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연애중
w. 스핑
01. 버릇이 되었어
김민규와 헤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냥 더 이상 만나지 않기로 했다.
핸드폰 번호를 지우려다 생각했다. 어차피 외우고있는데, 지워봤자..
단축번호로 저장해두었던 그의 번호를 지우고 팔을 그대로 내려 침대위로 떨어뜨렸다.
침대에 튕겨나간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져나갔다.
핸드폰을 줍기 귀찮아 몸을 아예 돌려 벽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솜이불의 감촉이 좋아 팔을 뻗어 품안에 한가득 안았다.
이불 사이로 새어나오는 바람과 같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숨은 아니였다.
중천에 뜬 해가 쨍쨍히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자꾸만 눈가를 찔러대는 날카로운 햇빛에 원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를 짜증스레 헝클인 그가 팔을 휘젔다가 결국 일어나 유리창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암막으로 되어있는 블라인드 탓에 방 안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터덜터덜 침대로 걸어간 원우가 침대위로 풀썩 쓰러졌다.
띵하게 아파오는 머리위를 매만지던 원우가 잠에 들었다.
원우가 깬건 다섯시간쯤 지나서였다.
여전히 어두운 방안에 머릿맡을 더듬거리던 원우가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생각해내고 아, 하고 작게 내뱉었다.
팔을 뻗어 바닥에 떨궈진 핸드폰을 든 원우가 저녁시간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을 보고 푹 한숨을 내쉬었다.
[밥 먹어랑 :)]
일곱시가 되기 무섭게 울리는 알람에 원우가 무심하게 알람을 껐다.
아주 예전부터 해놓았던 알람을 이젠 지워야겠다고 생각한 원우가 알람을 지우려다가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차피 초기화 시켜야 할 기계였다.
방의 불을 켜자 환한 빛이 방 안을 가득 매웠다.
곳곳에 놓여진 그가 줬던 선물들을 바라보던 원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치우냐.. 작게 내뱉은 원우가 씁슬히 웃고 방을 나섰다.
흰 티셔츠와 추리닝 바지 그리고 후드집업을 대충 걸친 원우가 슬리퍼를 직직 끌며 집을 나섰다.
지갑을 한 손에 들고 멍하니 걸어가던 원우가 이내 핸드폰을 놓고온걸 생각해내고 발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트에 들어서자 불어오는 따듯한 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코먹는 소리를 한번 킁, 하고 낸 원우가 곧장 즉석식품 코너로 들어섰다.
카트 안에 즉석식품을 가득 담고 과자 코너로 몸을 돌린 그가 자연스레 초코칩 쿠키를 집어들었다.
곧장 계산대로 향한 그가 아무 생각 없이 그것들을 모두 봉지에 담았다.
크게 네봉지 가량의 물품들에 원우가 익숙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아, 첫번째론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다는것을 기억해냈고, 두번째론 그의 짐을 들어줄 그 누군가가 이제는 없다는것을 기억해냈다.
한참동안 꽤 되는 양의 짐을 바라보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양손 가득 봉지를 들었다.
집에 와 텅 빈 냉장고를 꽉꽉 채우던 도중 초코칩 쿠키를 발견한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가 집에 들릴 때 마다 내놓던 과자를 그대로 사와버린 자신의 모습에 한참을 멍하니 있다 결국 찬장 구석에 그것을 넣었다.
단것을 싫어하는 탓에 결국 손님의 몫이 될 것이였다.
하, 하고 한숨을 터뜨린 원우가 아픈 팔을 주무르며 목을 돌렸다.
뚜둑, 뚜둑하고 듣기 나쁜 소리가 났다.
전자렌지에 냉동만두와 햇반을 넣고 돌렸다.
기계음을 내며 돌아가는 전자렌지 앞에 멍하니 서있던 원우가 띵, 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데워진 음식들을 꺼내었다.
조용히 밥을 먹은 원우가 설거지를 하고 다시 방으로 갔다.
침대위로 쓰러진 원우가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에 들었다.
헤어진지 하루, 원우는 자꾸만 습관처럼 핸드폰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가 떼어내길 반복했다.
민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헤어진지 하루째, 꽉 막혀서 가슴 안에 뭉쳐있던것이 이젠 공허하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직장생활 초년생까지.
함께했던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였다.
1년 가까이 오해하고, 싸우고, 다투고.
함께 영화보고, 말없이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며 질질끌다가 섹스하고, 헤어지고, 만나고, 결국 끝엔 다시 섹스.
싸우고, 다투고, 섹스하고.
암묵적인 헤어짐에 사실 무덤덤했다.
지루하고, 이미 식을대로 식은 사랑의 권태로움은 저만이 느끼고있는것이 아니였다고, 민규는 생각했다.
기지개를 키고 일어난 민규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어 낙엽들을 떨구고있었다.
아, 밥 안먹고 있겠지.
문득 든 생각에 민규가 인상을 쓰고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고개를 거칠게 흔들어 생각을 떨쳐낸 그가 발걸음을 이끌었다.
카페 안의 훈훈한 열기에 민규가 쓰고있던 후드집업의 모자를 벗었다.
"카페라떼 하나랑 아메리카 하나요."
익숙하게 주문하던 민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아메리카노 빼주세요. 카페라떼만 하나요."
고개를 끄덕이는 알바생에 다시 인상을 찌푸리던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인상을 다시 폈다.
커피를 한손에 들고 밖으로 나가자 한기가 온몸을 감쌌다.
아, 옷 따듯하게 입으라고 해야하는데.
자연스레 핸드폰을 손에 쥐었던 민규가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무래도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였다.
헤어진지 하루, 그들은 여전히 연애중이였다.
[암호닉]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