고 집에 온 후 경수에게 안겨 울던 백현은 몇일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백현이 하는 일이라곤 오로지 우는것 뿐이었다. 울다가 잠들고, 부은 눈으로 일어나 또 울고,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어쩐일로 백현이 식탁에 앉이있나 �g더니 의자에 다리를 올려 모으고 앉은 백현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미쳤나, 니 빈 속에 술마시면 속 뒤집어진다!"
"찬열이한테 연락왔다."
"……."
"그냥 다시 사귀잔다."
백현의 옆에 서있던 경수가 화면이 켜진채 식탁에 놓여진 백현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몇일만에 연락한 찬열은 한마디만 했다.
[백현아]
[니 그냥]
[내랑 다시 사귈래]
[?]
분명히 백현도 찬열이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렸을 거라고 생각했던 경수는 여전히 슬픈 눈으로 앉아있는 백현을 보았다.
"왜 그러나."
"……."
"돌아가고 싶은거 아니었나?"
"…돌아가기, 싫다."
"……."
"박찬열은 좋다. 너무 좋은데, 박찬열이랑 함께 했던 시간들은 좋지 않다."
"……."
"경수야, 내가 원하는건 예전의 박찬열이 아니다."
"……."
"내는, 변한 박찬열을 원하는거다."
무릎에 얼굴을 묻어버린 백현은 그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
"이거 어떠나?"
"괜찮다."
티를 꺼내어 자신의 몸에 대보던 백현이 찬열 몰래 쓴웃음을 짓더니 다시 티를 걸어두었다. 그리고 옆에 멀뚱히 서있던 찬열에게 다가가 그냥 나가자, 하고 조용히 말했다. 백현이 꺼내보았던 티를 힐끔 본 찬열이 와, 안사노? 하고 물었다.
"별로 맘에 안든다, 가자."
"…알았다."
박찬열은 항상 이랬다. 제 나름대로 무뚝뚝한 성격에 성의있게 대답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박찬열의 성격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아니,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찬열을 좋아하게된 2년 전부터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무뚝뚝한 성격탓에 여자들을 거들떠도 안본다는 사실에 바보같이 더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몇개월동안 나는 박찬열을 짝사랑했고, 얼떨결에 고백까지 하게 되었다. 찬열아, 내 니 많이 좋아한다. 내랑 사기도! 황당한 내 고백에도 아무런 표정변화가 없던 박찬열은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매사에 무뚝뚝한 박찬열을 위해 박찬열의 몫만큼 더 표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찬열아, 저거 니한테 진짜 잘 어울리겠다."
"맞나."
"응, 함 입어봐라."
"됐다, 귀찮다."
그렇게 별 의미없는 대화를 나누며 돌아다니던 우리는 저녁이 되서야 헤어졌다. 찬열이가 나를 보며 들어가라고 눈짓했고, 아파트 입구에 선 나는 뒤를 돌아 찬열이를 보았다. 언제나 이름을 부르며 찬열아, 사랑한다, 좋아한다, 너와 힘께여서 너무 행복하다,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나는 내가 처음 박찬열을 좋아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박찬열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박찬열은 2년을 넘게 사귀는 동안 단 한번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잘 가."
"어."
"사랑한다!"
"…알았다. 간다."
박찬열의 몫만큼 더 그를 사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그것은 처음 뿐이었다. 2년이 지나니 나는 나 혼자만 하는듯한 사랑에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아직 찬열이도 나를 많이 좋아할거다, 하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때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박찬열은 갑작스런 내 고백에 아무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인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박찬열은 애초에 나를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찬열아."
-어.
"오늘 뭐하나?"
-오늘…, 암껏도 안한다.
"그럼 오늘 좀 만나까?"
-왜?
"…왜냐니, 우리가 만나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나?"
-그건 아니지.
"어디서 만나까?"
-…오늘 꼭 만나야겠나?
백현은 핸드폰을 손에 쥔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제가 연락하기 전에는 웬만해서는 먼저 연락하지않기 때문에 매번 그랬듯이 이번에도 약간 자존심이 상하지만서도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찬열은 오늘 꼭 만나야겠냐고 물어온다. 백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왜, 오늘 암껏도 안한다며."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다.
"……."
-만나자하면 만나고.
"됐다, 쉬어라."
이미 옷을 다 입고 모든 준비를 다 마친 후 신발을 신고있던 백현이 신경질적으로 벗으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나 만나는게 피곤하냐고 묻고싶었지만 제가 아는 찬열이라면 그렇다고 하고도 남기에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이렇게 되어버린 자신이 안쓰러워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아냈다. 백현과 같이 자취방에 사는 룸메이트인 경수가 백현이 다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니 찬열이 만나러 안나가나?"
"어, 취소됐다."
"그럼 와서 밥이나 먹어라. 니 밥도 퍼줄게."
경수가 공기를 들고 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을 꾹꾹 눌러 가득 담아 자신의 밥이 놓여진 맞은편에 올려두었다. 의자에 앉은 백현이 반찬을 둘러보며 경수에게 말했다.
"경수야, 햄 없나, 햄?"
"햄 구워주까?"
"어."
"알았다."
경수가 스팸햄을 얇게 잘라 굽기 시작했다. 백현이 젓가락으로 밥풀 몇개를 떼어내 입에 넣고 젓가락을 물고있었다. 피곤하다며 만나기 싫어하는 기운이 역력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박찬열 이 나쁜놈."
"왜, 또 찬열이랑 싸웠나?"
"싸운거 아니다."
"그럼?"
"새끼가, 피곤하다고 만나지 말잔다."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던 경수가 고개를 돌려 서운함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을 한 백현을 보았다. 작게 웃은 경수가 다시 앞을 보며 백현에게 말했다.
"보고싶어서 만나자고 한거 아니가?"
"…보고싶다, 당연히."
"그럼 니가 집으로 간다하지 그랬나."
"내가 찬열이 집가서 뭘하나."
"얼굴 봐야지."
…그럴걸 그랬나, 작게 말한 백현에게 경수가 접시에 햄을 담아 가져왔다. 오자마자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려는 백현을 경수가 저지하며 뜨겁다, 식혀서 먹어라! 하자 햄을 식히던 백현에게 경수가 말을 이었다.
"밥먹고 갔다와라."
"별로 안좋아할텐데."
"그럴리가 있나, 사귀는 사인데."
박찬열은 그럴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걸 알면서도 찬열이 보고싶은 백현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경수도 밥을 먹기 시작했고, 백현은 경수가 눈치채지 못하게 서둘러 먹었다.
*****
"니 이럴라고 만나지 말자고 했나?"
"그런거 아니다."
"그럼 뭔데!"
"…그런게 있다."
"나는 피곤해서 못만나고, 여자는 만날 수 있나?!"
"그런거 아니라고 했잖아!"
"지금 니 왜 소리 지르는데?!"
서둘러 밥을 먹고 나온 백현은 그냥 연락없이 찬열의 집에 찾아왔다. 익숙하게 도어락으로 손을 뻗었지만 문은 안쪽에서 먼저 열렸다. 찬열의 얼굴이 보일거라 생각했던 백현은 순식간에 표정을 굳혔다. 문을 열고 나온것은 찬열이 아니라 처음보는 여자였다. 밖에 서있는 백현을 보고 여자가 놀라는 소리를 내자, 백현이 그리 보고싶어했던 찬열이 현관문 쪽으로 왔다. 여자는 찬열에게 인사를 하고 백현을 한번 쳐다보더니 백현을 지나쳐갔고, 그때부터 백현과 찬열의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니한테 내는 뭐가?"
"……."
"내랑 대체 왜 사귀는데."
"……."
"내 좋아하기는 하나?"
이렇게 말하면 당연히 좋아한다는 말을 해줄거라 생각했던 백현이 곧 후회하고 만다. 언제나 이런 기대는 저에게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줄 뿐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찬열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백현이 혼잣말처럼 작게 말했다. 역시, 니랑 내는 아닌가보다.
"찬열아."
"…어."
"우리 그만 헤어지자."
"……."
"이제 지친다, 내도."
"……."
"간다."
백현이 그대로 뒤돌았고, 찬열은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말도 없었다. 아무런 말없이, 백현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찬열에게서 등을 돌린 백현은 그대로 밖으로 나와 집으로 향했다. 분명 자신은 찬열에게 헤어지자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찬열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분명 헤어진게 맞을텐데도 전혀 슬프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헤어질걸, 하는 나쁜 생각도 했다. 자신도 괜찮으니 찬열 또한 멀쩡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자 금방 집에 도착한 백현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왜 암말도 안했나, 이 빙시야!"
"경수야, 뭐하나?"
백현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하고있던 전화를 끊은 경수가 백현을 보았다. 경수가 큰 눈을 굴리며 어색하게 왜 벌써왔냐고 묻자 아무것도 눈치 못챈듯 백현이 대답했다.
"박찬열 집에 가니까 왠 여자가 있더라."
"…누구냐고 물어봤나?"
"뭐하러 묻나, 딱 보면 알지."
"…그래서 뭐라고 했나."
"헤어졌다."
"뭐?!"
"헤어지자고…,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왔는데,"
"……."
"왜, 갑자기 눈물이 나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집까지 걸어왔는데,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느끼기까지 했는데. 말도 잇지 못하고 우는 백현을 보던 경수가 백현을 안아주며 토닥였다.
"니가 헤어진 걸 인제서야 실감한거다."
"흐으…, 으,"
"괜찮다. 괜찮아, 백현아."
"경수야, 나 진짜 아무렇지 않았는데…,"
"괜찮아, 울지마라."
내는 아직도 박찬열이 너무 좋다…….
울다 지친듯 중얼거리며 잠든 백현을 방에 잘 눕히고 나온 경수가 찬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찬열아."
-어.
"니 목소리는 왜그러나? 니도 울었나?"
-…백현이는.
"지금 울다가 잠들었다."
-잘, 달래줬나.
"내가 몇날 몇일을 달래도 백현이한테는 아무 소용도 없다."
-…….
"백현이한테 필요한건 니라는걸 아직도 모르겠나."
-…….
"니도 많이 힘들거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옆에서 둘 다 지켜본 내는 백현이 편이다."
-…….
"들어가라."
순전히 제 할말만 하고 전화를 끊은 경수에 찬열이 부은 눈을 한 손으로 덮었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어 백현과 주고받았던 메세지를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백현이 보낸 긴 문자에는 온갖 이모티콘과 애교가 섞여있었고, 제가 보낸 답장에는 아무것도 없이 어, 아니, 이런 문자들 뿐이었다. 백현에게 미안한 마음이 넘쳐 경수에게 전화가 오기 전처럼 울던 찬열이 백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소리 후에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오니…,
전화를 받지 않는 백현이 마치 자신에게 아예 등을 돌린것만 같아 더 가슴이 미어지는 찬열이었다.
*****
"백현아, 나 왔다."
"……."
"밥 먹었, 니 지금 뭐하나?!"
찬열과 헤어지고 집에 온 후 경수에게 안겨 울던 백현은 몇일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백현이 하는 일이라곤 오로지 우는것 뿐이었다. 울다가 잠들고, 부은 눈으로 일어나 또 울고,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어쩐일로 백현이 식탁에 앉이있나 �g더니 의자에 다리를 올려 모으고 앉은 백현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미쳤나, 니 빈 속에 술마시면 속 뒤집어진다!"
"찬열이한테 연락왔다."
"……."
"그냥 다시 사귀잔다."
백현의 옆에 서있던 경수가 화면이 켜진채 식탁에 놓여진 백현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몇일만에 연락한 찬열은 한마디만 했다.
[백현아]
[니 그냥]
[내랑 다시 사귈래]
[?]
분명히 백현도 찬열이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렸을 거라고 생각했던 경수는 여전히 슬픈 눈으로 앉아있는 백현을 보았다.
"왜 그러나."
"……."
"돌아가고 싶은거 아니었나?"
"…돌아가기, 싫다."
"……."
"박찬열은 좋다. 너무 좋은데, 박찬열이랑 함께 했던 시간들은 좋지 않다."
"……."
"경수야, 내가 원하는건 예전의 박찬열이 아니다."
"……."
"내는, 변한 박찬열을 원하는거다."
무릎에 얼굴을 묻어버린 백현은 그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으항항
틈틈히 썼는데도 다 못썼네요.. 편을 나눠서 올려야겠어요 ㅎㅎ
무뚝뚝한 찬열이를 쓰려하다보니 어디 사투리 쓰는 남자들이 무뚝뚝하다는 얘기를 주워들어서..
사투리에 도전해봤는데 너무 어설프고.. 이게 어디 사투리인지도 모르겠고 그렇네요ㅋㅋㅋ;..휴
읽어주신 모든분들 감사합니다!하트 하트 ㅎ
(어째 글이 준수화가 되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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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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