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어때."
"어떨 것 같은데요."
"글쎄. 기뻤으면 좋겠는데. 욕심인가."
"나가요."
"이제 레파토리 좀 바꿔봐."
"..."
"네가 나가라고 한다고 내가 얌전히 나가 줄 사람이 아니란건 이미 알고 있지않나."
사실 알고 있었다. 싫다고 그를 밀어냈지만 온전히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걸. 그가 당장 사라진다면 잃을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루하루 내가 그를 완전히 떨쳐낼까 숨죽여 불안에 떠는 엄마도, 그의 지원을 받는 발레단도 모두. 낡은 서적을 들고 내게 사랑만을 건넬 수 있었던 태형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가진게 많은 남자.
"...내가 우습지도 않아요?"
"무슨 뜻이지."
내가 더욱 견딜 수 없는건,
"당신도 알잖아요. 나, 태형이 좋아해요. 그런데 당신이 주는 것들 놓칠 수가 없어서 잡고 있잖아요 양 손에."
"고맙네. 그렇게라도 나 잡고 있어줘서."
이런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구는 당신의 태도.
"네 손에 나라는 인간을 쥐고 있어줘서 내가 얼마나 안심하고 고마운지 넌 모르겠지."
"전정국씨."
"평생."
"..."
"그 새끼만 바라보고 산다고 해도 상관없어."
"..."
"내가..."
"..."
"그런 네 뒷모습까지,"
"..."
"사랑할테니까."
내 결혼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예쁘다."
거진 한달만에 보는 태형이 얼굴을 더 마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를 비웃듯 정말 비틀어질듯 말라있었다.
"이렇게 나한테 와도 괜찮아? 어머니께서 싫어하시잖아."
"왜이렇게... 말랐어."
"너는 새신부가 왜이렇게 안 행복해 보여."
"...마음, 주지 말라며."
내 말에 태형이는 밝게 웃었다. 조금 시선을 낮춘 곳에는 얼마나 펜을 잡고 시간을 보냈는지 잔뜩 짓무른 가느다란 손가락이 보였다. 손을 뻗어 그런 그의 손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아픈지 조금 움츠렸다 펴는 그 손이 못내 안쓰러워 결국 눈물이 흘렀다.
"태형아..."
"내 말, 먼저 들어."
"..."
"나 이번에 꼭 고시 붙을거야."
"...응."
"그래서... 너, 찾아올거야."
"...응."
"그 사람이 너 안놔주면 죽사사자 덤벼서 너 끌어안고 빠져나올거야."
"..."
"지금 내가 참는 이유는..."
내 눈물이 보이지 않을만큼 태형이가 울고 있다.
"나는 아직 너한테 그런 예쁜 드레스 사줄 수 없으니까."
서럽게.
"나는 아직 너네 발레단 그렇게 후원해 줄 수 없으니까."
처절하게.
"나는 아직... 너네 집, 되찾아 줄 수 없으니까."
못견디게.
"나는 아직..."
그렇게.
"...너 욕심낼 자격 없으니까."
김태형이 울고 있다.
"그래서 너 잠시... 놔주는거야."
....
"신파는 거기까지 찍어."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내 손을 잡아 일으키는 손길이 있었다.
"자격 없는거 그렇게 잘 안다니까 아주 다행이야."
서럽게 우는 김태형 앞에.
"인사해, 곧 옛애인이자 추억이 될 남자한테."
처절하게 우는 김태형 앞에.
"아, 그쪽도 인사하지 그래."
군림하는 남자가 내 어깨를 으스러질 듯 붙잡고 웃고 있었다.
"내 약혼녀이자,"
"..."
"아내가 될 사람이고,"
"..."
"그쪽, 옛 여자친구한테."
그렇게 돌아와 단 한 발자국도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매일 저녁 찾아온 그가 사온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놓고 마주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도 내게 딱히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와, 결혼했다.
김태형을 두고
내가...
전정국과 결혼했다.
"사랑해."
"..."
"오늘은 좀 웃었으면 좋겠는데."
"..."
"다녀올게, 여보."
그는 매일 내게 사랑을 말했다. 매일 다정하게 안아주었고, 하루도 넘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내 발레단은 그의 후원으로 국내에서 가장 인정 받는 발레단으로 성장했으며 내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하루도 끊이지 않았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나만 빼고.
아니, 어딘가에 있을...
김태형도 빼야겠지.
그와 결혼을 하고,
태형과 연락이 끊긴 지도
1년이 지났다.
그리고 김태형을 다시 만났다.
그와 살고 있는 집, 이 집에서.
예전보다 날카로운 얼굴을 하고.
여전히 사랑스러운 미소는 지우지 못한 채로.
바보같이 서 있는 내게 말했다.
"데리러 왔어."
"..."
"아직..."
"..."
"마음, 안줬지?"